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경제 시대, 別난 매력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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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 2023

글 고성연

Mona(Museum of Old and New Art)를 가다_상(上)

남반구의 거대한 섬나라 오스트레일리아 최남단에 자리한 태즈메이니아주(州)는 남극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탓인지 아주 이름난 여행지로 각인되어 있지는 않다. 전체 면적의 40% 가까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풍요로운 ‘자산’인 데다 서안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날씨가 따스하고 온화한 편이고 ‘죽기 전에 가봐야 한다’ 는 빼어난 트레킹 코스와 해변을 지녔는데도 말이다(물론 오지 탐험가나 트레커들 사이에서는 명성 높다). 워낙 광활한 땅덩어리를 소유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작지만 면적이 제주도의 34배(62,409km2 )나 되는데, 인구는 고작 50만 명 남짓하다. 그래서인지 예전 여행기를 보면 도시의 활기를 사랑하는 이방인들에게는 태즈메이니아의 주도(州都)인 호바트에 가도 ‘지나치게 한산하다’는 푸념이 나오곤 했다. 그런데 2011년 호바트에 모나(Mona)라는 복합 공간이 생기면서 문화 예술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 천재 괴짜의 발상에서 비롯된 이 독특한 아트 센터의 등장이 호바트를 지구촌 예술 애호가들의 또 다른 성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별나게 튀면서 매혹이 넘치는 모나를 소개한다.


필자가 자못 긴 여정 끝에 호바트를 찾은 건 오스트레일리아 현지에서 한여름으로 치닫기 전 적당히 날씨가 좋은 지난 11월 말이었다. 서울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해 시드니로 가서 시드니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다시 짧은 비행을 거쳤는데 ‘만석’이었고, 그렇게 도착한 호바트 공항도 꽤나 복작거렸다. 각국이 저마다 ‘엔데믹’을 선언한 이래 항공편은 정상 궤도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보고자 하는 여행 수요는 날이 갈수록 늘어난 탓에, 지난해 세계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던 ‘수급이 어긋난’ 풍경이었다. 그래도 주도(州都)인 호바트 시내는 유유자적, 느릿느릿 돌아다니기 딱 좋은 낮은 유동 인구 밀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 따로 떨어져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섬인 데다 태곳적 자연미를 거의 그대로 품은 듯한 천혜의 풍경 때문인지 태즈메이니아는 언뜻 제주를 떠올리게 했다. 때 묻지 않은 공기, 차분한 분위기와 그들만의 문화가 느껴진다는 점에서도 살짝 닮은꼴로 다가왔다. 물론 태즈메이니아주(州) 면적은 제주와 비교 불가(제주의 약 34배)지만 말이다(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정작 가장 작은 주에 속한다니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의 덩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필자의 목적지인 모나(Mona)는 호바트 도심에서 페리나 자동차로 30분 내로 도달할 수 있는 베리데일(Berriedale)이라는 마을에 터를 잡고 있다. 바로 가려면 호바트 중심가의 프랭클린 부두로 향해야 했겠지만, 그날은 모나가 문을 닫은 날이었던 터라 시내 구경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지구촌에서 손꼽을 만큼 맛난 커피를 섭렵하며 요기를 한 뒤 공원, 미술관 등을 돌아다니며 역사적 자취도 훑어봤다. 태즈메이니아는 1642년 아벌 타스만(Abel Tasman)이 발견했지만 두 세기 동안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가 프랑스가 남극 탐험을 위한 기지 후보로 노림수를 두자, 1788년 이미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 진을 치고 있던(1788년 1월 자국의 죄수들과 군인 등으로 이뤄진 선단을 이끌고 시드니항에 도착했다) 영국에서는 부랴부랴 이주민을 보냈다. 역시 죄수와 교도관 등이 주가 되는 유형(流刑) 식민지로 낙점됐기에 태즈메이니아 역시 무자비한 찬탈의 희생양이 됐고, 동떨어진 지리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더 소외되고 무시를 당하는 수난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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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바트의 풍경과 브랜드 인지도를 바꾼 ‘잇 스페이스’의 탄생
이렇듯 주로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휴양지로 삼거나 열혈 트레커들이 찾는 ‘숨겨진 보석’ 같았던 변방의 태즈메이니아에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만한 세련미를 갖춘 문화 예술 플랫폼이 생겨난 건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그것도 정부 같은 공공 차원이나 대기업 오너가 아니라 태즈메이니아의 서민 가정에서 자라나 자수성가한 개인이 주도해 세운 사립 미술관이라니, 세인의 이목을 끈 게 당연했다. 더욱이 그 설립자가 모나에 쏟아부은 수천만 달러의 자금이 ‘도박’으로 벌어들인 돈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뉴스를 뜨겁게 장식할 만했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월시(David Walsh)는 1961년생으로 태즈메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Tasmania)에서 수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는(중퇴) 친구들과 도박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개발했는데, 이 시스템이 거의 타짜의 솜씨에 버금갔는지 ‘잭팟’ 퍼레이드를 이어가며 큰돈을 벌어들인다. 이 ‘크루’에게 전 세계적으로 카지노 출입 금지령이 내려지자 경마 등 다른 판으로 옮겨 또다시 목돈을 낚아챈다. 이 정도면 그저 흔한 세기의 도박꾼이나 특이한 자산가 정도로 불렸을 테지만,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의외의(?) 노선을 택한다. 이번에는 ‘예술’에 ‘올인’한 것이다. 자신이 성장한 마을 인근에 일찌감치 땅을 사두고 미술관과 와이너리를 만든 그는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거쳐 2011년 1월 모나를 탄생시킨다. ‘Museum of Old and New Art’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고미술, 유적과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와이너리, 양조장, 미식(레스토랑), 숙박 시설 등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다. 전 세계의 미술 애호가, 미식가, 트렌드세터의 발길을 호바트로 쏠리게 한 ‘잇(it) 스페이스’의 등장이었다.
혹자는 이 지점에서 그저 예술과 식도락, 건축의 조합만으로 이 변방의 아트 스페이스가 그렇게까지 부각될 일인가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그건 필자도 지닌 선입견이기도 했다). 아마도 개관할 당시부터 ‘Sex & Death’라는 주제에 헌정하는 미술관임을 노골적으로 명시한 면모를 위시해 동물 사체 전시라든지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의 수집같은 그간의 이력 탓에 ‘시선 끌기’ 수법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필자에게도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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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함과 재기 발랄함, 그리고 위로가 공존하는 아트 센터
그런데 짧았지만 밀도 높은 모나로의 여정은 단순히 영민한 전략을 넘어서 체험 경제 시대로 일컬어지는 21세기에 부합하는 브랜딩의 정수를 느끼게 해줬다. 호바트 중심가 부두와 모나를 오가면서 방문객들에게 별천지를 누비는 감흥을 주는 페리(ferry) 라이드부터 시작해 고층 건물 없이 지하로 계속 파고들어가는 듯 독특한 전시장 구조, 시원시원하게 배치된 야외의 작업을 위시해 뮤지엄 본관의 작품에도 이렇다 할 레이블링(labelling)을 반영하지 않아 ‘편견’과 ‘편향’을 차단하는, 네모반듯하고 하얀 화이트 큐브의 정형성이 거의 부재한 실내 디자인이 차별된 경험을 선사한다. 또 은밀한 동굴이나 살롱 같은 공간에 ‘19금 콘텐츠’ 를 비롯해 ‘하드코어’ 현대미술 작업이 여기저기 눈에 띄지만 동시에 때로 위안과 치유의 마법을 건네는 명상적인 작품(예컨대 ‘파로’라는 파인 다이닝 공간을 둔 전시장 건물에서 빛의 대가로 꼽히는 제임스 터렐의 유일무이한 작업을 접할 수 있다)의 존재는 묘한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뻔한 듯 뻔하지 않다. 여러모로 여유가 된다면 전시만 보는 데 그치지 말고 단지 내에 8채만 존재하는 숙박 시설인 ‘모나 파빌리온’을 경험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지역 건축가에 영감받아 저마다 다른 이름이 붙은 이 파빌리온들은 모나 곁을 흐르는 더웬트(Derwent)강을 바라보며 심신을 달랠 수 있는 숲속의 작은 요새 같은 오라를 풍긴다. 숙소에는 모나의 2011년 초 개관전<모나니즘(Monanism)>과 동명인 소장품 설명서를 비롯해 데이비드 월시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아이템이 구비되어 있다. 와이너리 탐방은 ‘덤’이라고 하기에는 매력이 흘러넘치므로,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면 와인이라도 맛보기를 추천한다(모나의 주 수입원인 자체 와인 중에는 1잔이면 치사량에 가까운 필자로 하여금 거의 1병을 비우게 한 놀라운 경우도 있었다).
2011년 오픈한 이래 모나를 찾은 방문객은 어림잡아 수백만 명에 이른다. 팬데믹 전 기준으로(코로나19는 당연히 태즈메이니아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모나도 한동안 문을 닫았다) 1억3천만 달러가 넘는 경제적 이득을 불러왔다고 추산되며(2017~2018년) 당시 직간접적으로 고용한 인원도 1천3백 명 규모로 추정됐다. 작은 도시에 창출했다는 점에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에 곧잘 비견된다. 물론 수치에서는 빌바오에 밀리겠지만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를 등에 업지 않았다는 점과 지리적 접근성의 열세 등을 감안하면 ‘모나 효과(Mona effect)’ 역시 사뭇 경이롭다. ‘애정’하는 자신의 고향에 지속 가능한 ‘선물’을 공급하면서도 비즈니스 브랜딩에서도 승승장구하는 데이비드 월시에 ‘천재 괴짜 사업가’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월시의 컬렉션 가치가 벌써 1억 달러 이상이라는 보도도 나온 걸 보면 그의 ‘타짜’ 감각은 미술품 투자에서도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모나의 주요 소장품과 흥미진진한 기획전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자세히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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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Museum of Old and New Art)를 가다]

01. Mona(Museum of Old and New Art)를 가다_상(上) 체험 경제 시대, 別난 매력을 품다  보러 가기
02. Mona(Museum of Old and New Art)를 가다_하(下) 괴짜 컬렉터의 역발상이 낳은 원더랜드의 진면목은?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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