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되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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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 2022

글 고성연 | 이미지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거리 예술의 반란

한때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그래피티 아트’가 미술관이나 일류 갤러리의 품 안으로 들어간 건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메인 스트림’에 속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소수인지라 여전히 차별받는다고 여겨질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주류’에 들지 못하는 작가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부지기수이며, 그 같은 분류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도 많다. 지금 서울에서는 대형 미술관과 글로벌 갤러리의 전시장을 각각 개성 있게 수놓은 스타급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인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와 배리 맥기(Barrg McGee)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둘 다 미국 캘리포니아(각각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50대의 아티스트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는데, 직접 만나보니 의외로 순둥순둥하고 수줍은 면모가 포착된다는 점에서도 닮은 구석이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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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_
<EYES OPEN, MINDS OPEN>展_ 롯데뮤지엄

그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마치 지문처럼 따라다니는 몇몇 작품을 보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만큼 유명한 거리 예술가(street artist) 셰퍼드 페어리. 1970년생으로 1980년대 말부터 골목에 스티커를 붙이고 길거리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권위와 관습, 부조리에 저항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는 장-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등을 잇는 거리 예술계의 2세대 작가로 분류될 수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내가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물론 스스로를 그저 ‘대중을 끌어당기는 아티스트(poplist)’라고 여긴다는 그의 부연 설명에 물음표를 다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구의 프로 레슬러 앙드레의 얼굴을 담은 화제의 스티커를 만든 것을 계기로 ‘빅 브러더’를 연상시키는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시리즈를 자신의 상징처럼 자리매김시킨 아티스트로 나중에는 여기에서 비롯된 인기 티셔츠 브랜드 ‘오베이’를 창립하기도 했으며, 가장 유명하게는 2008년 미국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 포스터 작업으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희망(Hope)’을 제작한 주인공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오바마 포스터의 바탕이 된 원본 사진을 둘러싼 통신사 AP와의 엄청난 저작권 소송으로 유명세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던 이력도 있다. ‘소송의 나라’ 미국 출신인 그는 자신의 첫 주요 미술관 전시를 코앞에 두고 경찰한테 체포당하고 당뇨를 앓고 있는데도 인슐린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평화와 반전,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 롯데뮤지엄에서는 일종의 문화 코드가 된 셰퍼드 페어리의 30년 넘는 예술 여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초기작부터 영상, 사진, 벽화, 스케이트보드 등 무려 4백70여 점의 작품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를 펼치고 있다. 특히 그의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 초기 시리즈와 자신이 즐겨 쓰는 도상을 활용해 서울 시내 건물 다섯 곳에 걸쳐 희망과 환경 등을 주제로 한 벽화 작업을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석촌호수 문화실험공간 호수, 성수동 피치스 도원,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이끄는 아티스트 컴퍼니 외벽 등이 포함돼 있다. 그의 인생 철학과 작업 세계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롯데뮤지엄 전시장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를 챙겨 볼 것을 권한다.
전시명 <EYES OPEN, MINDS OPEN>  전시 기간 11월 6일까지  홈페이지 http://lotte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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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맥기(Barry McGee)_Everyday Sunrise>展_ 페로탕 삼청

얼마 전 페로탕 삼청점에서 막을 올린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배리 맥기의 인상은 지난 7월 말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진행된 셰퍼드 페어리의 아티스트 토크에서 보였던 진솔하고 다정다감한 면면을 대했을 때보다 더 놀라웠다(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휴가 중에 짬을 내 들른 필자에게 그는 이렇게 자신의 전시를 (서울) 사람들이 보러 와줄 줄 몰랐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의 진중한 태도를 접하지 않았다면 이 말만 듣고는 ‘지나친 겸손’이다 못해 ‘가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배리 맥기는 거리와 미술관의 경계를 허문, 흔히 ‘주류’라 일컬어지는 미술계의 양지, 그것도 뮤지엄과 갤러리 양쪽에서 꾸준히 인정과 환영을 받아온 작가여서다. 로런스 린더의 평론 글을 인용하자면, 배리 맥기는 작업관에 있어 반체제적 태도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예술계의 표본과 기대에 순응하기를 거부해왔지만, 그럼에도 그가 화면에 담아내는 섬세한 선과 형태, 색감에는 경이로운 수준의 우아함과 표현력이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 오브제를 대하는 통상적인 방식을 뒤집고 ‘비주류’ 세계에서 얻은 복잡한 문화적 레퍼런스를 녹이는데도, 빼어난 미적 완성도와 창의적 기교 덕분에 ‘엘리트 시장’에서 소비되어왔다는 얘기다(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필자도 꽤 오래 간직해온 물건 중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눈이 축 늘어진 얼굴들(heads)이 새겨진 하드보드지 초대장이 있는데, 뭔가 위트 있으면서도 섬세한 표현력에 늘 매력을 느꼈지만 정작 그 작품의 창조자가 이렇듯 차분하고 수줍음 많은 캐릭터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셰퍼드 페어리에게 스케이트보드와 펑크록이 있듯, 배리 맥기에게는 ‘서핑(surfing)’에 대한 무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음은 명백히 보였다. 우연히 서핑 얘기를 꺼내자 그는 이미 양양에서 서핑을 하고 왔다면서 눈을 빛내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작은 도록에 귀여운 그래피티까지 그려주는 ‘친절한 맥기 씨’의 이번 전시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그가 어째서 서브컬처 지지자와 컬렉터, 그리고 평단의 사랑까지 두루두루 받는지를 어느 정도는 가늠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시명 배리 맥기(Barry McGee)_<Everyday Sunrise> 전시 기간 9월 8일까지 홈페이지 https://www.perrot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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