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바람, 그리고 빛으로 채운 소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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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2, 2025

강주희(객원 에디터)

MIMOCA_엑스포 이노쿠마(EXPO INOKUMA)

일본의 석재 산지로 유명한 가가와현 무레 마을.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선가 깡깡 울리는 망치 소리와 흙먼지 냄새가 희미하게 퍼진다. 그리고 길 끝, 거대한 2개의 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마치 이스터섬에 우뚝 서 있는 모아이 석상처럼 웅장하고 신비로운 모습이다. 혹시 이 고요한 시골 마을에서 한 조각가가 홀로 자신의 문명을 새기고 있었던 걸까? 바람과 돌, 빛과 그림자가 침묵 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곳.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 중 한 사람, 이사무 노구치의 아틀리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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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땅, 무레에서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1904~1988)는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3세에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학교에서 야간 강의를 들으며 조각을 익혔다. 1927년에는 현대 조각의 선구자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조각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각의 형태를 넘어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을 연구하며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나갔다. 1999년 개관한 ‘이사무 노구치 가든 뮤지엄 재팬(The Isamu Noguchi Garden Museum Japan)’은 그의 예술 세계를 아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부가 보이지 않게 담장을 두른 미술관 부지로 들어서면 1백50점 넘는 조각 작품이 안팎으로 펼쳐져 있다. 이사무 노구치가 생전에 머물던 일본식 가옥과 더불어 직접 설계한 널찍한 조각 정원 역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미술관 부지의 기초를 다지는 데만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왜 이 작은 시골 마을을 작업 공간으로 선택했을까? 그 시작은 1956년,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정원을 설계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경용 석재를 찾던 그는 시코쿠 지방에서 일본 3대 화강암 중 하나인 아지석을 발견했다. 특히 가가와현 다카마쓰에 있는 무레는 뛰어난 석공 기술과 오랜 채석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을 그저 돌 공급지가 아닌 ‘창작의 거점’으로 삼게 된 데는 화가 이노쿠마 겐이치로의 추천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노쿠마는 노구치에게 “여기에 좋은 돌이 있다”며 가가와현을 소개했고, 이후 노구치는 석공 이즈미 마사토시와 협업해 무레에 아틀리에를 세우고 작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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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한 조각가의 아틀리에

무레에서 보낸 20년은 이사무 노구치에게 가장 왕성한 창작 시기로, 돌의 물성에 몰입한 시간이었다. 그는 공간과의 관계를 고민하며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까지 조각의 일부로 여겼다. 아틀리에에 놓인 조각들은 생전 그가 직접 배치한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작가 고유의 철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Energy Void’(1971)는 일본 전통 창고를 개조해 조성한 전시실 쿠라(Kura)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총 길이 3.6m, 무게 17톤의 화강암 조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는 불교의 선(禪) 사상에서 영향을 받아 ‘공(空, void)’ 개념을 탐구하며, 비움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조각을 만들었다. 이러한 사유는 같은 공간에 있는 ‘Sun at Midnight’(1989)에도 이어진다. 붉은 돌과 검은 돌이 교차하며 낮과 밤, 빛과 어둠이 끝없이 순환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조각의 중심을 비움으로써, 존재와 공허가 공존하는 조각을 빚어냈다.
지난해 말 새롭게 문을 연 ‘라이팅 하우스’에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아카리(Akari)’ 조명 시리즈도 자리한다. 1951년, 일본 기후에서 전통 종이등 제작 방식을 접한 그는 닥나무 화지와 대나무 골조를 활용한 접이식 조명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일본어로 ‘빛’을 뜻하는 ‘아카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집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방, 다다미, 그리고 아카리뿐이다”라고 여러 번 말하며, 조명이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예술이 되기를 바랐다. 오늘날 아카리는 여전히 일본 장인들의 손에서 제작되며 빛을 밝히고 있다.
미술관 밖으로 나와 언덕을 오르면 조각 정원 ‘천국(Heaven)’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구치는 이곳을 ‘하늘에서 내려온 정원’처럼 구상했다. 돌들은 흐르는 강물처럼 배치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폭포처럼 보인다. 언덕 맨 위에는 거대한 고동빛 바위가 놓여 있다. 중앙에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구멍들을 더해, 멀리서 보면 백상아리 머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파트너였던 이즈미 마사토시는 이사무 노구치의 유해 일부를 이 돌 안에 안치했다. 젊은 시절, 조각의 과거와 미래를 탐구하며 세계를 떠돌던 그는 말년에 무레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돌을 깎았다. 그에게 조각은 대지와 연결되는 동시에 해방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그는 이곳에서 하나의 소우주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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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담는 조각

노구치의 아틀리에 곳곳에는 미완성 상태의 조각이 놓여 있다. 완성된 작품에는 그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지만, 미완의 조각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제 그를 대신해 시간과 땅이 조각을 매듭지어간다. 돌을 조각하는 과정에서는 지우거나 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각각의 바위는 모두 독창적이며, 완성되기 전까지 형태가 정해지지 않는다. 노구치는 자연이 남긴 흔적을 존중하며 작업했고, 그의 조각은 시간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어떤 작품은 수년간의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9년에 걸친 작업 끝에 탄생한 ‘Myo’(1966)도 그중 하나다.
시간이 흘러도 그의 조각들은 생동감을 간직하고 있다. 그가 삶과 자연을 연결했던 예술가임을 말해주는 증거가 아닐까. 특정한 예술 사조에 갇히지 않고, 우연과 실험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조형 미학을 만들어간 그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늘 경계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깎아낸 조각은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자연을 품은 조각, 그리고 조각을 품은 자연. 이사무 노구치에게 조각이란 인간을 내려다보는 기념비적 존재가 아니라, 공간과 호흡하며 세월을 함께 견디는 동반자였다. 나무는 사라져도, 돌은 남는다. 지금도 그의 조각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주소 3519 Murecho Mure, Takamatsu, Kagawa 761-0121
운영 시간 화·목·토요일 / 사전 예약제(인원 제한)
*투어는 약 1시간 소요
1~6월, 9~12월
10:00/13:00/15:00
7~8월 10:00/11:30
문의 +81 87-87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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