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이우환(李禹煥)_일본 순회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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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4, 2023

글 심은록(SimEunlog MetaLab 연구원·미술 비평가)

큰 돌 하나가 저기, 정원에 있다
옛날, 하늘 한 조각이 땅에 추락하고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응고되는 듯했다

돌은 슬며시 하늘이 된다

수억 년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돌이 된다 _이우환, 돌, 2022(프랑스어 번역. 심은록)



이우환(李禹煥)

이 글의 제목 ‘이우환’은 도쿄 국립신미술관(国立新美術館,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2. 8. 10~12. 7)에 이어 고베에 있는 효고현립미술관(兵庫県立美術館, Hyogo Prefectural Museum of Art, 2022. 12. 13~2023. 2. 12)에서 진행 중인 작가의 회고전 제목이다. ‘숲속의 미술관’으로도 불리는 국립신미술관의 개관 15주년 기념전이었고, 고베의 순회전도 효고현립미술관의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인데, 딱히 이를 설명하는 부제가 없다. 수년 전부터 때때로 그의 개인전, 그와 관련된 글의 제목은 ‘이우환’이라고만 표시된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이 이름 석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특정 국가나 지역, 예술에 묶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떠돌이처럼 살아온 이우환의 존재는 이제 지구촌 곳곳에서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글로벌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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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에서
지난해 일본 도쿄에 있는 국립신미술관에서 4개월에 걸쳐 성황리에 열린 <이우환>전은 지난 1960년대 말부터 최근 작업까지 아우르는 전시였다. 그가 직접 기획하고, 회화와 조각 등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사실 작품이 몇 점 출품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 10점으로 그 넒은 베르사유 정원(<Lee Ufan Versailles>전, 2014. 6~11) 전체를 울리는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우환>전은 어느 한 작품이 특별히 강조되기보다 작품이 건물과 다른 작품들과 균형을 맞춰 상보한다. 모노하의 성격이 강한 초기 작업에는 ‘폭력성, 부정성, 이동성’ 등이 보이고, 1970년대 중반까지는 ‘트릭’의 사용이 종종 보인다. 이후에도 가끔 트릭이 보이나, 공간과 사물, 자연과 산업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조각 작품인 ‘관계항(Relatum)’과 말해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회화 작품 ‘대화’가 꾸준히 등장하고, 베르사유 전시 이후에는 건축적인 요소가 한층 두드러졌다. 그는 “작품이 단순한 정보나 수많은 개념으로 점철되기보다는 여백의 울림을 신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현시대가 디지털 시대이기에 오히려 그는 더욱더 고집스럽게 신체성을 주장한다. 그는 관람객이 작품에서 ‘낯섦과 신선함을 느끼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공간이나 여백을 통해,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를’ 바란다. 이 전시는 이제 무대를 옮겨 일본 간사이 지방의 고베시 효고현립미술관(兵庫立美術館, Hyogo Prefectural Museum of Art, 2022. 12. 13~2023. 2. 12)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술관은 이우환이 1960년대 말 ‘모노하(物派)의 선봉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그는 모노하의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알리기까지 고군분투하며 ‘모노하’를 ‘아르테 포베라’나 ‘랜드아트’ 등의 미술 운동과 같은 위상으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가 타국인이었기에 일본에서 질투, 적대감과 비판을 감수해야 했던 게 사실이다. 우뚝 섰음에도 그는 여전히 ‘전장(戰場)인 미술계’에 있다. 그러나 더 힘든 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고국 땅일지도 모르겠다. 이우환은 모노하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단색화의 성립에 이바지했다. 한 작가가 이처럼 두 나라에서 다른 경향의 미술 그룹을 세우는 데 공헌한 경우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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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하와 단색화
한국의 현대미술은 자리매김을 확고히 한 중국과 일본과의 경쟁 구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가 치고 올라오는 경계에 있다. 서구 ‘미술계’에 처음으로 ‘단색화’가 알려졌다. 그러나 세계 미술사에서는 단색화가 아직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는 컬렉터, 마케팅, 국가적 후원, 뛰어난 젊은 작가들의 발굴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지면의 한계로 미학적, 미술사적 평가와 정립에 대해서만 약술하고자 한다. 이는 이우환이 “예술을 하는 데 엄청난 뒷받침이 된 요소 중 70%가 인문학적 소양이었다”라는 언급과 일맥상통한다. 그 덕분에 그의 작업은 물론 모노하의 위상을 전 세계에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단색화 작업에는 서양화적, 동양화적, 한국화적 요소가 골고루 담겨 있어 글로벌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주로 서양화적인 것만 연구해왔기에, 단색화의 위상도 축소되고, 더불어 서구 모노크롬이나 모노톤 그림과의 구별도 명료하게 설명될 수 없었다. 예컨대 박서보의 대표 연작 ‘에크리튀르(E´criture, 프랑스어)’는 한국화의 ‘묘법’을 번역한 것인데, ‘에크리튀르’는 깊이 연구되었지만, ‘묘법’은 그렇지 않다. 이우환의 회화에서 도형은 그러데이션이기도 하지만, ‘삼묵법’도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의 조각의 경우에는 ‘자연을 다시 레디메이드’ 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옥 건축에서 자주 언급되는 ‘차경(借景)’과 ‘자경(自景)’의 개념이 더 근본적이다. 하종현은 전통적인 ‘배채법(背彩法)’이 연상되는 기법으로,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을 사용한다. 그리는 것과 밀어 넣는 것을 섬세하게 구별함으로써 동양화에서, 그리고 서구 현대미술과 비교해서도 미학적으로 독특한 위상을 점할 수 있다. 단색화를 한국화나 동양화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자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면 더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앞으로는 서양화적 관점만이 아니라 동양화적, 한국화적 관점에서도 비교·구분하는 이론적 구축을 통해 단색화의 지평을 넓히고 토대의 깊이를 더해주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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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우는 것과 사그라뜨리는 것
부득이하게 사진을 찍어야 할 때 이우환은 어색하게 서 있거나, 가끔은 습관적인 자세인 듯 돌 위에 편히 앉는다. 후자의 모습에서는 이 글 도입부에 인용한 그의 시처럼 돌이 풍경이 되고(차경) 그가 풍경의 일부가 된다(자경). 그의 #일본 순회전 메인 포스터는 낯선 구도로 관람객을 당황시키며, 작가의 또 다른 심중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등을 돌리고 나무를 매만지고 있다. 그가 해석한 하이데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예술가는 애를 써서 예술 작품을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 자연은 이를 무너뜨려서 자연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세우려는 것과 사그라뜨리려는 것과 겨루는 데 작품이 있다.” 이제 그는 ‘세우는 것’에 등을 돌리고 ‘사그라뜨리는 것’과 손을 잡았다. _심은록(<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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