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dston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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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 2022

글 고성연

Space in Focus


동시대 현대미술계의 첨예한 면면을 반영하는 ‘작가주의’로 유명한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서울에 상륙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고, 로스앤젤레스, 브뤼셀, 로마에 지점을 둔 글래드스톤 갤러리가 아시아 시장에 공간을 두는 건 처음이다. 청담동에 자리한 서울점은 글래드스톤의 일곱 번째 지점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단독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개관전의 주인공은 기발한 아이디어는 물론 심미적 오라까지 갖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갤러리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부터 작품으로 연출한 작가의 개인전 <광물적 변이(Mineral Mutations)>가 오는 5월 21일까지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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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건물 외벽 전체가 검은색으로 칠해진 갤러리 공간. 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점의 개관을 기념하는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개인전은 공간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시작된다. 바로 갤러리로 들어서는 문에 달린 비정형의 네모난 손잡이 ‘Door Handles’ 가 그 시작점이다. 5개의 검은색 문고리 시리즈는 용암이 급속히 식으면서 생긴 화산암과 천연 유리인 흑요석을 소재로 빚어낸 작품으로 <광물적 변이(Mineral Mutations)>라는 전시명이 말해주듯 공간 전체를 광물적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전시 경험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재해석하는 필립 파레노는 언뜻 단순하면서도 재치 있는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번 서울 개인전에서는 소재를 달리하는 등 기존 작품을 변형한 신작을 선보였다. 전반적으로 ‘유리’의 미학을 활용한 작품 선택과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공간 구성이 흥미롭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묘한 녹색으로 빛나는 작품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고, 안쪽 벽면을 뒷배경으로 귀여운 ‘눈사람’이 서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벽면의 발광체는 ‘AC/DC Snakes’ 작업으로 유리의 일종인 우라늄 글라스로 이루어졌다. ‘Iceman in Reality Park’라는 제목의 눈사람은 실제 얼음으로 되어 있기에 며칠에 걸쳐 서서히 녹아내리게끔 고안됐다. 맨홀 구멍으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나면 얼음 안에 박혀 있는 화강암 돌과 나뭇가지만 남고, 독특한 향이 퍼진다. 다양한 조류(藻類)와 박테리아로 만들어진 지오스 민이라는 분자의 향이 조향되어 분사되는 원리에 따른 작용이다. 눈사람 위쪽에는 동그란 램프가 달려 있는데, 프랑스 작가 르네 도말(Rene´ Daumal)이 쓴 미완의 초현실주의 소설 <마운트 아날로그(Mount Analogue)>를 모티브로 삼은 ‘Mont Analogue’라는 작품으로 시시각각 다채로운 빛을 내뿜는다. 갤러리 내부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작가의 시그너처 작품인 ‘마키 (Marquee)’가 안쪽 벽면에서 신비로운 빛의 변화를 연출해낸다. 이 작품은 원래 사용했던 아크릴 글라스에 포함된 메틸 메타크릴레이트(Methyl Methacrylate)라는 합성 고분자 대신 모래, 석회석, 탄산나트륨이 결합된 수공예 유리로 제작했다고 한다. 이렇듯 곳곳을 수놓은 작품으로 공간 자체를 새롭게 탄생시킨 필립 파레노는 전체가 유리로 이루어진 버전의 ‘마키’는 처음이라고 수줍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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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개인전에 이은 아니카 이(Anicka Yi) 전시

전시를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오브제로 보고 공간을 연출하는 필립 파레노는 서울에서 글래드스톤 아시아 1호 갤러리의 첫 무대를 참신하게 구성했다. 글래드스톤 서울을 이끄는 박희진 디렉터는 “공간 자체는 협소하지만 작가들이 작은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된다”며 필립 파레노만 해도 이 공간을 위해 작품을 모두 새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1979년 바바라 글래드스톤이 뉴욕에 설립한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진취적인 시선과 작가에 대한 끈기 있는 태도로 명성 높다. 20대 초반의 청년 작가에서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망 작가로 발돋움한 매슈 바니를 비롯해 리처드 프린스, 우고 론디노네, 세실리 브라운, 앤 콜리어, 로제마리 트로켈, 쉬린 네샤트 등 쟁쟁한 작가 목록을 꾸리고 있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인공지능(AI)과 게임 엔진을 활용한 새로운 플랫폼의 예술로 개인전을 펼치고 있는 이안 쳉(Ian Cheng)도 글래드스톤 갤러리 소속이다. 다음 전시 작가는 아니카 이(Anicka Yi).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예술과 과학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런던 테이트 모던의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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