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Korean Ch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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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4, 2012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의 저자)

의자는 디자인의 기본이며 공간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가장 매력적인 오브제로 손꼽힌다. 그러기에 해외 거장 디자이너의 의자를 수집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구 디자이너들의 의자 역시 매력적이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아쉽다. 지면으로나마 만나보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감각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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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촌목공소 이정섭 목수의 의자와 테이블 세트. 건축까지 하는 작가이기에 의자에 대한 내공이 더욱 깊다는 평이다.

2 두바이 아트 페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에게 판매된, 미술가이자 디자이너 이재효 작가의 의자.

3 대리석과 천연석으로 만든 최병훈 작가의 의자, ‘애프터 이미지(after image) 09-330’.

4 별 모양을 형상화한 이삼웅 작가의 ‘스타 체어’.

5 김정희 작가의 ‘픽셀 체어’는 단풍나무, 호두나무 등 컬러가 다른 나무들이 픽셀을 이루어 완성된 작품이다.

6 의자와 테이블로 이루어진 김하얀 작가의 ‘필 더 퍼스펙티즈’는 1점 투시 원근법을 3차원의 가구로 형상화한 것이라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7 이광호 작가의 ‘옵세션’ 시리즈. 정원용 호스로 뜨개질을 하듯이 만든 의자로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졌다.

8 아트 퍼니처 그룹 ‘바오’ 박준범 작가의 ‘자작나무 숲 의자’.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

9 무게 1.28kg의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의자. 2012 런던 디자인 뮤지엄 가구 부문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김기현 작가의 작품이다.

10 투명 아크릴 속에 빛을 담은 김보연 작가의 의자, ‘레이저’.

11 실제 나뭇가지를 디자인 요소로 삼은 김자형 작가의 의자, ‘브랜치’.

12 의자에 앉는 사람에 따라 의자가 늘어나는 방은숙 작가의 ‘초콜릿 체어’.

13, 14 강화섬유 유리로 만든 신지훈 작가의 ‘투스 체어’와 순록을 닮은 ‘레인디어 체어’.

15 아트 퍼니처 그룹 ‘바오’의 리더 위형우 작가의 의자, ‘플랩’.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다

의자는 왜 매력적인가? 세계의 가구 컬렉터는 의자를 수집하는 것으로 컬렉션을 완성하고, 가구 디자이너는 완벽한 의자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단어, 의자. 얼마 전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의 디자인 학자, 오다 노리쓰구(Oda Noritsugu)는 의자는 ‘몸을 지탱해주는 도구’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의자는 인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구이자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의자는 가구 중에서 디자인하기 가장 어렵다. 튼튼해야 하고 안락해야 하며, 아름다움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량생산할 수 있는 경제성마저 갖추어야 하니, 이렇게 까다로운 것이 의자 디자인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다 노리쓰구는 아름다운 의자는 그 자체만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완결시킬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정준모 총감독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의자를 통해 얻은 평등의 개념이 남다른 의자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이어지면서 특정한 모양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일상적이면서 심미적 요소가 가미된 의자는 아마도 수공예 운동을 시작한 윌리엄 모리스가 1870년대 자신의 별장을 위해 만든 의자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아르누보 운동의 핵심이었던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들은 단순한 상징으로서의 의자뿐 아니라 일상의 가구와 같이 폭넓게 의자를 다루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아티스트들이 다양하고 독창적인 의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핀 율, 한스 베그너, 아르네 야콥센,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구스타브 스티클리, 찰스 & 레이 임스, 프랑스의 장 푸르베, 필립 스탁 등 각국에서 스타 디자이너들이 탄생했고, 모두가 그들이 디자인한 의자를 갖고 싶어 했다. 스타 디자이너의 의자를 갖는다는 것은 사회적 포지션의 상징적 방점이자 예술적 심미안의 척도가 되었다. 그 때문에 마치 미술 작품처럼 디자이너의 의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왜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가구 디자이너가 없는지 한탄하는 이들이 생겼다. 감히 그들에게 말하노라. 우리나라에도 스타 디자이너가 있고 이미 세계 컬렉터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아트 퍼니처의 거장, 최병훈 작가의 잔상 시리즈

우리나라 의자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작가로 지목할 수 있는 이는 바로 최병훈이다. 그의 의자 2점이 스위스 비트라 디자인미술관의 컬렉션으로 선정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다. 비트라 디자인미술관은 20세기 산업디자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이곳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는 아직까지 최병훈 교수(홍익대학교) 단 한 명뿐이다. ‘afterimage 태초의 잔상 05-222’와 ‘afterimage 07-244’가 소장되어 있다. 자연에서 뛰놀던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의 산수를 빼닮았으며 흠잡을 데 없이 수려하다. 디자인에도 일필휘지(一筆揮之)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가구 디자이너이면서 이렇게 예술적인 의자를 만들 수 있는 작가는 우리나라에 몇 명뿐이며, 바로 그 선두에 최병훈 교수가 서 있다. 그는 실용적 존재 이상의 예술적 가구를 지칭하는 우리나라 아트 퍼니처의 표본이기도 하다.


최병훈 교수는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2012에 매끈한 나무에 작은 돌로 버팀대를 세운 ‘afterimage 08-304’ 등을 출품했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며,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제 디자인 페어로 1년에 두 번 마이애미와 바젤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전 세계의 컬렉터뿐 아니라 재벌과 스타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참석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최병훈 작가의 작품과 함께 중견 도예가 이헌정과 신예 디자이너 배세화의 작품도 출품되었다. 배세화 작가는 호두나무를 얇게 켜서 의자로 만드는 특유의 시그너처 작품으로 유명하다. 여체와 같은 부드러운 곡선이 한국적이면서도 모던해 국내외에서 인기가 높다. 도예가 이헌정은 몇 해 전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구입하면서 세라믹 콘크리트 테이블 겸 벤치로 더욱 유명해졌다. 도자기와 콘크리트로 구성된 벤치는 동양적 비움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호평을 받았다(지금 그 의자는 브래드 피트의 집 어디에 놓여 있을까?). 도자기 그릇, 조형물뿐 아니라 가구에서도 놀라운 디자인 감각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올해도 콘크리트와 도자, 철근을 결합한 테이블과 의자 등을 출품했다.

두바이 아트 페어의 전설

바로 얼마 전 열린 두바이 아트 페어에서는 미술가 이재효의 의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에게 고가에 판매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여러 개의 나무를 둥글게 붙여서 아름다운 의자로 탄생시킨 그의 감수성에 찬사를 보낸다. 올해 성곡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이재효 작가는 사실 가구 디자이너라기보다는 미술가이다. 그러니 그의 작품은 미술 작품인 동시에 앉을 수도 있는 진정한 아트 퍼니처인 셈이다. W 호텔 로비에 있는 두충나무로 만든 작품이 바로 이재효 작가의 작품이다. 개울가의 돌, 벌목장의 나무토막, 떡갈나무 낙엽 등 자연 그 자체를 작품 소재로 삼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두바이 아트 페어에서 이정섭 목수의 작품 역시 호평을 받았다. 크로프트의 구병준 실장은 이정섭 목수의 가구가 조선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더욱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또 이정섭은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집도 만들고 가구를 만드는 등 시야가 넓은 작가이기에 의자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법이 남다르다고 평했다. 이정섭 목수는 주문을 받고서야 수종과 규격을 결정하고 만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가구를 받기까지 기본적으로 두 달의 시간이 소요된다. 두 작가의 작품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자연 친화적이기에 두바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예술적 오브제를 추구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의자도 눈에 띈다. 미술가 이삼웅의 스타 체어는 별 모양 부분을 서로 엮어서 고정하는 방법으로 그 형태를 유지한다. 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만물의 관계 속에서 연관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감이 부각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사람의 머리, 의자 좌판의 네 귀퉁이, 이렇게 5개의 꼭짓점이 하나의 별 모양으로 형상화된다. 4명의 디자이너로 이루어진 아트 퍼니처 그룹 바오도 주목할 만하다. 연회장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커스튬(Costume)’ 시리즈를 발표한 박종호 디자이너와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 숲을 보고 떠올린 ‘자작나무 포레스트 암 체어(Birch Forest ACS)’의 박준범 작가는 스틸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곤충과 같이 유기적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플랩(Flap)’ 시리즈로 유명한 위형우 작가의 의자도 흥미롭다.

여성 디자이너의 활약

여성 가구 디자이너들의 의자는 섬세하고 도전적이다. 디자이너 방은숙의 초콜릿 체어에 앉아본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안락함에 놀라게 된다. 의자의 기본 프레임은 각제를 이용해 제작하되 홈을 일정하게 긋고, 의자에 앉았을 때 쿠션감을 느끼는 부분은 모두 각제의 홈과 같은 규격의 조각으로 만들고 각 조각을 고무줄로 가로세로 방향으로 엮어서 고정해, 의자를 보았을 때는 플랫한 나무 의자처럼 보이지만, 의자에 앉으면 각자의 자세와 체형에 맞추어 조각들이 늘어나며 몸을 감싸주게 되는 형식. 김정희 작가의 ‘픽셀 체어(Pixel Chair)’는 삶의 일부분이 모여 인생을 만들 듯 여러 개의 픽셀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이 작업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메이플, 오크, 호두 등 색이 다른 나무를 소재로 제작했다. ‘필 더 퍼스펙티브 1(Feel the Persfective1)’의 김하얀 작가는 가구와 공간을 동시에 디자인했다. 1점 투시 원근법을 3차원의 가구에 표현해 이색적인 공간감을 제시한다. 미술가 김보연의 투명한 의자 ‘더 레이저(The Laser)’와 자작나무 합판으로 의자를 왜곡시킨 ‘프레스 체어(Press Chair)’는 젊은 작가의 예술적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

무서운 신예, 김기현과 이광호의 의자

재기 발랄한 젊은 디자이너 김기현과 이광호는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아 한국에 알려진 경우이다. 이광호 작가의 옵세션 시리즈는 2009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서 선보인 패션 브랜드 펜디(Fendi)와의 협업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청계천을 걷다가 펜디를 상징하는 옐로 컬러 고무 호스를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창작되었다. 정원용 호스로 뜨개질을 하듯이 만든 의자는 다채로운 컬러와 사랑스러운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마니아를 만들었다. 누가 알았으랴, 정원용 호스가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김기현 디자이너는 1.3 체어로 디자인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2012 런던 디자인 뮤지엄 가구 부문 올해의 디자이너상’과 100% 디자인의 ‘블루 프린트 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영광을 안겨준 ‘1.3 체어’는 무게가 1.28kg이라는 것에서 이름 붙여진 작품이다. 1.3 체어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의자로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폰티가 만든 1.7kg의 슈퍼레게라보다 가벼워서 한 손으로도 의자를 번쩍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사용한 폭격기 DH.98 모스키토를 보고 영감을 받아 발사나무 합판으로 만든 이 의자는 대량생산에 들어갈 준비에 돌입했다. 이 가볍고 아름다운 의자를 해외에서 기념품으로 사서 입국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주목할 만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의자는 주로 원목을 사용하며 실용적인 면모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 특징이다. 김자형 작가의 ‘브랜치(Branch)’ 시리즈는 의자에 나뭇가지를 그대로 접목한 디자인이 재미있으며, 금람해 작가의 ‘협곡 의자(Gorge Chair)’와 ‘기와 의자(TKF Chair)’는 집성목을 사용해 의자 이름 그대로 협곡과 기와를 묘사했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최중호 작가는 가방을 멜 때처럼 편안한 ‘바사크(Bachag)’와 인체 공학을 반영한 ‘미려(Mi Ryeo)’를 선보였다. 다이얼로그메스드의 헤드 디자이너 조형석 작가는 호두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만든 ‘모더네티크 체어&테이블(Modernatique Chair&Table)’로 알려졌다.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물푸레나무로 만든 정재범 작가의 ‘R60’과 ‘모노 체어(Mono Chair)’, 신지훈 작가의 벤딩한 자작나무 의자인 ‘W1 라운지 체어와 투스 체어(Tooth Chair)’도 눈을 즐겁게 한다. “의자를 성공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스 반데어로에가 말했듯 의자는 작은 건축물과 같이 집합된 존재이다. 미래에는 의자 디자인의 전설로 칭송받게 될 우리나라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을 미리 눈여겨보시라. 나중에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구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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