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페어’와 ‘축제’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도쿄의 아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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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4, 2023

글 고성연

 

많은 이들이 미술을 감상하고 작품을 소장하는 일이 ‘다른 세상’, ‘남의 리그’ 얘기 같다고 하지만, 도시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그 ‘판’은 훨씬 더 크고 중요하다. 굳이 ‘소프트 파워’나 ‘문화적 헤게모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특정 미술관이 한 해에 1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들인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지 않은가(팬데믹이 잠시 훼방꾼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듯 예술이 어떤 도시나 국가의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가시적으로 보일 정도로 막대하기에 저마다 도심에 미술관과 콘서트장을 짓고, 대승적 차원에서 예술가를 지원한다. 잠재력이 큰 아시아 시장에서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듯하다. 아시아 도시에서만 열리는 연간 행사 일정만 봐도 숨이 막힐 정도니 말이다. 그 가운데 차츰 동시대 미술 생태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본 도쿄를 살짝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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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도 그 정도는 색칠하고 그리겠다. 아니, 나도 선은 잘 그을 수 있어.”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이 분야에 별다른 관심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비(非)예술계 사람들과 우연히 담소를 나누게 되면 가끔씩 듣는 농담 섞인 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고가에 거래되는 미술품을 가리켜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이다. 그래도 미술 시장의 저변이 넓어진 덕분인지 이제는 ‘단색화’ 뉴스를 심심찮게 화두에 올리고, ‘핫’한 전시 소식을 거론하며, 어떤 작가의 작품이 투자가치가 있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지난해에 이런 주제의 화제성이 더 크게 와닿았다면 그건 분명 ‘프리즈(Frieze) 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9월 초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를 뜨겁게 달군 프리즈·키아프 아트 페어의 첫 공동 개최를 계기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확연히 증폭됐기 때문이다.
불타오르는 열기에 지쳤던 것인지 아트 페어의 후유증을 같은 시기에 막을 올린 부산비엔날레에 가서 ‘달래고’ 오는 다소 묘한 치유책을 쓰게 된 필자에게 도쿄에서 현대미술 축제가 열릴 예정(2022년 11월 3일~6일)이라는 소식은 비슷한 맥락에서 반갑게 느껴졌다. 주로 갤러리 부스로 구성되는 아트 페어는 본질적으로 예술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장터’인데, 그 장터를 둘러싼 판이 흥미롭다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면면도 드러나자 자연스럽게 비상업적, 혹은 상대적으로 덜 상업적인 행사에 대한 호감이 절로 솟아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오랜만에 도쿄로 가는 하늘길이 훨씬 자유롭게 열린 차에 ‘도시 산책자’처럼 유유자적 거닐면서 예술을 즐겨보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지난 11월 초 개막한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AWT) 2022’ 현장을 대면하게 됐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여유로운 예술 산책은 가당치도 않은 바람이었다. 물론 도쿄로 향하기 전에 서울에서 발발한 비극적인 사고로 인한 심적 파장도 있었고. 되도록 빠짐없이 모든 공간을 훑어보기라도 해야 한다는 직업병 같은 사명감 탓이기도 했지만, 이 행사를 발족시킨 갤러리스트 니나가와 아쓰코(Atsuko Ninagawa)의 표현처럼 ‘도쿄는 꽤 큰 도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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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인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도쿄의 예술 생태계
2021년 늦가을에 첫걸음을 뗀 ‘아트 위크 도쿄’는 2022년 행사를 공식적인 ‘확장형 버전’이라고 내세운다. 많은 행사의 운명이 그러했듯 팬데믹 기간에 치른 ‘글로벌 행사’는 자국민을 주 대상으로 하기에 2021년에는 수요-공급 측면에서 제대로 된 구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후원까지 받은 첫 ‘소프트 론칭’ 행사 주간에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모여들었기에 주최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한마디로 ‘소프트 랜딩(연착륙)’인 셈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22년 11월 초에는 미술관,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등 51개 기관과 조직이 참가하고 해외 컬렉터를 비롯해 전문 미디어까지 가세한 AWT 주간이 전격 펼쳐졌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글로벌 최강 아트 페어 브랜드인 아트 바젤(Art Basel)과 손을 잡았다는 것인데, 양자 간 협업으로 유럽, 미국, 러시아,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미술 애호가들이 도쿄를 찾았다. AWT 주간에는 전용 앱을 내려받아 지도를 보면서 거점 사이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대중을 대상으로 무료 AWT 버스를 운영하는데, 컬렉터 그룹도 프리뷰 기간에 따로 ‘버스 투어’를 다녔다(타깃 그룹에 셔틀버스나 전용차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아트 페어든 비엔날레든 흔히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방문지의 면면을 살펴봐도 많은 이가 선망하는 대도시답게 다채로운 곳이 조화를 이뤘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같은 유수의 공공 미술관, 모리 아트 센터, 시세이도 갤러리, 에르메스의 도쿄 전시 공간인 르 포럼 등 사립 미술관과 아트 센터 등. 그런데 흥미로운 건 ‘갤러리 풍경’이었다. 도쿄의 상업 화랑을 몰아서 본 건 처음이었는데, 매출 규모를 떠나 대부분 공간이 크지 않았다. 이름난 작가를 소속 작가로 둔 갤러리도 별다르지 않았다. 물론 도쿄의 높은 임대료를 감안하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아트 페어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상업 화랑이 ‘공간’에 투자를 많이 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질 법한 면모다. 몇몇 컬렉터의 공간은 규모나 인테리어 면에서 화려했지만 이들은 2시간 넘도록 몸소 ‘투어’ 안내를 하면서도 촬영으로 인한 노출은 정중히 사양했다. 예술을 가까운 벗이나 의미 있는 지인들 사이에서 공유하고 싶지만, 낯선 누군가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란다.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도 거의 부재했다. 런던에서 온 한 기자는 행사의 성격 자체는 기본적으로 다르지만(하지만 사실 AWT도 페어 형식을 띠지는 않지만 컬렉터가 원하면 대부분 판매를 한다) 프리즈 서울이 개최될 당시 셀럽들이 대거 출동한 화려한 파티와 다르게 뭔가 절제되고 훨씬 ‘미묘한(subtle)’ 방식을 택해 같은 아시아 도시지만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는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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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내 경쟁보다 각자의 특장점을 내세운 아시아 자체를 브랜딩한다면
사실 이 같은 온도차는 ‘도쿄’라는 메트로폴리스의 명성을 감안한다면 컨템퍼러리 시장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쿄에는 물론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나라 요시모토를 위시해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세계적인 스타 작가도 있고, 이번 AWT 2022에서 보여줬듯 남부럽지 않은 인프라와 콘텐츠도 보유하고 있지만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둘러싼 시장이 아직은 폭넓게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갤러리 페로탕 도쿄 등을 제외하면 ‘메가 갤러리’라 불리는 대형 갤러리가 드물다. 하지만 도쿄의 예술 공간이 자신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소통하는 방식은 다른 국가나 도시 간의 문화 차이를 느끼게 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AWT 2022에 참여한 대부분의 갤러리는 타지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면서 만족감을 표했지만, 사실 ‘아트 주간’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글로벌 매력도가 높은 도쿄에 대한 자부심으로 아직은 시장이 작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하는 분위기도 느껴졌다(실제로 올여름 도쿄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에서 새로운 글로벌 아트 페어를 지향하는 도쿄 겐다이가 열릴 예정이다). 이 행사 당시 시내에 위치한 갤러리 고야나기는 소속 작가인 세계적인 사진 거장 스기모토 히로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갤러리를 이끄는 고야나기 아쓰코 대표는 이제 해외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 이유로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우리 공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전시하는 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 도쿄의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요 도시의 아트 마켓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 팬데믹 기간에 도쿄 역시 그저 웅크리고 있지만 않았다. 그들에게 맞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글로벌’을 지향하는 현대미술 축제를 만들어냈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국내외 관계자들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다.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천 년 고도 교토에서도 그새 자국(일본) 갤러리가 해외 갤러리를 초청해 짝을 짓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제법 큰 규모의 아트 페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각자의 속도와 본질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토대를 다져나가는 건 결국 ‘기초’와 연관되므로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한 의미 깊은 변화가 아닐까 싶다. 도쿄는 도쿄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홍콩은 홍콩대로 ‘마이 웨이’를 가되, 아시아라는 지역 내 여러 도시들의 다양성이 섬세하게 부각되면서 서로에게 ‘시너지’를 불어넣는 영리한 브랜딩이 필요하다. 우리가 파리, 밀라노, 런던, 바르셀로나 중 ‘최애’나 ‘차애’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유럽 자체의 매력도가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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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Atsuko Ninagawa
아트 위크 도쿄(Art Week Tokyo, AWT)의 공동 창립자 니나가와 아쓰코(Atsuko Ninagawa). 지난해 11월 1일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열린 오프닝 파티와 공연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 AWT의 프로그램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주히 뛰어다니는 그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동기로 AWT를 만드는 데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걸까? “유망한 중소 갤러리가 좀 더 널리 자신들의 가치를 알릴 수 있도록 장려하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벤트 전문가나 창업가가 아니라 자신의 갤러리(다케 니나가와)를 이끄는 갤러리스트다. 필자가 AWT를 방문했을 당시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진행 중이었던 일본 현대미술계 거목 오타케 신로(Shinro Ohtake)도 다케 니나가와 갤러리 소속이다. “사실 도쿄는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컨템퍼러리 아트 시장이 작은 편이죠. 그건 문화 예술 분야의 다른 측면이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렇다. 도쿄는 건축, 음악, 디자인 등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내실을 갖춘 도시 아닌가. 동시대 미술에서도 콘텐츠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게 든다는 니나가와 대표는 단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에게, 그리고 도쿄를 방문하는 타지인에게도 ‘(우리와) 현대미술사를 알리는 교육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어째서 아트 페어가 아닌 다른 형태의 행사를 택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미술 생태계에서) 지역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행사를 기대한 거죠. 커뮤니티 안팎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이요.” 여러 관계자가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도쿄의 갤러리들이 자신들의 예술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는 그녀는 지난 2021년 봄 ‘버스 노선도’를 그리면서 행사 기획에 나섰고, 정부 관계자들과 회동해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교육적인’ 플랫폼을 긍정적으로 여겨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현재 AWT는 정부와 도쿄 도청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고 여러 파트너를 두고 있다).” 덕분에 기동력을 발휘해 바로 2021년 ‘소프트 론칭’ 형식으로 첫 행사를 열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갤러리를 설득하는 데 더 ‘품’이 들어갔다고 한다. “도쿄에 있는 상당수 갤러리가 ‘아트 주간(art week)’이라는 개념을 낯설어했거든요.” 그렇게 ‘발품’ 판 보람이 있게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컬렉터들이 AWT를 위해 도쿄를 방문한 뒤 ‘참신한 발견’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특정 작가들의 작품을 ‘찜’하거나 그 자리에서 구매하는 경우에 더러 눈에 띄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갤러리들은 이 같은 호응과 관심에 고무되어 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셈이라 보다 효율적이고 매력적으로 프로그램을 꾸리기 위해 보완해야 될 점은 있지만, 내년 여름에 열릴 요코하마 아트 페어와의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기에 아트 위크 도쿄의 행보는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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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2-23 Winter SPECIAL]

01. Intro_Global Voyagers  보러 가기
02. Front Story_‘시드니 모던(Sydney Modern)’ 프로젝트_미항(美港)의 도시가 품은 새로운 랜드마크의 탄생  보러 가기
0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The Great Harmony  보러 가기
04.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우리들의 백남준_서문(Intro)  보러 가기
05.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1_초국가적 스케일의 개척자_COSMOPOLITAN PIONEER  보러 가기
06.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2_기술로 실현될 미래를 꿈꾸는 예측가_INNOVATIVE VISIONARY 보러 가기
07.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3_퍼스널 브랜딩의 귀재였던 협업가_CONVERGENT LEADER  보러 가기
08.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_우리들의 백남준_04_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으로_STRATEGIC COMMUNICATOR  보러 가기
09. Global Artist_이우환(李禹煥)_일본 순회展  보러 가기
10. Column+Interviewt_‘페어’와 ‘축제’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도쿄의 아트 신  보러 가기
11. LV X YK in Tokyo_Magical Encounters   보러 가기
12. 교토 문화 예술 기행_‘민예(民藝)’의 원류를 찾아서  보러 가기
13. Brands & Artketing_9_에이스 호텔(ACE HOTEL)  보러 가기
14. Exhibition Review_심문섭, 時光之景(시간의풍경)  보러 가기
15. Exhibition Review_평화로운 전사 키키 스미스의 자유낙하가 닿는 지점  보러 가기
16. Exhibition Review_#제여란 <Road to Purple>展, #남화연 <가브리엘>展  보러 가기
17. Remember the Exhibition_2023년의 시작을 함께하는 다양한 전시 소식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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