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l&old Britan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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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1, 2017

에디터 고성연 (런던 현지 취재)

도시의 매력은 뭘까? 인류의 재능을 집약한 ‘종합예술’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도시 경쟁력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는 21세기에 창의 산업의 메카이자 문화 예술의 허브로 꾸준히 자리매김해온 런던은 그 종합예술의 창조성이 가장 돋보이는 도시 중 하나다. 전통과 모던을 둘 다 품고 있되, 균형감을 절묘하게 유지해나가는 ‘영국적인’ 역량과 감각이 집약된 런던의 개성과 매력은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든 ‘브렉시트 파장’ 이후에도 여전하다. ‘2017~18 한영 상호 교류의 해’를 맞아 양면의 매력을 지닌 ‘브리타니아(Britannia)’ 방식의 창조성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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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은 전통과 함께 갈 때에만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_이고르 스트라빈스키

21세기는 ‘도시의 세기’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세기 초에 세계 인구의 10분의 1가량이 도시에 살았던 데 비해 오늘날엔 절반이 넘는 32억5천만 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1백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빅뱅’처럼 팽창해버린 것이다. 도시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언젠가부터 ‘도시 재생’, ‘창조 도시’라는 슬로건이 유행처럼 범람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밀집한 삶의 터전을 보다 나은 곳으로 진화시키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인기’로 인한 후유증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라고 하는 현대의 대도시는 점점 더 비대해지는데, 부동산 시세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구직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기 그지없으며, 환경과 교통사고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골칫거리로 오르내린다. 그러나 온갖 푸념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꿈을 위해 꾸역꾸역 도시로 모여든다. 이런 배경에서 1990년대에 접어들자 문화, 예술, 창의적인 기술에 투자해 도시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의 ‘창조 도시론’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부각됐다. 혹자는 뉴욕, 로마, 베를린 등에서 불어닥친 이런 열풍을 가리켜 ‘신도시 르네상스’라고도 부른다. 런던이 전통의 메카가 아니라 현대적인 창조 도시 이미지를 가꾸기 위해 도시 브랜딩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영국’을 내세운 쿨 브리타니아 프로젝트
“영국인들도 런던에 대해 늘 불평을 쏟아냈죠. 저도 어릴 때는 파리나 바르셀로나 같은 다른 나라의 대도시를 부러워했어요.” 지난해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이라는 전시로 한국에서도 이름을 떨친 영국의 팔방미인 크리에이터 토머스 헤더윅은 8년 전인 2009년 런던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런던도 전통 있는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없지는 않지만 뭔가 고답적이고 지루하다는 이미지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10년간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헤더윅의 부연 설명처럼 런더너들은 새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 배경에는 보수당의 18년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게 하면서 1997년에 집권한 토니 블레어(Tony Blair) 전 영국 총리가 있었다. 그는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라는 구호를 내걸고 영국을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감수성이 충만한 사회, 그것을 원동력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사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브리타니아는 고대 로마 시대에 영국 땅을 이르던 말이다). 셰익스피어만 팔아서는 안 되니, ‘근사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만들자는 국가 브랜딩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물론 그의 구호가 실제로 작동한 데는 ‘창조 계급(creative class)’으로 불리는 빼어난 인력의 역할이 컸지만, ‘쿨 브리타니아’가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런던은 반짝반짝 빛났다. 1990년대부터 꽃피기 시작해 21세기 들어서는 더욱 탄력을 받으며 창의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템스 강의 밀레니엄 브리지 같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풍부하게 꾸린 런던은 다시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당시 배낭족을 비롯한 관광객들도 영국 전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대부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던 건 문화적 ‘당근’ 정책 덕분이다. 1990년대 세계 미술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 디자인, 미디어, 음악, 하이테크 건축, 뮤지컬, 스포츠 등 전방위적 문화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런던의 저력은 2012년 런던올림픽 개·폐막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통과 문화유산, 현대의 대중문화를 한데 버무린 작품성을 만천하에 뽐낼 기회였다.

올드 브리타니아의 재등장, 두 얼굴의 나라
그렇다. 아직도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 중 하나인 영국은 ‘전통’의 이미지가 무척이나 강한 나라일 수밖에 없다. 2010년 보수당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근본적인 장점을 토대로 한 ‘올드 브리타니아(old Britannia)’를 내세웠다. 세계 6위 수준의 영국 관광산업을 5위권 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고성(古城), 박물관, 왕실 등 영국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맥락에서 나온 브랜딩 전략이었다. 특히 런던 타워, 버킹엄 궁전 등을 보러 중국, 인도 등에서 오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마침 2011년 윌리엄 왕자와 결혼하면서 현대판 신데렐라로 떠오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덕분에 왕실 마케팅은 실제로 꽤 효과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전통 있는 나라 영국, ‘쿨’하고 ‘핫’한 도시 런던이라는 양면적인 이미지가 굳이 나쁠 리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마케팅 차원에서는 쿨 브리타니아가 승리한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창조 경제’, ‘창의 산업’이라는 개념이 각광받으면서 쿨 브리타니아는 수없이 회자됐지만, ‘올드 브리타니아’라는 구호는 딱히 키워드로 두드러진 적이 없으니 말이다. 캐머런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가 보수당 정권을 이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장기간의 긴축정책 탓인지 딱히 인기 있는 정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실 최근 들어 영국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브렉시트(Brexit)’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찬반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탈퇴(exit)’로 판가름 나자 지구촌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영국인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쿨 브리타니아에서 올드 브리타니아 기조로 넘어가던 시절에 런던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투표 결과가 발표된 다음 모교에서 ‘우리는 ‘international’한 방향을 추구하는 학교이고 그 방향을 유지할 것’이라는 요지의, 고립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듯한 느낌의 이메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국민투표인 만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하게 확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브렉시트를 무효화하거나 형태를 축소해 ‘EU권’이라는 신분을 유지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왔다.

브렉시트 파장 이후의 런던, ‘마이웨이’
하지만 일각에서는 섬나라 영국이 역사적으로 볼 때 항상 의도적인 고립을 추구해온 터라 ‘올 게 온 것’이라는 지적도 한다. EU의 울타리에서도 파운드화를 고수하고 외교적으로도 고립주의를 선택한 이력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건축의 표정>이라는 책을 통해 영국의 도시 풍경을 둘러싼 문화 기행기를 풀어놓은 저자 송준은 영국인(English)의 직계 조상인 앵글로색슨은 언어에 관해서도 고집스러웠다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은 다른 민족과 달리 그들은 로마와 켈트 문화를 수용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라틴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독자적인 고대 영어를 고집했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영국은 일단 ‘마이웨이’를 가고 있는 듯하다. 그것도 노르웨이처럼 일정한 분담금을 내면서 단일 시장 접근권은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도 아니고 대륙과의 깔끔한 분리를 뜻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택해버렸다(올 초 메이 총리는 영국이 EU 관세 동맹과 EU 단일 시장에서 동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EU와의 관계가 산산조각 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구조나 세세한 조항이 어떤 식으로 가닥을 잡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이민자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더구나 런던은 3백여 개 언어가 공존하는, 그래서 ‘칵테일 문화’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다인종과 다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 아닌가.
“영국 스스로 좀 멍청한 짓을 했죠. 하지만 우린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여기에 살려고 왔으니까 불안하긴 하죠.” 4년 만에 찾은 런던에서 만난 루마니아 출신의 청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케팅과 디지털 비즈니스를 공부한다는 ‘주경야독파’인 그는 변화가 오더라도 단계적으로 일어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낙관했다. 영국이란 나라 자체가 느리지만 신중한 혁신을 꾀하는 기질을 갖고 있지 않냐면서.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떠날 생각은 없다고 웃으면서 덧붙이는 그의 말을 들으니 많은 타향인이 말하는 ‘얄밉지만 좀처럼 거부하기 힘든’ 런던의 매력이 새삼 떠올랐다. 런던은 여전히 런던이었다.

양면의 매력을 쥔 채 뻗어가는 창조성
그래도 올드 브리타니아 정권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운 변화가 있다. 많은 학생들에게 단비처럼 여겨지던 문화적인 혜택이 많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더구나 주요 관광 명소나 미술관, 박물관 입장료는 입이 벌어지게 비싸졌다.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화 약세로 살 떨리는 물가가 좀 내려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인 것이다. 일례로 얼마 전 성황리에 마무리된 빅토리아 & 앨버트(V&A) 뮤지엄의 <핑크 플로이드> 전시는 입장료가 24파운드였다. 주말이라 할증된 가격이라지만 유럽 전역을 뒤져봐도 보기 힘든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신관 건축을 통해 ‘뉴테이트’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런던의 명물 테이트 모던은 여전히 상설전은 ‘무료입장’ 가능하지만 기획전 표값이 만만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자코메티>전 같은 테이트의 빼어난 기획전을 눈앞에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더구나 이처럼 뿌리칠 수 없는 창조적 유혹은 런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홀랜드 파크 옆으로 새롭게 자리를 옮겨 청신한 녹음에 둘러싸인 환경이 새로운 디자인 뮤지엄, 확장 프로젝트로 더 근사하게 거듭난 V&A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콘텐츠가 여기저기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중 백미는 역시 전통에 바탕을 둔 혁신을 꾀한 콘텐츠가 아닌가 싶다. 예컨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글로브 극장에서 요즘은 힙합, 록 음악 등으로 버무린 퓨전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식도락 풍경도 한결 풍요로워졌다. “지옥엔 독일 경찰과 영국인 요리사가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악명 높았던 런던이지만 그것도 옛말일뿐더러(물론 ‘미식 천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식문화의 다양성이 넘쳐나는 게 강점이다. 트렌디한 한국 음식을 파는 ‘김치’나 ‘비비고’ 같은 레스토랑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높은 물가는 변함없지만 도시 재생의 상징과도 같은 이스트 런던에 가면 여전히 1~2파운드에 섭렵할 수 있는 베이글을 파는 가게도 여전히 존재한다.
전통과 모던을 때로는 파격적으로 비틀고, 때로는 조화를 이루되 흥미롭게 융합하고 변주하는 능력. 아마도 절충주의에서 창조성을 뽑아내는 역량을 런던만큼 두루 갖춘 도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가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은 도시 컨설팅의 권위자 찰스 랜드리의 말처럼 ‘공식이 아니라(not a formula)’ 이미 체계화된 시스템과 콘텐츠의 복잡다단한 역학 작용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것이다. 영국 패션계의 거목 폴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원류는 이렇다. “영국의 창조성은 독립성이 유달리 강한 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대륙인’과 달리 영국인은 ‘홀로서기’에 익숙하지만 뒤처지기 않기 위해 늘 바지런히 바깥세상의 동향에 신경 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경계 너머’를 볼 줄 알게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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