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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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7, 2024

우리가 기대하는 어떤 순간을 위해 하루하루의 일상을 보내고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일상성’은 예술에 바치는 치열한 순간순간의 증거다.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예술’에 헌신하는 안무가 이양희의 춤과 유귀미 작가의 아름다운 화폭은 2024년의 지금 이 순간을 과거의 어떤 순간 혹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어떤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다. 마치 백일몽을 꾸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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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품은 춤, 안무가 이양희
새로운 춤은 늘 실험적인 예술가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빔 벤더스, 페드로 알모도바르,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영화감독들과 작가 수전 손택,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춤’에 사랑과 경의를 보내왔다. 새로운 춤은 때로는 전통 춤이 현대 안무가를 만나며 탄생하기도 하고, 춤추는 몸 자체가 퍼포먼스 아트로 확장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신체를 재료로 하는 그들은 예술 그 자체라는 점이다. 서울 경리단길에 자리한 갤러리 휘슬의 올해 첫 전시로 5일(1월 10일~14일)에 걸쳐 선보인 <IN>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퍼포먼스였다. “나는 ‘내 마음이 기뻐하는 일’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안무가 이양희의 생각을 담아낸 퍼포먼스로 그녀가 일종의 안거(varsa)로서 아무도 없이 홀로 수행하는 1부, 수행과 상태를 외부에 공개하는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시간의 시작과 반복, 끝을 극단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는 이 공연은 작업을 수행하는 신체, 그 신체를 바라보는 관객, 모든 과정이 생성되는 시점과 좁아지는 공간 사이의 거리감 등을 모두 퍼포먼스의 대상으로 삼은 듯했다. 둥그렇게 둘러앉은 관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고 그 사이를 누비며 엎드리기도, 솟아오르기도, 어딘가 멈춰 있기도 하는 동작. 어떤 순간에는 한국의 전통적 요소가 생각나기도 하고 극한의 시간을 견뎌내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 안무였다. 그 흐름을 따라가노라니 그녀와 미세한 호흡을 함께하게 되고 결국엔 덩달아 몸을 움직이고 싶어지기도 했다(그러지 못했지만). “나는 내 유한한 신체가 현재 출 수 있는 춤을 가능한 한 많이 추고 싶다”라고 한 이양희의 말처럼 그녀가 휘슬에서 펼친 공연은 우리의 육체가 꿈꾸는 자유로운 움직임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재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이양희는 신체, 쾌락, 형식 등 춤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영상과 퍼포먼스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디 음악,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며 춤을 중심으로 일시적 극장을 만들기도, 전시 형태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2011년부터 ‘언런(Unlearn)’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킨 7개의 테마가 있는데, 이번에는 휘슬의 공간에 맞는 주제와 동선을 고려한 스코어로 선보였다. 작은 화이트 큐브 안에서 이양희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아트 피스’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손을 뻗는 동작 하나하나에 깊은 여운이 담겨 있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선곡 리스트도 좋았는데,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일레트로닉과 피아노 음악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춤의 선이 아름다웠다. 피나 바우슈는 “아름다운 것들이 항상 ‘움직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발언이 갤러리의 작은 공간 속 이양희의 몸짓으로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의 춤을 통해 아름다운 과거의 순간이 현재에 놓이고, 미래의 움직임이 눈앞에 놓인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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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성이 닿는 숭고의 영역, 작가 유귀미
가장 평범한 순간에 ‘마법’을 발견할 수 있는 ‘일상성의 미학’. 이러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 앞에 서면 때로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리만머핀 서울의 <원더랜드> 전시(1월 11일~2월 24일)에서 만난 유귀미 작가의 작품도 그러한 경험을 선물해준다. <원더랜드>전은 유귀미, 현남, 켄건민, 임미애가 참여하는 4인전인데,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동시대적 풍경을 만들어온 작가들의 신작을 함께 선보인 자리. 작품에는 각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 세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제 그림은 저의 경험에 관한 것이에요. 제가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모두 제 화폭에 들어가고, 또다시 기억과 환상의 풍경으로 바뀝니다(유귀미).” 지난해 가을 로스앤젤레스의 갤러리 메이크 룸에서 개인전 <Winter Blossom>을 갖고 난 이후, 국내에서는 첫 전시로 선보인 유귀미의 작품은 마치 독일 낭만주의 화가처럼 신비로운 무드를 지녔는데, 우리의 지나간 일상과 일상만큼이나 사소한 것이 화폭에 담겨 있다. 작가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그녀의 일상만큼 평범한 것이라고. 삶에 스며든 계절, 지나가는 바람, 기적 같은 봄꽃, 그리고 그녀가 지나쳐온 다정한 공간이 다른 세계와 만나면서 약간은 흐릿한 환상적인 빛으로 화폭에 번진다. 유명한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예술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이 “예술은 시간을 녹이게 만드는 마법”이라고 말했듯, 유귀미 작가의 담담한 서사는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눈앞에서 마치 어제 일처럼 다시 펼쳐지는 것 같다. 빛나는 일몰이 사랑하는 누구가를 회상하게 하고 시원한 밤바람이 부는 한강에서의 어떤 순간을 기억하게 하고, 결국 본질적으로 낭만을 꿈꾸게 한다.
“저는 미국에서 1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한국의 겨울을 그리워했어요. 눈이 아주 아름다우니까요. 그리고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도요. 계절이 바뀌는 봄은 기적 같은 일처럼 느껴졌거든요. 모든 작품은 저의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보는 것, 가는 곳, 그리고 보는 것을요.” 예컨대 그녀의 대형 작품 ‘스틸 북스(Still Books)’(2023)는 서점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거리의 풍경을 담았는데, 매주 목요일 아들과 함께 찾은 곳이라고. 또 다른 작품 ‘오렌지 스튜디오(Orange Studio)’(2023)는 그녀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창밖의 불타는 오렌지색 태양과 함께 실내에는 촛불이 타오르며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있다. 마치 일상의 순간순간에 치열한 예술가의 삶이 녹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치열함을 따라가다 보면 환상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보라, 청록, 핑크 등을 사용한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감으로 꿈 같은 풍경을 표현하는 유귀미 작가는 인상파에서 초현실주의 작가, 한국의 산수화, 심지어 아들의 그림책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런던 유학을 마친 뒤 미국 동부와 서부에 거주했는데, 그 세월 속 이민자이자 여성,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경험한 고립과 단절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중국 상하이 유즈 미술관, 마이애미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디블렌트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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