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같아지지 않아도 되는 목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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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7, 2026

글 양혜연(객원 에디터)

2026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바다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이주와 정착이 이어져온 항구도시 부산. 지금 이곳에서는 지역의 역사와 동시대 감각이 교차하는 예술의 장,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지원한 69명·팀의 기획자 가운데 두 차례의 심사를 거쳐 공동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는 2026부산비엔날레의 주제로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을 선정했다. 그리고 부산에 스민 시간과 역사를 고려해 22개국 46작가·팀의 목소리를 부산현대미술관, 스페이스 원지, (구)부산남고등학교에 펼쳐 보였다. 서로 다른 음정과 리듬으로 충돌하고 교차하며, 때로는 낯선 울림을 빚어내는 이들의 목소리는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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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여러 성부로 나뉘어 서로 화성을 이루며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 이는 ‘합창’의 사전적 정의다. 각 성부는 전체의 조화를 위해 배정된 음정과 리듬을 따르고, 서로 다른 음역과 선율은 곡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균형을 아름다운 합창의 조건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제 음을 끝까지 고집하는 목소리, 박자를 늦추거나 앞서가는 목소리, 애초에 악보에 적히지 않았던 목소리들은 전부 합창을 망치기만 하는 요소일까? 2026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8. 29 ~ 11. 1)은 여러 소리가 매끈하게 어우러지는 ‘화음’이 아닌 다름을 유지한 채 함께 울려 퍼지는 ‘다성’의 감각에 주목한다. 부산의 을숙도와 영도에 모인 각기 다른 목소리들은 충돌하고 겹치기도 하며 새로운 이야기와 질문을 만들어낸다.

물론 참여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주요하게 다룬 디아스포라, 제도에 대한 저항 등은 더 이상 낯선 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두 예술감독은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무빙 이미지, 조각, 회화,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로 제작한 작품을 ‘소리’라는 큰 테마로 엮고, 참여 작가의 약 70%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신작을 선보이며 고유한 결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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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부산현대미술관
각자의 개성을 지닌 다양한 소리
올해도 부산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은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이다. 메인 전시장답게 이곳에는 이번 부산비엔날레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가장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층마다 집중하는 테마도 조금씩 다른데 1층에서는 음악과 소리가 시위, 정치적 행동, 집단적 결집의 도구가 되는지 탐색하는 작업을 주로 만날 수 있다. 그중 허공에 멈춘 시저 리프트 위에 입에서 리본을 뿜어내는 12개의 마네킹이 서 있는 류성실의 ‘만 가지의 꿈’은 이번 부산비엔날레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유령 같은 모습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마네킹들은 세계 일주 뒤 금의환향해야 하는 아이, 아흔다섯에도 원대한 꿈을 향해 달려야 하는 해골, 5백 년째 끝없는 길을 걷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세 곡의 노래를 부른다. 역사적으로 천연자원이 부족했던 한국의 조건과 이를 인간의 가능성으로 대체하려 했던 집단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서사다. 세계시민, 국가 발전, 브랜드명, 서구식 이름 등을 부르는 한글 가사는 끝없는 성장과 팽창을 향한 강박을 드러낸다. 밝고 희망찬 선율과 천진한 목소리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대비되며 주제 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되 한층 더 확장한 작품 스케일은 15분간 이어지는 마네킹들의 합창을 홀린 듯이 감상하게 만든다.

2층에는 세대 간의 대화와 선조로부터 이어진 기억, 문화적 상징, 대대로 전승된 지식의 형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작품을 다수 배치했는데, 특히 전소정의 ‘구미호하기’를 주목할 만하다. 어떤 모습으로든 변하는 동아시아 신화 속 구미호와 소설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가상 신앙 체계 어스시드(Earthseed)에서 가져온 씨앗이 작업의 두 축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극장의 여성 예술가들과 협업해 제작한 영상은 구소련 통치 아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역사와 공동체를 통해 이어온 소리의 기억을 따라간다. 영상이 상영되는 환경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공기 주입식 구조물과 화면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AI가 생성한 장면 전환은 구미호의 변신 능력을 연상시킨다. 더불어 스마트폰 앱을 통해 구현된 씨앗 저장소는 생태와 기술이 교차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각과 청각, 지난 역사와 현대 기술, 각기 다른 지역에서 생겨난 이야기의 모티브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지하에서는 나이트라이프와 하위문화에 뿌리를 둔 목소리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래피티로 장식된 금속 셔터 설치 작품인 R.I.P. 제르메인의 ‘조용한 전쟁을 위한 침묵의 무기(건설과 파괴)’, 동일 작가가 영국 드릴 음악 장면의 1백61개 영상 클립을 재구성해 제작한 ‘죽은 척하기’, 퀴어와 샤머니즘적 서사를 품은 듀킴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 ‘신이 떠난 무대’의 첫 장인 ‘제1막: 피의 무대’ 등을 만날 수 있다. 지하의 공간적 특성은 작품들이 다루는 밤의 문화와 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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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악장: 스페이스 원지
익숙한 듯 낯선 바다의 소리
선박 창고를 개조해 꾸린 복합 문화 공간 스페이스 원지에는 바닷속에서 퍼져나가는 낮은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는 작품이 모여 있다. 영도의 바다를 마주한 공간의 특성과 작가들이 구현한 수면 아래의 소리가 공명하며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입구를 지나면 줄리앙 크뤼제의 영상 작업 ‘줌비 줌비 에테르노’를 마주하게 된다. 식민지 브라질에서 노예해방 공동체를 이끌며 식민 권력에 맞섰던 줌비 두스 파우마레스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영상 속에서 유영하는 줌비의 형상과 독성을 지닌 복어, 독말풀은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장면을 만든다. 그 곁에는 프린트된 천으로 감싼 7대의 자동차로 구성된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산업사회의 상징인 자동차는 바다 생명체나 오래된 유물을 닮은 낯선 존재처럼 보인다. 이처럼 한 공간에 겹친 이질적 이미지들은 역사와 신화, 인간과 자연의 구분을 느슨하게 하며 익숙한 질서 바깥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세 공간 가운데 스페이스 원지의 구성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공간의 초입과 끝에 주제 의식이 선명하고 감각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작품을 배치해 전시 전체의 밀도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전시장 끝에서 만나는 브라힘 탈의 ‘불협화음의 합창: 바다의 창조’는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바다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한 곡을 협업자, 친구, 가족이 저마다 해석해 부르는 목소리를 녹음했다.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로 낭송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키에 맞춰 서로 다른 높이로 전시장에 설치된 19대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스피커 주변을 배회하는 관람객과 스피커와의 거리에 따라 특정 인물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하고 여러 소리가 겹치기도 한다. 이처럼 작품은 저마다의 언어와 기억, 정체성을 지우지 않은 소리들이 같은 공간을 울리는 것 또한 합창이 될 수 있다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외에도 조아르 송쿠야의 ‘선원직 프로젝트’ 연작은 선원으로 일했던 작가의 기억을 그림 일기처럼 보여주고, 조타 몽바사의 ‘물에 잠기는 것은 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가 아닌 것도 아니다’는 작가가 부산 앞바다를 직접 항해하며 수중 마이크로 기록한 소리를 들려준다. 스페이스 원지에서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노동과 기억, 생태와 감각을 담아낸 아카이브이자 서로 다른 목소리를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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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악장: (구)부산남고등학교
규율과 제도를 향한 저항의 소리
마지막 악장은 올해 초 학교 이전으로 비워진 영도 남단의 (구)부산남고등학교에서 펼쳐진다. 학생들을 사회의 규범과 질서로 편입시키는 제도적 공간이던 학교는 작품 설치를 통해 단일한 진실과 제도화된 배움에 질문을 던지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재활용 직물이 운동장에 거대한 악보처럼 펼쳐진 알리아스카르 아바카스의 ‘주문’을 시작으로, 작품들은 본관의 교실과 구름다리, 후관, 옥상 등에 흩어져 있다.

2층의 세 교실에 나뉘어 설치된 이동근의 ‘세 개의 섬’은 일본 오키나와, 대만 금문도, 한국 가덕도의 풍경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사진, 영상, 아카이브 등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냈다. 미군 기지 이전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오키나와, 포격의 상흔이 남은 금문도, 군사기지를 거쳐 신공항 건설 갈등을 겪는 가덕도는 식민 지배와 전쟁, 분단과 점령의 기억을 공유한다. 관람객은 세 섬에 깃든 세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가려져 있던 지난 역사의 흔적과 오늘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자수와 드로잉, 레이스, 인조 모발을 더한 시리얼 상자를 책상과 의자 위 등 교실 곳곳에 배치한 4층의 파티마 칼림 칸의 ‘엎질러진 물’ 역시 인상적이다. 화려한 색채와 머리카락이 자라난 듯한 시리얼 상자의 형상은 집과 학교, 텔레비전 연속극을 통해 여성의 삶에 스며든 규율을 낯설게 드러낸다. 익숙한 교실 기물과 그로테스크한 사물이 충돌하는 장면은 단정한 공간이 감춰온 규범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편 후관의 옛 급식실과 조리실에 설치된 박현성의 ‘우리는 차가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떨고 있었지’와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한’은 버려진 공간을 바다의 심연처럼 연출한 작품이다. 한때 학생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던 장소였지만 이제는 낯선 생명체의 터전이 되어버린 듯한 이곳에서는 경직된 제도에 갇혀 있던 상상력을 되살린다. 관람 순서는 위치와 전시 장소별 작품 특성을 고려해 (구)부산남고등학교에서 시작해 스페이스 원지를 거쳐 부산현대미술관으로 향하길 권한다. 제도와 배움의 틈을 먼저 살핀 뒤, 인간과 비인간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감각을 경험하고, 마지막으로 다층적인 소리를 만나는 흐름이다. 이는 바다에 던진 돌멩이가 만든 동심원이 점차 넓게 퍼져나가듯, 점점 더 큰 이야기로 확장되어가는 동선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공간의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2026부산비엔날레는 우리가 직면한 다중 위기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러고는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마주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다음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저마다의 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는 미래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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