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오디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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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4, 2013

에디터 고성연(제네바·파리 취재) | 도움말 나상준(오디오갤러리 대표, www.audiogallery.co.kr), 박혜영(HEIS, www.heiskorea.co.kr)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레코드를 통해 어렴풋이>, <피아노를 듣는 시간>, <그러나 아름다운>. 최근 서점가에  나온 신간 중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은근한 호응을 얻고 있는 책들이다. 공통분모는 ‘음악’. 팝부터 오페라까지 아우르는 TV 오디션 프로그램, 전설의 스타들이 보여준 화려한 복귀도 한몫을 했을까. 클래식의 부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음악’ 과 아날로그 향수를 충족시키는 ‘소리’를 갈구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재미난 점은 고가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에서 최첨단 디지털 기술과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무장한 신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線) 없는  ‘와이어리스 소리 환경’ 까지. 이들이 꾀하는 ‘혁신’ 에서 하이엔드 오디오의 미래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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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경연을 펼치는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과 같은 TV 프로그램을 놓고, 특정 가수가 호평을 받는 이유에 대해 왜곡된 시선이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언뜻 듣기에는 고음만 꽥꽥 질러대는 듯한데, 현장에서의 평가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사례가 이따금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극에는 가수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도 분명 작용하겠지만 현장과 내 집의 ‘소리의 질’이 빚어내는 차이가 한몫을 한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듯하다. 음원을 작은 용량의 디지털 포맷으로 압축한 MP3 파일과 짝을 이루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스피커, 그리고 열악한 TV 스피커에 익숙해진 채 살아가는 대다수의 현대인에게는 해당 가수의 폭넓은 음역대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기기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MP3 플레이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촉발한 주인공인 스티브 잡스,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를 음악 감상의 질을 떨어뜨린 ‘주범’이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음원이나 영화를 내려받을 수 있는 아이튠즈와 같은 획기적인 콘텐츠 플랫폼에 힘입어 급속한 발달의 페달을 밟은 디지털 기기들이 세운 업적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일상적인 음악 듣기의 편리함을 유도하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이동성에 보탬이 된 ‘공’만은 나름 인정받을 만하다(특히 보다 자유롭게 창조물을 제작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경로를 개척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소위 ‘오디오파일(audiophile)’이라고 불리는 오디오 애호가들은 고운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을 듯하지만, 음악 감상 문화의 변화는 컴퓨터로 질 높은 음악을 즐기는 ‘PC-FI’라는 새로운 마니아 영역을 잉태시키기도 했다. 이는 PC와 Hi-Fi를 합친 말로, 하이파이 오디오에나 들어 있던 디지털-아날로그 컨버터(DAC, 디지털 신호를 원음에 가깝게 튜닝해 아날로그인 소리 신호로 전환시켜주는 장비), 상대적으로 음질이 좋은 사운드 카드와 PC용 스피커 등의 ‘도우미 장비’를 이용해 컴퓨터로도 디지털 파일 음원을 양질의 소리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이 글의 주제인 ‘오디오의 미래’를 논하는데, 굳이 PC나 MP3 플레이어를 언급하는 까닭은 하이엔드 세계에서도 선(線)이 점점 자취를 감추는 ‘와이어리스 환경’의 놀라운 도약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혁신, 1980년대 명품 디자인을 채용하고 속은 첨단으로 채운 일체형 스피커
디지털 오디오 세계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리얼 사운드’를 낸다는 스위스 오디오 브랜드 골드문트(Goldmund). 얼마 전 드라마 팬들을 ‘함몰’에 가까울 정도로 열광시켰던 송혜교, 조인성 주연의 미니 시리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감질나게 슬쩍슬쩍 등장했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음악인들을 비롯해 연예인들도 골드문트에 부쩍 관심의 촉수를 뻗치고 있다고. 지난 3월 말, 제네바에 대부분 주문 생산으로 제작하는 아담한 공방을 둔 이 ‘작지한 강한’ 회사에는 간만에 다소 부산한 기운이 일었다. 오는 가을께 줄지어 선보일 신제품들의 프로토타입이 멀리 한국에서 찾아온 ‘손님들’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최고의 ‘기대주’는 구조적인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아폴로그(Apologue)’라는 스피커. 1988년 이탈리아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클라우디오 로타 로리아가 디자인을 맡은 한정판 스피커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됐을 정도로 근사한 맵시를 지녔다. 이 작품이 25년 만인 2013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된 이유는 ‘올인원’ 스피커로 업그레이드돼 전 세계 25조만 한정판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이다. 겉모양은 전설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본뜨되 내부는 속속들이 바꿔버린, 첨단 앰프를 내장한 전천후 스피커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예전처럼 스피커 따로, 프리앰프 따로, 프로세서 따로 갖출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2013년형 아폴로그는 무선 기능을 장착한 PC는 물론 스마트 TV, 아이폰, 갤럭시와 같은 스마트폰으로 신호를 잡아 해당 기기에 내장된 디지털 음악 파일을 작동시킬 수 있는 ‘와이어리스 제품’이다. 다시 말하면, 이 존재감 넘치는 스피커에 파워 코드만 꽂으면 다른 두꺼운 케이블은 굳이 필요 없는, 각종 전선들의 뭉침과 엉킴으로 본연의 디자인 오라를 훼손하지 않아도 되는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성능과 내용 면에서) 이런 제품은 하이엔드 오디오 역사에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어요.” 10년 넘게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이끌어왔다는 골드문트의 ‘맹주’ 미셸 레바숑 회장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아폴로그가 얼마나 ‘새로운 차원의 작품’인지를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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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미, 용이성, 희소성… 진화하는 럭셔리의 방향성을 담고 있는 집약체
오는 10월 한국에도 국내 수입사인 오디오갤러리를 통해 1조를 선보일 2013년형 아폴로그는 진화하는 럭셔리의 개념이 여러모로 투영된 제품이기도 하다. “속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겉보기에는 극도의 단순미를 품고 있으며, 남녀노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용의 용이성, 그리고 남들이 지니지 못한 가치를 지닌 희소성을 갖춰야 해요. 그것이 바로 21세기 럭셔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지요.” 아폴로그는 주문 제작 방식을 따르는 만큼, 레이저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거나 원하는 색, 혹은 소재로 만든 ‘나만의 오디오’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레바숑 회장의 자랑 섞인 설명이 세세히 이어졌다. 중동의 어떤 부호는 ‘금’ 도금으로 장식한 디자인을 원한다면서 아직 생산 단계에 돌입하지도 않은 아폴로그를 선주문식으로 미리 ‘찜’해놓기도 했다는 귀띔도 살짝 건넸다. 단순미, 사용의 용이성,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갈구하게 만드는 희소성. 레바숑 회장이 정의한 럭셔리의 개념은 비단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겉과 속이 월등히 빼어난 고도의 내공과 더불어 희귀함을 갖추면 부르는 게 값인 럭셔리 브랜드의 시계나 가방이 좋은 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쯤에서 화제의 초점은 ‘가격’으로 옮겨 가기 마련이다. ‘뉴 아폴로그’ 1조의 가격은 5억5천만원 정도. 사실 여전히 쉽게 넘볼 수 없는 가격이다. 하지만 앰프까지 합하면 10억원을 훌쩍 넘었던 가격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긴 했다. 그런데도 성능은 예전에 비하면 ‘아이언맨급’이고 공간은 훨씬 덜 차지하며 주변을 보다 말끔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다루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사실 이는 ‘무선’이 뿜어내는 긍정적인 파장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오디오 시스템에 포함되는 기기의 숫자가 줄어들면 덜 복잡해지고, 아무래도 ‘재료’가 덜 들어가므로 가격은 자연스레 내려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뮌헨 오디오 쇼에서도 전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키워드, ‘와이어리스’
하이엔드 디지털 오디오 업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골드문트만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는 비록 ‘대세’로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와이어리스’를 키워드로 삼은 흔적이 역력한 주요 오디오 메이커들의 시도가 단연 돋보였다. 아방가르드(Avantgarde), 포칼(Focal), 오디오벡터, 다인시스템 등이 일체형 무선 스피커의 행렬에 동참했다. 첨단 기술에 다소 무심한 듯 보였던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의 이러한 변화는 신호 간섭이 생겨 잡음이 발생하거나 온전한 소리를 전송하는 데 제약을 받았던 무선 전송 기술이 현격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데다, ‘빈약한’ 소리를 내는 MP3 파일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고음질의 스튜디오 사운드에 근접한 디지털 음원 파일이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는 데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소스’에 해당되는 디지털 음원이 탄탄하게 여물어 있지 않다면 굳이 무선 방식으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즐기려는 동기가 희석되지 않겠는가.
앰프를 속에 품은 일체형 스피커와는 별도로 온갖 종류의 음원 소스들을 소화할 수 있는 ‘허브’ 역할을 자처하는 앰프 분야의 변화도 눈에 띈다. 2년 전, CD, DVD 등 디지털과 LP 같은 아날로그 소스를 아우르는 무선 앰프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프랑스 브랜드 드비알레(Devialet)는 이번 뮌헨 오디오 쇼 2013에서는 가격 포트폴리오를 강화시킨 신제품 공세를 퍼부었다. 2천5백만원대 단일 모델이었던 ‘D프리미어’에서 벗어나 8백만원대(2×110와트)인 ‘드비알레 110’, 1천1백만원대(2×170)인 ‘드비알레 170’ 등을 내놓은 것이다. 기존 D 프리미어급에 해당하는 ‘드비알레 240’은 2천만원(1만2천9백유로)대로 가격을 대폭 낮췄다. 새로 나온 최고급 모델인 ‘드비알레 500’의 가격대는 3천만원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을 거느린 LVMH 그룹의 아르노 회장이 투자한 업체로 알려져 있는 드비알레의 야심은 이처럼 폭이 넓어진 가격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포부는 ‘언젠가는 모두가 드비알레를 하나씩 집에 두게 될 것’이라는 홍보 문구에 응축돼 있다. 마치 아이팟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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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 하이엔드 시장을 둘러싼 경쟁도 흥미진진
이러한 움직임을 볼진대, ‘슈퍼 스펙’을 지닌 초고가 시장은 존속하겠지만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멀티미디어 융합의 시대를 겨냥해 ‘매스티지’ 시장도 살펴보고 있다는 분위기가 은근하게 느껴진다. 보급형 영역까지 넘보는 추세다. ‘간편한 무선 환경’을 향한 행보가 눈에 띄는 브랜드 중에서는 프랑스 스피커 브랜드 포칼이 꽤 흥미롭다. 포칼은 미래 지향적인 느낌과 고전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내는 걸출한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2억원대 스피커 ‘유토피아’ 시리즈도 거느리고 있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가격대의 제품군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 브랜드가 주력하는 최신작은 골드문트나 아방가르드와 같은 ‘억’ 소리 나는 초고가 영역이 아니기에 또 다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뮌헨 쇼에서 포칼이 선보인 ‘이지아(Easya)’는 하이엔드 시장의 밑단을 겨냥한 3백만원대 앰프 내장형 스피커. 두 스피커를 연결하는 선이 없다. 블루투스 기술이 장착돼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에 담긴 음원에 무선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능은 ‘기본’이다. 물론 음원의 소스가 워낙 다양하므로 일체형 스피커만으로 완벽한 오디오 시스템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이지아에 PC, CD, 블루레이, 스마트 TV 등 웬만한 소스 기기들과 ‘선 없이’ 연결할 수 있는 무선 허브가 같이 제공되는 이유다. 포칼의 또 다른 야심작인 ‘XS북 와이어리스’ 는 기존의 앰프 내장형 PC 스피커에 무선 기능을 추가한 보급형 제품으로 가격이 50만원대에 불과하다. 포칼의 신 제품군에 비하면 여전히 ‘업타운 물건’이긴 하지만 이달에 선보일 예정인 골드문트의 ‘마이크로 메티스(Micro Metis)’ 와이어리스 버전도 하이엔드 오디오 팬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이 제품 가격이 기존 세트(앰프를 포함한) 가격대의 절반 수준인 8백50만원대로 책정됐다는 점은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이 어떤 미래를 바라보는지 짐작케 한다.
컨버전스(융합)의 시대에 펼쳐질 오디오의 미래는?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정말로 만만치 않다. 워크맨이 오래도록 존속할 줄 알았지만 MP3 플레이어가 나타났고, 이 역시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는 잠식해버린 품목이 되어버렸다. 저장 매체도 마찬가지다. 비디오테이프는 CD에 의해 최후를 맞았고, CD는 DVD에 왕좌를 빼앗겼으며, DVD의 다음 세대는 블루레이가 이끌어가고 있지만 성장 추이가 생각보다는 폭발적이지 않다. 수년간 정체돼 있던 오디오 시장에 간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가 승자가 될지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인 것이다. 어찌 됐든 음악 산업 전반에서 자못 고무적인 현상 중 하나는 최근 남성만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오디오 도락’이라는 취미가 여성의 시야에도 슬슬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 샹젤리제의 쇼룸에서 만난 드비알레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마누엘 드 라 후엔테는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다. “하와이였을 거예요. 부부가 매장에 들렀는데, 아내가 한화로 수천만원짜리 드비알레 제품을 두고 고민하는 남편을 보더니 대뜸 결단을 내려줬죠. ‘그러니까 그렇게 작은 것(앰프) 하나만 리모컨으로 조정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반색을 하면서요. 그녀는 집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무거운 오디오 기기들을 생각할 때 덩치가 작고 깔끔한 것만으로도 호감을 느꼈던 것이죠. 결국 (마음에만 들면) 약간 더 비싼 건 여성한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분명 오디오는 단순한 과시용 럭셔리가 되기에는 특별한 애정과 연마가 필요한, 쉽지 않은 취미이다. 하지만 서재에 틀어박혀 혼자서만 몰입하는 음악의 매개체로 머물지 말고 일상의 럭셔리로 파고드는 ‘유비쿼터스’의 면모를 지닐 때 현대사회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구매력을 지닌 여성의 마음을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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