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SPECIAL] stay with local_안테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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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6, 2021

글 김민서 | Edited by 고성연 |

호텔의 형태는 다양하고, 우리는 각자의 필요 조건에 따라 선택한다. ‘호캉스’를 목적으로 건물 안 부대시설에서 휴식과 유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고급 호텔이 있는가 하면, 여행지의 호기심을 채우고 돌아온 후 편안한 하룻밤의 숙소 역할만 하는 관광호텔과 비즈니스호텔도 있다.
가로수길 근처에 문을 연 안테룸 서울은 형태로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 그런데 관광객과 비즈니스 트립이 부쩍 줄어든 지금 같은 시기에도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하니, 안테룸 서울에는 관광호텔 이상의 무엇이 있으리라 유추해봤다. 그리고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안고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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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룸(Anteroom) 서울은 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도산공원 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위치한, 이른바 도심형 관광호텔이다. 서울에 여행 온 다국적 관광객이 꼭 들르는 동네의 중심에 터를 잡은 걸 보면 기획 단계에서 염두에 둔 호텔의 주 고객층이 명확했을 터. 하지만 예상치 못한 팬데믹이 들이닥치며 도시의 풍경이 달라졌고, 그 여파는 호텔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도무지 이 상황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내국인, 그리고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호텔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안테룸 서울은 그런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제격이다. 지난 10월 ‘그랜드 오픈’을 단행한 뒤, 별다른 프로모션이나 홍보 없이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났다. 10만원 이하의 부담 없는 가격과 군더더기 없이 편안하고 실용적인 객실 디자인, 여기에 편의 시설을 잘 갖춘 주변 동네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지역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든다
안테룸은 국내에서는 2019년 도쿄의 무지 호텔 긴자로 더 유명해진 UDS(Urban Design System)가 기획해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자체 브랜드 호텔이다. UDS는 2018년 <기획은 패턴이다>란 책을 출간한 가지와라 후미오가 만든 회사로, 오피스, 호텔, 상업 시설 등 지역사회 개발을 중심으로 한 건축과 부동산 사업을 다양하게 전개한다. 2018년 설립한 UDS의 한국 법인 UDS코리아의 첫 프로젝트가 안테룸 서울이고, 이로써 안테룸 서울은 교토와 오키나와에 이어 오픈한 세 번째 지점이자 첫 해외 진출 지점이 됐다. 2011년 교토에 있는 23년 된 학교 기숙사를 새 단장해 문을 연 안테룸 교토는 로컬 예술과 문화를 공간에 적극 차용해 지역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낙후된 지역을 살리고 지역과 상생하는 커뮤니티의 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UDS의 기업 철학이 잘 반영된 사례다. 한때 ‘서울의 소호’로 불렸으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과거의 명성을 잃은 가로수길을 서울 진출 첫 거점으로 선택한 것도 그런 철학에 따른 결정이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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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을 담는 호텔
이곳에서 체크인을 하려면 리셉션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셉션으로 이어진 호텔 입구가 건물 옆 좁은 언덕길 아래에 있다. 요즘 디자인 호텔은 로비를 1층이 아닌 외부인 유입이 적은 고층에 두는 추세인데, 안테룸 서울은 로비를 아예 없애고 대신 ‘리셉션+갤러리’ 역할을 하는 작은 공간을 지하 1층 입구에 뒀다. 투숙객 중심으로 설계해온 기성 호텔의 관행을 조금 벗어난 선택이다. 지하 1층에는 ‘로컬 예술과 문화’라는 콘셉트가 무색하게도 일본 작가 위주의 구성이라 조금 아쉽지만, 기토 겐고(Kengo Kito), 미카 시나가와(Shinagawa Mika), 다이스케 오바(Ohba Daisuke)의 강렬한 작품들이 문화와 예술을 담는다는 안테룸만의 이미지를 인상적으로 만들어냈다. 리셉션에서 한 층 더 아래에 있는 갤러리 9.5에서도 아시아 작가 중심의 기획전을 꾸린다. 방문 당시에는 배성용 작가의 <Transducer>가 열리고 있었다. 갤러리 9.5라는 이름은 안테룸 교토에 있는 갤러리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갤러리 9.5는 구조(九条) 역과 주조(十条) 역 사이에 위치한다는 이유에서 지은 이름). 호텔의 전반적인 아트 큐레이션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스타 작가 고헤이 나와가 아트 디렉터로 있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샌드위치(Sandwich)가 맡았다. 앞으로는 국내 예술 기획사와도 손잡고 보다 다채로운 전시 스펙트럼을 추구할 예정이라고. 공간 미학의 백미는 꼭대기인 19층에 자리한 아트북 카페&바인 텔러스 9.5. 이곳의 테라스는 강남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전망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이미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주춤하지만 여기에서도 갤러리 9.5 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종종 진행할 계획인데, 서점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은 서촌의 복합 문화 공간 더레퍼런스와 함께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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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빚은 공간
‘호텔의 얼굴’인 입구에서도 알 수 있지만, 실내 디자인도 요란하지 않다. 객실은 2~18층에 걸쳐 총 1백12개가 있는데, 크게 14~16m² 규모의 ‘베이직’과 이보다 조금 넓고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틀리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아틀리에 룸은 18층에 단 2개). 베이직은 다시 ‘스튜디오’와 ‘로프트’로 나뉘는데, 이름처럼 화려한 콘셉트 대신 효율성을 높여 간결하고 아늑하게 꾸몄다. 전체적인 느낌은 밝은 톤의 목재를 사용한 무지 호텔 긴자와 비슷하다. 내부 구성에서 눈에 띄는 건 국내 소규모 브랜드들과 협업해 선보인 어메니티다. 북촌에 위치한 향 브랜드 그랑핸드의 퍼퓸 스프레이, 밀크티로 유명한 연남동 오렌지리프의 티백 등 소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구성이다. 발달장애인들과 천연 비누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인 동구밭의 샴푸 & 보디 고체 비누는 2020년부터 50실 이상 호텔의 플라스틱 용기 어메니티 사용을 금지시킨 환경부의 조치에 잘 대처한 센스가 돋보이는 품목이다. 무거운 샤워 가운이 아닌 파자마를 구비해둔 점도 눈길이 간다. ‘집처럼 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요소가 이런 게 아닐까. 1층에 자리한 미슐랭 2스타 셰프인 임정식 셰프의 베트남 레스토랑 아이포유에서 준비해주는 푸짐한 조식은 숙박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가로수길 인근에도 유명한 브런치 레스토랑들이 있지만, 안테룸 서울에서의 하룻밤을 결심했다면 서슴지 않고 ‘조식 포함’을 추천하겠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어도 여전히 여러 형태의 숙박 시설이 생겨나기에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그런 이유로 이제 호텔들도 번지르르한 하드웨어보다 홍대 라이즈 호텔이나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처럼 내실 있는 소프트웨어에 힘을 실어야 살아남는다. 그런 면에서 안테룸 호텔의 서울 진출이 사뭇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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