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의 달’을 맞이한 홍콩의 봄(Hong Kong Arts Month)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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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 2024

글 고성연 ㅣ 사진 고성연

‘문화 예술의 달’을 맞이한 홍콩의 봄(Hong Kong Arts Month) 2024


지난 3월 말 홍콩의 봄은 후끈 달아올랐다. 대개 4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만 예년에 비해 기온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올라갔던 올봄, 날씨만큼이나 타지에서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하는 도시의 열기가 강렬해진 데는 글로벌 현대미술 페어인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을 필두로 한 ‘아트 위크’, 더 넓게는 이 주간을 전후로 한 달 가까이 펼쳐진 ‘문화 예술의 달(Hong Kong Arts Month)’의 역할이 컸다. 특히 올해는 아트 바젤 홍콩 행사가 팬데믹 이전 규모를 회복한 상태로 외부인에게 다시 문을 활짝 연 첫해라 관람객 스펙트럼이 지난해보다 훨씬 더 다양해진 ‘다국적 면모’가 반갑게 느껴졌다. 예전만큼의 오색찬란한 활기는 보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며 꿈틀대는 도시의 몸짓이 어쩐지 인간의 삶을 닮은 듯, 열정과 애수가 뒤섞인 홍콩의 봄날은 묘한 에너지로 다가왔다. 아트 바젤 홍콩을 전후로 도시를 수놓고 있는 장외 전시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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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전시가 그리워지는 대형 미술관들의 봄 풍경


 홍콩은 대다수의 방문객에게 ‘수직의 도시’다. 세인의 관심을 받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다가 팬데믹 기간에 드디어 공개된 홍콩의 미술관 M+를 설계한 HdM의 건축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 표현했듯 말이다. 사실 필자를 비롯해 타지의 여행객들이 홍콩에 가면 구룡반도와 홍콩섬에 들르는 일정이 일반적이라 이런 이미지는 당연하게 와닿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홍콩은 이 두 지역 말고도 신계, 그리고 란타우섬을 비롯해 2백63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산이 많고 평지가 적다. 전체 면적의 60%가량이 산이라고 하니, 홍콩에서 오래 살았던 국외 거주자들이 조금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누릴 수 있다며 이구동성 강조하는 ‘초록의 미학’이 이해된다. 도시 여행자에게 익숙한 홍콩섬 북부와 구룡반도는 원래 협소한 지역이었는데, 1세기 넘게 전개한 간척 사업으로 그나마 넓어진 것이다. M+가 들어선 구룡반도의 땅도 방대한 매립지를 문화 예술촌인 시주룽 문화 지구(WKCD)로 탈바꿈하는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그중 컨템퍼러리 미술관인 M+는 ‘뮤지엄, 그 이상(+)’을 품어내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 포부에 걸맞게 동시대 가장 각광받는 ‘스타키텍트(starchitect)’ 브랜드인 HdM과 협업해 한화로 1조원을 훌쩍 넘기는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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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늦가을에 대중 앞에 선보인 M+는 불과 1년 반 정도 만에 3백만 명에 이르는 관람객 수를 돌파할 만큼 자국 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 지난해 봄 팬데믹 빗장이 완화되면서 해외 방문자들에게도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자체는 18층이지만 전시 공간은 3개 층에 나뉘어 있는데, 전시 공간 규모만 17,000㎡(약 5천1백 평)에 이른다. 내부는 육중하면서도 군데군데 빛의 세레나데를 누리며 호흡을 가다듬을 만한 공간이 자리하며, 외부로 나가 쉼터 같은 공용 공간을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건너편 홍콩섬 전경을 한눈에 담아낼 수 있는 M+의 루프 가든이 탁 트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지난해 봄에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Yayoi Kusama)의 역대급 규모 회고전이 열려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올봄에는 걸출한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인 스위스 출신 울리 지그(Uli Sigg)의 소장품 전시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었고, 20세기 중국 패션 아이콘 ‘마담 송’을 기리는 특별전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M+는 33개 전시실(gallery)을 둔 만큼 ‘발품’을 팔 각오를 해야 하는데, 사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콘텐츠’ 구성이 아쉬웠다(특히 지난해 전시를 본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산수화: 메아리와 신호 (Shanshui: Echoes and Signals)>전이라든지 프랑스 기관과의 협업 사진전도 괜찮았지만 글로벌 축제에 어울리는 ‘블록버스터’ 한 방이 그립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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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홍콩섬 센트럴 지구(할리우드 로드)의 타이퀀(Tai Kwun). 중앙경찰서, 빅토리아 감옥 등 16개 옛 정부 건물을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복합 문화 단지로 재탄생시킨 장기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2018년 5월 개관)인 이 매력적인 복합 단지에는 HdM의 또 다른 설계 작품인 JC 컨템퍼러리가 있는데, 수준 높은 동시대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미술관이다. 올봄 아트 바젤 홍콩 주간에는 생태 환경과 여성을 주제로 한 <Green Snake: women-centred ecologies>라는 기획전, 그리고 도시를 소재로 한 영상과 기하학적 추상 작업으로 알려진 미국 작가 세라 모리스(Sarah Morris)의 소규모지만 인상적인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 건축물과 산업적인 풍경을 자본화와 권력 구조로 파악하는 작가의 ‘홍콩’ 시리즈는 ‘발품’을 열심히 팔아야 하는 예술 산책에 지친 눈도 붙잡아두게 하는 힘이 있다. 물류 센터의 콘베이어 벨트, 홍콩 사람들에게 익숙한 두유 음료 팩을 만드는 공장의 기계조차 심미적으로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영상미도 그렇지만 이 도시를 자막 없이 묵묵하게, 하지만 예리하게 응시하는 시선이 좋았다. 그렇지만 문득 다음 기획전으로 예정된 전시 타이틀을 보니, 글로벌 아트 주간에는 이 대형 전시(현대미술 거장 브루스 나우먼의 대대적인 서베이 전시)가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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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지역과 애버딘의 대조적인 예술 풍경


성공적인 아트 페어는 때로 현대미술 장터의 수준을 넘어 문화 예술계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콘텐츠를 끌어오는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주로 금융과 쇼핑의 도시로 여겨졌던 홍콩에는 아트 바젤 홍콩의 모태가 된 홍콩 아트 페어(Hong Kong International Art Fair)가 2008년 설립되면서 미술 시장을 둘러싼 기운이 커져갔고, 그 무렵 가고시안, 화이트 큐브, 리만머핀, 페로탕 같은 ‘스타’ 갤러리의 아시아 분점이 속속 입성했다. 그리고 2013년 ‘아트 바젤’을 운영하는 스위스 MCH 그룹이 홍콩 아트 페어를 인수해 아트 바젤 홍콩으로 거듭나게 하면서 판이 커졌다. 워낙 밀도 높은 땅덩어리인지라 센트럴이나 완차이에 위치한 갤러리들은 대개 고층 건물 안에 들어가 있다. 홍콩 중심가인 센트럴에 있는 페더 빌딩(가고시안 홍콩), 중국농업은행(화이트 큐브 홍콩) 등은 현대미술 컬렉터나 문화 예술 애호가들이 들르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2019년 아트 주간에는 센트럴 지구에 ‘아트 특화 빌딩’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H 퀸즈(H Queen’s)가 화제였는데,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스톤 갤러리, 탕 컨템퍼러리 등이 입주했기 때문이다. 메가 갤러리로 큰 부침이 없어 보이는 탄탄한 실적을 자랑하는 하우저앤워스는 올 초 지상층에 위치한 새로운 갤러리 공간을 열었는데, 이 역시 멀지 않은 센트럴 지구이기는 하다(퀸즈 로드 센트럴 8).

●● 어느 도시나 그렇지만 판이 커지면 ‘이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땅값 비싸고 건물과 인구가 밀집된 홍콩섬 중심가에서 벗어나거나 제2의 공간을 두는 갤러리가 꽤 있었지만 이러한 경향은 더 짙어지고 있다. 예컨대 이제 아트 지구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홍콩섬 남쪽의 웡척항에는 벨기에 갤러리인 악셀 페르포르트(Axel Vervoordt), 일본 갤러리 다카 이시(Taka Ishi), 벤 브라운(Ben Brown) 등이 있다. 홍콩 갤러리인 엠프티 갤러리(Empty Gallery)와 키앙 말랭그(Kiang Malingue)는 아예 홍콩섬 남서쪽의 조용한 어촌 분위기가 느껴지는 애버딘 지역에 자리 잡았다. 역시 고층 건물 안에 있기는 하지만 화이트 큐브가 아닌 온통 어두운 벽으로 둘러싸인 ‘블랙 큐브’ 공간이 인상적인 엠프티 갤러리는 그래도 손쉽게 검색해 관람했지만, 표지판도 눈에 띄지 않는 공장 건물 안에 입주한 키앙 말랭그의 전시 공간은 길거리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찾았는데, 억지로 꾸민 인더스트리얼 감성의 인테리어가 아니라 진짜 산업 현장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다. 마침 류샤오후이(Liu Xiaohui)라는 작가의 전시 <Flowers of Hong Kong>이 열리고 있었는데, 작은 꽃 그림 옆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 풍경을 바라보며 갤러리에서 주는 음료를 홀짝이노라니 어쩐지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슬며시 생겨났다. 불꽃같이 재빨라지는 전시 산책의 덫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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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마케팅 전쟁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아트 주간, 길게는 한 달 내내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문화 예술 행사는 일일이 세기는 힘들지만 1백 개도 훌쩍 넘는다고 한다. 하버 프런트의 천막을 무대로 하는 위성 아트 페어 아트 센트럴(Art Central)이 별도로 열리기도 하고, 짙은 녹음 속 ‘아트’가 창조적 영감을 절로 북돋워주는 타마르 공원을 비롯해 야외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다국적 인력과 자본의 조합으로 저마다 매력을 뿜어내는 여러 복합 단지에서 펼쳐지는 알찬 문화 예술 프로그램은 깨알같이 많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소유한 홍콩 스와이어 그룹(Swire Properties)의 경우에는 아트 바젤 홍콩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대형 설치 전시인 ‘인카운터스(Encounters)’의 장외 전시를 후원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호주 작가 대니얼 보이드(Daniel Boyd)의 대형 설치 작품이 퍼시픽 플레이스(Pacific Place)에서 선보였다. 스와이어 그룹은 또 아트 주간에 맞춰 해마다 복합 비즈니스 빌딩인 타이쿠 플레이스의 ‘아티스트리(ArtisTree)’에서 전시를 여는데, 올해는 포르투갈 출신의 예술가 조아나 바스콘셀루스(Joana Vasconcelos)의 재기발랄한 <Enchanted Forest>전이 열렸다. 타이쿠 플레이스의 광장에서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영국의 조각 거장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의 ‘SHELF II’가 전시되기도 했다.


●● 럭셔리 브랜드나 호텔에서도 저마다 ‘아트’를 키워드로 삼은 콘텐츠를 내세우기 바쁘다. 예를 들면 구룡반도 침사추이의 하버 프런트 인근에는 내로라하는 럭셔리 호텔인 페닌슐라와 로즈우드가 있는데, 이 두 호텔은 아트 바젤 홍콩을 후원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체적으로도 ‘아트’ 프로그램을 꾸린다. 2019년에 문을 열어 상대적으로 새 호텔인 로즈우드(K11 아틀리에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건물에는 페로탕 갤러리도 들어서 있다)는 원하는 맞춤형 투어 정보를 제공해주는 아트, 컬처 앰배서더를 각각 두고 있으며, 투숙객을 대상으로 페어장인 HKCEC와 호텔을 오가는 ‘프라이빗 요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럭셔리 마케팅 협업의 영리한 사례로는 홍콩의 부촌으로 손꼽히는 미드레벨 지역에서 진행하는 프라이빗 전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올봄에는 글로벌 경매업체 크리스티(Christie’s)가 부동산업체와 손잡고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 ‘하이 피크(High Peak)’를 무대로 중국 작가 류예(Liu Ye) 기획전을 열었다. 이는 소장자가 따로 있고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논-세일(non-sale)’ 전시였고, 외려 ‘아파트’는 판매용이었다. 아트 바젤 기간에 경매를 진행하지 않은 크리스티는 자사 공간에서는 아프리칸 아트 페어인 ‘1-54’ 기획전을 위한 자리를 내주고, 이 아파트에서는 경매에서 ‘핫한’ 작가의 전시를 대관료 없이 연 전략적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크리스티는 올가을 DDP 건축가이기도 한 자하 하디드 사무소에서 설계한 핸더슨 빌딩으로 자리를 옮기고, 다른 양대 경매업체인 소더비 역시 센트럴에 새 보금자리를 꾸밀 예정이라 내년부터 홍콩의 봄에는 경매업체들의 승부도 지켜볼 만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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