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011 F/W 쇼메 쇼에서 선보인 ‘비 마이 러브(Bee My Love)? 사파이어 워치.
3 반클리프 아펠의 ‘오와조 람보이앙(Oiseaux Flamboyant)? 이어링.
5 2008년 부쉐론에서 선보인 주얼리로 과일과 태양에서 영감을 받은 ‘고만드(Gourmand, 미식가) 컬렉션 링.
6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주얼리 모티브로 삼는 쇼파드의 애니멀 컬렉션.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세상의 모든 것에는 트렌드가 있다. 패션은 한 해에 네 번 열리는 대규모 컬렉션 쇼에서 트렌드를 확인하고, 워치 분야는 1월에는 SIHH, 3월에는 너무도 잘 알려진 바젤 월드라는 워치 페어가 개최된다. 그렇다면 럭셔리의 정수라 일컫는 주얼리의 트렌드는 과연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주얼리의 흐름과 변천사, 앞으로의 비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페어가 있으니 바로 ‘방돔주얼리협회?에서 주최하는 오트 주얼리가 그것이다. 불과 3~4년 전에 시작됐지만 하이 주얼리를 선보이는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된 오트 주얼리 행사는 파리 방돔 광장에 입성한 주얼리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 쇼파드, 샤넬, 부쉐론, 피아제, 쇼메 등이 참가한다. 주얼리의 수도(首都)라 불리는 방돔 광장에서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주얼리 분야에서 자부심이 높다는 의미이기에 오트 주얼리 행사는 참여 브랜드의 리스트만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 행사는 1월과 7월 1년에 두 번, 파리 오트 쿠튀르 기간과 동일하게 개최되는데, 콘셉트 자체가 패션의 정수이자 초고가의 의상을 선보이는 오트 쿠튀르를 방문하는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샤넬, 디올 등 최고의 브랜드가 선보이는 오트 쿠튀르 패션쇼를 관람하고 최신 컬렉션을 구매하기 위해 파리를 찾는 최고의 VIP들과 프레스에게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방돔 매장 내부에 VIP를 위한 살롱이나 스페셜 룸을 꾸며 주얼리를 가장 아름답게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한다.
오트 주얼리 행사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낸 것은 바로 2010년 쇼메가 선보인 오트 주얼리 쇼다. 순백의 종이로 정교하게 제작한 무대 위에 아름다운 종이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그림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쇼메를 상징하는 티아라와 꿀벌이 함께 어우러져 브랜드 특유의 창조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행사장의 특별한 공간 연출부터 주얼리의 완성도까지 특별한 순간을 전하고자 하는 오트 주얼리 행사의 목적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다. 1년에 두 번 개최하는 연례행사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브랜드 아카이브를 소개하고 히스토리에 입각해 브랜드의 가치 그 자체를 전하는 ‘살롱 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모든 주얼리의 영감은 한 세기를 넘어서는 오랜 주얼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카이브에서 나온다. 부쉐론의 경우 오트 주얼리에서 새로운 컬렉션은 물론 기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여겨지는 애니멀 컬렉션을 꾸준히 선보였고, 샤넬 역시 해마다 새로운 버전의 오트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쉽게 말해 오래도록 꿀벌에서 영감을 얻어온 쇼메가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모티브의 주얼리를 선보이는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한 세기가 넘도록 브랜드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을 유지하는 하이 주얼리 분야, 오트 주얼리에서 선보이는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품의 모티브 그 자체만이 아니다. 기존의 주얼리에 아카이브에서 얻은 영감을 새롭게 더하는 과정과 보석을 가공하는 새로운 방법, 표현의 정교함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하이 주얼리가 탄생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명품 가방이나 구두가 만들어지는 과정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다.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드로잉한 후 스톤을 선택해 세팅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 자세한 테크니컬 드로잉을 완성한다. 아틀리에에서 만든 초기 모델은 최종 제품을 시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합금을 이용해 실물 크기의 주얼리를 제작한다. 스톤을 준비하고 세팅한 후, 모티브 뒷면의 오픈 워크 디테일을 완성하고 재주조와 조인팅, 걸쇠를 제작하면 완성품이 탄생한다. 이렇듯 복잡하고 정교한 하이 주얼리 제작 과정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것은 매우 실용적인 디자인의 주얼리지만, 이러한 주얼리들은 대부분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하이 주얼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트 주얼리에서 선보이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하이 주얼리들은 굉장히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소량으로 제작되고, 오트 주얼리를 찾은 VIP들의 주문에 의해 탄생한다. 이러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재해석해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닌 주얼리들이 완성되는 것이다. 반클리프 아펠이 2011년 오트 주얼리에서 선보인 ‘컬러 드 파라디 컬렉션’은 과거 반클리프 아펠 메종에서 선보인 역사적인 작품들을 포함하는 헤리티지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이 주얼리들이 변주되어 우리가 매장에서 볼 수 있는 이어링이나 클립, 링으로 재탄생된다.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주얼리 브랜드들은 현실의 아름다움을 뛰어넘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의 오리지낼리티와 창의성 그리고 뛰어난 기술이 조화된 결과와 브랜드의 가치를 다시 상기시킨다. 파리 오트 주얼리 행사는 보석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브랜드의 유산이 지닌 가치를 펼치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