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Way of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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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7, 2024

글 고성연(포르투 현지 취재)


WOW_포르투의 복합 문화 단지(The Cultural District)


맑고 잔잔한 애수가 흐르는 도루(Douro)강의 도시에서


●    ‘오 소금기 바다여, 너의 소금 중 얼마만큼이 포르투갈의 눈물인가? 너를 건너느라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부질없이 기도했던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는 자신의 시 ‘포르투갈의 바다’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실제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단인 이베리아반도에 자리한 작은 나라 포르투갈은 망망대해(대서양)의 거센 파도를 마주하며 오랜 세월 동안 갖은 시련과 모험의 여정을 거쳐왔다. 화려한 전성기도 누렸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 인근의 강력한 국가 카스티야(스페인) 땅을 거치지 않고서는 유럽으로 나갈 수 없던 포르투갈인은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바다와 맞서며 영토를 확장해 ‘대항해시대’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후발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을 잃었고, 20세기 들어서는 40년 넘게 ‘저개발’ 독재 정권으로 신음하며 농업 국가에 머문 탓에 일자리를 찾아 떠난 수많은 이민자를 양산했다. 포르투갈 최대 수출품은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   포르투갈의 국민 정서를 논할 때 흔히 소환되는 ‘3F’가 있다. 축구(Football), 종교(Fatima, 성모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종교적 환시로 유명한 마을), 그리고 그들의 대표적인 대중가요인 파두(Fado)다.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에서 종교에 의존하고 축구에 미치고 음악에 취해 살게 하는, 우민화 정책의 수단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중 파두는 우리네 한(恨)과 비슷한 사우다드(saudade)를 기본 정서로 품은 음악으로, 오래전 리스본을 방문했을 때 한 식당에서 푹 빠져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포르투갈의 현 수도로 남부에 위치한 리스본은 파두 발상지로도 일컬어지는데, 북부에 있는 제2의 도시 포르투는 어떻게 불릴까? 축구 팬들에게는 FC 포르투(축구 클럽)의 도시일 수도 있겠지만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포트 와인’의 도시로 여겨진다. 도시 이름 자체가 ‘항구(Porto)’인 포르투는 도루(Douro)강(江) 하구 언덕에 펼쳐져 있는데, 대항해시대 해양 무역의 거점이었고 포트 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강을 따라 상류로 가면 포트 와인에 사용하는 포도를 재배하는 계단식 포도밭이 눈부시게 펼쳐진 도루 밸리가 나온다.



●●●  인구 23만여 명, 인근 지역을 합쳐도 1백7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아담한 항구도시 포르투. 요즘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행지 중 하나로도 꼽히는 이 도시는 길게 뻗은 도루강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역사 지구가 있는 포르투 시내, 그리고 남쪽에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이하 가이아) 지역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역사 지구를 품은 북쪽에는 포르투 대성당(Sédo Porto)을 비롯해 볼사(Bolsa) 궁전, 버스킹 명소로도 열려진 히베이라 광장, 푸른 타일로 내부를 단장한 아름다운 기차역 상벤투, 한때 이 도시에 거주했던 작가 조앤 롤링의 세기적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에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입소문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렐루(Lello) 서점 등 볼거리가 많다. ‘변화’는 오히려 문화적으로 척박했던 남쪽에서 일어났지만 말이다. 가이아 지역에 생겨난 복합 문화 단지 WOW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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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불어넣은 발상의 전환


#포르투의 두 얼굴
도루강을 중심으로 나뉜 두 지역, 그리고 평온함과 진취성


●    누군가는 ‘정치’적 경계라고도 하지만 도루강을 중심에 두고 남북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는 포르투의 두 지역을 보면 재미나다. 이 작은 도시에서도 “넌 포르투에서 왔니?”, “난 가이아 출신이야”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포르투 중심부와 가이아 지역을 잇는 다리가 여럿 있는데,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우아한 아치가 돋보이는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 Dom Luís I)’라는 철교다(‘루이스 1세 다리’라고도 불린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의 제자인 벨기에 건축가 테오필르 세이리그의 작품인데, 도로가 위아래로 연결된 이층교로 385.25m 길이인 상층은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와 보행자용 도로를 겸하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날이 맑은 날, 이 다리 위에서 도루강과 더불어 포르투의 풍경을 보노라면 이 도시는 전혀 작아 보이지도 않고, 애수 따위도 느껴지지 않는다(차분한 분위기의 도시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 강에는 애수만 흐르는 게 아니라 대항해시대의 진취적 기개 역시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   포르투는 고대 로마의 전초 기지이며 대항해시대의 ‘해양왕’으로 불리는 엔리케가 태어나기도 한, 오래된 정체성을 지닌 도시다. 포르투에 대한 ‘변하지 않는’, ‘낡았지만 정겨운’ 도시라는 이미지는 이처럼 깊은 역사의 뿌리에 얽혀 있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근현대사의 굴곡진 아픔을 지닌 포르투갈의 다른 도시들도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정체기가 오랫동안 지속됐고, 포르투 지역 출신의 건축 거장 알바루 시자(Álvaro Siza)의 발언을 빌리자면 이는 어쩌면 허울뿐인 고요함 속에서 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의동 건물 사이로 도루강이 보이는 포르투 건축대학이라든지, 고즈넉한 주택가에 자리한 널찍한 공원 부지에 있는 세할베스 미술관 같은, 은은하게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이 필자의 마음에 와닿는 이유일 것이다. ‘도시에 더해지는 모든 건축은 도시의 전체 모습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처럼 시자의 건축은 간결미가 돋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는 않은 우아한 시적 리듬감을 지니고 있고, 주위의 맥락을 참 자연스럽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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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All about Wine
건조했던 가이아 지역의 풍경을 바꾼 ‘변화’


●    단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포르투라는 도시에 아름다움을 보태는 풍요로운 문화적 자산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다수가 강북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형용하기 힘든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오렌지빛으로 물든 하늘과 미려한 강의 전망을 유유자적 즐기면서 루이스 1세 다리를 도보로 건너도, 강 남쪽인 가이아 지역에는 주로 포트 와인을 숙성하는 창고가 몰려 있을 뿐 별다른 문화적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와인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가이아 지역 일대에 놀라울 정도로 변화를 불어넣은 공간이 나타났다. 2020년 8월 문을 연 ‘WOW (World of Wine)’. 거의 9천 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와인 저장소가 모여 있던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미식, 쇼핑, 호텔 등을 한데 묶은 체혐형 복합 단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WOW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공간 전체를 흐르는 키워드는 ‘와인’이다. 생각해보면 포트 와인(port wine)은 도시 이름이 와인 명칭이 된 몇 안 되는 사례가 아니던가. 가이아는 포트 와인의 보고이고 말이다.



●●   이처럼 장소성을 살린 변화의 주체는 더 플랫게이트 파트너십(The Fladgate Partnership)이라는 영국 지주회사로, 이 그룹의 모태는 1692년 창립된 테일러스 포트(Taylor’s Port)다. 포트 와인 애호가라면 익숙할 만한 브랜드다. 플랫게이트는 1588년 창립된 크로프트 포트(Croft Port), 폰세카(Fonseca), 크론(Krohn) 등의 브랜드를 거느리며 1백5개국 이상에서 판매되는 포트 생산의 선두 주자. WOW는 팬데믹 시기에 오픈한 탓에 초기에는 주로 내국인 방문객을 받아들였지만, 서서히 지구촌을 신음하게 했던 장막이 걷히면서 이제는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각종 매체에서 찬사를 받고, 새로운 관광 지구로서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고 있지만,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미쳤다거나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단지 내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플랫게이트 CEO 에이드리언 브리지(Adrian Bridge)는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미소 지었다. “WOW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같이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일이 있었겠냐”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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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경제’의 다채로운 면면을 품다


#Welcome to the Experience Economy!
‘공간형 콘텐츠’의 향연


●    “포르투의 도시 윤곽은 강 너머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서 잘 보입니다.” 한 저술가와 나눈 알바루 시자 인터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근거한 발언이지만 건축계 구루의 말이 지니는 권위를 살짝 빌려 WOW 프로젝트가 가져온 ‘발상의 전환’ 효과를 얘기하고자 한다. WOW는 특히 도루강 너머 포르투 중심부의 모습이 예쁜 엽서의 이미지처럼 한눈에 담기는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어떤 교통수단으로든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일단 건너면 마주치는 언덕길을 따라 10분 정도만 내려가면 바로 WOW 단지가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알바루 시자가 가이아 일대의 변화된 풍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언젠가 직접 만날 기회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WOW 단지의 전반적인 건축적 풍경은 소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현대적이거나 ‘자본’ 냄새가 심하게 나지도 않기에 크게 취향을 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가이아 지역에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걸 의심하는 목소리가 꽤 컸다는 점을 돌이켜 보면, 오직 반대쪽에서만 누릴 수 있는 포르투 시가지의 눈부신 전망을 간과한 이들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물론 알맹이도 없이 그저 포르투 구도심의 아리따운 윤곽만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는 없다. 그렇다. WOW 프로젝트는 엄연히 상업적 복합 단지(complex)를 모델로 한 비즈니스이므로 하드웨어(인프라)와 소프트웨어(콘텐츠)의 조화로운 구비는 필수다. WOW 단지에는 ‘포트 와인’이라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흐르고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았다(더 이트먼 호텔은 WOW 뒤편 언덕에 따로 자리하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복합 단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언덕 위 초록 가득한 정원을 품은 채 자리한 호텔 아래로 내려오면 탁 트인 전망을 품은 중앙 광장이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이 흩어져 있는데, 크게는 체험 공간(뮤지엄과 와인 스쿨 등), 미식 파트로 나뉘고 와인, 초콜릿, 의류, 소품 등의 상품을 아우르는 매장도 있다. 21세기에는 단순한 상품과 서비스의 제안이 아닌 추억할 만한 감정을 안겨주는 ‘체험 경제(experience economy)’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주장을 살뜰히 실천하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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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ub of Exhibition Spaces
역사부터 코르크, 술잔에 이르는 다양한 컬렉션과 흥미로운 기획전


●    갖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전시 공간은 단연 WOW의 백미다. 이 단지를 자칭 ‘cultural district’라 부르는 근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미 세상에는 괜찮은 전시장, 미술관, 박물관이 차고 넘친다. 성공적인 차별화의 관건은 ‘맥락’과 ‘수준’이다. ‘왜, 여기서, 이걸’이라는 설득력을 지닌 전시와 체험, 그리고 ‘타깃’으로 삼은 대상에 맞춘 콘텐츠의 세련된 기획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WOW의 초점은 뚜렷하다. 연인이든 가족 단위든 방문객이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전시 공간 디자인과 콘텐츠 선정이 단연 눈에 띈다. 뮤지엄만 해도 와인, 코르크, 초콜릿, 글라스 컬렉션 등 일상성을 품고 있는데, 와인 애호가라면 ‘와인 익스피리언스(The Wine Experience)’와 ‘플래닛 코르크(Planet Cork)’를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전자는 포트 와인은 물론 다양한 포르투갈 와인, 그리고 와인 전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알기 쉽게 접할 수 있고, 후자는 전 세계 코르크 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나라답게 와인의 동반자인 코르크의 이모저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에이드리언 브리지 대표가 정성스레 수집한 9천 년 세월에 걸친 ‘와인잔’ 컬렉션을 모은 ‘브리지 컬렉션(The Bridge Collection)’, 로제 와인을 둘러싼 세계를 역동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핑크 팰리스(Pink Palace)’도 있다. 지난여름에는 리모델링을 마친 고택이 앳킨슨 뮤지엄으로 변모해 현대미술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   개인적으로는 외지인이라면 포르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Porto Region Across The Age(PRATA)’는 꼭 추천하고 싶다(그리고 되도록 제일 먼저 들르기를!). 선사시대부터 건국, 대항해시대, 프랑스(나폴레옹이 이끈) 군대의 침공 등 지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조앤 롤링이 체류하던 시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우방’으로 이어진 영국과 포르투갈의 인연도 파악된다(그것도 와인을 연결 고리로). 백년전쟁(1337~1453)에서 프랑스에 패한 잉글랜드가 와인 생산에 차질이 생겨 포르투를 새 공급지로 낙점했는데, 바다로 술통을 실어 나르다가 와인 맛이 식초 수준으로 망가져버리자 브랜디를 섞어봤다. 그랬더니 발효가 멈추면서 달달함을 유지하지만 도수는 20도 넘게 올라간 새로운 와인이 탄생했고, 이것이 바로 포트 와인이다(주요 포트 와인 사업자가 대부분 영국인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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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eatman
경이로운 포르투 ‘구도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와인 호텔’


●    WOW라는 복합 문화 단지의 시작점은 2010년 개장한 럭셔리 호텔 ‘더 이트먼(The Yeatman)’이다. 호텔에 머무는 고객들이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요리조리 담아놓은 공간이 WOW가 된 셈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거듭 강조한 WOW 단지에서 포르투 중심부를 한눈에 담는 ‘전망의 희열’은, 사실 이 호텔에서 그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담백하게 정돈된 싱그러운 정원을 낀 이 호텔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기에 전망의 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든 객실은 도루강과 그 너머 포르투 중심부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고(동 루이스 1세 다리가 보이는 테라스가 있다), 욕실에서도 방을 향해 나 있는 욕조 곁의 작은 창문을 열어놓으면 굳이 그 전망을 잃지 않아도 된다. 사실 원래의 청사진은 현재와 달랐다고 한다. 그런데 시 정부의 일부 토지 수용 결정으로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없었고, 주교 관할권에 속한 숲이 낀 7,000m²(약 2천1백17평)의 땅을 매입할 수 있게 되면서 녹음 짙은 정원과 도루강 전망을 겸비한 지금의 더 높은 지대를 점할 수 있게 됐다고.


●●   장소성의 특색을 살린 ‘와인 호텔’로 포지셔닝한 더 이트먼 호텔에는 와인 문화를 소재로 한 조형물과 사진, 오브제, 회화 등이 곳곳에 있다. 호텔 야외 수영장(인피니티 풀) 디자인도 디캔터 모양을 입혔다. 객실 문 앞에는 호텔과 협업하는 지역 와인 생산업자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마침 필자가 방문했던 12월 초에는 실제로 이 와인업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베스트 와인’을 푸드 페어링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연례 행사인 ‘크리스마스 와인 익스피리언스(Christmas Wine Experience)’가 열리기도 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여는 ‘와인 디너’를 비롯한 다양한 와인 행사를 개최한다. 객실에 놓인 포도씨 성분이 함유된 비누부터 역시 ‘뷰 맛집’인 스파에도 와인 성분의 제품을 활용하는 섬세한 비노테라피를 제공하는 등 와인의 미학을 제대로 살린다. 그렇다고 럭셔리의 정의가 와인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의 정감 가는 객실은 물론 대다수 호텔 내부 공간이 널찍하고 편안하다. 겨울이면 열선이 깔린 욕실 바닥 덕분에 맨발을 더 선호하게 해주는 섬세한 배려는 그야말로 ‘디자인 싱킹’의 소산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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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풍경을 바꾸다
‘육해공’과 디저트를 아우르는 먹거리 플랫폼


●    식재료가 풍부한 포르투갈의 미식 풍경은 이미 꽤 이름나 있지만 포르투는 포트 와인의 원조인 항구도시인 만큼 더 다채롭고 풍요로운 식문화를 자랑한다. 일단 호텔 조식 뷔페에서 맞춤형으로 해주는 다양한 달걀 요리와 포르투갈 디저트의 상징과도 같은 에그 타르트만 해도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WOW 단지는 마치 이곳에 들어서면 모든 종류의 갈증과 허기를 해소해주겠다고 이야기하듯 다양한 요리와 주류를 선사한다. 포르투갈 전통 요리, 24시간 운영하는 간이식당, 자체 공장에서 제조하는 ‘빈테 빈테’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카페, 비건 전문 레스토랑, 파인 다이닝까지 범위가 아주 넓은 편이다(두 자리 숫자의 식음료 공간이 한 단지에 있는,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문 플랫폼이다). 예컨대 포르투갈 내전이 시작된 연도에서 이름을 따온 1828은 조스퍼 그릴로 구운 ‘세계 최고의 고기’ 엘 카프리초(El Capricho)로 유명한데, 영 빈티지 포트 와인과도 찰떡궁합인 여러 메뉴를 섭렵하다 보면 배가 터질 듯해진다. 또 감칠맛이 인상적인 세비체는 물론 다양한 포르투갈 전통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더 골든 캐치(The Golden Catch)는 도루강 전망을 바라보며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야외 테라스도 갖추었다. 식전이든 식후든 편안하면서도 우아하게 목을 축이고 싶다면 전 세계에서 공수한 최상급 와인을 보유한 낭만적인 와인 바인 에인절스 셰어 와인 바(Angel’s Share Wine Bar)가 있다.


●●   사실 길게 머무르는 게 아니라면 WOW 단지와 더 이트먼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 바를 다 섭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더 이트먼 호텔에 묵거나 WOW에 들른다면 미슐랭 2스타 셰프인 히카르두 코스타(Ricardo Costa)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미리 미라(Mira Mira)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앳킨슨 뮤지엄 꼭대기에 있는 이 레스토랑은 세련미를 품은 공간이나 테이블웨어도 멋지지만 포르투갈 전통 미식 문화를 반영하되 이국적인 요소의 절묘한 조화를 꾀하는 내공 덕분에, 어쩌면 생전 처음 접하는 맛의 신세계를 보여주는 요리를 만날 수도 있는 곳이다. 꼭 파인 다이닝이 아니더라도 포르투의 식문화가 사랑스러운 점은 진심이 담긴 서빙의 미학에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어째서 특정 종류의 포트 와인이 고기 요리와도 궁합이 맞는지를 소설의 한 장면처럼 상상력 절로 돋게 설명하는 미소 띤 얼굴에는 그저 미소로 화답하게 된다. “그들은 진정성이 있어요. 가식이 아니라 진짜배기 스윗함이죠.” 바로 이런 진정성 덕분에 이 도시에 라이프스타일 사업이 안성맞춤이라는 에이드리언 브리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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