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Brands & Artketing_9 우리가 ‘여행의 공간’에 기대하는 것들

조회수: 2013
1월 04, 2023

글 고성연

이동과 이주의 시대로 일컬어지던 21세기의 행보에 꽤 오랫동안 제동이 걸렸지만, 이제 하늘길이 보다 자유롭게 열리면서 다시 길을 떠나는 이들로 공항이 붐비고, 그들을 맞아들이는 ‘여행의 공간’, 그러니까 호텔은 다시금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기가 다시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차분히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해온 호텔 브랜드도 꽤 있다. 호텔의 세계에 관심을 둔 이들이라면 꽤 익숙할 법한 브랜드인 에이스 호텔(Ace Hotel) 역시 그러했다. 팬데믹 기간에 개장해 주로 내국인 위주로 꾸려왔던 에이스 교토와 지난해 5월 문을 연 에이스 시드니. 여행자들에게 내미는 제안에 대한 소신이 분명한 라이프스타일 호텔다운 개성 넘치는 ‘공간’과 ‘서비스’는 우리가 호텔에 기대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어째서 ‘에이스’라는 브랜드가 자신만의 속도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에이스 방식’, 우리가 정의하는 ‘럭셔리’에 공감하나요?
스스로 나그네가 되어 길을 떠나는 이는 근본적으로 낙관적이라는 문장을 어디에선가 공감하며 본 기억이 있다. 낯선 이들과 마주치기 마련인 길 위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행길에서 가끔 맞닥뜨리는 낯선 사람들의 호의에 기분이 한없이 ‘업’되기도 하고, 악의는 아니라 해도 심술을 겪게 되면 괜히 처량해지기도 한다. ‘여행의 공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호텔은 이런 맥락에서 어떤 이들의 여정에서 꽤 중요한 지분을 차지할 수 있다. 아주 다양한 호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주파수’가 통하는 듯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기본적으로 회의로 점철된 출장이냐, ‘방콕’ 수준으로 호텔에 머무르냐 하는, 여행의 성격에 따라 원하는 바도 달라지겠지만 짧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공간이 제공하는 분위기와 서비스에 기분 좋게 동화되는 행운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을 터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호텔이 다수 존재하지만 그런 공간이 흔한 건 아니다. 물론 모든 걸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초럭셔리 호텔에는 기대치를 높이는 요소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코드’가 맞는 것도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 게 소비자의 심리 아니겠는가. ‘에이스(Ace)’라는 브랜드는 처음부터 자신과 같은 취향과 생각을 지닌 이들을 스쳐 갈 수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둔 ‘색깔 있는 호텔로 출발했다. 1966년생으로 미국 시애틀에서 10대를 보내면서 당시 클럽이나 라이브 홀에 다니며 서브 컬처에 녹아들었던 알렉스 콜더우드(Alex Calderwood)라는 인물이 시동을 걸었다. 그는 영혼의 단짝 같았던 웨이드 웨이글과 뜻이 맞아 레트로 힙 무드의 이발소를 차렸고 이 사업의 성공을 발판 삼아 1999년에는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련된 감성과 안락함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 ‘주파수’ 통하는 이들과의 창조적 협업을 토대로 하고, 지역사회에 작고 소중한 활기를 안겨주고자 하는 흥미로운 라이프스타일 호텔 브랜드 에이스의 탄생이었다. 1호점 시애틀에 이어 많은 팬을 양산한 포틀랜드점(2007), 규모를 확 키운 뉴욕점(2009)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런데 런던점을 연 2013년 말 알렉스 콜더우드는 40대의 나이로 세상을 일찍 떴다. 당연히 우려도 불거졌지만 그래도 에이스는 꾸준히 성장해나갔다. 지역 사람들이 에이스를 거실처럼 여기기를 열망했던 창업자의 뜻을 지키려 애쓰면서.


ACE HOTEL KYOTO


문화 엔지니어’라는 표현은 에이스 호텔이 추구하는 산업의 맥락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_<매거진 B>


1
2
고아한 도시 속 안락과 활기를 선사하는 안식처
에이스 호텔 교토에 도착한 날에는 마침 멕시코 전통 축제 ‘죽은 자들의 날’을 위한 파티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그래서 호텔의 3개 레스토랑 중 하나인 피오피코(PIOPIKO)에서는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흥겹게 춤을 추기도 하면서 타코와 칵테일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했다. 로비에는 축제를 위한 민속적인 장식과 더불어 <East Meets West>라는 제목(호텔 디자인의 토대가 되는 ‘개념’)의 전시가 열려 보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팬데믹의 빗장이 점차 풀리면서 해방감마저 감도는 흥겨운 풍경에 이어 처음 접하는데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정감 어린 객실 디자인을 마주하자 에이스 교토의 명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사실 에이스가 아시아에 처음 선보인 교토점은 2020년 문을 여는 바람에 해외 방문객을 그리 많이 맞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내국인들이 주로 찾으면서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일본이 낳은 또 하나의 ‘스타키텍트’로 자리매김한 구마 겐고(Kengo Kuma)가 전반적인 디자인과 설계를 맡았고 에이스답게 위치 선정도 탁월해 뭇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을 터. 자신의 건축 언어를 ‘느슨하고 한가롭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 구마 겐고의 말을 반영하듯 에이스 교토점에는 활기를 품은 여유가 공간을 타고 흐르면서도 섬세한 ‘디테일의 미학’도 묻어 있다. 객실을 예로 들자면,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 가구 디자인에서 영감받았다는, 신발을 벗는 데 활용하는 작은 벤치라든가 침대 곁에 길게 펼쳐진 다다미 스타일의 사이드 테이블이라든지, 그리 크지 않은 방의 경우에도 아담하게 갖춘 일본식 욕조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에이스’ 다운 요소도 적절히 스며들어 있다. 길게 뻗은 감각적인 테이블에 저마다 랩톱이나 태블릿 PC로 뭔가에 골똘히 집중하고 있는 로비의 풍경을 보노라면 로비 신(scene)의 새 장을 열었다고 찬사받았던 에이스 호텔 뉴욕의 명성이 구마 겐고의 감성을 업고 교토식으로 재해석된 느낌이 든다. 에이스와 찰떡궁합으로 자주 어울리는 스텀프 타운 커피 매장이 호텔 안에 있는데, 이는 생기 넘치는 또 다른 교토의 명소 ‘신풍관’의 안뜰로 이어진다. 신풍관은 원래 1920년대 중반 유명 건축가 요시다 데쓰로(Tetsuro Yoshida)가 설계한 유서 깊은 건물인데 에이스 교토점이 들어오면서 전반적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메종 키츠네 카페, 르 라보 등 감각 있는 브랜드의 집합소라고 할 만한 복합 컴플렉스로 ㅁ 자형 단지 안에 정원이 한가운데 자리해 해사한 날이면 그야말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3
4
5
6


취재 협조·이미지 제공 에이스 호텔(Ace Hotel)




ACE HOTEL SYDNEY
문화 예술의 기운이 넘실대는 거리의 새 명소
도시의 네온사인을 호령하는 듯한 고층 건물에 최첨단 시설과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확실히 ‘에이스’의 제안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호텔을 품은 동네, 더 나아가서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추구하는 게 에이스의 오랜 철학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장한 에이스 호텔 시드니는 이 같은 브랜드의 특징을 잘 반영한 듯한 공간이다. 호주에 입성한 첫 에이스 호텔이기도 한데, 하이드 파크가 멀지 않고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가 모여 있는 문화적 요소가 풍부한 서리 힐(Surry Hills)에 자리해 소탈하면서도 다소 펑키한 세련미를 복합적으로 뿜어낸다. 외관상으로는 언뜻 아담해 보이기도 하지만 객실 수가 제법 된다(2백57개). 에이스 시드니의 디자인 협업은 플락 스튜디오(Flack Studio)가 맡아 1세기 넘는 유서 깊은 건물에 8개 층을 더 올리면서 전반적인 리뉴얼 작업을 진행했는데, 디자인 감성 자체는 호주 화가인 앨버트 나마치라(Albert Namatjira)의 풍경화에서 창조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객실을 비롯해 호텔 공간 곳곳에서 따스한 자연미가 풍기는데, 그처럼 편안한 감성 속에서도 이따금 톡톡 튀는 감성의 예술 작품이라든지 디자인 가구가 신선한 감각을 더해준다. 또 진료소, 창고, 의류 공장 등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용도로 쓰여온 건물의 실용적인 발자취를 감안해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한다든지 지역에서 생산된 목재나 황동 같은 소재를 디자인적으로 잘 활용한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또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호텔이 들어선 건물의 대지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이력(19세기 초반)을 지닌 가마가 발견된, 일종의 유적 같은 가치도 지니고 있는데, 이에 힌트를 얻어 에이스 시드니점에는 젊은 셰프 미치 오르(Mitch Orr)와 손잡고 얼마 전 문을 연 루프톱 레스토랑 이름을 영어로 가마라는 뜻의 ‘킬른(Kiln)’이라고 지었다. 특정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이탤리언, 일식, 동남아시아 요리 등 다양한 원천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퓨전 요리를 제안하는 미치 오르는 유연하고 혁신적인 스타일의 셰프로 한창 시드니의 미식 생태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인물. 유쾌한 성격과 실력을 겸비한 그의 명성과 더불어 호주의 자연미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디자인(호텔의 다른 공간과 달리 피오나 린치 오피스와 인테리어 부문의 협업을 따로 했다) 덕분에 에이스 호텔 시드니의 꼭대기(18층)에 자리 잡은 그의 레스토랑 킬른은 요즘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붐빈다. 물론 에이스 시드니점에는 길가로 난 앙증맞은 작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카페로 이어지게 돼 있어 산책자들의 발길을 절로 이끄는 ‘로움(Roam)’을 비롯해 가볍게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다른 공간들도 꾸려져 있지만 말이다.


1
2
3
4
5
6
7


취재 협조·이미지 제공 에이스 호텔(Ace Hotel)






[ART + CULTURE ’22-23 Winter SPECIAL]

01. Intro_Global Voyagers  보러 가기
02. Front Story_‘시드니 모던(Sydney Modern)’ 프로젝트_미항(美港)의 도시가 품은 새로운 랜드마크의 탄생  보러 가기
0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The Great Harmony  보러 가기
04.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우리들의 백남준_서문(Intro)  보러 가기
05.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1_초국가적 스케일의 개척자_COSMOPOLITAN PIONEER  보러 가기
06.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2_기술로 실현될 미래를 꿈꾸는 예측가_INNOVATIVE VISIONARY 보러 가기
07.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3_퍼스널 브랜딩의 귀재였던 협업가_CONVERGENT LEADER  보러 가기
08.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4_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으로_STRATEGIC COMMUNICATOR  보러 가기
09. Global Artist_이우환(李禹煥)_일본 순회展  보러 가기
10. Column+Interviewt_‘페어’와 ‘축제’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도쿄의 아트 신  보러 가기
11. LV X YK in Tokyo_Magical Encounters   보러 가기
12. 교토 문화 예술 기행_‘민예(民藝)’의 원류를 찾아서  보러 가기
13. Brands & Artketing_9_에이스 호텔(ACE HOTEL)  보러 가기
14. Exhibition Review_심문섭, 時光之景(시간의풍경)  보러 가기
15. Exhibition Review_평화로운 전사 키키 스미스의 자유낙하가 닿는 지점  보러 가기
16. Exhibition Review_#제여란 <Road to Purple>展, #남화연 <가브리엘>展  보러 가기
17. Remember the Exhibition_2023년의 시작을 함께하는 다양한 전시 소식   보러 가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