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롤 왕국의 전통과 문화가 숨 쉬는 알프스의 작은 마을 Innsbr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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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1, 2012

글·사진 이형준(사진가)

독일어 알펜(Alpen), 이탈리아어 알피(Alpi), 프랑스어로 알프(Alps)라 불리는 거대한 산.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어 ‘희고 높은 산’이라는 뜻을 지닌 알프스는 유럽인들의 가슴에 우뚝 선 산맥이다. 그 웅장한 산맥을 넘으면 세상을 얻는다는 신화를 2천2백여 년 전에 한니발이 보여줬고, 중세에는 티롤 왕가의 향기가 녹아 있는 곳이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등산을 뜻하는 ‘알파니즘’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알프스. 그 산자락, 희디흰 세상에 순백색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왕가의 터전 인스브루크(Innsbruck)로 떠나본다.

  

      

  



전통과 문화가 숨 쉬는 옛 티롤 왕가의 수도 인스브루크는 알프스 산맥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이미 기원전부터 신화와 역사에 등장했던 ‘인 강에 걸린 다리’란 의미를 간직한 인스브루크는 유서 깊은 고도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아담하다. 사계절 어느 때 방문해도 매혹적인 풍광과 볼거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지만 동계 올림픽을 두 번씩이나 개최한 설원의 고장 인스브루크를 만끽하기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도시를 점령하는 겨울이 제격이다.
예로부터 문학, 음악, 미술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물했던 인스브루크를 상징하는 주요 명소는 황금 지붕 광장과 헤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를 따라 몰려 있다. 도시의 상징은 구도심 중심에 위치한 황금 지붕(Goldenes Dachl)이다. 화려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황금 지붕은 합스부르크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지붕은 1500년에 완성된 것으로, 원래 티롤의 가난한 공작 프리드리히의 집이었으나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가 광장에서 개최되는 행사를 관람할 때 조금이나마 더 잘 볼 수 있도록 만든 발코니 지붕을 말한다. 2천7백38개의 금박으로 장식된 황금 지붕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와에 황금 도금을 한 지붕으로, 5백11년 동안 처음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랜드마크이다.
태양이 강하게 비추는 날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황금 지붕이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까닭은 황금 지붕도 지붕이지만, 주변에 장식된 소박하고 정겨운 조각과 벽화 때문. 옛 티롤 왕국을 구성했던 여덟 곳에 이르는 자치구의 문장과 궁중에서 음악과 곡예를 펼쳤던 광대들을 부조로 새긴 조각도 아름답고 프레스코화도 정겨워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황금 지붕 광장과 이어진 헤르초크 거리에는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건축물이 즐비하다.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한 헬블링 하우스를 비롯해 왕궁과 타워 등 저마다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그 속에 숨어 있는 사연 또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무대를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명소 중 놓칠 수 없는 곳으로는 바이세스 크로이츠(Weisses Kreuz)와 골데너 아들러(Goldener Adler)를 꼽을 수 있다.
황금 지붕 남쪽으로 약 200m 지점에 터를 잡은 바이세스 크로이츠는 5백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 지금까지 레스토랑과 숙박 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바이세스 크로이츠는 만인의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음악 신동 모차르트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그리고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와 명사들이 이곳에서 머물며 작품을 구상하며 여유로운 휴식을 취했다. 대문호와 거장들의 체취가 녹아 있는 바이세스 크로이츠의 자랑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통 음식이다. 바이세스 크로이츠 레스토랑에서는 타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타펠슈피츠 미트 그뢰스’와 ‘에스트에펠라슈’ 같은 티롤 지방의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편 황금 지붕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골데너 아들러는 하이네, 괴테 등이 즐겨 찾았던 명소다. 글로벌 체인 숙박 시설이 즐비한 인스브루크이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장들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골데너 아들러를 찾는다. 6백 년 전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와 목재 가구로 꾸민 골데너 아들러의 소박하고 아늑한 실내는 항상 미소로 이방인을 맞는 티롤 주민들을 닮았다.
그리스시대부터 역사에 등장한 인스브루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겨울 풍경 중 하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반드시 등장하는 와인이다. 인스브루크가 위치한 티롤 지방은 예로부터 사과로 만든 와인으로 유명했다. 평소에도 사과 와인을 즐겨 마시는 시민들이지만 추운 겨울이면 유독 많이 마신다. 시민들이 마시는 사과 와인은 ‘스넵스’라고 불리는 것으로 여느 와인과는 다르게 뜨거운 차와 커피처럼 따뜻하게 마신다. 시민들이 따뜻한 와인을 즐기는 까닭은 추운 날씨를 몰아내기 위함으로, 이런 풍습은 수백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도심이 인스브루크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라면 외곽 지역은 이곳이 얼마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동계 올림픽을 두 번씩이나 개최한 설원의 도시답게 주민들의 삶에 스키를 비롯한 다양한 겨울 스포츠가 생활의 일부로 자리한 지 오래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면 주민들이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 대신 스키를 이용할 정도다.
화려하고 기품이 넘치는 도심에서 도보로 5분이면 인 강과 만년설의 풍광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설원의 고장을 만끽하려면 도심에서 로프웨이를 이용해 30분쯤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노르드케테가 제격이다. ‘북의 쇠사슬’이란 의미를 지닌 노르드케테 지역에서는 연중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한적한 알프스를 만끽할 수 있으며 겨울이면 스키와 스노보드 같은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노르드케테 지역에서 즐기는 겨울 스포츠는 자유 그 자체다. 줄을 서서 리프트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특별히 슬로프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찾아 마음 놓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수많은 스키어들이 찾는 노르드케테 지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슬로프 하나의 길이가 10km가 넘는 곳부터 초급 코스까지 다양하다. 따라서 누구나 원하는 곳을 찾아 안전하게 스키, 스노보드, 썰매를 즐길 수 있다.
설원의 고장 인스브루크에는 스키장이 여러 곳 있다. 그러나 보다 여유로운 휴식과 여가를 즐기려면 기차와 자동차로 20〜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제펠트 인 티롤(Seefeld in Tirol)’이 제격이다. 눈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제펠트 인 티롤은 마을 자체가 스키 리조트이다. 주민이건 관광객이건 집이나 호텔을 나서는 순간부터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제펠트 인 티롤은 스키장이 따로 없다. 제펠트 인 티롤에는 마을 안에 여러 곳의 스키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머무는 곳이 곧 스키 캠프가 되는 셈이다. 스키가 일상화되어 있는 만큼 어른들은 물론이고 이제 갓 달리기에 익숙해진 어린아이들도 스키를 많이 탄다. 아이들이 능숙한 솜씨로 설원을 질주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 개설한 어린이 스키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제펠트 인 티롤은 분명히 겨울 레포츠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마을이지만, 모든 방문객들이 스키 같은 레포츠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한적하게 눈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거나 마을 인근 산을 오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물론 봄이나 겨울 시즌에 비교하면 그 숫자는 적지만 겨울 산행을 즐기기 위해 제펠트를 찾는 산사람도 제법 보인다. 마을 주변에 늘어선 산은 모두 석회암 바위산으로, 겨울 등반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완벽한 장비를 갖춘 경우에만 출입이 허락된다. 제펠트 인 티롤의 자랑거리는 많지만 상징적인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선택하는 것이 마을 외곽에 위치한 제펠트 교회다. 엷은 연분홍색과 밝은 아이보리색으로 꾸민 제펠트 교회는 보는 순간 감탄할 정도로 예쁜 외관을 자랑한다.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모양새를 드러내는 교회로 유명하다. 제펠트 교회가 이런 모습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건물 자체가 멋진 것도 있지만 주변 풍광이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인스브루크를 ‘동계 스포츠의 메카’라고 칭한다. 도시를 둘러싼 알프스의 지형 탓에 어느 곳에서나 겨울 스포츠를 만끽할 수 있으며 근대 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슈나이더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명 선수들이 대부분 이 고장 출신이란 사실이 설득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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