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지상(紙上) 전시_YET TO DISCOVER 우리들의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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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 2023

글 김연우(독립 큐레이터) | 기획 김연우, 고성연 | Exhibition Concept 고성연


‘백남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수식어로는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동양에서 온 테러리스트’, ‘괴짜이자 천재 아티스트’ 같은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뒤 파격적인 행보로 해외 예술계에 먼저 이름을 알린 백남준(1932~2006)이 34년 만에 조국을 방문한 1980년대 한국은 사회적, 문화적 변환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일군 한국은 최초의 대규모 글로벌 행사인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연달아 개최하며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전에 없던 경제적 부흥기와 더불어 세계화와 정보화의 물결을 누리며 새로운 소비 계층으로 떠오른 중산층과 자유분방한 청년들이 음악과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빠르게 유입된 서양 문화를 향유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아티스트’라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별안간 등장한 독특하기 그지없는 인물이 백남준이었습니다.
2022년은 17년 전 세상을 떠난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고, 행사가 잇따라 열렸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바로크 백남준> 등의 전시를 개최하고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스틴 채플’(1993) 등 백남준의 대규모 미디어 설치 작업을 만나볼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는 미술관의 첫 소장품이기도 한 ‘거북’(1993)을 전시한 탄생 90주년 특별전 <땅의 아바타, 거북>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서울의 두손갤러리는 30년 만의 재개관을 기념하며 백남준의 대작 ‘M200’(1991)을 선보였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미술관의 로툰다에 높이 솟아 있는 ‘다다익선’(1988)의 역사적인 재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가동이 완전히 중단된 지 4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지요. 재가동을 기념하며 열린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과 <백남준 효과> 전시는 2월 26일까지 과천관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백남준에 관한 연구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는 그가 남긴 작품들과 텍스트 외에도 살아생전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돌아보며 그의 작품 세계와 삶, 인간적인 면면에 대해 여전히 알아가는 중입니다. 위대한 예술가라는 당연한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백남준은 그 시대가 낳은 최고의 아웃라이어 중 한 명이었음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담대한 작업 스케일과 미래를 내다보는 남다른 혜안을 지니고 있었으며, 당대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던 예술가, 기술자와 유례없는 창조적 협업을 펼치며 유럽과 북미 예술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다져갔습니다.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 각지를 떠돌았던 그의 삶에서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한민족의 정체성을 작업에도 녹여내며 묘하게 애국심마저 불러일으켰던 그. 만약 과거에 지금처럼 ‘한류’라는 이름으로 K-문화 열풍이 불었다면 그 주역은 백남준이 아니었을까요? <스타일조선일보> 지상(紙上) 전시에서는 백남준이라는 걸출한 크리에이터의 탄생 90주년을 계기로, 작업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인간 백남준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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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가적 스케일의 개척자
Cosmopolitan Pioneer

종종 기행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자율주행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와 항공 우주 기업 스페이스 X를 운영하며 세상의 판도를 바꿔나가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남다른 행보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상에 별도의 인터넷 선을 깔 필요 없이 지구 밖 인공위성으로 구축한 통신망을 이용해 지구상 모든 지역에 광대역 인터넷을 제공한다는 초국가적인 발상도 놀라운데, 이미 수천 개의 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려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니. 그런데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이처럼 담대한 스케일의 상상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 무려 1980년대에 ‘위성 오페라 3부작’이라는 지상 최대의 인공위성 중계 쇼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펼쳐낸 백남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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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 1일 정오(EST)에 발표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은 미국과 프랑스 방송국의 조정실을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양국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뉴욕(미국), 파리(프랑스), 서울(한국) 등 세계 여러 도시에 생중계한 전대미문의 쇼였다.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케이지(John Cage)의 연주와 함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퍼포먼스,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탱고가 펼쳐졌고, 파리의 패션 그룹 스튜디오 베르코에서는 패션쇼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록 밴드 오잉고 보잉고(Oingo Boingo)가 공연을 선보이는 등 대중문화부터 전위예술에 이르는 당대의 유명 가수, 댄서, 예술가 등 30여 팀, 1백여 명이 출동했다. 무려 2천5백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한 이 ‘위성 오페라’는 매스미디어와 TV야말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소통이 가능케 하는 새로운 표현 수단임을 증명하며, 기술과 미디어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가 예견한 암울한 미래의 모습에 유쾌한 반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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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 뒤, 영국의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사망 50주기에 발표한 후속작 ‘바이 바이 키플링’(1986)에서 백남준은 다시 한번 “동양과 서양은 절대 어울릴 수 없다”는 키플링의 주장에 반기를 든다. 서양 음악가의 클래식 연주와 한국의 가야금 연주, 서양의 타악기 연주와 한국의 사물놀이 화면 등 동서양의 요소가 뒤범벅된 ‘바이 바이 키플링’은 한국, 일본, 미국에서 생중계되었다. 대망의 마지막 편은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제작한 ‘세계와 손잡고’(1988)로, 세계 11개국을 연결하는 이 대규모 위성 프로젝트가 쏘아 올린 방송에는 같은 날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홀에서 가동을 시작한 ‘다다익선’의 모습이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다다익선’ 앞에서 사물놀이가 벌어지는 동안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와 머스 커닝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등이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중국에서는 쿵푸, 브라질에서는 카니발 축제가 열렸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이전, 전 세계 시청자 5천만 명을 가상의 시공간에서 연대시키는 대범한 발상과 융합적 사고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기술로 실현될 미래를 꿈꾸는 예측가
Innovative Visionary

“언젠가 작가들은 오늘날 붓, 바이올린, 고물로 작업을 하는 것처럼 콘덴서, 저항기, 반도체로 작업을 할 것이다(Someday, artists will work with capacitors, resistors, and semi-conductors as they work today with brushes, violins, and junk).” _백남준(1965)


백남준은 TV를 작업 매체로 사용하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텔레비전과 관련된 기술을 익히고자 1960년대 초 일본으로 떠난다. 당시 소니, 파나소닉 등의 브랜드로 대표되던 전자 기술 강국인 일본에서 신기술을 배우고자 했던 것이다. TV의 내부 회로를 조작해 영상을 편집하는 기술을 독학으로 깨우칠 만큼 명석했던 백남준은 일본에서 기술적 스승이자 긴밀한 협력자인 공학자 아베 슈야를 만나게 된다. 일본의 TBS 방송국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던 아베 슈야는 백남준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작업을 계속했고, 두 사람의 협업은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1969)를 탄생시켰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TV에 송출되는 영상을 피아노 건반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왜곡, 합성, 채색 등의 효과를 입힐 수 있고, 방송국 장비 없이도 누구든지 영상을 편집할 수 있게 하는 최초의 비디오 영상 처리기였다. 백남준은 기계를 발명하며 누구나 어디에서든 영상을 촬영해 편집하고 방송할 수 있도록 비디오가 보편화되는 날이 올 것이라 예견했는데, 이는 마치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영상을 촬영하고, 개인 크리에이터가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현재를 내다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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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록펠러 재단의 뉴미디어 작가 지원 프로그램에 백남준이 제출한 보고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에서 그는 ‘전자 초고속도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다가올 미래의 인터넷 환경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의 아이디어는 월드와이드웹(WWW)의 출현으로 1990년대 들어 실현되었다. 당시 미국을 순회했던 <The Electronic Superhighway: Travels with Nam June Paik(1994-1997)> 전시에서 백남준이 선보인 ‘전자 초고속도로’(1995)는 미국 대륙의 형태를 이루는 3백36대의 TV 설치물에 네온 조명으로 대륙 전역에 뻗어 있는 고속도로 네트워크를 형상화한 작업이다. 미국의 대선 주기가 시작되는 아이오와주 위치의 화면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이전 영상이, 캔자스주 위치의 화면에서는 <오즈의 마법사>가 상영되는 등 각 주에 해당하는 문화를 반영해 현재까지도 정보화 시대 미국 문화의 아이콘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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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에서 3월 26일까지 열리는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는 전자 초고속도로를 누비는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해커 뉴비’(1994) 등의 미디어 조각과 백남준이 생전 작성한 보고서들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포착하는 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다. ‘누구나 손에 TV를 들고 다니며 전자 초고속도로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백남준의 말은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무게가 20kg 가까이 나가는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가1975년에 출시되었다는 사실을 되짚어보면 불과 1년 전에 나온 그의 주장이 당시에는 얼마나 공상과학에 가까운 발상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지금 시대를 살고 있다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어떤 모습을 예상했을까 궁금해진다.








퍼스널 브랜딩의 귀재였던 협업가
Convergent Leader

백남준은 인간적인 매력과 흥미로운 작업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교가 기질이 다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여긴 그였다지만, 연주하던 바이올린을 부수고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물을 담아 마시는 독특한 퍼포먼스라든지 젊고 아름다운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과의 센세이셔널한 파트너십을 보면 퍼스널 브랜딩의 요체를 꿰뚫는 듯 비범한 쇼맨십과 사교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신의 재능을 함께 엮어갈 아군을 만들어내는 이 같은 매력과 카리스마는 동양에서 온 낯선 아티스트가 타국의 예술계에서 입지를 다져나가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얼마 전 대규모 백남준 회고전이 열린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미디어 아트 큐레이터 루돌프 프릴링에 따르면 “백남준을 만난 사람들은 (백남준이) ‘얼마나 특별한 성격인가’, ‘얼마나 활기찬 예술가인가’라고 말하곤 했다”며 “그는 일을 성사시키고 사람들을 활기차게 하는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아내 구보타는 백남준에게 팬레터를 보낼 정도로 그를 연모했다고 하며, ‘백-아베 신디사이저’의 협업자 아베 슈야는 가족이 있는 일본을 뒤로하고 백남준을 따라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이 둘을 서로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나중에 아베의 가족에게 사과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뿐인가,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가 백남준의 기획하에 위성 오페라 3부작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일에 동참하고 작품에 기꺼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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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에서는 예술가 동료들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 기업, 국가 차원의 협업 또한 두드러진다. 백남준은 88 서울올림픽에 맞추어 개관을 앞두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홀에 놓을 거대한 작업을 구상하던 중 텅 빈 램프에 수백 대의 TV를 기념탑처럼 쌓아 올린 역대 최대 규모의 비디오아트 작업을 떠올린다. 바로 얼마 전 3년간의 복구 작업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재가동을 시작한 ‘다다익선’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18m 높이로 천장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1천3대의 TV 모니터 화면을 화려하게 밝히며 오늘날에도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는 다다익선은 결코 백남준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작업이었다. ‘다다익선’은 1천 대가 넘는 TV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줄 기업, 구조물 설계를 맡아줄 건축가, 기술적인 부분을 실현해줄 테크니션, 모니터에 상영될 영상의 소프트웨어 제작자, 작품을 모니터링하고 운영하는 관리인, 예산 확보와 설치를 총괄한 기계 기사 등의 수많은 관계자가 2년 동안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넘어 협력해서 탄생시킨 창조적 융합의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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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의 재가동을 기념하며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전은 그동안 대중에게 잘 공개되지 않았던 아카이브 자료를 바탕으로 ‘다다익선’ 작품 제작과 설치, 유지를 위해 진행한 많은 사람과의 ‘협업’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세상을 떠난 백남준을 새롭게 해석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한 ‘즐거운 협연’을 엿볼 수 있다. 30년 넘게 운영되며 수많은 수리와 복구를 거친 ‘다다익선’의 재가동은 앞으로도 그가 남긴 작업을 보존하고 지켜가기 위한 또 다른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융합적 협업’의 범위에는 그가 남긴 귀중한 유산을 향유하는 관람객의 역할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기억하자.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으로
Strategic Communicator

독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를 떠돌던 노매드의 삶을 살았고 국적도 여러 차례 바꾼 백남준에게 사실 한국은 태어난 곳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어쩌면 그의 생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국형 디지털 샤먼’이라 불릴 정도로 백남준의 작업에는 고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적인 요소가 스며들어 있다. 특히 무속 신앙을 믿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백남준은 한국의 무속 문화와 샤머니즘에 남다른 관심과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신과 인간을 이어준다고 믿는 무속 신앙이 미디어와 텔레비전보다 앞서 등장한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라고 여겼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고향인 독일 부퍼탈(Wuppertal)에 자리한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연 자신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1963)에서 백남준은 전통적인 희생 제물인 상징과도 같은 ‘소’의 머리를 전시장 입구에 설치했다. 작가로서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여는 첫 전시에 피가 흐르는 소 머리를 걸어둔 것이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동서양 신화에 20세기 새로운 신화인 디지털 세계를 콜라주한 세계 최초의 전시라고 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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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에 관한 관심사를 함께 나눈 또 다른 거장 요셉 보이스의 서거 4주기를 기념하기 위한 퍼포먼스에서 백남준은 아예 스스로 무당으로 분해 진지한 굿판을 벌인다. 1990년 서울 현대화랑(갤러리 현대)에서 벌인 ‘요셉 보이스를 위한 진혼굿’(1990)이라는 퍼포먼스였는데, 보이스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과 소품은 물론이고, 놋그룻, 담뱃대 같은 한국 굿에 쓰이는 오브제, 피아노와 요강 같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 등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마치 동서양의 콜라주 같은 굿판이었다. 또 가족의 섬유 공장이 있던 서울 중심가의 이름을 딴 사당 형태의 작품 ‘종로 교차점’(1991)에서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있는 백남준의 어린 시절 사진이나 조부의 사진, 영상 등을 벽에 부착하고 바닥에 놋그릇을 펼쳐놓았는데, 조상 숭배의 전통인 제사상을 연상시킨다(벽 구조물 한가운데 놓여 있는 익숙한 시멘트 중절모 역시 보이스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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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상치 않은 인물의 기행과도 같은 업적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의아함과 신기함이 뒤섞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천재 스타’의 출현을 크게 반겼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강타하고, 국내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휩쓸 정도로 K-문화가 강세인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그야말로 변방으로 여겨지는 동양의 작은 나라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마치 이러한 정서를 꿰뚫고 있듯, 백남준은 각종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35년 만의 귀국 당시 인터뷰(1984)에서 “왜 조국을 놔두고 외국에서만 활동합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깃든 대작 가운데 십장생 중 하나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동물인 거북을 주제로 한 대형 미디어 조각 ‘거북’이 있다(울산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의 이름을 크게 알린 TV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대표작으로 독일 베를린의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1993년은 백남준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 작가로 참여해 ‘시스틴 채플’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가장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시스틴 채플’이 시스틴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영감을 받은 서양적 세계관 속 ‘하늘’을 의미한다면, ‘거북’은 동양적 세계관인 ‘땅’으로 대변된다. 총 1백66대의 TV으로 이뤄진 ‘거북’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자태와 스케일(가로 10m, 세로 6m)로 단번에 관람객을 강렬하게 압도한다.



※ 참고 문헌
구보타 시게코, 남정호, <나의 사랑 백남준>, 아르테, 2016.
백남준,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재)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2018.
김홍희, <굿모닝, 미스터 백! – 해프닝, 플럭서스, 비디오아트, 백남준>, 디자인하우스, 2007.
박상애, <비디오 테이프 분석: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재)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2014.
Rachel Jans, ‘Nam June Paik: Kinship, Collaboration, and Commemoration’, San Francisco Museum of Art,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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