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다채로울 수 있을까. 이번 시즌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다 할 만큼 다양한 시대를 풍미했던 트렌드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1940년대의 엘레강스 룩부터 1960년대 모즈 룩, 1970년대의 레트로 빈티지 무드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2011 F/W 여성 컬렉션 트렌드 리포트.
다소 딱딱한 느낌의 정형화된 그래픽 패턴이 컬렉션을 물들였다. 이는 옵티컬 아트, 팝아트가 성행하던 1960년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체크, 도트, 격자무늬, 타일 무늬 등의 패턴이 강렬한 컬러 대비와 규칙적인 배열, 리드미컬한 사이즈 등의 효과와 만나 기하학적이고 그래픽적인 느낌으로 탄생한 것. 패턴 사이즈에 변화를 주어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고 서로 다른 패턴을 매치해 재미를 더한 스타일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 모즈 룩에서 영감을 받은 성숙한 레이디 룩이 에센셜 스타일로 제시된다. 니렝스 스커트, 하이 웨이스트 드레스, 드레스 코트,뷔스티에 드레스 등 레이디라이크 아이템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실루엣이나 스타일링은 단정하고 미니멀하게 절제하는 대신 소재나 디테일에 변형을 주어 장식성을 부각시켰다. 웨어러블하고 스포티한 느낌을 가미하기 위해 바이커 재킷, 롱 카디건, 스웨터, 점퍼 등을 매치해 반전을 시도한 레이디 룩도 주목할 만하다.
미니멀하고 중성적인 아이템이 지배하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엔 지극히 여성스러운 아이템을 마음껏 즐겨도 좋다. 한들한들한 시폰 소재를 사용하거나 풍성한 프릴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블라우스가 강세를 보이기 때문. 여유로운 실루엣, 풍성하고 볼륨감 있는 소매, 목을 감싸는 보수적인 칼라로 귀족적이면서 우아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A라인 풀 스커트나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을 감싸는 실루엣의 테일러드 팬츠와 함께 매치해 페미닌한 느낌을 강조해볼 것.
낙엽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어스(earth) 컬러는 ‘가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컬러 중 하나다. 이번 시즌엔 정제되고 세련된 캐멀 컬러부터 마치 밀크티를 우려낸 것과 같은 소프트 베이지, 오렌지빛이 가미된 브라운까지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색감이 주를 이룬다. 에르메스 컬렉션과 같이 어스 컬러를 톤온톤으로 매치해 한층 고급스러움을 살리거나 카키·그린·레드 컬러와 믹스해 레트로 무드를 즐겨보도록.
이번 시즌에도 채도 높은 선명한 컬러가 포인트 컬러로 제시된다. 여름 시즌과 다른 점이 있다면 퍼플, 마젠타, 그린, 튀르쿠아즈, 옐로,틸 블루, 만다린 오렌지 등 빈티지하면서 가을 느낌이 나는 짙고 풍부한 색감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 과감하게 솔리드 컬러로 연출하거나 포인트 컬러의 매치를 통해 레트로 무드를 한층 부각시켰다. 이런 비비드한 컬러가 부담스럽다면 브라운이나 블랙 계열과 매치해 좀 더 무게감 있고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시즌 테일러드 재킷은 남성의 재킷 형태를 띠지만 여성의 몸에 맞게 재단해 슬림한 실루엣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강세를 보인 파워 숄더가 사라지고 과장되지 않은 숄더 라인과 엉덩이를 덮는 기장, 좁은 칼라, 슬림한 실루엣으로 모던하고 클래식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YSL은 몸에 적당히 피트되면서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테일러드 재킷으로 도회적이고 세련된 룩의 정석을 보여줬다.
퍼(fur)의 향연이라 할 만큼 털 길이가 짧고 슬림한 퍼부터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와일드 퍼까지 다양한 종류의 퍼를 찾아볼 수 있다. 와일드 퍼의 경우 밍크, 친칠라, 폭스, 램 등 다양한 텍스처의 퍼를 믹스 매치해서 선보이는데, 화려한 컬러로 포인트를 주거나 길이가 서로 다른 퍼를 매치해 보다 럭셔리하고 유니크함을 강조했다. 또 가죽 소재를 부분적으로 매치해 슬림한 실루엣을 연출하기도 하고 어깨를 덮을 정도로 풍성한 퍼 칼라가 등장하기도 했다. 시어드 밍크, 래빗, 송치 등 길이가 짧은 퍼는 부피감이 줄어든 만큼 스타일 연출의 폭이 넓어졌는데, 스커트, 트렌치코트, 재킷, 튜닉 등의 아이템에 퍼 디테일로 포인트를 주어 고급스러움을 가미했다.
골드, 플래티넘, 브론즈 등 광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메탈 컬러와 소재를 보다 웨어러블하게 재해석했다. 미래 지향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은은한 펄, 반짝이는 시퀸 소재와 같은 장식적인 요소를 사용해 한층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 메탈 특유의 차갑고 구조적인 느낌을 탈피하기 위해 유연한 시폰, 새틴 소재를 사용하거나 이브닝 드레스, A라인 스커트와 같이 여성스러운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스키니 팬츠의 전성시대는 가고 베이식하고 슬림한 테이퍼드 팬츠가 돌아왔다. 테이퍼드 팬츠는 허리에서 바지 밑단으로 갈수록 점점 통이 좁아지는 팬츠로, 이번 시즌엔 곧고 슬림한 실루엣의 모던한 테일러드 팬츠와 엉덩이 부분에 여유를 주어 보이시한 느낌을 살린 테일러드 팬츠로 양분화되어 나타난다. 두 가지 모두 발목 선에서 경쾌하게 떨어지는 길이로 활동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슈즈와 쉽게 매치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컬러 벨트, 서스펜더로 포인트를 주어 스타일에 위트를 더하거나, 반대로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베이식한 블라우스, 재킷과 매치해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을 완성한 컬렉션 룩도 눈에 띈다.
코트 길이가 한층 길어졌다. 발목까지 오는 기장은 기본이 거니와 바닥에 끌릴 듯한 맥시 기장의 코트까지 등장한 것. 대체적으로 밀리터리와 매니시 룩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 중심을 이루는데, 곧고 슬림한 피트, 허리를 벨트로 강조한 프린세스 라인, 플레어 실루엣 등으로 페미닌한 감성을 잃지 않았다.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소재
는 울, 알파카, 캐시미어를 주로 사용했다.
블랙만큼 가장 기본적이고 세련된 컬러가 또 있을까. 매시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블랙 컬러가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강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 코디네이션이 중심을 이루는데, 같은 블랙 컬러라도 미묘한 농담 차이나 매트 & 샤인과 같이 소재에 변화를 주어 다채로우면서도 한층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터프하고 선명한 블랙 컬러보다는 빛바랜 듯 부드럽고 클래식한 블랙 컬러로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가미하는 것이 이번 시즌 블랙 룩의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