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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3, 2014

에디터 고성연

얼마 전 서울 신월동 시장 인근에서 일곱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할머니 대신 손수레를 밀고 가다 아우디 차량을 긁어 흠집을 낸 사고가 화제가 됐다. 놀란 손자가 울먹이고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차량의 주인 부부는 오히려 도로변에 주차해 통행에 방해가 됐다며 정중히 사과하고 아이를 달랬다는 것. ‘명품 차를 탈 만하다’라는 칭찬이 누리꾼들을 통해 퍼졌고, 아우디 코리아는 “해당 차주가 연락해오면 무상 수리를 해드리겠다”라고 나섰다. 자동차 마케터라면 몹시도 부러워할 만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훈훈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감동 어린 고객 체험담이야말로 오늘날 마케팅의 초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고객 스스로 주인공처럼 느낄 수 있는 얘깃거리를 끊임없이 창출해내기 위한 자동차업체의 행보는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1950년대부터 건설 장비와 차량을 제조하는 JCB라는 회사를 운영했던 조지프 시릴 뱀포드는 기계를 직접 발명해내는 재주도 남달랐지만 다른 기술자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고객이 상품을 인수할 때 대표의 손길이 닿는 걸 선호한다는 점을 알게 된 그는 새 중장비가 배달될 때마다 ‘JCB1’이라는 독특한 번호판이 달린 롤스로이스를 타고 현장에 나타났다. 심지어 회사 장비를 보고는 “홍차를 끓이는 일만 빼고는 만능”이라고 툭 던진 친구의 한마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모든 JCB 차량에 전기 주전자와 전원 콘센트를 탑재했을 뿐 아니라 고객에게 손수 차를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롤스로이스에 티포트(tea pot)까지 별도로 챙겨 다녔다고.
<폭스바겐은 왜 고장 난 자동차를 광고했을까?>라는 책에 실린 이 소소한 20세기 중반의 일화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의 정성스러운 단면을 보여준다. 고객은 이 노력을 단순한 서비스로 여겼을까, 아니면 유쾌하고 정감 어린 체험으로 담아뒀을까? 아마도 ‘체험 경제(experience economy)’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2명의 학자인 조지프 파인 2세와 제임스 길모어는 후자에 손을 들어줄 성싶다. 그들이 내린 정의를 응용하자면 서비스는 ‘무형의 혜택(intangible benefit)’의 속성을 제공하지만 체험은 ‘기억될 만한 느낌(memorable sensation)’을 펼쳐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빚어내는 핵심은 원론적이긴 하지만 ‘진정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60대의 노사장이 자신의 차를 끌고 나타나 배송되는 새 장비를 따라다니며 직접 에스코트하고, 홍차나 커피를 따라 손수 대접하는 행동은 깊은 감동까지는 아닐지라도 고객에게 느낌 있는 작은 스토리를 선사했을 테니까.

고객과의 관계, 폭과 깊이에 모두 신경 쓰는 ‘경험 점유율’을 잡아라

오늘날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프리미엄’을 지닌 자동차업체라면 이 점을 직원들의 뇌리에 뚜렷이 각인시켜야 할 듯싶다. 물론 ‘머리가 아닌 가슴을 사로잡아라’, ‘감성으로 접근하라’는 등의 메시지는 이미 마케팅이나 영업 담당 직원들의 지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시간을 할애하며 애매한 감성을 소비하는 경험보다는 딱 떨어지는 혜택을 얻기를 원하는 실리주의 유형의 고객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객’이라기보다는 ‘손님’으로 대한다고 느끼는 경험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우연히 스치는 짧은 순간이라도 정성이 통하면서 저절로 엮이게 마련이며, 진정성 곁들인 스토리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탄생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는 있을 듯하다. 굳이 고객의 시간을 빌려 경험을 선사하려는 돈 쓰는 마케팅의 의도를 확연히 발휘하려면 브랜드 정체성에 맞추되 개개인의 수요와 취향을 꿰뚫는, 고도로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맞춤형 체험을 선사해야 할 테고 말이다. 이러한 체험의 질적 중요성을 반영한 듯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실린 ‘궁극의 마케팅 머신’이란 글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실적이 우수한 기업은 고객과 맺는 관계의 폭과 깊이에 모두 신경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제안의 깊이와 함께 고객과의 접점 자체를 늘리는 데도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교감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시대가 무르익으면서 조만간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지갑 점유율’이나 ‘매체 점유율’이 아니라 ‘경험 점유율’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중장비업체 회사 대표가 롤스로이스를 타고 에스코트하면서 홍차를 대접하던 시절에서 반세기나 지난 오늘날 내로라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업체들은 고객의 심장과 머리를 관통하는 경험에서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어떤 식의 활동을 얼마나 세련되게 펼치고 있을까?

자동차 영역에 머물지 않는 다채로운 맞춤형 라이프스타일 체험

최근에는 자동차 역시 라이프스타일을 부각하는 마케팅 전략이 눈에 띈다. VIP 고객만 초대하는 각종 공연이나 스포츠 행사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처럼 자동차 영역에서 벗어난 프로그램이 갈수록 ‘맞춤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관건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자동차와 관련된 경험만 부각하기보다는 일상의 간극을 채워주는 다채로운 문화적 영감을 충족시키는 전술은 꽤나 유효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플래그십 모델인 아우디 A8을 선보인 아우디의 마케팅 프로그램은 이러한 잠재 수요를 잘 충족시킨 사례다. 쪽빛 바다가 일품인 남해를 배경으로 들어선 현대적인 럭셔리 리조트 사우스 케이프 오너스 클럽에서 열린 A8 론칭 기념 고객 행사에서는 ‘아트 오브 프로그레스’라는 프로그램에 가장 긴 시간이 할애됐다. 선호도에 따라 싱글 몰트위스키 체험, 국내 미술품 경매사 1호가 주도하는 예술 재테크 강의, 전문 조향사와 함께하는 맞춤형 향수 제조, 20세기 초반의 대형 아날로그 오디오를 이용한 음악 감상 등 네 가지 주제 중에서 고를수 있는 준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적어도 이 시간에는 ‘자동차’는 전혀 강조하지 않았다. 물론 시승과 자동차 소개 행사도 따로 개최하긴 했지만, 여기에서도 A8의 장점을 구구절절 강조하는 지루한 프레젠테이션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는 매트릭스 LED 헤드라이트를 소개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야간 주행 시 다른 차가 나타나면 25개로 나누어진 고광도 LED 램프가 반대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게 ‘지능적으로’ 알아서 작동하는 시스템인데, 지하 공간에서 ‘짧고 굵은’ 시연이 이뤄졌다. BMW도 플래그십 모델인 BMW 7 시리즈 고객만을 위한 문화 공간인 ‘BMW 7 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를 매번 콘셉트를 바꿔가며 운영하곤 하는데, 이 기간에는 와인 테이스팅, 스타일링 클래스, 요트 크루징 등 고객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가치를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따로 구매할 수 없는, 몹시도 특별한 경험의 장

초럭셔리 차를 만드는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만이 선사할 수 있는 드라이빙 경험을 극단으로 강조하되, 프리미엄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소에서 라이프스타일의 요소를 듬뿍 얹은 국제적인 행사를 열기도 한다. 체험의 정수를 창출하는 게 묘미인 ‘인생 행사’들이다. 올해 탄생 1백 주년을 맞이해 기념 로고를 새긴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센테니얼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내놓은 고성능 럭셔리 카 마세라티는 9월 18일부터 3일 동안 브랜드의 탄생지인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센테니얼 게더링’ 행사를 개최한다. 국내 VIP들도 초대되는 이 행사에는 환상적인 서킷 주행 기회를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지난 1백 년간 선보인 2백50여 종의 다양한 마세라티 모델을 모조리 집결시켜 ‘레이싱 팬’의 눈요기를 톡톡히 시켜줄 계획이다. 이 드림 카가 창조해낼 또 다른 1백 년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콩쿠르 델레강스> 전시회도 마련되어 있다.
마세라티와 더불어 피아트 그룹의 대표적인 하이엔드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는 레이싱 대회 말고도 차 오너만 참가할 수 있는 랠리이자 예술, 미식 등 문화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페라리 카발케이드(The Ferrari Cavalcade)’를 3년째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시칠리아 섬에서 열렸다. 전 세계 27개국에서 90여 대의 페라리가 몰려든 광경 자체가 볼거리라는 이 랠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을 볼 수 있는 에트나 산을 비롯해 페르구사 호수 주위를 따라 설치된 서킷을 순회하는 3일간의 일정으로 꾸려졌다. 페라리 관계자는 “랠리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자수성가한 사업가가 많은 페라리 오너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브랜드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뜻밖의 부가 효과”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마케팅도 언제나 그렇듯 뜨겁다. ‘메르세데스 트로피 코리아’ 같은 아마추어 골프대회는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메르세데스 카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국제적인 축제의 장으로 기획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선을 거쳐 국내 본선에서 우승을 거둔 3명의 고객에게 메르세데스-벤츠 본사가 위치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월드 파이널에 참가할 자격을 부여한다. BMW 골프컵 인터내셔널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마추어 골프 토너먼트 대회로, 50개국의 고객 약 12만 명이 참여한다. 지난해 국내 예선전에는 1천4백 명의 BMW 고객이 참가해 72명의 결승전 진출자를 배출했는데, 올해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애도하는 뜻에서 국내 대회를 취소하는 한편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 10억원을 기부했다.

차세대를 선점하라, 젊은 층에 다가가는 접점의 확대

당연한 얘기지만 프리미엄 자동차업계는 점점 커지고 있는 젊은 층의 마음 사로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많은 브랜드들이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디자인’과 보다 참신한 영역의 아트를 택하는 행보도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렉서스는 ‘고객의 기대를 넘는 놀라움과 감동을 계속 제공한다’라는 브랜드의 비전을 위해 지난해부터 ‘어메이징 인 모션(Amazing in Motion)’이라는 슬로건 아래 라이프스타일과 연계한 체험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글로벌 광고 캠페인 ‘스트로브(Strobe)’에서는 그런 푸릇푸릇한 감성이 확연히 느껴진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스카이라인에서 곡예사와 스턴트맨이 LED의 빛과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영상도 그렇고, 패션, 영상, 음악, 아트 등을 아우른 브랜드 체험 공간인 ‘Intersect by Lexus’도 젊은 피에 초점을 맞췄다. 또 개인, 그룹, 국적을 가리지 않는, 청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 ‘렉서스 디자인 어워드’도 젊은 층이 브랜드에 녹아들도록 하는 시도다. 이 대회는 올해로 3회째(11월 3일 모집 마감)를 맞이하는데(LexusDesignAward.com), 1회에는 한국인 디자이너 김문철 씨가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됐다. 아우디도 지난해 창작 디자인을 공모하는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Audi Design Challenge)’를 개최했다. 음악, 드라이빙 스토리를 담은 코스 무비(course movie), 액세서리, 가구 등 총 4개 분야로 진행된 이 공모전은 학생, 현역 디자이너 등 엄격한 제한 없이 다양한 크리에이터를 대상으로 했다. ‘소통을 통한 젊은 피 양성’을 위해 최종 결선 진출자들에게는 각 분야 전문가의 멘토링도 제공했다. 최종 결선 진출자 중 1명에게는 아우디 본사 인턴십 기회도 주어졌다. 대규모 ‘팬(차 오너)’과 공감하는 ‘미니 유나이티드’라는 행사를 진행해온 MINI가 지난해에 최초로 힙합 뮤지션을 동원한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프리미엄 소형차 브랜드답게 젊은 소비자들과 호흡하는 방식의 발전 양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BMW가 독일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트랙과 브랜드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인 ‘드라이빙 센터’를 축구장 33개 크기(24만m²)라는 엄청난 규모로 인천 영종도에 설립한 것도 넓은 관점에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을 접목한 드라이빙 경험을 젊은 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에 확산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21세기의 자동차 브랜드들은 이미 기술이나 디자인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상향 평준화된 수준을 자랑한다. 그래서 ‘프리미엄 파워’는 정말로 큰 자산이다. 명차의 신화를 가능케 한 마케팅 전략을 다룬 <프리미엄 파워>라는 책을 집필한 2명의 자동차 분석가가 지적했듯이 기능의 최적화만으로는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일 수는 있지만, 일단 소비자가 그 제품을 ‘프리미엄급’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처분’을 기다릴 뿐이라는 주장이다. 자동차업계의 프리미엄 마케팅이 현란할 정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프리미엄 파워를 유지해나가는 데도 마케팅 전략을 출중하게 활용한 고객과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그 소통의 방식에 있어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몸소 체험하면서 브랜드와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경험 점유율’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경계 없는 소통이 점차 활성화될수록 자동차 브랜드들이 고객에게 내미는 ‘프리미엄’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는 충실하되 결코 ‘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케터들이 고객과 교감하는 방식이 달라졌기에 진부한 측면이 많았던 마케팅도 약간은 더 흥미롭게 진화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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