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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7, 2022

글 고성연

Interview with_ 박서보(Park Seo-Bo)

오래전 일군 업적에는 부풀린 ‘환상’이 덧대지기도 하지만 익숙한 무용담처럼 듣다 보면 자칫 손쉽게 이룬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술계에 몸담고 있지 않더라도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면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색화’라는 장르도 그런 경우가 될 수 있다. 작금의 ‘예술 한류’를 이끄는 흐름 중 하나인 단색화가 글로벌 미술계에서 부각되고 지구촌을 누비면서 조명받게 된 지 사실 10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짧은 세월 동안 그 대열의 선구자로 꼽히는 박서보에게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돌이켜 보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 창조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위업이었을 터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유명한 루이 비통의 ‘아티카퓌신’ 컬렉션에 참여하면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력을 보탠 박 화백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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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박서보’라는 이름 석 자는 별다른 수식어를 끌어다 쓰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미술계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간주될 만한 무게를 지닌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비단 아시아 권역만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도 ‘미술 한류’의 주역으로 꼽히는 만 아흔한 살의 화백. “난 1950년대에도 명함이든 뭐든 다 ‘박서보’로 썼어요. ‘서보박’이 아니라.” 박서보의 자택과 작업실이 함께 있는 서울 서대문구 기지재단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였다. 박 화백에 대한 책을 쓴 싱가포르 미술 평론가 케이트 림의 표현처럼 ‘백 점 맞은 시험지를 자랑하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직접적’인 특유의 화법. 거침없는 말투와 표현으로 말미암아 더러 오해와 질투를 사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몹시 소중한 존재다.


의미 있는 ‘최초’를 거듭 만들어내고 있는 노익장
글로벌 무대에서 ‘대접’과 ‘평가’를 동시에 누리는 박서보의 존재감이 여실히 느껴진 것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2018년 겨울 무렵이다. 물론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선보인 그룹전으로 물꼬를 튼 단색화 열풍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몸소 접하지는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화이트 큐브 홍콩에서 열린 박서보 개인전에 초청받아 전시장을 방문하면서 그의 작업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됐다. 런던을 주 무대로 하는 세계적인 갤러리 화이트 큐브는 이미 박 화백과 성공리에 전시를 한 적이 있지만, 전속 작가로 공식 발표하면서 그의 초기작인 ‘연필 묘법’ 작품을 그러모아 선보인 자리였다. 국어 공책에 글자를 써보려 애쓰던 세 살배기 둘째 아들의 체념 어린 연필질에서 발견한 ‘비움의 미학’으로 오늘날 박서보를 상징하는 묘법(e´criture)의 단초를 얻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 시리즈다. 작가의 출발점부터 짚어보면서 인연의 서막을 기념한다는 취지도 좋았지만,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집중하게 되는 특유의 질감과 리듬감이 잔잔하게 와닿았다.
실제로도 그는 화이트 큐브와의 협업을 자신의 예술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늘 하는 얘기지만 2015년 베니스에서의 단색화 전시가 나를 살렸고, 이어 2016년 화이트 큐브 전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됐어요. (물론) 그보다 앞서 갤러리 페로탕과 했던 전시도 빼놓을 수 없을 테고.” 그는 이렇게 훈훈한 회상을 하면서도 자신을 위시한 단색화 작가들의 가치에 대한 범세계적인 주목과 인정이 훨씬 더 일찍 찾아올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단색화가 처음 해외로 진출한 무대인 일본 도쿄에서의 <다섯가지 흰색전>(1975), 이어 긴자의 센트럴 뮤지엄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1977) 등을 들 수 있다. 당시에 불거졌던 관심에 좀 더 고삐를 당기는 기폭제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부단히 작업해나가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의미 있는 해외 활동도 이어갔다. 1997년 명성 높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에이스 갤러리 개인전도 박 화백이 자부심을 갖는 인생의 명장면이다. “에이스 갤러리에서 전람회를 한다니까 당시 김창열(지금은 고인이 된 ‘물방울’ 화가)이 숨이 딱 막히는 반응을 보였어요. 나중에 제이 조플링(화이트 큐브 창립자)도 (이 얘기를 듣더니) 깜짝 놀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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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존재감에도 무게는 공존한다!’
그렇지만 천하의 박서보도 늘 자신만만했던 건 아니다. ‘밀레니엄’이라는 키워드가 떠들썩하게 회자되던 21세기 목전에 자신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낙오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그의 나이가 70세였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를 못 따라가서 추락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잖아요. 내가 평생 비교적 순탄하게 견뎌왔는데, 그 엄청난 21세기의 변동 속에서 망가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엄살 섞인 과장을 좀 보태자면 ‘자결’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외려 돌파구를 찾았다. 지구 전체가 스트레스 병동화가 된 21세기 사회에 자신의 비움의 철학에 바탕을 둔 ‘치유론’을 내놓는 것이었다. 어차피 캔버스를 표현이나 배설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비워내는 마당’으로 써온 그였기에 많은 이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리였다. 이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온’ 예술적 행보 덕분에 가능한 접근 방식이었다. “꽃이 피고 이파리가 돋는 게 자연의 이치지요. 자연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내 그림 속으로 유인한다면 다들 친숙하게 접근하면서 ‘치유’로 이끌 수 있지 않겠나, 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는 옳았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미술 애호가를 빠져들게 한 ‘색 묘법’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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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새빨간 단풍이 영감으로 찾아오다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그의 색 묘법은 이번에 루이 비통의 ‘아티카퓌신’ 프로젝트에서 박서보 화백이 택한 ‘단풍색’ 백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루이 비통은 2019년부터 매해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6인과의 창조적 협업을 통해 ‘아티카퓌신’ 컬렉션을 선보여왔는데, 올해는 박서보 화백을 비롯해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피터 마리노(Peter Marino), 케네디 얀코(Kennedy Yanko), 아멜리 베르트랑(Ame´lie Bertrand)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나란히 주인공이 되면서 각기 다른 매력을 품은 컬렉션을 빚어냈다. 1백68년의 브랜드 역사 속에서 한국 작가로는 박 화백이 처음으로 루이 비통과 제품 협업을 하게 된 것이다. 박서보의 아티카퓌신은 그가 손수 고른 새빨간색을 머금고 앙증맞은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 이는 그의 작품과의 연계성을 띠는 섬세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무 손잡이는 캔버스 프레임의 나무를, 가방 밑바닥에 있는 귀여운 4개의 받침은 캔버스를 고정하는 나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매혹적인 붉은색은 그가 커다란 영감을 받은 단풍의 빛깔이다. 70세 생일을 맞이해 그가 인연을 맺었던 일본 화랑에서 전시를 제안했을 때 후쿠시마로 떠났는데, 바로 그 여행에서 단풍의 절정기를 맞닥뜨렸고 색의 파노라마에서 궁극의 희열을 느낀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 골짜기를 내려다보는데, 으악 소리가 날 정도로 새빨간 게 막 타오르는 것 같았죠. 자연이 정말 위대하구나. 이렇게 위대한 것을 이 조그만 인간의 머리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절로 겸허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꼭 오늘 받은 감동을 표현해내겠다’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당시의 찬란한 영감은 화폭에 담겼고, 이번에는 아티카퓌신 백에 곱게 물들었다. “그때 그 단풍이 그대로 가방으로 수놓아진 셈이네요”라고 박서보식 화법을 나름 따라 하자 그는 “그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부디 이 부단한 창의적 열정과 에너지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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