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비의 진화, 쇼핑이 더욱 똑똑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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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4, 2016

글 이소영(<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저자)

정보 과잉의 시대, 가치 있는 정보를 찾는 방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현대인의 가장 영향력 있는 활동인 소비가 정보 습득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첨단 방식의 소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인간은 쇼핑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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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소비하는가? 사회문화 인류학의 관점에서 ‘쇼핑’은 ‘섹스’ 다음으로 현대인의 관심과 일상을 지배하는 활동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생필품이나 사치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쇼핑을 통해 취득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비즈니스와 사회적 지위, 지식과 정보, 행복과 안락함까지 쇼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말한 것이, 미국 미술가 바버라 크루거에 의해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로 변화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 20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가 “쇼핑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라고 단언했을 정도로 소비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정착했다.

개인화된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주목하라

하지만 현대인이 해야 할 일은 점점 늘고 있고, 효율적 소비를 위한 정보는 과잉 상태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에 골치가 아프고, 가끔은 마켓에서 신선한 과일과 와인을 고르는 짧은 시간조차 사치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한창 바쁠 때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쇼핑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럴 때면 누구나 내 취향을 나만큼 잘 아는 전문가가 알아서 내가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집으로 배송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서브스크립션과 큐레이션 서비스가 개인화 과정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상품을 제공해주는 비즈니스를 ‘서브스크립션 서비스(Subscription Service)’라고 한다. 서브스크립션은 큐레이션 서비스(Curation Service)와도 일맥상통하는데, 큐레이션 역시 전문가가 매력 있는 제품을 선별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는 형식이다. 서브스크립션과 큐레이션 모두 보편적 상품 추천 서비스를 넘어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파악한 스마트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서브스크립션 서비스는 2010년 미국의 화장품 구독 서비스 버치 박스(Birch Box)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다채로운 화장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우르르 제공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끄는 서브스크립션은 고객의 취향을 콕 짚어서 서비스하는 것으로 브라이트 셀러와 쇼핑몰 팬시, 데이트 인 어 크레이트 등이 있다.
‘브라이트 셀러(Bright Cellars)’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간단하면서도 흥미로운 일곱 가지 퀴즈를 풀게 되는데, 고객의 답에 기반해서 세부적으로 취향을 분류해 와인을 추천해준다. 추천해준 와인을 배송받은 고객은 웹사이트에 평점을 기록할 수 있고, 이를 반영해 더욱 섬세한 추천이 이어진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팬시(Fancy)’ 쇼핑몰에서는 운영자들이 선별한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페이스북과 연동되어 전문가나 친구에게 적합한 제품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데이트 인 어 크레이트(Date in a Crate)’는 간단한 앙케트와 고객의 SNS와 연계한 데이트 코스를 추천한다. 테마별로 제공되는 데이트 코스에는 레스토랑과 간식거리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SNS 정보를 분석해 매번 새로운 테마를 제안하는 것이 장점이다. 큐레이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없다는 면에서 개인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진화하는 서브스크립션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한 현대인의 결정 장애가 심화될 것 같은 우려도 든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프로그램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하다.

옴니채널과 스마트 쇼퍼

인터넷 서점 때문에 동네 서점들이 사라져가는 요즘,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4백 개의 오프라인 서점을 오픈할 것이라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도서나 상품을 고객이 직접 체험하거나 수령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라는데, 어쨌거나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 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옴니채널(Omni-Channel) 시대의 진화는 이미 우리나라의 석학 이어령이 2006년 <디지로그>를 통해 예견한 바 있다. 이어령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을 뜻하는 신조어 디지로그를 통해 해답은 단 하나가 아니라고 말했다. 정답을 하나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각 채널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융합해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김난도 교수가 주축이 되어 선정한 <트렌드 코리아>(미래의 창)에서도 옴니채널의 최근 경향에 대한 분석을 찾아볼 수 있다. 옴니채널은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카탈로그, 콜센터 등 여러 쇼핑 경로를 소비자 중심의 관점에서 결합해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옴니채널이 주목받는 이유는 가장 성공적인 소비 행위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만족스러운 쇼핑은 기업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소비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증대된다. 옴니채널의 장점은 여러 가지인데, 먼저 소비 지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걸 들 수 있다. 미국의 존 루이스 백화점은 매장에 설치된 인터랙티브 스크린으로 고객이 제품을 검색하고 온라인 주문도 할 수 있게 배려했고, 메이시 백화점은 재고가 없을 경우 온라인으로 주문해놓고 매장에서 찾아가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떤 경로든지 간에 고객이 다른 업체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해 소비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모바일 솔루션을 도입해 고객이 보다 스마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월마트에서 인스토어 모드 앱을 설치한 고객은 프로모션이나 신제품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결제 대기 라인에 들어서면 쇼핑 카트에 담긴 제품과 관련된 물품 정보를 모바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마지막으로 옴니채널과 빅 데이터의 성공적 조우를 기대할 수 있겠다. 온라인과 SNS의 빅 데이터를 분석해 옴니채널을 구축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애플도 블루투스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 위치와 동선을 파악하고 결제까지 이뤄지게 하는 아이비콘(iBeacon)을 선보였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어느 경로로 쇼핑을 할 것인지 고객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기 마련이니, 아예 철옹성 같은 옴니채널을 구축한 기업들의 준비성에 찬사를 보낸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착한 소비와 참여감

첨단 기술과 연계된 완벽한 소비 형태들을 연이어 감상하고 나니, 잠시 숨을 돌릴 여유가 절실해진다.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의 증가는 현대인의 다소 이기적인 소비 성향을 중화하며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준다. <머니위크>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사회적 책임(CSR) 컨설팅업체 컨로퍼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가격이 비슷하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또 브랜드 컨설팅 회사 콘 커뮤니케이션스가 실시한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일본 등 세계 9개국 소비자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중 94%가 같은 답변을 했다. 지구 환경과 동식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정한 대가를 지불해 상품을 구입하자는 윤리적 소비의 물결은 소비를 통해 자신을 대변하고 커뮤니케이션하려는 현대인의 특성이 반영된 가장 숭고한 행위일 것이다. 소비의 만족감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자신의 윤리적 책임도 과시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탐스 슈즈(Toms Shoes)는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지도가 높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맨발 사진을 올리면 탐스 슈즈가 그 숫자대로 신발을 기부하는 행사를 열어 결국 30만 켤레의 신발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안경과 커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혀 불우한 나라에 수익을 기부하고 있다. 착한 소비가 기업과 소비자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것이 특징이듯이, 고객이 참여하는 마케팅 역시 경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대륙의 실수’로 불리는 중국 브랜드 샤오미는 1백만 명의 소비자가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이것이 소비에까지 이어지도록 한다. “샤오미는 애플과 구글, 아마존을 합친 회사다.” 샤오미 설립자 레이쥔의 호언장담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신간 <참여감>(와이즈베리)에 따르면 샤오미 공동 창업자 리완창은 창립 때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참여감 3·3법칙’을 주창했다. 이 법칙은 제품 개발, 유통, 마케팅 전 단계에 걸쳐 고객을 참여시키고, 사용자와 친구가 되자는 세 가지 전략과 전술을 뜻한다. 평소 샤오미 홈페이지, 웨이신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샤오미의 친구들은 ‘미펀’이라고 불리며, 매년 연말에는 ‘미팝 연례 시상식’에 초대된다. 이제 소비는 과거의 기능과 경험 중심이 아니라 참여형으로 진화한 것이다. 2010년에 창업한 샤오미가 불과 몇 년 만에 스마트폰뿐 아니라 TV, 공기청정기, 액션캠, 멀티탭, 이어폰 등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키고, 디자인과 성능, 가격 또한 호평 일색인 데는 설립자의 남다른 선견지명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경쟁의 미래(Competing for the Future)>를 쓴 C.K 프라할라드는 기업 중심의 혁신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오늘날 소비는 소비자의 참여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기업이 소비자 중심의 구조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샤오미의 스마트폰 판매율은 세계 4위로 급성장했으니, 이러한 참여형 소비에 대해 우리나라 기업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칵테일 컨슈머(cocktail consumer) 역시 적극적으로 소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위의 사례들과 연결된다. <2015-2017 앞으로 3년 세계 트렌드>(한스미디어)에 따르면 칵테일 컨슈머는 마치 칵테일을 만드는 것처럼 기존 제품을 재창조하거나 새롭게 믹스 매치하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개인이 재구성한 자동차나 패션·뷰티 아이템을 SNS에 올리고 독창적인 레시피를 공유하기 때문에 기업의 매출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 칵테일 컨슈머는 1980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소개한 ‘프로슈머(prosumer)’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프로슈머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사회가 자리 잡으면 개인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생겨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된다는 이론이다. 30여 년 뒤를 예상한 앨빈 토플러의 천리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의 만족스러운 소비와 성공적 판매를 부추기기 위해 첨단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21세기 소비의 다채로운 매력에 탐닉하다 보니,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그 유명한 명언도 바꿔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당신이 어떻게 소비하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로 말이다! 하루라도 쇼핑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이기에, 소비에 대한 확고한 자기 철학이 더더욱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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