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초의 기억을 잇는 현대의 럭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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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5, 2026

글 고성연(밀라노 현지 취재)

만다린 오리엔탈, 밀라노(Mandarin Oriental, Milan)


폭염이 살짝 누그러진 듯한 7월의 싱그러운 오후, 레스토랑과 바, 녹음 짙은 코트야드를 아우르는 만다린 가든에 들어섰다. 검은 대리석 위에 놓인 새초롬한 석류빛 칵테일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 남아프리카의 가든 루트에서 영감받은 이 한 잔은 아몬드 인퓨즈드 코냑과 루이보스·허니부시 슈럽(shrub), 히비스커스 워터, 셰리가 어우러져 따뜻한 해안 풍경의 깊이와 생기를 담아낸다. 섬세한 빛과 재료의 질감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첫 모금을 머금자, 밀라노 도심의 분주함은 한 겹 멀어지고 도시의 시간이 천천히 느려진다. 만다린 오리엔탈, 밀라노가 선사하는 작은 마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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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대표적인 거리인 만초니 거리(Via Manzoni)에서 한 블록 안쪽, 안데가리 거리(Via Andegari)에 자리한 만다린 오리엔탈 밀라노. 이곳은 세계적인 오페라 성지 스칼라 극장과 명품 쇼핑 거리 몬테 나폴레오네, 밀라노의 상징 같은 두오모가 가까운 도시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오래된 팔라초의 기억과 현대적인 감각이 놀라울 만큼 고요하게 공존한다.

저녁이 되자 만다린 가든은 또 다른 온도를 보여주었다. 미슐랭 2 스타 셰프 안토니오 구이다가 선보이는 이탤리언 요리는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섬세한 현대성을 품고 있었다. 특히 부드럽게 익힌 문어와 믿기 어려울 만큼 매끄럽고도 찰진 메시트포테이토는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재료의 본질과 완성도에 집중한 한 접시였다. 이 공간에서 경험하는 미식은 밀라노의 우아한 균형감을 닮은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만다린 가든의 코트야드는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중정과 시간의 결이 남은 건축 사이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여유와 차분함은, 이곳이 밀라노의 가장 중심부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했다. 코트야드 벽면에는 과거 롬바르디아 지방의 문장이 고아하게 남아 있었다. 장식으로 덧댄 요소가 아니라, 이 공간이 담아온 역사의 흔적이다. 밀라노 팔라초가 품은 사적인 정원과 안뜰의 분위기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이어진다.

만다린 오리엔탈 밀라노의 특별함은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유서 깊은 팔라초가 간직한 기억과 구조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곳은 18세기 귀족 저택이었던 팔라초 콘팔로니에리(Palazzo Confalonieri)를 포함해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닌 4개의 건축물을 하나의 공간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긴 세월 속에서 도시의 삶과 변화를 담아온 이 건축물들은 한때 금융 기관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그 안에 남아 있는 건축적 질서와 공간의 가치를 동시대의 언어로 다시 풀어냈다.

이 작업을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치테리오와 파트리시아 비엘이 이끄는 이탈리아 대표 건축 스튜디오 ACPV는 팔라초의 역사적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밀라노 특유의 절제미와 현대적인 호스피탤리티를 결합했다. 역사적 구조와 새로운 재료, 전통적인 비례감과 현대적 기능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 호텔이 보여주는 이탈리아식 럭셔리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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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로 향하는 순간, 만다린 오리엔탈 밀라노가 말하는 럭셔리의 방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 호텔은 화려함보다 균형과 질감, 그리고 머무는 사람을 위한 편안함에 집중한다. 이탈리아 특유의 절제된 감각과 섬세한 디테일이 어우러진 객실은 팔라초가 지닌 사적인 주거 문화를 현대적인 공간으로 확장한다.

특히 호텔은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들과 연결되는 여러 시그너처 스위트를 선보인다. 그 가운데 20세기를 풍미한 밀라노 출신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조 폰티(1891~1979)에게 헌정한 ‘디자이너 스위트’는 195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의 정수를 담고 있다. 짙은 블랙 월넛의 나뭇결과 네이비 블루 텍스타일이 어우러진 인테리어는 차분하면서도 선명한 개성을 드러낸다. 정제된 선과 균형 잡힌 비례, 가구와 오브제의 섬세한 조합은 밀라노를 사랑했던 폰티가 추구한 ‘일상의 아름다움’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호텔 경험으로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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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나세티 스위트’는 장식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피에로 포르나세티(1913~1988)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독특한 패턴과 오브제가 어우러진 이곳은 컬렉션 룸처럼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을 자극한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넓은 아파트먼트의 감각으로 밀라노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듯한 경험을 제안한다. 높은 층고와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부한 자연광, 전용 주방과 사우나·스팀 룸, 브라질산 푸른 대리석으로 마감한 욕실은 물론, 방 하나를 옮겨놓은 듯 규모 큰 욕조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만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완성한다.

이번에 머문 주니어 스위트 역시 이러한 공간 철학을 정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과장된 장식 대신 섬세한 소재와 균형 잡힌 비례, 차분한 색감으로 완성된 공간은 도시의 역사와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정제된 선과 온화한 결이 흐르는 복도를 따라 걷노라면, 이곳이 단순히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한 호텔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곡선으로 이어지는 창과 섬세한 철제 디테일, 벽을 담백하게 수놓은 액자, 빛이 머무는 방식까지,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과거의 건축 언어와 오늘의 감각 사이에서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다.

조 폰티는 <건축예찬>에 ‘과거란 있을 수 없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모든 사물이 훌륭하게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라고 썼다. 만다린 오리엔탈 밀라노는 바로 그 동시성을 현대의 공간에서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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