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Scenes ‘휴먼 코미디’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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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4, 2023

글 김연우(독립 큐레이터)

Kiaf·Frieze Seoul 2023
Interview with _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 1952~)만큼 다양하게 해석되는 작가가 있을까. 그는 직접 관찰하거나 미술사적 레퍼런스에서 차용한 상반된 이미지를 화면에 구성하며 팝아트, 신표현주의,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고유한 스타일의 페인팅을 선보여왔다. 이는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범람하는 이미지의 차용, 전복, 해체와 재구성을 탐구한 픽처스 제너레이션(Pictures Generation)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1980년대부터 지속해온 작업 경향으로 보인다. 1987년, 불과 서른넷의 나이로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최연소 미드 커리어 아티스트로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영예를 누린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지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진화해온 그의 작업은 최근 몇 년간 몰두한 ‘Tree of Life’ 연작에서 아낌없이 매력을 펼친다. 얼핏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미지가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는 그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는 유지한 채, 유머러스함마저 풍기는 만화풍 인물들이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작업이다. 이 시리즈의 최신작을 선보인 개인전 <World People>을 위해 리만머핀 서울을 찾은 작가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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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살레의 작품에는 마치 연극 무대의 한순간처럼 보이는 장면이 나타나 있다. 화면 속 인물들은 분명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 듯하지만, 그게 무엇일지 바로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리만머핀 서울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 ‘Tree of Life’ 연작에서 살레의 작은 연극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그림 속 인물들은 누구일까. 이들의 캐스팅은 그가 ‘신이 주신 선물’이라 표현한 <뉴요커> 잡지의 전설적인 삽화가 피터 아르노(Peter Arno, 1904~1968)와의 운명적인 조우에서 비롯되었다. “평소 바우하우스의 이상이 대중매체의 광고나 그래픽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던 1930~1960년대 잡지 속 광고, 그래픽 등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당시 매해 발간되던, 그해 최고로 선정된 디자인을 보여주는 잡지가 있어요. 면도 크림이었는지 향수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제품 광고 페이지에서 아주 독창적으로 그려진 인물 캐릭터를 발견했습니다. 단순한 광고를 넘어 ‘예술 작품과도 같은 중력감’을 느꼈죠. 그것이 아르노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아르노의 화풍에 나타나는 세련미와 인물들이 지닌 입체감에서 영감받아 탄생했다.
한두 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화면의 중앙을 관통하는 ‘생명의 나무’ 역시 시선을 끈다. 살레가 예전부터 구상하던 이번 연작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된 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앙이 닥쳐왔을 즈음이었다. 전례 없던 고립의 시대, 뉴욕주 이스트햄프턴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오로지 작업에 임한 농축된 시간의 결과물로 탄생한 작품이 ‘Tree of Life’ 연작이다. 이쯤 되면 ‘나무’라는 도상이 지닌 상징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창조의 근원이자 수많은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는 ‘생명의 나무’가 마침 이 시기의 작업에 등장한 게 결코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는 질문에, 작가는 참으로 그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우리가 처한 안타깝고 슬픈, 독성 가득한 현실에서 나무가 지닌 은유적인 이미지를 떠올린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의미를 제한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무라는 표상은 단순히 당시 시대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은유의 진동이 은은하게 퍼질 수는 있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회화에 접근하는 방식은 특정한 순간이나 사건에 대한 반응을 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간 살레는 <아트 포럼>,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모던 페인터스> 등 미술 잡지에 게재된 수많은 에세이와 2016년 출간한 저서 <How to See: Looking, Talking and Thinking About Art>를 통해 예술을 감상하는 시각에 대한 그의 관점을 내비쳐왔다. 한결같은 점은, 어떤 주제에 대한 의미를 단정 짓지 않는다는 것. 사실 그의 주제는 ‘보는 것(looking)’ 자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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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에 대한 살레의 관심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암실에서 사진을 배웠으며, 아홉 살에는 동네 아트 스쿨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지역신문의 광고 레이아웃과 디자인 관련 일을 하면서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서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이미지’ 만드는 법을 저절로 익혔으리라 생각된다(살레의 작품에 의도적으로 숨겨진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의 페인팅을 보다 자세히 들여보게 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살레의 예전 작업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화면 구획’ 또한 그의 작품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다. 중앙의 나무를 중심으로 상반된 행동을 하고 있는 좌우의 인물들과 하단의 패널로 분할된 화면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몇몇 페인팅에서 하단부는 독립된 캔버스를 이어 붙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15~16세기 종교화의 패널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프리델라 패널(predella panel)은 보다 추상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미지가 팽팽하게 대치하는 화면 안에서 눈길이 머무는 대로 그 흐름에 시선을 맡기다 보면 곧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우리가 늘 하고 있는, 동시에 다양한 양상을 스캔하고 이를 연관시켜 하나로 해석하는 우리 눈의 이미지 인식 과정을 따라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살레의 작품을 들여다보자. 화면 속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표정과 행동을 보고 있자니 이들 사이를 오가는 생략된 말풍선 속 대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특정한 스토리나 상황을 제시하는 대신 살레는 그의 작품에 담긴 내러티브가 ‘우스움(funny)’이라고 전했다. “내러티브는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 어떤 회화에든 존재하는 요소입니다. 추상화에도 존재하죠. 어떻게 그림이 만들어졌는가, 왜 이러한 형상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감정적인 느낌 또한 모두 내러티브입니다. 남녀가 만났을 때 오해가 발생하고, 또 그걸 푸는 과정에서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는, 전통적인 TV 시트콤 같은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단부는 상단에 복잡하게 나타난 여러 행동과 대비되는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위아래 패널이 또 다른 의미나, 아예 정반대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이를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건 하나의 페인팅이고, 이런 여러 요소가 하나의 작품에서 서로 부딪히지만 조화롭게 공존하며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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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우리는 종종 예술 작품을 즐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행위인 ‘보는 것’의 힘을 망각한다. 살레의 말처럼 작품의 의미를 ‘배우는 것’보다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기반으로 작품을 ‘흡수’할 때, 데이비드 살레의 페인팅은 희로애락이 담긴 인간의 삶을 펼쳐내는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생이 참 멋지지 아니한가, 인생 참 재미있지 아니한가, 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답하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레의 휴먼 드라마를 엿볼 수 있는 <David Salle: World People> 전시는 한남동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10월 28일까지 계속된다.




[Kiaf X Frieze Seou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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