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3, 2016
에디터 이지연 | photographed by gu eun mi
럭셔리의 모습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고급스러움, 희소성, 장인 정신, 그리고 이러한 묵직함에 ‘위트’를 아우를 수 있는 여유까지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럭셔리’일 테다. <스타일 조선일보>가 벨기에 가죽 브랜드 델보의 CEO 마르코 프롭스트를 만나 진정한 ‘럭셔리’에 대해 들어봤다.
1 이번 시즌 주목해야 할 일루젼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용했다. 블랙과 아이보리 컬러를 사용해 가방의 모든 커브를 강조한 디자인이 특징.
델보 하우스의 과거와 현재
1829년 브뤼셀에서 샤를 델보(Charles Delvaux)가 설립한 델보는 벨기에 왕실에 최고급 가죽 제품을 공급하는 하우스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풍부한 유산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환상적이고 우아하고 재치 가득하며 무엇보다 시대에 맞는 고전미를 지속적으로 창조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15일 델보의 2016 S/S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는 1892년, 브랜드가 출발한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유구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하우스 아카이브 전시회인 <델보 메종 판타스틱: 전통과 현대 사이에 위치한 역설적 세계>가 함께 개최되었다. 마치 벨기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행사장에는 브뤼셀의 광장 그랑 플라스(Grand Place)와 그곳에 있는 유명한 동상인 오줌싸개 소년 동상 등 브뤼셀의 상징적인 전시물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전시 공간 벽면은 관객들의 몰입을 위해 온통 블랙으로 통일했으며, 조명은 브랜드의 중요한 역사적 기록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널찍한 테이블 위에는 타조, 갈루샤, 리자드, 악어 등 이그조틱 레더와 장인들이 사용하는 여러 도구가 함께 놓인 하우스 공방을 완벽히 재현해 전시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위해 특별히 한국을 방문한 귀한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3천 개가 넘는 델보의 아카이브 디자인 스케치를 담은 골든 북(Livre d’Or)이다. 이 책은 1938년부터 방대한 양의 가방 스케치를 등록한 책인데, 그림과 묘사, 설명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모두 문서화해오고 있다고. 특별히 이번 전시회를 위해 최초로 벨기에를 떠나 한국에서 전시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벨기에 본사 아카이브에서 공수한 브리앙과 탕페트, 마담, 그리고 지브리 등 아이코닉 핸드백의 최초 모델은 물론, 델보의 오랜 창의적 유산을 반영한 아홉 가지 버전의 브리앙 유머 컬렉션(Les Humeurs de Brillant)을 함께 공개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2 브랜드의 상징과 아카이브를 통해 델보의 자취를 보여준 전시장.
3 브리앙 백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며 제작한 스페셜 피스 중 하나.
4, 5 파티를 위해 준비한 델보의 시그너처 백 이름을 딴 칵테일.
6 플랩을 열면 가방 내부의 피망 컬러가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브리앙 미라쥬 랑-피망 GM 사이즈.
유쾌한 트위스트, 2016 S/S 컬렉션
델보는 헤리티지에 기반을 두면서도 우아함과 위트를 가미한 모던 클래식을 지향한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와 폴 델보(Paul Delvaux) 같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상상력에서 영향을 받은 브랜드 특유의 기발함이 바로 델보 하우스 디자인의 중요한 유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을 꾸준히 디자인에 접목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는 프랑스 유명 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세르주 폴리아코프(Serge Poliakoff)에게 영감을 받아 다양한 컬러 스펙트럼과 생동감 넘치는 그래픽 라인을 컬렉션에 녹여냈다. 환상과 착시를 테마로 한 이번 2016 S/S 컬렉션은 새빨간 파프리카 색상으로 눈길을 끄는 ‘피망(Piment)’과 봄을 알리는 파우더리한 톤의 ‘아망드(Amande)’, ‘랑(Lin)’ 같은 새로운 시즌 컬러와 기존 베이식 라인인 누드, 베지탈, 누아 컬러가 함께 어우러진다. 특히 가방을 여닫는 브리앙 백의 플랩 부분에 두 가지 컬러를 사용해 백 보디와 덮개 안쪽의 컬러가 대조를 이루게 한 미라쥬(Mirage) 애니메이션은 이번 시즌 처음 선보인 기법으로, 단연 주목할 만하다. 컬러 사용이 작은 변화였다면, 좀 더 과감한 도전은 바로 가방 테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톱 스티칭(top-stitching) 기법은 브리앙과 팽(Pin) 가방의 곡선 면에 따라 100% 수공예 핸드 스티치를 이어 완성했으며, 흑백 대조가 뚜렷한 일루젼(Illusion) 애니메이션은 블랙 백에는 아이보리를 포인트로(또는 그 반대로 대조시켜) 프렌치 바인딩 기법을 통해 가방의 모든 커브를 강조한 기법이다. 착시 효과를 주는 일루젼 라인은 브리앙과 탕페트, 마담 등 세 가지 모델로 출시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클래식의 대명사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스포티한 변화를 추구했다. 기존 브리앙에서 가로 사이즈만 더 길어진 ‘브리앙 이스트/웨스트(Brillant East/West)’ 백을 선보였으며, 브리앙과 탕페트 라인을 위한 캔버스 소재 스트랩을 출시했다. 이처럼 델보는 브랜드의 클래식한 시그너처 제품을 재탄생시키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7 벨기에 왕실 공식 가죽 제품 납품 허가 문서 등 브랜드의 역사적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8 델보 하우스의 공방을 완벽하게 표현한 코너.
9 1938년부터 기록된 3천 개가 넘는 델보의 아카이브 디자인이 담긴 골든 북(Livre d’Or).
10 델보의 2016 S/S 시즌 컬러가 다양한 모양과 형태로 쇼룸 벽과 포디움에 녹아들었다.
예물 백을 고르는 기준, 변치 않는 가치
예물 가방을 고를 때는 서른 번째 결혼기념일에 들어도 좋을 만큼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백으로 골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델보의 ‘브리앙(Brillant)’ 백은 로고 하나 없이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최근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아한 품격이 배어 있는 델보의 아이코닉한 핸드백인 브리앙 백은 1958년에 열린 브뤼셀 월드 페어에서 폴 고에탈(Paul Goethals)이 디자인한 것으로, 간결한 라인과 고급스러운 광택이 흐르는 가죽, 브랜드의 이름을 상징하는 ‘D’ 버클 장식이 어우러져 견고한 멋을 발하는 제품이다. 깊은 역사를 담은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다양한 디자인의 모델은 이뿐만이 아니다. ‘탕페트(Tempe^te)’는 고급스러운 실루엣에 금속 장식을 더한 디자인으로, 매 시즌 다양한 사이즈와 컬러로 선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앙증맞은 박스 형태의 ‘마담(Madame)’ 백은 1977년에 처음 소개한 ‘마로니에(Marronnier)’ 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델보를 가장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백이기도 하다. 브랜드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이젠 본인의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백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문의 02-3449-5916
interview_ 마르코 프롭스트(Marco Probst, 델보 CEO)
“우리는 결코 패션 트렌드를 좇지 않습니다. 1백80년 동안 축적된 델보의 아카이브에서 아이디어를 얻죠.”
지난해에 이어 새로운 컬렉션을 소개할 때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각 나라에서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에 모두 참석하진 못할 터.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한국은 1년에 두 번씩 방문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 마켓 중에서도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죠. 한국을 방문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델보 고객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델보는 사람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죠. 오늘처럼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으면, 행사에 참여해 직접 컬렉션을 설명하며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으려 노력합니다. 저의 이미지가 바로 델보의 이미지일 테니까요. 지난 S/S 시즌에는 미모사 컬러의 서울 에디션을 선보였다. 올해도 한국을 위한 익스클루시브를 만나볼 수 있나? 아직은 비밀입니다. 하지만 이번 해 말쯤에는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으니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사실, 델보의 모든 컬렉션은 1백 개에서 2백 개 사이만 만들기 때문에(최대 5백 개까지), 컬렉션 자체가 익스클루시브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예비 신랑 신부가 결혼 전 선물을 주고받는 ‘예물’이란 문화가 있다. 그리고 예비 신부들이 예물 백으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델보의 브리앙 백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이 매출에 많은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예물 문화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웨딩 예물을 결정하는 데 있어 델보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매출 기여도는 밝힐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많은 예비 신랑들이 예비 신부를 위해 ‘브리앙’ 백을 구입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브리앙의 타임리스한 디자인 때문이겠죠. 많은 사람들이 델보 하면 ‘메이드 인 벨기에’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다. 델보는 이미 벨기에 그 자체입니다. 벨기에는 뛰어난 아티스트와 흥미롭고 새로운 것들이 존재할 뿐 아니라 아방가르드함을 존경하는 전통이 한데 어우러진 나라죠. 이런 대비되는 모습 사이에서의 균형이 바로 벨기에를 만듭니다. 클래식함과 위트가 공존하는 벨기에의 이미지를 델보의 컬렉션을 통해 대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델보가 추구하는 여성상은 무엇인가? 어떠한 여성들이 델보를 사랑하고 백을 들었으면 하는지. 우리는 단 한 명의 뮤즈에 델보를 가둬두기보단 그 기회를 누구에게나 열어두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델보를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우리가 정형화한 이미지로 브랜드 범위를 좁히긴 싫습니다. 또 델보는 남성 컬렉션을 함께 소개하니, 남성들에게도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이번 시즌 역시 유명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아티스틱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유는? 오랜 역사와 장인 정신이 깃든 델보 제품은 이미 아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최대한 잘 아우르는 비결이 바로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델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티나 젤러가 아트 페어나 뮤지엄에서 본, 혹은 동시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우리는 그걸 당장 새로운 컬렉션에 접목하기보단, 오랫동안 천천히 가장 델보스러운 게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그 고민이 끝났을 때 비로소 컬렉션으로 선보이게 되는 거죠. 대개 1백 개의 아이디어에서 겨우 5개 정도만 채택될 정도로 이 과정은 굉장히 치열합니다. 정통 가죽 브랜드에서 캔버스 소재 스트랩을 출시해 의외였다. 몇 시즌째 패션계에 이어지는 ‘럭셔리 스포티즘’ 트렌드를 반영한 건지. 델보는 패션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트렌드를 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 델보의 아카이브나 헤리티지와 함께 일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네요. 델보가 추구하는 아이디어들은 이미 골든 북에 저장되어 있어, 시대에 따라 새로운 소재나 디자인을 접목해 조금씩 변형시킵니다. 아카이브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재디자인한다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