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세상에서 멍청해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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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7, 2015

에디터 고성연

IT업계의 구루 케빈 켈리는 그가  ‘테크늄(technium)’ 이라 부르는 거대한 기술의 생태계가 생물체처럼 고유의 성향을 갖고 진화의 움직임을 반복한다고 주장했다. 첨단 스마트 세상에서 오히려 인간은 멍청해지는 폐해도 자주 거론되지만 켈리의 말처럼 적어도 우리에겐 기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선택권’ 이 있다. 스스로 기술에 파묻히지 않도록 부단히 ‘절제’와  ‘사색’을 모색하고 디지털 격차에서 비롯된 ‘다름’을 인정하며 이런 눈부신 흐름 속에 소외된 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보 유출의 늪에서 우리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강한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기술은 그것이 발명되기 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만 기술이다.” _앨런 케이
네댓 살 된 꼬마가 아이패드를 갖고 놀면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기기를 익숙한 장난감처럼 ‘섭렵’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의 발언이 절로 뇌리를 강타한다. 스마트 기기를 다루는 건 ‘디지털 라이프’가 공기처럼 스며 있는 요즘 세상의 아이들에게는 몹시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일이다. 냉장고를 사용하는 법이나 전기 주전자로 물 끓이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되듯이 말이다. 모든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세상이니 디지털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뉴노멀’이니 생활 속 사물들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사물 인터넷’이니 하는 시대의 흐름을 일컫는 표현들도 따라잡을라치면 정신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이런 단어들의 홍수가 우리 삶을 지배하도록 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흐름을 주도하는 스마트 세대가 ‘정말 스마트한가’에 대한 의견은 상당히 첨예하게 엇갈린다.

인류 역사상 똑똑한 세대 vs 가장 멍청한 세대

우리는 이미 소위 ‘Y세대(보통 1977년에서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불만을 꽤 많이 접해왔다. 산만하고, 자제력이 부족하고, ‘스펙’이 좋더라도 창의성은 떨어지며, 인사 고과가 나쁘면 엄마가 대신 회사 상사에게 따질 정도로 응석받이라는 게 주 내용이다. 심지어는 문자나 웹 2.0, 페이스북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요즘 청소년들은 ‘지성’을 쌓을 기반을 잃고 있다는 논지를 담은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책을 내놓은 학자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 에모리대 영문과 교수 마크 바우어라인은 1980~90년대의 디지털 혁명은 손쉽고 빠르게 정보와 상품, 오락과 친구를 접할 수 있게 해줬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의 지적 능력은 미디어나 전자 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멍청한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언제나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는’ 또래 집단에 함몰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은둔과 독서, 사색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결국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빈곤해진다는 논리다.
그런가 하면 이와 극적으로 대조되는 주장을 펼치는 지성인도 있다. 경영 전략가이자 IT 분야 권위자 돈 탭스콧은 디지털 기술을 공기처럼 편안하게 호흡하는 ‘넷 세대(net generation)’를 누구보다 자유로움을 중시하지만 현명하며 합리적인 변화와 협업을 추구할 줄 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오히려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성장해 최초로 성인이 된 넷 세대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기성세대의 편견으로 비판론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책에서 디지털 기술의 수용과 습득 측면에서 넷 세대가 월등히 우월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들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보다 뚜렷하게 잘하는 영역이 생겼다며, 이런 현상을 가리켜 ‘세대 차’가 아니라 한 바퀴는 앞서 있다는 의미로 ‘세대 덮기(generation lap)’가 존재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세대 간의 오해는 항상 존재한다

바우어라인과 탭스콧이 이처럼 양 극단으로 나뉘는 주장을 펼치며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벌써 6~7년 전이다. 이들의 엇갈린 견해는 온도 차는 있겠지만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쟁점이다. 사실 넷 세대인 Y세대에서 ‘최고 연령층’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당시 사회생활에 발을 들인 상태였는데, 이들은 이제 상당수가 성인이 됐고 일터에 진출한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X세대 보스나 선배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개탄하는 내용은 고대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담겨 있다지만 오늘날에도 Y세대나 그보다 더 어린 Z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편견을 지닌 이들은 많다. 특히 조직 내에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모두 경험하며 성장한 X세대는 Y세대를 다분히 이해하면서도 개인 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들의 성향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빈번하다. 흥미롭게도 영국의 한 경영대학원에서는 실제로 회사에서 상사(boss)와 일을 대하는 X세대와 Y세대의 차이에 대한 시험 문제가 나온 적도 있었는데, 정답은 따로 없지만 주어진 상황은 대강 이렇다.
평소 Y세대 후배가 스마트폰을 끼고 살다시피 하며 끊임없이 SNS를 하는 데 대해, 그리고 일을 대강 하는 데 불만이 있던 X세대 직속 상사. 하지만 Y세대 후배는 반대로 선배가 일 처리에 있어 꼼꼼하고 유능하긴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방식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여겼다. Y세대는 SNS로 ‘번개팅’을 하고는 회사 로비에서 또래 동료들과 이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X세대 선배는 그런 후배를 보고는 할 일이 태산인데, 또 저러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 어느 날 X세대 관리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Y세대 후배가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회사 대표를 따라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하다가 “그래, 한번 해봐~” 라는 격려와 지지를 얻어낸 것이다. 직속 상사인 자신은 거치지도 않고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로 멍청해지고 있는 걸까?

이 에피소드에서 X세대가 충격을 받은 건 ‘허탈해서’였다. 후배의 아이디어 자체가 월등히 빼어난 것도 아니었고, 한번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 자체에 대한 질투를 느낀 것도 아니었다.다만 그런 얘기를 임원한테 스스럼없이 꺼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자신이 10년 차가 되기 전까지는 정돈도 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상사와 독대하면서 가볍게 꺼낸다는 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기에, 묘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시험 문제를 놓고 X세대와 Y세대가 섞여 있는,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던 학생들도 분분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그런 상황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했다. 은근히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Y세대의 당돌함에 당황하는 X세대, 그리고 그런 X세대의 태도를 별로 개의치 않는 Y세대의 모습이 교차하는 장면이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꽤 자주 연출됐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인 세대 차라는 요소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개개인의 차이도 크겠지만 다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이처럼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는 경험을 겪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X세대는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면서도 과연 인류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자연스레 걱정을 하고, 혹시나 이런 변화가 한창 성장하고 있는 더 어린 세대의 영혼을 멍들게 하지는 않는지, 아이들이 극도로 멍청하고 인간미 없어지는 건 아닌지도 우려하게 된다. 바로 X세대의 자녀 세대인 Z세대야말로 스마트 기기를 밥 먹듯이 자주, 쉽게 다루고 영어 공부와 온라인 게임을 거의 ‘기본’으로 하고 자라는 디지털 키즈들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니콜라스 카 같은 저술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스마트 미디어가 독서나 일, 사색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뇌가 퇴화한다며 “구글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라고도 주장하지 않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어우러지는 풍경의 위대함

독서를 하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분명 큰 문제이고, 디지털 세상은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감독이 ‘인생의 낭비’라고 했던 SNS의 홍수로 넘쳐난다. 반면 ‘넷맹’에 가까운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라면 ‘스마트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으며 더 늙으면 시대의 흐름에 완전히 뒤처진 ‘구닥다리 노인네’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디지털 세상에도 역기능과 순기능이 공존하는 법. 요즘 아이들은 TV를 봐도 더 이상 수동적인 시청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미디어 활용자 입장이기 때문에 디지털 세대가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SNS처럼 또 다른 미디어 기능을 하는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 있었기에 최근 대한민국을 달군 ‘땅콩 회항 사건’이 널리 회자됐을 테고, 디지털 세대의 ‘자기 조직화’ 능력 덕분에 억울한 일이 생기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어 ‘청원’을 하는 사회적 지지가 ‘실천’되기도 하며, 작업실을 따로 차리지 않더라도 아이폰 같은 스마트 기기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작곡을 하거나 음원을 만들고 ‘집단 창작’으로 영화도 빚어내는 등 콘텐츠가 개개인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니 말이다. 최근 한 X세대 엄마는 말수가 별로 없고 평소에 거의 게임기만 끼고 사는 듯하던 자신의 여덟 살짜리 아들이 달리 보이게 된 ‘작은 사건’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원래 레고 블록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꽤나 복잡한 조립식 모델을 만드는 유료 공간이 있는데, 아들이 그곳에 가면 오랜 시간 혼자 놀면서 집중하더니 나중엔 하루 종일 ‘풀어놓아도’ 열심히 ‘작업’을 하다가 거의 중학생 수준의 고난이도 모델을 만들어내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난 우리 아이가 게임을 빼면 통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해였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르쳐주지 않은 수학 문제도 혼자 풀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미드’도 내려받아주더라고요. 단지 게임에 중독될 정도로 인터넷에 몰입하는 건 부모가 관리를 해줘야겠지만요.”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 세상에서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프라이버시부터 보호해야

그렇다. 드라마 <미생>에서 그토록 호응을 이끌어낸 X세대와 Y세대의 훈훈한 선후배 사랑은 그처럼 이상적인 수준은 아닐지라도 분명 가능한 일이다. 세대 간의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다름의 장단점’을 인정한다면 ‘스마트함’에 대한 시각 차나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 같은 것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미래학자 피터 힌센이 말했듯 이미 디지털은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고,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 기술을 ‘기술’이라 인식하지도 못하는 진정한 ‘디지털 놀이터’가 더 활기차게 형성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진짜 문제는 신인류가 쏟아내는 정보 때문에 발생하는 ‘보안’과 ‘프라이버시’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아이패드 신제품에도 지문 인식 기능을 장착하는 등 개인 보안은 강화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유수 기관과 기업들은 ‘해킹’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 금융 사고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많은 이들이 ‘빅데이터 세상’을 찬양하지만 누군가에게 악용되는 블로그와 SNS 정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무수한 개인 정보와 아이디어를 인터넷 바다에 ‘공짜로’ 뿌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위한 방어기제를 사회적, 국가적, 범지구적 차원에서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인류가 멍청해지지 않기 위한 진정한 ‘지상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MIT대 알렉스 샌디 페틀랜드 교수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온갖 기기들과 인터넷 기업들을 통해 만들어진 정보가 이를 수집하는 조직에서 축적되고 있는데, ‘데이터 소유권’은 절대로 구글 같은 기업들이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며 그 흐름을 통제하는 ‘데이터 뉴딜(New Deal on Data)’이라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바람직한 움직임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스토리를 상기하게 한다. ‘인터넷 세상에서 프라이버시는 의미 없다’라고 주장하던 그는 수년 전 비공개로 설정해놓은 사진들이 공개되면서 정작 자신의 신상이 ‘털리고’ 마는 수모를 겪었는데, 더욱 흥미로운 건 그가 2013년 자신의 집 주변에 있는 주택 네 채를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물론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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