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의 미학, 스마트는 감추고 감성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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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2, 2015

에디터 고성연 | 일러스트 남대현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가 부상할 것 같다는 전망은 적어도 일상에서는 이제야 비로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동안 여러 브랜드에서 스마트 안경, 스마트 워치니 하는 제법 준수한 기기들을 쏟아냈지만 제대로 물꼬를 튼 건 아무래도 올 상반기 드디어 선보인 애플 워치다. 핏비트 같은 웨어러블 밴드도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이제 출발선을 떠난 웨어러블 산업의 여정은 아직 창창하고, 격변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날카로운 ‘스마트함’은 은근하게 감추고 유치하리만큼 즐겁고 편안한 감성을 내세우는 전략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손목시계가 주로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에 충실한 기기 역할을 하거나 ‘예물’ 수준의 고가 장신구로 대접받던 일종의 ‘양극화 시절’이 있었다. 하이엔드 워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메이드 인 스위스’ 시계의 중저가 시장점유율은 1980년대 초만 해도  ‘0’에 가까운 한 자릿수였을 정도로 극히 미미했다. 잘 알려져 있듯 일본 쿼츠 시계의 부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스위스 시계 산업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은 주인공은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 스와치(Swatch)였다. 1983년, 경영 컨설턴트 출신으로 훗날 스와치 그룹의 수장이 된 니콜라스 하이예크는 플라스틱 재질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혀 중저가 쿼츠 시장을 공략하고 나섰다. 그가 선보인 신제품 라인업은 일본 시계업체가 점령하고 있던 쿼츠 시장의 제품과는 엄연히 달랐다. 그저 손목에 차는 기기가 아니라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시계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혁신은 ‘최초가 될 수 없다면, 최초가 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라’는 그 유명한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승부수이기도 하다. <디퍼런트>의 저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문영미 교수는 스와치처럼 차별화를 이룬 브랜드를 가리켜 기존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가장자리에 가까이 위치한 채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일탈(breakaway) 브랜드’라 칭했다. 문 교수의 설명처럼 하이예크는 메이드 인 스위스를 저가형 쿼츠 시계에 속하면서도 ‘패션 아이템’의 경계에 걸친 새로운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일탈의 모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구체적으로는 디자인에 팝아트 같은 예술적 감성을 접목하는가 하면, 패션 브랜드들처럼 시즌별로 새 컬렉션을 선보였고, 부티크나 스와치 전문 매장에서 판매했다.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애플 워치는 여러모로 30여 년 전의 시계 패권 다툼을 떠올리게 한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스마트 워치)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면서도 ‘트렌디한’ 패션 액세서리로의 면모를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애플 워치의 등장으로 웨어러블 기기의 시장 외연이 확대될지, 전통 시계 시장의 파이를 갉아먹을지, 키울지 혹은 ‘스마트 패션 액세서리’라는 신흥 카테고리가 성장할지 등의 이슈를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자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애플 워치는 스마트 시장의 스와치가 될 수 있을까?

특유의 세련됨이 묻어나는 데다 시곗줄을 바꿔 끼울 수 있는 다채로운 디자인에 수십만원대부터 1천만원대가 넘는 다양한 가격대의 라인업을 갖춘 애플 워치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어차피 ‘스위스 명품’으로 여겨지는 아름다운 기계식 워치는 애초에 경쟁 카테고리가 아니었다지만, 중저가 시장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미국 전통 시계 시장의 경우, 올봄 애플 워치가 나온 이래 판매량이 줄어들었고, 스위스 손목 시계의 해외 시장 수출량이 떨어졌다는 통계도 나왔다. 하지만 충격은 일시적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일례로 중저가 라인부터 초고가 하이엔드 라인까지 빠짐없이 보유한 세계 최대 시계 수출업체 스와치 그룹은 전체적으로는 건재한 실적을 기록했다(2015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어차피 패션 액세서리로든 웨어러블 디바이스로든 시계에 대한 관심 자체가 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버드대 라이언 라파엘리 교수는 애플 워치 덕분에 젊은 층이 시계 차는 습관을 갖게 되고,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스위스 명품 시계로 갈아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애플 워치는 지금껏 세상에 나온 그 어떤 스마트 워치보다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아직 1세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성공은 꽤 고무적이다. 특히 ‘똑똑하기까지 한 패션 시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줘 트렌드세터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많은 스마트 워치들이 다소 투박하거나 ‘나 첨단 기기야’라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면 애플 워치는 ‘잘빠진’ 시계 같다. 이처럼 패셔너블한 면모에 대한 호응을 계기로 하이테크 기업이든 전통 시계업체든 ‘스마트’ 요소를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첨단 디바이스처럼 보이지 않는 카멜레온의 미덕을 갖춘 시계를 보다 신중하게, 그러면서도 야심 차게 내놓을 태세를 취하는 듯하다. 애플이 스마트 워치의 경계를 패션으로 확장했듯 상당수 패션 시계 브랜드는 일부 스마트 기능을 시계의 미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품군에 포함시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근거리 무선통신(NFC) 기능을 탑재해 간편 결제를 할 수 있으면서 매일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스와치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 삼성전자는 사각 디자인 대신 패션 시계 느낌이 강한 원형 디자인에 베젤(테두리)을 돌려 기능을 실행하는 ‘기어S2’를 선보일 예정이다. 패션과 IT가 서로에게 다가가면서 손목 위를 둘러싼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핏비트(Fitbit)를 필두로 한 웨어러블 밴드, 손목 위를 점령한 또 하나의 매력

경영계의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포터는 자동화, 인터넷에 이어 IT가 주도하는 세 번째 혁명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강력한 소프트웨어와 칩, 무선 네트워크 덕분에 IT가 제품 자체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스마트, 커넥티드 기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스마트 세상’을 외쳐대기는 했지만 ‘이제야‘ 기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스마트 기기를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웨어러블 제품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사물인터넷 시대에서 휴대폰을 제외하면 우리네 삶에 가장 밀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상의 물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손목시계가 다가 아니다. 걸음 수, 칼로리 소모량, 수면 모니터링 등 피트니스 기능을 간편하게 누릴 수 있는 스마트 밴드도 나름의 전문 영역을 다져나가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도 착용한다고 알려진 웨어러블 밴드의 선두 주자 핏비트(Fitbit)는 지난 6월 기업 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단행했다. 웨어러블업계 최초의 뉴욕 증시 상장이었다. 또 핏비트는 웬만한 피트니스 기능까지 갖춰 은근한 경쟁자로 여겨졌던 애플 워치의 위세 속에서도 지난 2분기 4백50만 대를 판매하는 실적을 거뒀다. 여기에 중국의 샤오미도 추격자로 나서고 있다. 샤오미는 휴대폰에 이어 스마트 밴드 영역에서도 저가의 이점을 내세워 무섭게 기치를 올리고 있다. 점점 많은 이들의 손목 위를 차지하고 있는 웨어러블 밴드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아무래도 시계보다는 훨씬 가벼운 데다 충전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최신 제품인 ‘핏비트 차지 HR’ 같은 경우 충전식 배터리가 5일 정도 지속된다). 스마트 워치가 소형 컴퓨터 같은 출중한 기능을 뽐내는 것처럼 스마트 밴드도 나름의 전문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걷기 같은 간단한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24시간 지속적으로 심박 수를 체크해주며, ‘운동 중’과 ‘안정된 상태’에서의 심박 수를 따로 확인해줘 운동 효과를 높여준다. 운동 시 심박 수의 경우, 세 가지(지방 연소, 심장 강화, 최대 심박) 구간으로 나눠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강도를 조절하고 보다 정확한 소모 칼로리를 산출하게 해준다. 또 잠잘 때 뒤척인 횟수, 깨어난 횟수 등을 자동으로 체크해 수면 패턴을 파악하도록 해주는 기능도 있다. 심지어 진동 알람과 디스플레이를 통해 수신된 전화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유치해도 좋아! – fun, healing, empathy

하지만 아무리 기능이 출중해졌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끄는 제품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법이다. 사실 스마트 워치나 스마트 밴드는 휴대폰처럼 필수 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니까 말이다. 여기에서 혁신의 성공이란 결국 사용자 경험에 달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비로소 현실의 수면 위로 끄집어낸 애플 워치나 핏비트 같은 제품이 누리는 인기의 속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몇 공통점이 있다. 일단 브랜드 포지셔닝이 확실하다. 애플 워치는 시계인 동시에 아이폰의 ‘리모컨’ 같은 역할을 하는 패션 액세서리라는 카테고리를 분명하게 드러냈고(대부분의 스마트 기능은 아이폰과 연결해야만 활용 가능하다), 핏비트도 복잡다단한 기능을 채워 넣기보다는 웰니스의 일상적인 도우미로서 이미지를 공고히 하면서 웨어러블 밴드의 장점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애플은 자사의 걸출한 디자인 사령탑 조너선 아이브로도 모자라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까지 동원해 애플 워치 디자인을 맡겼다. 예쁜 데다 스마트 워치 치고는 무게도 가볍다(알루미늄 소재인 스포츠 워치를 기준으로 25g). 핏비트 역시 가볍고 실용적이며 단순미가 묻어나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일리시한 팔찌 느낌은 아니지만 은근히 세련되면서도 거추장스럽지 않는 ‘쿨한’ 액세서리로 보인다. 애플 워치나 핏비트나 ‘스마트+패셔너블’의 시너지를 잘 파악해 착용 시 편안하면서도 남들이 트렌디하다고 느끼는 앞서가는 감각까지 잡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마트함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 특유의 인공적인 느낌은 감추고 인간적인 감성을 자아내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실제로 재미(fun), 치유(healing), 공감(empathy) 같은 감성 요소가 강한 매력 인자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애플 워치는 일상의 활동량을 여러모로 설정해놓으면 목표량을 달성했을 때 ‘잘했다’는 칭찬을 메시지로는 물론, 아이폰상의 꽤나 근사한 스티커 북으로 받을 수 있는데,  이러한 설정이 은근히 ‘다 채우고 말겠다’는 심리를 부추긴다. 애플 워치 사용자들끼리 심장박동과 손 글씨를 보낼 수 있도록 한 점도 스마트를 깔고 있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다.  ‘유치한 듯’ 하지만 재미도 있고, 은연중에 힐링 효과도 내는 데다 서로 웃음을 주고받으며 공감 어린 소통을 이끈다. 핏비트의 경우, 게임을 활용해 운동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핏비트로 실시간 측정한 걸음 수, 오른 층 수, 칼로리 소모량 등  활동량 정보를 친구들과 공유하고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챌린지’ 기능인데, 꽤 인기가 높다. 친구나 직장의 다른 팀 동료들과 챌린지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챌린지 기능이 작동되는 동안 SNS처럼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고 ‘약 올리기’나 ‘응원하기’ 같은 시시콜콜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아직은 갈 길이 창창한 스마트 라이프 여정

미래학자 피터 한센은 인류의 디지털 여정이 이제 절반을 지났을 뿐이라는 의미로 “디지털 시대의 유리잔은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네 일상을 수놓을 웨어러블 제품의 경우에는 이제 출발점을 막 떠난 수준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스마트 양복이나 안경 같은 품목을 비롯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 얼마든지 일상에 스며들지 모른다. ‘손목’이 웨어러블 시장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는 현시점이지만 앞으로 어떤 품목이 뜨고 질지, 어떤 브랜드가 승자가 될지 누구도 쉽게 예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그리고 아마도 변하지 않을 사실은 디지털 기기든 아날로그 기기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따뜻한 감성을 갈구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미 30여 년 전 시계 산업의 혁신을 이룬 하이예크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우리는 그저 소비재, 혹은 브랜드 제품을 팔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감성적인 제품(emotional product)을 팔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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