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Challenge for Pe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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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23

글 고성연

Interview with_Javier Peres(페레스프로젝트 대표)


베를린을 거점으로 하는 페레스프로젝트(Peres Projects)는 동시대 미술계에 뛰어든 지 20년이 훌쩍 넘은 글로벌 갤러리지만 어쩐지 젊은 기운이 여보란 듯 파닥파닥 솟구치는 듯한 이미지로 기억된다. 풋내 나고 어설픈 기운이 아니라 청춘의 영감이 내면에 쌓이다 못해 흘러나오며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 것 같은 기운이다. 그건 아마도 이 갤러리의 소속 작가 도나 후앙카(Donna Huanca)가 절정의 한 순간을 여실히 보여준 <Obsidian Ladder>라는 수년 전의 매혹적인 전시 풍경(미국 로스앤젤레스)을 운 좋게 목도한 덕분일 것이다. 도나 후앙카는 지난봄 서울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의 전시 <블리스 풀(BLISS POOL)>로도 찾아왔는데, 얼마 전에는 삼청동 갤러리촌에 그녀의 커다란 회화가 VIP 접객실 벽에 걸린 전시 공간이 새로 생겼다. 그 자신에게도 그의 이름을 딴 갤러리에도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 될 페레스프로젝트의 율곡로 공간에서 기분 좋게 들떠 있는 하비에르 페레스(Javier Peres)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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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갤러리와 미술관이 모여 있는 서울 삼청동의 골목에 한눈에 봐도 ‘아트 스페이스’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아담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베를린 본점을 필두로 밀라노, 그리고 서울(신라호텔)에도 지점을 둔 글로벌 갤러리 페레스프로젝트(Peres Projects)가 새롭게 선보인 전시 공간(지상 4층, 지하 1층을 아우른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필자와 거의 비슷하게 도착한 듯 두리번거리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는데, 알고 보니 페레스프로젝트가 삼청 지점 개관에 맞춰 연 개인전의 주인공 시시 필립스(Cece Philips) 작가였다. 이윽고 갤러리 대표이자 창업자 하비에르 페레스(Javier Peres)가 등장하면서 반가운 재회의 포옹을 나누자 작가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말끔히 단장한 공간에 여유로운 간격으로 걸려 있는 그림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레 사로잡는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먼 타국에서 대하는 작가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6년생인 시시 필립스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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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 새롭게 자리 잡은 전시 공간
그녀에게 삼청동 일대가 한국의 문화 예술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에 대해 설명하면서 뿌듯해하는 하비에르 페레스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유쾌하면서도 예리한 구석이 엿보이는 인물이었다. “맞아요. 당연히 전략적인 의도였어요. 물론 훨씬 더 유명한 작가를 선보일 수도 있었죠. 시시는 아주 젊고요.” 아무래도 젊고 참신한 작가를 주로 소개하는 진보적인 이미지의 갤러리지만 개관전에 20대 작가를 선정하다니 대담하기는 하다(별도로 그룹전도 열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아시다시피 재능이란 나이와 상관없으니까…”라며 “지난 20년여 년 동안 세상 최고의 인재를 ‘발굴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걸 페레스프로젝트의 정체성으로 삼아왔는데, 이번 개관전을 장식할 작가를 정하려고 할 때 바로 시시가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새 전시 공간에 걸린 시시 필립스의 회화 9점이 걸린 전시명은 <Walking the In-Between>. 해 질 녘의 도로와 바, 클럽 등의 장소에서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은 일상적이지만 긴장감이 살짝 깃든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들을 바라보는 여성 도시 산책자로서의 시선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은 절로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실제로 인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친구가 이 전시를 영감 삼아 단편소설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비에르의 말처럼 ‘타고난 스토리텔러’다. 그림 속 장면을 텍스트로 풀어내고 싶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형이라는 면에서는 에드워드 호퍼 같지만 따스한 시선과 부담스럽지 않은 경쾌한 호기심이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다.
“시시는 ‘현실’을 모든 이들에게 접근 가능하도록 해줍니다.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요. 저는 ‘실제 세상’을 살고 싶고 그런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들을 좋아해요. 그런 작가들의 작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죠.” 페레스프로젝트가 젊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다. 작가의 평균연령대는 모르지만 30~40대 작가와 주로 일하기는 한다고 웃으며 설명하던 하비에르 페레스는 “아무래도 저는 ‘청춘(youth)’에 매료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아니, 청춘이라기보다는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인생의 시기에 있는 작가들에게 매료된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라고 정정했다. “정말로 다양하게, 많은 것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기가 있잖아요. 50대에 접어든 제 자신을 비롯해 중·장년이 되면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양상이) 다르죠.” 이번에 시시 필립스의 개인전과 더불어 진행 중인 그룹전 <The New, New>에 참가한 작가들의 면면을 봐도 엿보이는 하비에르 페레스의 ‘선호’다. 라파 실바레스, 에밀리 루트비히 샤퍼, 오스틴 리, 파올로 살바도르, 그리고 최근 갤러리에 합류한 1997년생 덴마크계 스페인 작가 안톤 무나르 등 젊은 피의 개성이 묻어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지난해 작고한 페레스프로젝트의 작가 도로시 이아논(Dorothy Ianonne) 같은 경우에는 80대였지만 여전히 젊고 도전적인 사고를 유지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갤러리스트의 길로 인도해준 ‘깨달음의 순간’
예술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고, 취향과 철학이 확고한 이들과 얘기하는 건 역시 즐겁다. 게다가 하비에르 페레스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난 스페인계 혈통이라는 다채로운 배경의 소유자여서일까,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주제를 전환하면서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인물이다. 온 가족의 소망대로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아트 딜러가 되어야겠어”라고 결심하고 법조계를 떠날 만큼 화끈하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다양한 역사를 좋아했고 예술 향유자로 자라나기는 했지만 온 가족이 지지했던 ‘잘나가는’ 변호사라는 명함을 내던진 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극적인 ‘깨달음의 순간’을 선사한 건 샌프란시스코에서 독일 태생의 미국 조각가 에바 헤세의 개인전이었다고. “제가 늘 좋아하고 존경해온 작가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녀도 세상을 떠났는데, 샌프란시스코 전시를 보고는 정말로 감명받았어요.” 그는 미술관에서 걸어 나오면서 자신이 뭘 하게 될지 직감했다고.
그렇게 갤러리 비즈니스에 뛰어든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 업계에서는 드물게 경영 마인드와 시스템에 확실한 개성이 있는 ‘브랜드’로 성장해왔지만 이렇게 서울에 근사한 공간을 두게 될지는 몰랐기에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미국에서 자랄 때 한국계 친구가 여럿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 사람이나 문화가 낯설지는 않았죠(실제로 삼청동 전시 공간의 건물주도 하비에르 페레스의 친구 모친이라고). 하지만 이 특별한 동네에 이렇게 멋진 공간을 꾸리게 되다니, 이건 정말이지 영광이에요.” 이미 여러 경로로 한국에서 고객층을 다져온 페레스프로젝트지만 그의 말처럼 미술 애호가들에게 ‘차별된’ 가치를 꾸준히 선사하는 갤러리로 입지를 더 다져나가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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