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os Garcia de la N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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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 2016

글 김민서

쿠바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전통 회화의 수호자

이름도 단번에 기억하기 어려운 카를로스 가르시아 드 라 누에즈(Carlos Garcia de la Nuez). 그는 쿠바 혁명의 해에 태어나 격변의 시대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고집으로 전통 회화를 지킨, 쿠바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다. 아시아 첫 개인전을 앞두고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카를로스를 홍콩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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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라틴아메리카 또는 중남미는 크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시장을 장악하는 힘도 크지 않고, 일부러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으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남미 작가라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거의 전부인 현실인데, 하물며 한국과는 수교조차 맺지 않은 쿠바는 어떻겠는가. 쿠바는 체 게바라 외에도 헤밍웨이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 문화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지만, 정작 이 나라 미술에 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2015년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가 54년 만에 정상화되면서 쿠바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는데, 2015년 12월에 열린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는 쿠바의 대표 작가 그룹 로스 카르핀테로스(Los Carpinteros)를 비롯해 여류 작가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 등 쿠바 작가 15명의 작품이 마이애미 비치를 장식했다. 또 쿠바의 수도에서 열리는 아바나 비엔날레에는 미국 작가 35명을 포함해 44개국 2백여 명에 이르는 작가가 참여했다. 이러한 현상은 기대와 우려 속에서 쿠바 미술이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아시아에 첫 행보를 내딛은 쿠바의 추상화가
홍콩의 갤러리 신신 파인 아트(Sin Sin Fine Art)에서 지난 11월 11일까지 쿠바 작가 카를로스 가르시아 드 라 누에즈(Carlos Garcia de la Nuez)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열렸다. 갤러리 신신만(Sin Sin Man)이 이 쿠바 중견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작년에 열린 아바나 비엔날레 덕이다. 신신만의 지인이 아바나를 여행하던 중에 비엔날레에서 카를로스의 그림을 우연히 발견했고, 사진을 찍어 그녀에게 보내줬다. 아니나 다를까 단번에 카를로스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신신만은 곧바로 그의 SNS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카를로스의 아시아 데뷔전이 성사됐다. 전시가 시작되기 하루 전, 갤러리에서 넉넉한 풍채와 인자한 인상의 카를로스를 만났다. 라틴아메리칸 특유의 유쾌함으로 이방인을 맞아준 그는 예술가의 까칠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수더분한 쿠바 아저씨였다. 쿠바 혁명이 일어난 1959년, 아바나에서 태어난 카를로스는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속에서 자란 순박한 소년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게 아니라서 자신이 작가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단지 그의 모친은 카를로스가 남과 조금 다른 ‘이상한(wierd)’ 아이였다고만 기억한단다. 고등학교 때 수업으로 세계 미술 역사를 배우고 드로잉을 그려본 게 전부이던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아마도 ‘시’ 때문이었으리라. “10대 중반에 누가 시에 관심이 있겠어요? 그런데 저는 시에 푹 빠져 있었어요. 제 작품도 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바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란 영향도 컸죠. 대지의 변화, 바다의 움직임 같은 걸 바라보며 자랐어요.” 캔버스를 꽉 채운 노란빛과 길게 이어지는 수직 수평선은 그가 아바나에서 보고 느낀 풍경에서 비롯한다. 카를로스는 예술 학교로는 중남미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산 알레한드로 아카데미(San Alejandro Academy)에 입학해 처음 미술을 접했고, 쿠바의 명문 대학인 국립예술학교(Instituto Superior de Arte)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예술은 정치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신념
그는 젊은 시절부터 쿠바 미술사에서 흐름을 역행하며 남다른 커리어를 쌓은 인물이다. 대학에 다니던 1982년, 동료 작가 구스타보 아코스타(Gustavo Acosta), 호세 프랑코(Jose′ Franco), 모이세스 피날레(Moise′s Finale′)와 함께 <4X4>라는 첫 그룹전을 열었다. 당시 쿠바 예술계는 전위적이고 정치적인 색을 띠는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 경향이 짙었는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예술이란 그 누구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쿠바 혁명 이후 정치 상황이 급변해 당시 쿠바의 예술 교육도 매우 엄격하고 불안했어요. 우리는 오히려 그런 환경에 냉담해지고 개인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려 했죠. ‘회화는 죽었다’고 여겨지던 시대, 쿠바에도 아방가르드 미술이 한창 붐을 이루었지만,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전통 회화를 고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어요.” 그룹전을 함께 준비했던 다른 동료 작가들이 어떻게 하면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는지가 아니라 예술을 지적 작업의 과정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데는 카를로스가 매우 중요한 자극제 역할을 했다. 그는 유쾌한 성격이지만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이후 카를로스는 <4X4> 전시로 각광을 받으면서 국내외 여러 그룹전에 초대됐다. 모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유학이 허용되지 않던 당시, 쿠바 사회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비자를 받아 미국 매사추세츠 예술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동전의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사회·예술적 현실이 그전에 알고 있는 바와 완전히 달랐거든요.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어요.” 그것이 꼭 미국이라서가 아니라 지금껏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삶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충격 같은 것이다. 매사추세츠 예술대학에서 시각예술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거주지를 파리로 옮겨 더 큰 세계로 나아갔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노랗고 빨갛고 검은 색감, 그리고 올록볼록 캔버스 위로 올라온 알파벳과 숫자다. 표현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그는 회화라는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색감과 질감, 텍스트, 캔버스의 크기, 그리고 제목까지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 “제게는 하나하나가 개념입니다. 폴 고갱이 말했어요. ‘1m의 녹색은 1cm의 녹색보다 더 초록빛이다’라고요. 자신보다 키가 큰 그림에 둘러싸였을 때와 가로로 길쭉한 그림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색감, 질감, 크기 등 모두 각자 다른 스토리를 담고 있고, 그것을 조합했을 때 전달하는 바도 달라지죠.” 항상 그림을 그리기 전 제목을 결정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는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하는 순간
디자인, 건축, 음악, 시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카를로스. 현재 그의 스튜디오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멕시코시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도시들을 옮겨 다니며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작품 철학은 이미 아바나에서 살던 시절에 확립된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래서 예술적 감수성의 뿌리인 고향을 여전히 가까이 두고 살며, 가족이 그리울 때는 언제든지 아바나로 향한다. “멕시코는 가족이 있는 쿠바와 가까워서 좋아요. 또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인 대중문화를 발전시켰고, 오랜 역사만큼 잠재력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멕시코만큼 거대한 시각적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나라는 몇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유럽을 떠난 뒤 1992년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시간은 그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카를로스의 작품에서 색감이 더욱 풍부해진 시기가 대략 그가 멕시코시티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무렵부터다.
57세에 처음 아시아를 방문했다는 카를로스에게는 ‘지금’이 또 다른 변화의 시점이 될 듯하다. 이번 개인전이 끝나면 내년 3월에 열리는 아트 센트럴(Art Central)에 참여하기 위해 또 한 번 홍콩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미 개인전 오프닝에서 그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컬렉터를 여럿 보았기에 아시아 예술 시장의 중심인 홍콩에서 보여줄 그의 행보를 주목해볼 만하다. 훗날 쿠바의 미술사를 되돌아봤을 때 그는 어떤 예술가로 기록될지 내심 궁금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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