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삶의 예술’을 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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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7, 2024

글 박혜연(도쿄·히메지 현지 취재) Edited by 고성연

다카다 겐조(Kenzo- Takada) 회고전

계층과 규범을 뛰어넘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담은 패션 디자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다카다 겐조(Kenzo- Takada,1939~2020). 20대 청년 시절, 프랑스로 향한 그는 5월 혁명 정신과 맞닿은 진취적인 디자인 철학으로 1970년대 파리 패션계에서 성공한 최초의 동양인 디자이너로서 입지를 다졌고, 훗날 ‘겐조(KENZO)’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냈다. 2020년 코로나 합병증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의 창조적 여정을 되짚어보는 회고전 <Chasing Dreams>가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7월 6일부터 오는 9월 16일까지).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하며 거듭 진화해나간 패션 거장의 역동적인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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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당찬 도전장을 내민 젊은 이방인
1939년 2월 27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다카다 겐조(Kenzo- Takada)는 어릴 때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친밀감과 관심도가 남달랐다. 그의 부모님은 히메지 성 북쪽에 있는 고급 유흥 시설인 나니와로(浪花楼)를 운영했는데, 덕분에 겐조는 게이샤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다. 또 누나들 옆에서 섬세한 미의식과 감성을 키우며 ‘패션’에 눈을 떴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라 고베 외국어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패션에 대한 갈망은 결국 그를 도쿄 분카 패션 칼리지로 이끌었고, 졸업 후 의류업체 산아이(三愛)에서 디자이너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늘 더 큰 세상을 꿈꾸던 그는 1964년 배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배 여행에서 들른 기항지에서 본 다양한 민속 의상은 이후 작풍의 주요 모티브가 됐다). 프랑스어도 잘 못하고 인맥도 없던 젊은 이방인 겐조는 호기롭게 스케치만 들고 패션계의 문을 두드렸다. ‘루이 페로(Louis Fe′raud)’ 부티크를 시작으로 <엘르(ELLE)> 등 유력 패션지로부터 스케치에 대한 호평을 받으면서 그는 차츰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겐조가 프랑스로 이주한 지 4년 뒤, 서유럽을 뒤흔든 ‘68혁명’이 5월 파리에서 시작됐다. 기성세대의 권위에 반발한 학생들과 노동조합이 주도한 이 사회운동은 자유와 해방의 가치를 강조하며 패션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가치관을 담은 ‘프레타 포르테’가 부상했고, 이는 겐조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1970년, 그는 부티크 ‘정글 잽(Jungle Jap)’을 열고 자유와 해방감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패션으로 ‘목화의 시인(綿の詩人)’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일본 전통 직물과 패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융합한 스타일을 선보였고,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버무려 자신만의 패션 언어를 완성해나갔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당시 사회가 추구하던 가치관과 조응하며 그를 패션계의 총아로 부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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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낯섦’을 새로운 미감으로 승화하다
그가 파리를 넘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무대를 호령하게 된 계기는 오버사이즈 패션인 ‘빅 룩(big look)’에서 시작됐다. 몸의 곡선을 따르는 대신 넉넉한 원단과 여러 소재를 활용한, 신체와 의상 사이 여유 공간에서 나오는 ‘멋’은 참신하게 다가갔다. 이 여유 공간은 자유를 갈망하던 이들에게 해방감으로 여겨진 동시에 편안한 움직임을 담아내는 그릇이 됐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컬렉션마다 독창적인 테마와 트렌드를 선도하며 패션계를 흥분시킨 겐조는 당시 엄숙했던 파리 패션계의 쇼 형식도 깼다. 모델들이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걸으며 관객과 함께 즐기는 파티 형식의 패션쇼로 새 장을 연 것이다. 이 같은 아이디어의 중심에는 ‘놀이의 정신’이 있었다. 이는 창작을 지탱하는 큰 원천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추후에 자신의 브랜드 ‘겐조’를 잃게 한 원인이기도 했다. 1993년 LVMH 그룹에 자신의 브랜드를 매각한 후에도 디자인을 이끈 그는 경영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결국 물러났다. 1999년 10월, 파리 북쪽 콘서트홀에서 열린 겐조의 마지막 쇼는 그의 창작력을 집대성하듯, 거대한 스크린과 2백 명이 넘는 모델, 그리고 실제 백마까지 등장시킨 ‘작품’이었다. 이후 그는 아테네 올림픽 일본 선수단의 유니폼을 디자인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고,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비롯한 다양한 상을 받으며 업적을 인정받았다.
새로운 세계에서 마주한 모든 ‘낯섦’을 자신만의 미적 감각으로 해석해 패션사의 한 장을 쓴 다카다 겐조.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패션을 넘어 예술과 문화를 융합한 선구자로 기억된다. 어쩌면 패션의 ‘오래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의 찬란한 유산을 전시 형태로 볼 수 있는 이번 회고전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렘을 주기도 한다. 오는 9월 중순 도쿄에서는 막을 내리지만 2025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기간에 맞춰 내년 4월부터 순회전 형식으로 겐조의 고향에 있는 히메지 시립 미술관(Himeji City Museum of Art)에서 더 큰 규모로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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