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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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7, 2014

에디터 배미진

지난 4월 바젤월드에서 만난 샤넬의 새로운 시계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비전을 이야기했다. 샤넬의 시그너처 워치인 J12에 365라는 콘셉트를 더해 현대 여성들에게 새로운 시간의 가치를 제안하는 모델로, 외형은 비슷했지만 그 의미는 명백히 달랐다. 모두가 더 어렵고 복잡한 시계를 추구하는 바젤월드의 한복판에서 샤넬은 왜 시간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전혀 다른 노선을 선택한 것일까.


바젤월드, 그 안의 새로운 발견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주얼리 워치 박람회인 바젤월드는 직접 가지 않으면 그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계 산업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시계 부품을 만드는 기계부터 다이아몬드와 같은 소재, 이를 완성품으로 만드는 장인과 마케터, 그리고 시계를 구매하는 바이어까지 ‘시계’를 만들고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바젤월드다. 이곳을 방문하기만 해도 시계 산업의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내용부터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요소까지 망라되어 있다. 이 박람회를 여러 번 방문해보면 워치메이커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수많은 브랜드를 만나게 된다. 시계의 가치에 대해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하다 보면, 가장 우선 순위에 놓이는 것은 기술이다. 처음에는 장인 정신을 이어가는 전통 예술로서의 시계(중력의 영향을 줄이는 투르비용이나 까루셀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완성도 높은 시계 예술의 정신’을 이어나가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제작, 혹은 자기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 개발 같은 최신 기술의 개발이라는 요소에 집착하게 된다. 마치 기술 개발만이 최상의 가치인 듯 생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바젤월드의 수많은 주요 브랜드가 이 ‘기술’에 절대 기준을 두는 지금, 샤넬 워치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J12 36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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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이야기하는 시간의 철학

세라믹으로 만든 모던한 워치 J12. 샤넬 워치를 대표하는 이 상징적인 시계는 매우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갖췄고, 세라믹이라는 소재를 메인 스트림에 데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새로운 비전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샤넬은 올해 디자인이 완전히 다른 시계를 선보이기보다 기존의 제품에 더 확실한 철학을 부여하길 원했다. 모두 기계로서 시계의 가치에 대해 논할 때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시계, 아니 시간을 바라보며 ‘시간의 철학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36.5mm의 다이얼 사이즈에 매일매일을 즐기는 활동적인 현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워치인 샤넬 J12 365는 기존의 J12와 외형은 유사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이에 대해 바젤월드의 샤넬 부스에서 만난 샤넬 워치 총책임자 니콜라 보(Nicolas Beau)는 “샤넬 워치는 굳이 완전히 ‘New(새로운 것)’를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습니다. 브랜드를 사랑하는 고객들에게는 지금 구매한 제품을 충분히 즐기고 애정을 줄 시간이 필요하죠. 유행에 편승해 아무 제품이나 선보일 수는 없어요. 시계는 고가의 제품이기에 오래 착용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 디자인의 핵심을 이어가면서도 소장 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콘셉트까지 신중하게 고민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브랜드의 정신에 따라 J12 365가 탄생했는데, 철학을 중요시한다고 기계적 완성도를 소홀히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샤넬은 무브먼트의 완성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라인이기에 42시간 파워 리저브 기능을 갖춘 가벼운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담아 세심하게 완성했다. 물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워치 캠페인까지 바젤월드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더블 스프레드 페이지의 왼쪽은 아름답게 표현한 인생의 순간들, 오른쪽에는 그 순간을 기억하는 샤넬 워치의 다이얼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물론 사진 속 행위마다 모두 다른 시간을 기록한다. 일반적인 시계 광고 속 모든 시곗바늘이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캠페인은 기존의 J12는 물론 프리미에르, 마드모아젤 프리베, 새로운 J12 365까지 샤넬의 모든 워치 라인이 등장하는 캠페인이지만, J12 365의 콘셉트가 이 프로모션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사진작가 패트릭 드마셸리에와 함께 제작한 캠페인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은 영원을 담고 있기에, 오직 이 순간만이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샤넬 워치는 바로 이 순간을 더욱 특별한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라는 주제 아래 우리가 잊고 있던, 시간에 대한 가치를 환기시키며 브랜드의 고유한 비전까지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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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에, 샤넬 J12 365
샤넬 워치 전체를 아우르는 광고 캠페인과 함께 등장하는 J12 365의 이미지를 보면 이 시계의 의미는 더욱 확실해진다. 집을 찾은 손님을 위해 파이를 자를 때, 카드 게임을 하거나 물건을 고를 때,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순간순간에 샤넬 J12 365가 함께한다. 이 이미지는 반드시 샤넬 J12 365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보다는 우리가 기억하고 즐기는 시간만이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바쁜 현대 여성들의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활동적인 행위를 끌어내고자 하는 캠페인이다. 우리는 시간의 가치를 잊고 있다. 단지 흐르고 사라지는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손목 위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휴대폰으로 정보로서의 시간을 인식하고 있을 뿐이기에 이 광고 캠페인은 마치 옛 추억, 잊고 있던 책상 속 사진을 찾아낸 것처럼 반갑게 느껴진다. 우리의 모든 일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순간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모바일 메시지와 SNS의 홍수 속에서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현대 여성에게 1년은 3백65일이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샤넬의 캠페인은 물론 고도의 마케팅에 따른 것이지만 무조건 기술만을 이야기하는 여타 워치 브랜드와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누군가는 이 광고 캠페인을 보며 이 역시 패션, 즉 유행의 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패션 하우스에서 시작해 주얼리, 향수, 화장품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샤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를 하나의 새로운 시작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니콜라 보는 샤넬이 추구하는 시계 사업의 방향은 다른 브랜드와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샤넬은 과시하기 위한 기술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새로운 기술과 신제품을 선보이느냐고요? 그건 아름다움을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올해 바젤월드에서 샤넬은 고유의 뉴 베이지 골드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유행에 편승해서가 아니라 샤넬이 주로 사용하는 세라믹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골드가 필요했기 때문에 개발한 것입니다. 기존의 옐로 골드는 너무 밝고, 로즈 골드는 붉은 기가 돌지요. 그래서 더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위해 뉴 베이지 골드를 디자인했고, 올해 선보인 다양한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사실 여성들은 새로운 소재나 기술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시계에 관심이 많지요. 이렇게 비주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샤넬은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물론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기술적인 완성도는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단지 기술을 위한 기술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는 샤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일관성’이라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시계를 선보인 이후 25년 동안 유통은 물론 공장, 마케팅까지 장기적으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했기에 이렇듯 새로운 콘셉트를 생각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젤월드에서 만난 샤넬 워치의 수장이 보여준 시계에 대한 진지한 자세, 아름다움과 창의성, 철학까지 모두 갖춘 샤넬 워치의 새로운 세계는 매혹 그 자체였다. 올해 바젤월드에서 보여준 샤넬의 도전은 이제 우리가 만날 다음 단계의 하이엔드 워치 시대를 더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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