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에서는 결이 사뭇 달라졌다. 앞선 모차르트의 밝고 투명한 음색 대신 보다 짙고 응축된 표현이 두드러졌다. 레이 첸은 선율의 흐름을 길게 가져가며 작품 특유의 서정성과 긴장을 자연스럽게 부각시켰다. 바흐로 시작해 사라사테의 두 작품으로 이어진 2부 공연에서는 특유의 현란한 기교를 펼치며 리듬과 에너지의 불꽃을 쉴 새 없이 터뜨렸다. 음을 밀고 당기는 미세한 텐션의 조절은 관객이 어느 순간 숨을 참은 채 그의 활이 그리는 유려한 움직임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으로 치달은 신들린 듯한 후반부에서는 그 긴장이 극단까지 밀려 올라가며 폭포수 같은 박수를 끌어냈다. 세 차례 앙코르를 선사하며 마지막까지 팬 서비스에 충실한 레이 첸의 모습은, 오늘날 음악가에게 ‘진정성’은 점점 더 복합적인 개념이 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끌었다.
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출신의 대만계 호주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 Decca Records 2024
※ 1~2 이미지 제공_롯데문화재단
올 하반기 ‘10 for 10’의 중심에는 조성진의 현재가 있다. 롯데콘서트홀이 2021년부터 운영해온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조성진은 7월 두 차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입체적으로 펼친다. 2016년 개관 직후 국내 첫 단독 리사이틀을 이곳에서 열었던 만큼 롯데콘서트홀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7월 14일 열리는 체임버 콘서트에서는 세계 정상급 음악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브람스 실내악의 깊이를 탐구하는 무대를 꾸린다.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가시모토 다이신을 비롯해 클라리넷 수석 벤젤 푹스, 호른 수석 슈테판 도어, 비올리스트 박경민,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 등이 함께한다. 이어 7월 19일 리사이틀에서는 바흐, 쇤베르크, 슈만, 쇼팽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새 레퍼토리에 대한 음악적 탐색을 선보인다. 실내악과 독주라는 서로 다른 형식을 통해 만나는 이 공연은 이번 시즌이 지향하는 ‘연결’의 의미를 보여준다.
하반기 라인업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만나는 무대로도 이어진다. 10월 22일에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와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한국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시벨리우스 해석의 전통을 이어온 사라스테와 헬싱키 필하모닉의 만남은 북유럽 음악 특유의 색채를 만날 드문 기회다. 11월 17일과 18일에는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유토피아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오른다. 쿠렌치스는 극단적 해석과 독창적 사운드로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반면 지나친 해석적 개입이라는 비판 역시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시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제성을 지닌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의 등장에서 개관 10주년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실험성과 확장성이 엿보인다. 이어 11월 21일과 22일에는 샤를 뒤투아, 마르타 아르헤리치, KBS교향악단이 함께하는 무대가 기다린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아르헤리치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오랜 세월 음악적 동반자였던 지휘자 뒤투아와의 만남은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호흡을 직접 느낄 기회다.
4 오는 11월 내한 공연이 예정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거장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무대에서 오랫동안 협업해온 지휘자 샤를 뒤투아, 그리고 KBS 교향악단이 한 무대에 선다. Ⓒ Adriano Heitman
※ 3~4 이미지 제공_롯데문화재단
경계를 넓히는 또 하나의 축은 여름의 마지막을 수놓을 프로그램 ‘클래식 레볼루션’이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시작한 이 축제는 초기에는 특정 작곡가를 중심으로 음악 세계를 탐구했다면, 2024년을 기점으로 주제와 연주자를 조명하는 축제로 방향을 바꾸어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음악감독을 맡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이번에 제시한 주제는 ‘뿌리(origin)’다. 민속음악과 문화적 전통이 클래식 작품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음악 언어로 이어졌는지 살펴보는 이번 축제에는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들이 함께한다. 특히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김선욱이 체임버 뮤직 콘서트에 참여하며, 카바코스와 키릴 게르스타인, 수원시립교향악단이 함께하는 폐막 공연으로 축제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여기에 젊은 음악가와 관객의 새로운 만남을 모색하는 ‘엘 콘서트’, 그리고 스토리텔링과 함께 파이프오르간을 탐구하는 ‘오르간 오딧세이’까지 더해진다. 롯데콘서트홀의 새로운 10년은 거장과 신예, 전통과 실험, 공연장과 관객을 잇는 폭넓은 항로 위에서 계속된다.
6 해설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파이프오르간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는 롯데콘서트홀의 시그너처 프로그램 ‘오르간 오딧세이’에서 샌드아트와 결합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5~6 이미지 제공_롯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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