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새로운 여성복 디렉터를 영입한 에르메스의 선택에 전 세계 패션 피플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과연 그 선택은 옳았을까? 물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첫 컬렉션 후 그 대답은 놀라우리만치 청신호에 가까웠다. 2015년 파리 컬렉션에 이어 다시 선보인 지난 6월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서의 컬렉션은 그 가능성에 더욱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지극히 에르메스다웠던 새로운 첫 컬렉션과 수줍은 듯, 그러나 거침없었던 그녀와의 도쿄 현지 인터뷰.
2 고급스러운 소재와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에서 에르메스 특유의 우아함과 강인함이 느껴진다.
3 피에르 아르디의 감각적인 주얼리와 함께 선보인 실크 드레스.
4 사랑스러운 디테일과 장식을 가미해 새롭게 선보인 가죽 재킷.
5 도쿄 국립박물관의 런웨이는 전체적으로 작고 좁았지만 훨씬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나무를 사용해 아치와 계단, 좌석 등을 모두 새로 만들어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패션쇼에 에르메스가 특별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었다.
6 밝은 옐로와 선명한 레드 등 색상에 있어서도 신선한 선택을 보여주었다.
에르메스는 2014년 7월에 새로운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나데주 바니-시뷸스키(Nade`ge Vanhee-Cybulski)를 임명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2015 F/W 파리 컬렉션 기간 동안 그녀의 첫 번째 컬렉션이 공개되었고, 지난 6월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그녀의 첫 번째 컬렉션을 한 번 더 선보였다. 나데주 바니-시뷸스키의 첫 번째 에르메스 쇼는, 에르메스의 전통과 유산, 그리고 장인 정신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쇼였다. 그녀는 최고급 소재와 여성의 실루엣을 강조한 우아한 룩으로 에르메스만의 스타일을 한껏 선보여 왜 에르메스가 그녀를 선택했는지 많은 이들이 수긍하게 만들었다. 특히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펼쳐진 런웨이는 전통적인 동양미와 에르메스의 절제되고 우아한 의상들이 어울려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인상적이기도 했다. 그녀가 선보인 첫 번째 에르메스 컬렉션은 세 가지 테마, 즉 에르메스의 헤리티지인 승마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 우아한 여성미를 강조한 엘리건트 룩,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브닝 웨어로 구성되었다.
1백78년 전, 마구용품으로 시작한 에르메스의 승마 헤리티지는 가죽과 실크 소재의 기교함을 통해 고급스럽게 표현되었고, 모던한 실루엣은 여성스러운 우아함을 극대화해 누구나 ‘입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아름다웠다. 또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가 디자인한 오트 비쥬테리(Haute Bijouterie) 컬렉션과 함께 선보인 이브닝 드레스는 은은한 럭셔리함으로 쇼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다. 새로운 백인 옥타곤은 세 가지 사이즈로 선보였는데, 클러치, 토트백, 숄더백 등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 럭셔리하면서도 실용적인 에르메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깊은 네이비와 레드, 블루와 옐로, 그리고 화이트로 마무리된 피날레까지,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 그리고 완벽한 디테일과 절제된 실루엣을 멋지게 선보인 그녀의 첫 번째 컬렉션은 에르메스 하우스의 전통, 아이콘, 그리고 최고급 소재 등을 잘 보여주어 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에르메스에서 데뷔 쇼를 마친 나데주 바니-시뷸스키. 이제 막 첫발을 내딛었지만 조금은 성급한 판단을 해도 될 듯하다. 아주 에르메스답게 익숙한, 하지만 참신함으로 무장한 모던함. 곧 다가올 다음 시즌의 런웨이가 기대되는 이유다.
젊은 여성 디자이너가 에르메스의 여성복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기대가 크고 궁금하다. 당신의 소감은 어땠는지?
새로운 장을 열게 되어 무척 기대됩니다. 에르메스는 저에게 어떤 기대를 한다기보다는 넓은 포용력과 진정한 호의를 보여줍니다. 에르메스는 우수한 퀄리티의 창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닮았습니다. 정말이지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한한 퀄리티를 추구하는 부분은 모든 사람이 에르메스를 존중하게 만들죠.
첫 에르메스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일 때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소재와의 진정성 있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소재와 노하우에 있어 절대로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것이지요.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소재는 가죽이다. 이 대표적인 소재가 당신을 통해 어떻게 재해석될지 궁금하다.
가죽이야말로 에르메스의 유산이면서 혁신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기대를 갖게 하는 소재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에르메스에서 처음으로 작업한 디자인 중 하나는 두 가지 룩입니다. 퀼트 가죽에 대한 아이디어는 승마에서 가져왔어요. 안장 모양의 주머니도 마찬가지죠. 제게는 여성과 에르메스를 구성하는 DNA인 마구 안장 제조법을 조합하는 상징적인 작업입니다. 그래서 소재를 사용해서 신선함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고, 깃털처럼 가벼운 가죽 소재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나의 아름다운 오브제를 입기 위해서는 매우 현실적인 면모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방법을 사용한 방수 처리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그저 옷장에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비에 젖을 걱정없이 자유롭게 밖에서도 착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퀼트로 만든 가죽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안감을 극세사 나일론으로 마감 처리했는데, 이 작업 역시 제겐 큰 모험이었습니다. 저는 컨템퍼러리한 느낌을 불어넣고 싶어 퀄리티가 우수한 나일론과 혁신적인 캔버스, 리넨을 사용했습니다. 이 소재들은 엄청 가볍고, 착용하기 편안하며 숨도 쉬는 소재입니다. 전 소재를 선택할 때는 어떻게 사용될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죠.
이번 컬렉션에서 선보인 색상들도 너무 아름답다. 어떤 색상을 제일 좋아하는지?
대답하기 정말 어렵네요. 전 다양한 색상을 좋아합니다. 에르메스에는 두 가지 타입의 색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죽은 흙처럼 자연의 색상에 속하고, 실크는 다채롭게 빛나는 색상에 속합니다. 그래서 전 에르메스에서 첫 번째로 선보인 컬렉션을 통해 이 두 가지 색상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여성복을 디자인해오면서 중요시한 부분은 무엇이며 또 그것을 에르메스의 여성복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여성복 디자이너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여성과의 교감입니다. 교감하기 위해 우선 공감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여자들이 입어야 하는 옷이 아니라, 입고 싶은 옷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여자를 자유롭게 해주는 옷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아름답게 해줘야죠.
컬렉션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물론 많은 것을 보여주는 종합예술이기도 하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우아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 우아함과 강인함이었어요.
파리에서 선보인 당신의 첫 컬렉션은 매우 모던하고 인상 깊었다. 컬렉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저는 에르메스의 모더니티(modernity)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에르메스는 언제나 동시대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왔지요. 말에서 자동차 시대로 넘어올 때, 에르메스는 시대의 큰 변화를 이해해 흐름을 포용했습니다. 말을 타는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쇠락하지 않았지요. 그들은 진정으로 동시대상을 관찰했던 것이죠. 그냥 정체되어 있는 브랜드가 아니었어요. 전 그동안 에르메스의 여러 오브제를 보았고, 에르메스가 각 오브제들이 속한 시대를 반영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때 당신만의 의식 같은 것이 있는지?
매우 무의식적인 것이라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어느 시점에 ‘그래, 이제 새 컬렉션을 시작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순간순간과 함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독서를 좋아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보고 영감받는 것을 좋아하며 전통적인 미술이나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크 뉴슨의 디자인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고대 도자기에서도 훌륭한 미학을 발견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당신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한 것은?
휴가를 다녀왔는데 LACMA(LA 카운티 미술관)에서 본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전시가 매우 흥미로웠어요.
파리 컬렉션과 도쿄 쇼의 차이점은?
파리에서 선보인 여성복 쇼의 본질을 표현하려 노력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쿄의 건물과도 조화를 이루게 하려고 했어요. 파리 쇼보다는 훨씬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쇼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파리보다 더 가까이에서 컬렉션을 보실 수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