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와인’, 커피에 취하다 우리 커피나 한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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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1, 2012

글 김계옥(커피 전문가)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최초로 발견된 지 약 1천 년, 네덜란드인이 일본에 커피를 전한 지 약 1백80년이 지난 지금, ‘아라비아의 와인’이라 불렸던 커피에 우리나라는 온통 취해 있다. 영원한 ‘작업’ 멘트이기도 한 “커피 한잔할까?”라는 말은 연인과의 만남, 사업적 만남, 공식적 회의 등 만남과 소통을 가리키는 은어가 되어버렸다. 전문적인 커피 판매점이 등장하면서 모던 보이, 모던 걸의 만남의 장소였던 커피숍도, 고상한 척 꾹 참아가며 블랙커피를 마시던 기억도,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아메리카노에서 드립 커피까지 커피에 대해 궁금한 모든 것.


악마처럼 검고, 키스처럼 달콤한

일상을 영위하는 데 빼놓아서는 안 될, 이 시대의 성수인 커피에 대한 사랑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베토벤은 커피를 끓일 때 항상 한 잔에 원두 60개를 세어 넣은 커피 애호가였고,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라는 아리아를 작곡한 바흐의 음악 속 가사는 ‘수천 번의 입맞춤보다도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보다 더 순하다’라고 커피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수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고 예찬했다. 이는 최근의 커피 광고에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구절이다. 홍차를 좋아하는 나라에서 커피를 좋아하는 나라로 바뀐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커피 소비국이다. 이교도의 음료라 해서 커피 금지령까지 내렸던 이탈리아는 이제 에스프레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반 커피 한 잔이 농민의 피땀으로 지은 쌀 한 되 값과 맞먹는다는 이유로 외화를 축내는 공적으로 몰렸고, 박정희 군사정권은 다방에서 커피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인 한 사람당 연간 3백12잔(2010년 기준)의 커피를 마신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커피 소비에 열정적인 나라가 되었다.
‘커피(coffee)’라는 명칭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커피 농장에서는 커피나무, 커피 전문가들에게는 자루에 담긴 생두, 소비자들은 가공해 포장하거나 컵에 담은 음료를 의미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지닌 커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잔의 컵에 담기기까지 이어지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이며 때로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생산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국가는 커피 벨트(coffee belt, 적도를 중심으로 남위 25도, 북위 25도 이내)에 위치하는데, 기후가 온난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45개국 정도가 이에 해당된다.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물인 만큼 각 대륙별, 국가별, 지역별로 독특한 맛과 향을 갖춘 다양한 커피가 재배되고 있다. 커피 체리(커피나무에서 꽃이 떨어지고 난 후 볼 수 있는 열매. 체리 안에 생두 두 쪽이 마주 보고 있다)는 고온에서는 물러지며 저온이 지속되면 서리가 내려 냉해의 피해를 입기 때문에 연평균 기온 18~22℃가 이상적이고, 강우량은 연중 1200~2000mm가 적당하다. 이상적인 재배 고도는 1500~2000m인데, 밤낮의 기온 차가 커서 체리가 수축과 이완 작용을 해 향이 풍부하고 맛이 좋기 때문이다. 해발고도가 3000m가 넘더라도 음영수(커피 재배에 필요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식물)가 있어 코스타리카나 에콰도르에서는 맛 좋은 커피가 나고, 음영수가 없더라도 구름이 그늘을 만드는 자메이카, 하와이 등에서 커피가 생산되는 것을 보면 커피 재배는 실로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커피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수확하는데, 자연 건조 방식과 물에 뜬 열매를 골라 껍질을 벗기는 수세식 건조 방식으로 생두를 얻는다. 이러한 가공 과정에서 이물질이 혼합되거나 생두에 자체적인 결함이 있기도 하므로 우리네 쌀처럼 생두에도 등급을 매긴다. 다음 과정은 이렇게 걸러낸 생두를 볶는 과정으로, 이를 로스팅 또는 배전이라고 하며 최근엔 ‘볶음’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커피 로스팅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스턴트커피 소비가 많은 데다, 해외에서 로스팅한 커피를 수입해 먹었기 때문이다. 커피도 음식인 만큼 갓 볶은 커피일수록 신선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것을 우린 너무 늦게 알게 된 셈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전해진 일본식 핸드 드립에 우리나라의 커피 애호가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드립 커피를 취급하는 ‘커피집’은 물론 커피를 직접 볶는 집, 즉 로스터리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보다 맛 좋은 커피를 판매하고자 스페셜티 확보에 앞 다투어 뛰어들고, 산지별 생두 로스팅 프로파일을 데이터화하기 시작해 보다 안정적으로 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에스프레소냐? 느긋한 드립 커피냐?

‘밀크 마실까? 블랙 마실까?’ 자판기 앞에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되는 그냥 만만한 커피가, 지금은 식후에 겪는 즐거운 고민거리가 되어버렸다. 커피 좀 한다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삼박자 커피(커피 셋, 프림 셋, 설탕 셋)’란 말이 유행했는데, 1997년 7월 스타벅스 1호점이 등장한 이후에는 에스프레소 샷 추가, 그란데 사이즈 등의 말이 친숙한 커피 용어로 통하게 되었다. 또 가공 커피는 원두커피로, 프림은 우유로 바뀌었다.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커피 프렌차이즈에서 만드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등 수십 가지 커피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는 아주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로 공기를 압축해 짧은 순간에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에 카페인의 양이 적고, 순수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다. 에스프레소의 장점 중 하나는 메뉴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메뉴는 크게 에스프레소 메뉴와 에스프레소 이외의 우유, 크림을 첨가한 카푸치노, 카페라테 등의 베리에이션 메뉴로 나눌 수 있다.
커피를 종이에 걸러 마시는, 우리가 흔히 일본식으로 알고 있는 방법은 독일에서 개발되었지만 정작 독일은 손으로 내리는 것보다 커피 메이커 개발을 선택했다. 일본은 커피에 다도형식을 접목해 핸드 드립이라는 추출 방식을 발전시켰다. 고유의 다도 문화와 커피가 융합되면서 새로운 커피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전혀 새로운 버전의 커피 문화를 발전시켰을 만큼 일본인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영어 단어인 커피를 ‘고히’라 읽는 일본의 독특한 발음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통할 정도다. 국가에서 10월 1일을 ‘커피의 날’로 공식적으로 지정할 정도인데, 커피 수요가 점점 증가하기 시작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국민 음료로 정착한 커피의 매력을 재인식시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커피 라면을 파는 카페가 있을 정도니 실로 커피광의 나라라고 할 만하다. 핸드 드립, 혹은 페이퍼 드립이라 불리는 일본식 드립 커피 방식은 국내의 커피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일본식 핸드 드립의 장점은 다양한 산지별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을 가장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원두의 상태와 로스팅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원두 종류와 추출 방법이 같더라도 누가, 언제, 어떤 기분에서 내렸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 핸드 드립 커피다. 따라서 핸드 드립은 원두의 원산지와 로스팅의 특징에 따라 추출 방법을 달리해 원두의 장점을 살린 맛과 향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깔때기 모양의 칼리타 드리퍼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융 드립, 사이펀 드립 등 핸드 드립 추출법이 다양해, 카페별로 레시피와 방법이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커피를 차(茶)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간편한 믹스 커피나 테이크아웃 등의 ‘빠른’ 커피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볶은 커피콩을 갈아 종이에 내리는 ‘느린’ 커피인 핸드 드립 커피를 보면 엄연한 ‘차?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커피를 찾아가는 과정

처음 커피를 마시면 ‘쓰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렇게 쓴 커피를 왜 마실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커피에는 쓴맛 이외에도 다양한 맛과 향이 존재하는데, 단지 쓰게만 느끼는 것은 커피 맛에 대한 기억이 뇌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맛이 쓰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커피에 입문해 커피의 맛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개성이 약한 편안한 커피부터 시작해 차츰 강한 커피순으로 마셔보면서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커피를 발견할 수 있다. 개인에 입맛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커피는 모두 다를 수 있으므로, 전문가들이 정리해놓은 산지별 생두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알고 시도한다면 실패할 확률을 좀 더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커피에서 나는 신맛과 코스타리카 커피에서 나는 신맛은 미묘하게 다른데, 미리 자료를 보고 특성을 파악하고 차이점을 생각해가며 커피를 마시면 커피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커피의 신맛과 쓴맛도 잘 구별할 수 없다. 또 여러 잔을 마시다 보면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진다. 무언가 느껴지긴 하는데 말로 표현하려면 잘되지 않는다. 커피 맛을 알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주, 많이 마셔보는 후천적인 노력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산지가 같은 커피라도 생두의 상태, 로스팅 정도, 추출 방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이 가게의 케냐AA와 저 가게의 케냐AA 맛이 왜 이렇게 달라?”라고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커피는 알면 알수록 깊고 심오한 세계가 펼쳐지는 대상이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호 식품 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음료라고 일컫는 만큼 같은 커피라도 방법을 달리하면 맛이 달라지므로 정답이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 나에게 맞는 커피를 찾는 법이 궁금하다면 우선 커피와 친해져야 한다. 또 ‘커피를 좋아한다’ 라고 말할 정도라면 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커피를 마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자신에게 맞는 커피를 만나게 된다면 그 카페에서 마시는 그날 그 한 잔의 커피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주 매력적인 커피가 될 것이다.

 

생두의 등급을 나누는 방법
1 콩의 크기에 따른 등급(스크린 사이즈) :

크기에 따른 분류를 채택한 나라는 대부분 커피 품질을 엄격히 관리하고 상대적으로 결점두가 적은 우수한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다. 콜롬비아, 케냐, 탄자니아, 하와이가 이에 속한다.

2 결점두 수에 따른 등급 :

보통 300g을 샘플링하며 G1은 0~3개, G2는 4~12개의 결점두가 나왔다는 의미이다. G1 등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까다로운 기준 때문이다. 또 원두 포장에 장황하게 적힌 문구,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모카 하라 G2’는 생산 국가, 수출 항구, 지방 이름, 등급을 말한다. 브라질, 쿠바,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파라과이가 이에 속한다.

3 생산 고도에 따른 등급 :

등급이 높을수록 높은 가격이 책정된다.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멕시코, 온두라스, 니카라과가 이에 속한다.

원두의 산지별 맛의 특징

콜롬비아 수프리모 : 부드럽고 구수한 커피의 향과 약간의 신맛을 느낄 수 있으며 강배전에서는 묵직한 보디감과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에티오피아 모카 이르가체페 : 깔끔하면서 부드러운 신맛과 부케에 비유되는 매력적인 꽃 향이 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수한 뒷맛이 일품인 커피이다.

케냐AA : 아프리카 대표 커피. 초콜릿 향과 중후한 보디감이 균형을 이룬 커피이다.

코스타리카 타라주 SHB :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코스타리카를 가길 원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커피광들에게 사랑받는 커피. 중남미를 대표하는 커피로, 깔끔한 신맛이 특징이다.

브라질 산토스 :부드럽고 구수하며 산미가 적어 커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무난하다.

과테말라 : 화산 토양 고유의 스모키한 커피 향과 묵직한 보디감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 만델링 : 고유의 강렬한 향과 금세 사라지는 쓴맛 뒤에 찾아오는 단맛을 느낄 수 있으며 묵직한 보디감을 지닌다.

하와이 코나 :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 단맛과 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꽃 향과 과일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커피의 황제’라 불린다. 각 커피의 맛을 골고루 지니고 있어 블렌딩이 필요 없는 조화로운 커피다.

예멘 모카 마타리 : 블루마운틴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즐겨 마신 것으로 유명하고, 모카 마타리는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이고, 다크 초콜릿의 맛이 풍부하고 정교하며 아주 오래 묵은 레드 와인을 연상케 한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 커피의 얼굴을 한 홍차라 할 수 있는 커피. 현재 전 세계의 커피 애호가의 시선을 받고 있는 명품 커피로, 먹어본 경험을 자랑할 만한 커피이다.

■ 에스프레소 메뉴

에스프레소 : 25~30ml 정도의 커피를 ‘데미타세’ 라는 작고 도톰한 잔에 제공한다.

도피오 : 더블 에스프레소의 의미이며 일반적으로 ‘더블샷’이라고 한다. 50~60ml를 제공한다.

리스트레토 : 추출 시간을 짧게 하여 양이 적은 진한 에스프레소. 10~15초 동안 15~20ml 정도를 추출한다.

룽고 : 영어의 ‘롱(long)?의 의미로 일반적인 에스프레소보다 추출 시간을 길게 하여 보다 많은 양이 추출된 에스프레소. 40~50ml이다.

아메리카노 : 룽고와 유사하나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추가해 희석한 음료로, 잔 크기는 180~200ml 정도로 룽고나 리스트레토의 아메리카노도 가능하다.

■ 베리에이션 메뉴

카페 마키아토 : 마키아토는 이탈리아어로 점, 얼룩을 의미하며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을 2~3스푼 올려 에스프레소 잔에 제공한다.

카페라테 : 라테(latte)는 이탈리아어로 우유를 뜻한다. 에스프레소에 데운 우유를 첨가하는데, 이때 커피와 우유의 비율은 1:3이다. 라테의 맛은 우유의 온도가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70℃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것이 좋다.
카푸치노 : 에스프레소, 우유, 거품의 비율이 1:2:3이 되어야 하고 우유와 거품이 부드럽게 섞여야 맛있는 카푸치노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에 카푸친 수도회 수도사들의 옷이 진한 갈색의 거품 위에 우유 거품을 얹은 모습과 닮았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카페오레 : 프랑스어로 카페라테를 이르는 말. 드립 커피를 데운 우유와 섞어 마시는 것이다.

카페 모카 : 에스프레소에 초콜릿 시럽과 데운 우유를 넣어 섞은 후 기호에 따라 휘핑 크림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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