[ART + CULTURE] ‘민예(民藝)’의 원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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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4, 2023

글·사진 박혜연(디자이너)

‘천 년 수도’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토대로 동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건축과 미식, 상점 등 다채로운 영역의 콘텐츠가 풍성하게 쌓이면서 갈수록 매력을 키워가고 있는 일본 간사이 지방의 대표적인 예술 도시 교토(京都). 늘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북적이던 교토 역시 코로나 시국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지만 외려 겨울잠을 자며 조용히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 것 같다. 이제 다시 문을 활짝 연 교토는 ‘문화 예술의 메카’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는 듯 예전보다 더 신선한 활기를 띠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교토다운’ 역사와 일본 현대 디자인의 토대인 ‘민예’에 얽힌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지닌 문화 예술 유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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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천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메이지 유신 이후 좁은 분지라는 지형적 한계에 부딪혀 수운, 무역에 유리했던 도쿄에 심장의 자리를 내준다. 공식적인 수도의 지위를 상실하기는 했지만 많은 일본인은 여전히 교토를 ‘정신적 수도’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여긴다. 찬란한 전통과 학문을 반영하는 수백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유수의 연구 기관은 물론 동쪽에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서쪽에 덴류지(천룡사)를 대표 격으로 내세운 유서 깊은 사찰과 답사객을 절로 ‘관조 모드’로 이끄는 아름다운 정원, 성곽 등 문화적 자산이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잘 알려져 있듯 대나무 숲을 비롯한 수려한 자연미도 교토의 자랑이다. 교토 시내에서 1시간 정도만 자동차로 움직이면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로 유명한 I. M. 페이가 설계한 경이로운 자태로 맞이하는 미호 미술관은 자연과 건축의 오묘한 조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비와코 호수 근처의 사가와 미술관도 빼어난 경치로 명성 높다. 이렇듯 곳곳에서 저마다의 오라를 풍기는 문화유산을 보노라면 이 고고한 천 년 고도에서는 여전히 일본의 살아 있는 맥이라 할 만한 도시의 품격이 느껴진다.
최근에는 동시대 미술과 더불어 공예, 디자인의 물결이 고아한 전통 예술로 스며들어 더 다양한 볼거리와 더 넓고 깊어진 예술의 스펙트럼을 선사한다. 늘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교토가 코로나라는 복병을 맞이해 고요하게 재정비하는 시기를 누린 덕분일까. 역사적 소산물과 현대의 문화 예술적 흐름을 함께 엮어나가며 더 풍성한 볼거리를 빚어내고 있다. 일례로 전 세계에서 모여든 64개의 갤러리가 참가한 ‘아트 컬래버레이션 교토(ACK) 2022’가 지난 11월 중순 열리기도 했는데, 2회를 맞이한 이 아트 페어는 자국(일본) 갤러리가 해외 갤러리를 초청해 ‘호스트-게스트’로 짝을 이루는 식의 흥미로운 구성이 돋보였다. 이렇듯 동시대 미술의 장으로도 거듭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토는 역시 빛나는 전통과 자연이라는 굳건한 토대를 바탕으로 현대 문명과 동시대적 흐름을 섬세하게 조화시키는 데 강점이 있지 않나 싶다.
‘교토다운’ 매력이 다분히 깃들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덜 알려진 문화 예술 유산을 이 글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북적이는 교토 도심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예술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아사히 맥주 오야마자키 산장 미술관(Asahi Beer Oyamazaki Villa Museum of Art), 그리고 기요미즈데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민예 운동의 핵심 멤버 가와이 간지로를 기리는 가와이 간지로 기념관(Kawai Kanjiro’s Hou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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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AI BEER OYAMAZAKI VILLA MUSEUM OF ART


교토부 오야마자키초, 덴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아사히 맥주 오야마자키 산장 미술관. 한번 가면 계절마다 꼭 다시 오리라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이곳을 찾은 건 단풍이 서서히 물들어갈 무렵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고요한 언덕 위 산장. 말 그대로 입구에서 바라다보면 예쁜 산장 건물인데, 1996년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필자가 찾았을 당시에는 마침 시즌별로 기획되는 특별전으로 스위스 그림책 전시를 개최하고 있었다.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스위스 베른 출생 일러스트레이터 한스 피셔(Hans Fishcer)와 자녀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 작품에 더욱 따뜻함이 묻어나는 작가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의 아름다운 삽화. 원본에서만 느껴지는 마른 잉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동화 속 인물과 동물을 보노라니 금세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산장 2층 카페 입구에서는 1985년경 제작된 독일 폴리폰사의 디스크 오르골 ‘미카드’가 눈길을 은근히 잡아끈다. 정시마다 작동하는데, 한번 회전하면 2분 정도의 연주가 진행된다. 거대한 금속판에 촘촘히 붙어 있는 디스크가 돌아가며 시차를 두고 빗 모양 금속 판을 튕겨내며 선율을 이뤄내는 것을 보고 듣고 있자면 마음을 울리는 고아한 음색에 한번 더 들어야지, 마음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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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별장,‘메세나’로 산장 미술관으로 거듭나다
이 고즈넉한 숲속의 미술관은 일본 근대 예술, 디자인 사상의 근간을 이룬 민예 운동을 지지한 야마모토 다메사부로(1893~1966)와 산장을 처음 건축한 가가 쇼타로(加賀正太郎,1888~1954) 사이에 싹튼 우정의 소산이자 기업 메세나의 결실이기도 하다. 일본 다이쇼 시대, 1912년 5년에 걸쳐 목조로 설계한 뒤, 쇼와 시대 초기(1922) 증축을 시작해 1932년 완성된 이 산장은 간사이 지방의 사업가 가가 쇼타로의 별장으로 처음 지어졌다. 에도 시대부터 섬유업과 곡물 중개업을 한 가가 집안(加賀家)의 장남으로 태어난 가가 쇼타로는 증권업을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사업가였다. 그가 견문을 넓히려고 떠난 유럽 여행 중, 런던 근교 템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윈저성을 방문 중 영감을 얻은 뒤, 교토의 근교인 기즈, 우지, 가쓰라, 세 강이 합류하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야마자키의 덴노산 언덕 위에 위치를 정하고 직접 설계, 감수해 산장을 건축했다. 본관인 ‘세이케이로(霽景楼)’는 영국 튜더 양식(15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의 건축양식)을 잘 구현해낸 일본의 유형문화재이기도 하다.
1954년 가가 쇼타로가 작고한 이래, 오야마자키 산장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노후됐고, 1989년께는 대규모 아파트 조성 계획으로 아예 사라질 위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오야마자키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보존 운동이 전개되면서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가 산장을 복원해 미술관으로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가가가 생전 친분이 깊었던 야마모토 다메사부로(아사히 맥주 주식회사 초대 사장)가 기증한 소장품이 미술관 컬렉션의 토대가 된다. 이 소장품은 야마모토 다메사부로가 민예 운동을 지지했다는 증거물이기도 한데, 그가 아낌없이 지원한 민예 운동 작가인 가와이 간지로(河井寬次郎), 하마다 쇼지(濱田庄司),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작품이 본관 전시의 주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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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지방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합류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산장 미술관을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인 ‘스타키텍트’이자 간사이 지방 출신인 안도 다다오가 가가의 별장을 미술관으로 확장할 때 참여한 원주형의 지중관(‘지중의 보석상자’라는 뜻, 1995년)에서 선보이는 걸출한 컬렉션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기획전을 위한 야마테칸 ‘꿈의 상자’의 증축에도 참여했다. 덴노 산자락에서 오롯이 1백여 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본관의 위용을 존중하듯 안도 다다오 특유의 간결한 건축 미학이 묻어나는 지중관은 반지하로 들어가 본관의 차분한 배경이 되어주는데, 안에서는 인상파의 개척자 클로드 모네의 그 유명한 ‘수련’ 시리즈를 계절별로 교대해 전시한다. 고즈넉한 산속에서 거장의 붓 터치를 차분히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에 단연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물론 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는 모네의 수련 5점 이외에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이사무 노구치(1904~1988), 헨리 무어(1898~1986) 등 20세기 거장들의 회화, 조각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산장 곳곳에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므로 미술관 밖으로 나와 산을 병풍 삼고 연못을 벗 삼아 유유자적 거닐어보는 산책의 발품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이렇듯 소장품과 기획전을 아우르며 안팎을 찬찬히 감상하다 보면 짧아진 해가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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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예’라는 언어의 옷을 입고 격상된 일상용품
아마도 디자이너 출신인 필자의 배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야마모토 다메사부로의 컬렉션에도 눈길이 갔다. 컬렉션을 주로 구성하는 도자기 등의 수공예품은 그 시대 혹은 더 이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생활용품이다. 이런 평범한 일상생활 수공예품을 지칭하는 ‘민예(民藝)’는 1925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와 가와이 간지로에 의해 처음 명명되었다. ‘민(民)’은 ‘민중과 민간(民衆や民間)’, ‘예(藝)’는 ‘공예(工藝)’의 ‘예(藝)’를 뜻한다. 당시 평가의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일상생활용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 문화의 독자성과 아름다움을 존중했던 인물로 한국에서도 꽤 잘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는 홍콩에서 태어난 영국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와 밀접한 교류를 통해 영국의 신비주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윌리엄 블레이크를 알게 되고 그의 사상에 심취한다. 이를 통해 상상, 직관, 자연관을 형성하는 본인의 철학적 기초를 다지는 한편 신신학(新神學, New Theology)을 통해 자연과 신의 합일을 체험하는 신비주의에 관심을 둔다. 그 후 동양 신비 사상의 핵심으로 여겨지던 ‘상상(想像)’의 개념, 나아가 동양 사상의 핵심인 도교와 불교를 탐닉하며 ‘민예 이론’이라는 독자적인 미론을 구축해나간다.
큰 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야나기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 영국에서 주도한 대량생산 체제에 반발해 수공예의 가치를 되살리고자 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에 영향을 받아 동양의 미의식과 종교성이 결부된 독자적인 일본식 공예 이론을 수립했다. 유럽의 미술공예운동은 바우하우스와 미니멀리즘 산업디자인의 시초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하급 문화로 치부되던 일상 공예품을 ‘민예’라는 언어의 옷을 입히며 예술품으로 격상시키는 데 공헌했다. 이후 이 ‘민예 사상’은 한 세기에 걸쳐 일본의 사회 문화 전반에 뿌리를 내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브랜드 ‘MUJI’나 평범함 속의 비범을 뜻하는 ‘슈퍼 노멀’ 개념의 토대가 된 것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야나기 소리는 바로 민예 운동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이다.



#KAWAI KANJIRO’S HOUSE


민예 운동 역사에서 또 다른 거장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단초를 제공해준 건 아사히 산장 미술관의 준이치로 오니즈카 관장이었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던 민예 운동 주창자이자 근대 도예가 가와이 간지로(1890~1966) 기념관이다. 마치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기요미즈데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한적한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와이 간지로 기념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교토식 미닫이 현관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입구 매표소를 지키고 있는 노년의 여인이 인사를 건넸는데, 바로 간지로의 손녀였다. 주변 일본 가옥과 달리 채광이 유난히 좋아 초겨울이지만 따뜻한 햇살이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한눈에 옛 시대를 살았던 분의 가옥이자 작업실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기념관이 되기 이전에 손님을 맞아 담소를 나눴을 듯한 안채의 화롯가와 그 주변의 나무 의자라든지, 밖에 있는 중정의 한편에 있는 작은 가마, 산등성이처럼 올라가는 계단식 가마, 다양한 기물이 그 자취를 말해주는 듯했다. 실제로 일과 사생활을 구분하며 살지 않았던 간지로는 5대 기요미즈 로쿠베에(清水六兵衛)의 가마를 양도받은 이래, 이를 등반 가마(登り窯)라 명명하고, 거주지를 함께 꾸렸다. 그러나 그 후 태풍으로 집이 심하게 파손된 사건을 계기로, 고향 친인척이던 목수의 도움을 받아 1937년 현재 기념관의 모습을 완성했다고. 간지로의 집 마룻바닥이 조선 농가식인 점은 그가 야나기 무네요시처럼 조선 문화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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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일상을 예술의 차원에서 담아내다


“좋은 것을 만들면 미는 나중에 따라온다(良いものを作れば、美は後から追いかけてくる).”


가와이 간지로는 1890년 시마네현 야스기시에서 목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도공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도쿄 고등공업학교 가마과에 진학했고 교토 시립 도자기 연구소에서 방대한 양의 유약 연구를 진행했다. 1921년, 그는 중국풍의 화려한 유약과 다양한 장식 기법을 활용한 도자를 제작해 도예가로서 첫 개인전을 연다. 그 후 야나기 무네요시, 하마다 쇼지와의 만남을 통해 민예 운동의 주축 멤버가 되는데, 이로 인해 그의 작풍은 단순하고 소박해진다. 감상을 위한 도자가 아니라 실용적인 일상용품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민예를 실천하면서 그는 도자 외에도 목각, 청동, 글을 다루며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해나갔다. 간지로의 언어를 빌려 민예를 개념화한다면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않고 만드는 일상의 물건에 머무는 진실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민예의 소박한 본의를 따라 국가의 인간문화재 지정을 포함한 모든 공적 명예를 거부했다. 전쟁 중에는 개인 작업을 중단했다가 쇼와 시대 초기 작품 활동을 재개했을 때는 모든 작품에 이름을 뺀다. 도자를 만들고 굽는 ‘일개 도공’으로 남고 싶었던 그, 아름다운 본질만을 추구하다 보면 ‘누가’ 만들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가와이 간지로. 고인의 창조혼의 철학이 깃든 공간을 보노라면 손녀의 기억처럼 그는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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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2-23 Wint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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