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최민욱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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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7, 2020

글 정성갑(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건축가와 집 ①_ ‘작은’ 기적, 창신동 주택 ‘세로로’


서울 종로 창신동에 있는 이 집은 도전 정신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아름답고 기능적인 협소 주택을 소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좋은 집이란 과연 어떤 집일까?” 하는 물음에도 넌지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최민욱 소장은 이 집으로 2020년 서울시 건축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30~40대 3명만 모이면 나오는 이야기가 ‘부동산’ 이슈다. 누군가는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화병을 얻는 만인의 레이싱. 가격은 끝 간 데 없이 오르고 수요는 들끓는 덕분에 시쳇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영끌) 투자를 하는 이도 많다. 그러는 사이 아파트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먼 존재가 되어간다. 건축가 최민욱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 친구와 살 집을 찾아야 하는데, 손에 쥔 돈으로는 도무지 엄두가 안 났다. 이런저런 방법을 모색하던 그는 직접 집을 짓기로 결정한다. 집을 짓는다고 하면 으레 엄청나게 큰 돈이 들어가는 줄로 알지만, 어떤 땅에 어떤 집을 짓느냐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건축가 최민욱이 각 층수 면적이 5평 남짓인 5층짜리 협소 주택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약 3억 원. 취재를 두 차례나 했음에도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와 닿는 금액인데, 세부 비용을 따져보면 땅을 사는 데 1억원, 집을 올리는 데 2억원이 들었다. 부지는 10평. 평당 가격은 약 1천만원이었다. 서울에 평당 매매 가격이 1천만원인 땅이 있다니 그것부터 놀라웠는데, 그 땅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발품을 팔아야 했다. “땅을 진짜 많이 보러 다녔어요. 집을 올린 창신동 일대는 재개발 이슈가 있다가 흐지부지된 곳이라 가격이 낮았어요. 부동산을 통해 그 땅을 처음 알게 됐는데 부동산 사장님도 10평 땅에 무슨 집을 짓겠냐며 놀라시더라고요. ‘쓸모없는 땅’이라 간주되니 가격이 더 쌌죠.” 꼼꼼히 살펴보니 10평 땅은 이점도 있었다. 건축법상에는 옆에 있는 건물의 일조권을 보호하기 위해 인접 대지 경계선에서 일정 부분을 띄워야 하는 일조권사선제한이란 규정이 있는데, 다행히 주변에 맞닿은 건물이 없어 건물을 5층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각 층 면적이 5평인 5층짜리 집이 올라갔다. “그게 가능해?” 하고 긴가민가하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끝내 집을 올리자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단다. “최 소장, 돈 없어서 집 짓고 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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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크기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세로로’가 완공된 것은 작년 3월. 세로로 길쭉한 흰색의 깔끔한 집은 완공 소식을 알리자마자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떻게 이런 곳에 집을 짓느냐는 걱정이 무색하게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5층에는 작게나마 발코니도 만들었는데, 부부가 이곳에 나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드론으로 찍은 사진은 탄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집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주택가 골목을 지나 제법 경사가 진 오르막을 오르니 저 위에 흰색 집이 눈에 들어왔다. 밝고 훤했다. 건물 뒤로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 넘실대는 모습도 근사했다. 인접한 땅을 요령 있게 잘 사용하면 차를 2대나 댈 수 있다는 사실도. 계단을 올라 2층에서 벨을 눌렀다. 깔끔한 인상의 최민욱 소장이 문을 열어주었고, 자연스레 층별 구조와 안내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각 층 공간이 넓다고는 못하겠다. 좁긴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층에 있는 넓은 테이블에 앉아 숨을 고르고 차분히 물을 마시고 있자니 점점 아늑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도 2개나 있었고, 그중 한 곳에는 발을 쭉 뻗을 수 있는 욕조도 설치되어 있었다. 욕실의 사각 창문으로는 초록 숲이 아른거렸다. 침실도 근사했다. 맞은편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와락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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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매력은 역시 풍광이었다. 2층부터 5층까지 모든 공간에서 서울성곽 아래쪽 잡목림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숲 쪽으로 최대한 크게 낸 창으로는 비탈을 빼곡하게 채운 나무가 넘실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뻥 뚫린 전망은 시야를 확장하면서 실제보다 더 넓은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을 안긴다. 공간을 최대한 넓게 쓰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략과 노력도 곳곳에 숨어 있다. “저희 집에 있는 가구는 거의 모두 이케아 제품이에요. 설계를 할 때부터 이케아에서 가구를 둘러보고 부분부분 치수까지 정확히 체크한 다음, 거기에 맞춰 공간을 구획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간이 안 나오니까요.(웃음) 협소 주택을 지을 때는 가구 반입도 고려해야 해요. 이 부분을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집을 다 지어놓고 가구를 못 들여놓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시스템 창호를 통해 가구를 들여놨어요. 독일에 살라만더라고 시스템 창호 브랜드가 있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창호 중 거의 유일하게 가운데에 바(bar)가 없어요. 창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리는 거죠. 단열 성능도 뛰어나고요.”

집을 짓다 보면 단열재를 집 안에 넣느냐, 바깥으로 대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집이 작을수록 건물 바깥으로 단열재를 두르는 외단열을 권하는데,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단열재 부분을 ‘면적’에 포함시키지 않아 그만큼 내부를 넓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단열과 비교해 단열 성능도 더 뛰어나다. “외단열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 저는 스터코 플렉스(Stucco Flex)’라는 재료를 썼어요. 탄성 있는 실리콘 계열 재질이죠. 시간이 지나면 집 외부에 조금씩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재질은 고무줄처럼 늘어나서 그런 크랙을 효과적으로 방지해줘요. 그 자체로 마감재를 대신해 따로 마무리 공정이 필요 없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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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이 가장 좋은 집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가 어떻게 이 작은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어떤 확신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아무리 건축가라지만 5평이라는 땅은 그 역시 경험한 적이 없는 미지의 크기였을 테니. “한동안 줄자를 끼고 다녔어요. 5평이 대체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작은 공간에 가면 가로세로 길이를 재면서 그 크기를 몸으로 느껴보려고 노력했어요. 땅을 고르고 기초공사를 한 뒤 콘크리트를 부었을 때는 수시로 현장을 드나들며 걸어보고, 앉아보고, 둘러보고 하면서 여기에 싱크대가 들어가니까, 하는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사실 저희에게 중요한 건 큰 집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찾는 거였어요. 연애 시절부터 우리는 자연을 좋아했어요. 유명한 호텔에 가는 것보다 와인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 공원으로 산책하는걸 더 즐겼죠. 그런 성격과 취향 때문에라도 이 집이 좋아요. 집에 둘 수 있는 가장 큰 식탁을 둔 것도 창문으로 숲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친구들도 자주 모이고요.”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만인의 연인인 듯 보이지만 모두가 그 형태의 집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최민욱 소장 부부도 마찬가지. “집 바로 뒤로 올라가면 서울성곽길이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요. 10분만 걸으면 낙산공원까지 가 닿지요. 좀 더 걸어가면 성북동도 나오고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도 갈 수 있어요. 일요일에는 천천히 걸어서 광장시장에 가요.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죠. 지난 주에도 거기에 가서 빈대떡을 사 먹고 왔네요.(웃음) 코로나 시대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데, 이런 집에 살고 있어서 그나마 덜 답답하고 좋은 것 같아요. 공원 산책 한번 마음 편히 못하고 집 안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울했을 것 같습니다.”
단독주택에 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쌓인다. 그 이야기의 주연이 새나 고양이, 강아지일 때도 많다. ‘세로로’도 마찬가지. 최근 집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최민욱 소장 부부와 ‘밀당’을 하던 고양이가 아예 입주해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부부는 이 고양이에게 본인들이 좋아하는 와이너리에서 모티브를 얻어 ‘꽁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레이블 중 하나일 ‘로마네 꽁띠’의 줄임말이다. 부부는 최근 꽁띠를 중심에 두고 인테리어까지 바꿨다. 2층을 서재 겸 사무실로 썼는데, 집기를 새로 구한 사무실로 옮기고 그 빈자리에 꽁띠를 위해 캣 타워를 넣어준 것이다. 최민욱 소장은 “가족 구성원이 바뀌었으니 마땅히 그래야죠”라며 웃었다. 꽁띠랑 같이 창밖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에 대해서도 자랑을 했다.
창신동에 협소 주택을 지어 들어온 지도 1년 6개월이 넘었다. 단독주택에 살아보니 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시간을 꿈꾸며, 어떤 분위기에 머물 때 더 편안하고 행복한지. 다음 집에 대해서도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두 가지 꿈이 생겼어요. 하나는 좀 더 큰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에요. 가끔 집에서라도 운동을 하며 몸을 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공간이 좁으니 불편할 때가 있더라고요. 마당과 옥상이 있었으면 꽃도 가꾸고 고기도 구워 먹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또 다른 꿈은 그 반대 지점인데, 지금보다 더 작은 집을 설계해보고 싶어요. 집 면적이 15평 미만이면 주차장을 넣지 않아도 되거든요. 작은 집에 살아보니 전망만 시원하게 뚫리면 크게 답답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집을 짓는 데 약 3억원이 들었는데, 그렇게 작은 집이라면 1억 후반대로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 “간단합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이지요.” 아파트가 맞으면 아파트가 최고의 집이고, 한옥에서 행복하다면 한옥이 나를 위한 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약 69%가 빌라와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산다. 최민욱 소장처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 때 아파트 값도 꺾일 듯한데, 한국처럼 노후의 삶이 불안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와 결단, 그리고 용기는 반갑기 그지없다. 이 땅의 청춘들에게 집에 대한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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