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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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 2015

글 이소영

제주 하도리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디스 이즈 핫’은 리셉션 데스크도 필요 없는 작은 부티크 호텔이지만, 미술관 못지않게 흥미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이곳에서 보내는 휴가는 작은 미술관에서 머무는 듯한 감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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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리는 제주에서 산책하기 가장 좋은 마을 중 하나다. 맑은 날이면 하도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사장 건너편으로 우도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철새 도래지와 지미오름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컬렉터인 김창일 회장이 운영하는 아라리오 뮤지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도 하도리에 있을 정도니,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마을인지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하도해수욕장 앞에는 초록색 지붕을 인 작은 건물이 ‘나 홀로’ 서 있다. 주변에는 수확철이 다가온 푸른 당근밭이 펼쳐져 있을 뿐, 그 흔한 입간판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입구에 ‘This is Hot’이라고 쓰인 팻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유추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건물 안이 더욱 궁금해진다. 이곳은 이미 독특한 공간을 찾는 여행객이나 아티스트 사이에서는 은근히 입소문이 난 하도리의 보물이다. 디스 이즈 핫에서 만난 정유미 대표는 제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이전에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를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려 고향으로 돌아와 부티크 호텔 콘셉트의 공간을 만들었다. “여러 미술가의 작품이 가득한 스튜디오가 너무 흥미로워서 침대만 있다면 한 달도 더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의 감동을 되살려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한 건축물 레노베이션 작업을 했습니다.” 건축물에 맞는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라, 작품에 맞추어 건물을 재건축할 정도로 정 대표의 열정은 뜨거웠다. 약 1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한 9개의 객실을 국내 작가 5명의 작품으로 수놓았다.
최종운 작가의 작품으로 만나는 수평선
간판이자 호텔 이름이기도 한 ‘디스 이즈 핫’은 미술가 최종운의 설치 작품에서 유래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스 버전의 ‘디스 이즈 핫’ 작품이 보이는데, 환경오염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얗게 꽁꽁 얼어 있다가 지구온난화를 연상시키며 동파이프가 드러나게 녹아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최종운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스위트룸인 203호 역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불이 반짝 켜지는 네온 버전의 ‘디스 이즈 핫’ 작품이 반겨준다. 거실 천장에는 마치 달이 뜬 것 같은 깊고 둥근 음영의 조명이 달려 있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천장고를 일정 부분 포기했다. ‘수평선’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이 방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바다가 바라다보이는데, 벽 옆면으로 ‘스톰 온 더 옐로우(A Storm on the Yellow)’가 설치돼 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가까이 다가간 투숙객은 깜짝 놀랄 수도 있다. 작품에 센서가 내장돼 있어 사람이 다가가면 갑자기 파도가 일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환경오염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바다를 더럽힐 수 있는 물질인 배스 폼을 넣어 만들었다. 침실에는 세제와 오일로 만든 작품 ‘더 씨 고우즈 다운(The Sea Goes Down)’이 걸려 있다. 인간이 만든 오염 물질로 바다를 표현한 발상이 재미있다. 작품 옆 작은 창문과 큰 유리문으로 보이는 수평선이 연이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방에서는 바다와 작품의 수평선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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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리에 나타난 27개의 UFO

201호에서는 로와정 작가의 드로잉과 조명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로와정은 노윤희, 정현석 작가로 구성된 미술가 듀오인데, 벽면의 드로잉 작품 ‘Uncertain #1’은 본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듯해서 흥미롭다. 이 방의 조명 작품 ‘워너 비 해피 에브리 나이트(Wanna be Happy Every Night)’는 여성과 남성의 체크 패턴 브리프로 만들었는데, 밤에 침대에 누워 맞은편 바다를 바라보면 이 조명이 별처럼 유리문에 투영된다.
102호에는 그러데이션 기법이 아름다운 김영헌 작가의 유화 ‘클라우드 맵Cloud Map-p1206’과 작품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안락의자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실제와 가상 공간을 두루 이미지화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처럼, 이 객실에서는 현실의 노곤함을 잊고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을이 보이는 205호에서는 홍장오 작가의 UFO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UFO 조명에 불이 켜지고, 거실에는 하도리에 나타난 27개의 미확인 비행 물체를 소재로 한 작품이 걸려 있어 호기심을 북돋운다. 디스 이즈 핫은 이렇듯 객실뿐 아니라 복도와 아침 식사를 위한 공간에도 예술 작품이 곳곳에 숨어 있어 미술 애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심지어 식사용 테이블까지 하나의 ‘아트 피스’다. 유명 사진가 데이비드 앨런 하비는 이곳에 묵었다가 조식 공간에 있는 최종운 작가의 작품에 반해 아예 구입을 요청했다. 정 대표는 여행자들이 편안함을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작품 옆에 캡션을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미술 작품이란 마치 들꽃 같아 무심결에 지나치면 스쳐 갈 수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삼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공간, 그것이 디스 이스 핫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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