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지난 10월 6일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세상을 한 번만 바꾸어도 위인으로 대접받기 마련인데 스티브 잡스는 무려 일곱 번이나 세상을 변화시켰다. 스티브 잡스의 그 놀라운 삶을 되돌아보면 그에게는 다섯 가지의 위대한 능력이 있었다. 오늘은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일곱 번 바꾸는 데 바탕이 된 뛰어난 다섯 가지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2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으며 매킨토시 그래픽 기반의?운영 체제 시대를 열었다. 매킨토시와 결합한 레이저 프린터로 출판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통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창조했고 아이팟으로 음악 시장을 뿌리부터 바꾸어놓았다. 또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을 재창조하더니 아이패드로 새로운 포스트 PC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일곱 번이나 세상을 바꾸어놓은 스티브 잡스는 업적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스티브 잡스, 그를 이 자리에 오르게 한 특별한 다섯 가지 능력은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한 일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인재를 얻으려면 회사 직원들이 위대한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스티브 잡스 스스로도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아이디어야말로 자신이 애플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3백13가지 특허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는 아이폰뿐만 아니라 애플 스토어의 유리 계단이나 제품의 파워 어댑터 그리고 포장 방법 등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첫 번째 히트작인 애플 2 컴퓨터에서도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애플 2 컴퓨터가 성공한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컬러 화면이었고 플라스틱 케이스로 뛰어난 외관을 자랑했으며 소음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스틱 케이스와 적은 소음은 바로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그 가치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일반인에게 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 가치를 한 번에 꿰뚫어 보고 회사를 차려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제록스 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상용화할 계획을 세운 것도 스티브 잡스였다.?전자출판 혁명을 불러온 포스트 스크립트의 진가를 알아보고 2백50만달러를 투자해 차고에 있던 어도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화시킨 것도 역시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듯 아이디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팀을 구성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사람이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창업할 마음이 없었고 원래 다니던 HP를 그만둘 생각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스티브 워즈니악이 HP를 그만두도록 했다.? 돈 한 푼 없었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막무가내로 찾아가 광고 전문가 레지스 메키너에게 일을 맡겼을 뿐만 아니라 투자가인 돈 밸런타인까지 소개받았다. 돈 밸런타인에게도 무작정 찾아가 투자를 부탁했다가 ‘이단아’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돈 밸런타인은 인텔의 직원으로 백만장자가 된 후 은퇴한 마이크 마쿨라에게 스티브 잡스를 만나보도록 추천했다. 애플의 차고를 방문한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 잡스에게 감동받아 즉시 애플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애플의 로고를 만든 롭 야노프나 애플 2 컴퓨터의 케이스 디자인을 책임진 제리 마녹 그리고 스노화이트로 개인용 컴퓨터의 디자인 표준을 제시한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역시 스티브 잡스가 발굴한 인물이다. 현재 애플의 CEO를 맡고 있는 팀 쿡 역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스카우트했고 회사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쓰려던 조너선 아이브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에게 디자인 전권을 위임한 것 역시 스티브 잡스이다.?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인재를 발굴해 자기편으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광고 전문가 레지스 메키너와 백만장자 마이크 마쿨라가 차고에 있던 애플에 합류한 것은 가정과 회사에 컴퓨터를 판매하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의 개발에는 제록스의 팔로알토에서 근무하던 연구원들의 합류가 결정적이었다. 이 역시 그래픽 기반의 운영 체제가 미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애플로 이직하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제품이 위대한 비즈니스를 탄생시킨다고 믿는, 제품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들이 회사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사의 중간 관리자를 최대한 없애고 개발자들이 창의적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개발에서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했다.? 단순함은 스티브 잡스를 최고로 만들어준 만트라이자 그를 이해하는 만능 열쇠이다.?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이야말로 궁극적인 정교함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신봉했다. 그는 삶과 회사 운영에서도 단순함을 추구했다. 조직이 단순할수록 사내 정치가 줄어들고 새로 시작하는 회사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라인업 역시 단순한데 다른 휴대폰 업체들이 매년 수십 가지 모델을 내놓는 데 비해 애플은 한 가지 모델만 내놓을 뿐이다. 통 알루미늄으로 완성한 유니보디 디자인은 애플 노트북만의 자랑인데, 이는 이음매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스티브 잡스는 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언젠가 신형 맥을 만들면서 나사를 하나도 쓰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그러나 디자이너는 시제품의 손잡이 밑에 나사 하나를 배치했는데 이를 발견한 스티브 잡스는 그 디자이너를 즉시 해고했다. 단순함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집착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제거한 아이맥이나 옵티컬 드라이브를 삭제한 맥북 에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수천 곡의 노래 중 원하는 곡을 단번에 찾아주는 스크롤 휠 역시 단순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들면서 1천 번 이상 ‘No!’를 외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다.?아이폰 역시 단순함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제품이다. 버튼을 최소화해 조작을 최대한 쉽게 만들고 물리적인 키보드와 스타일러 펜을 제거함으로써 오직 손으로 모든 것을 조작하게 해주는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갖춘 덕에 휴대폰 업계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서 그의 탁월한 협상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협상력의 소유자였다.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자 부모님을 설득해 가족 전체가 이사하도록 만들었으며 HP에 전화를 걸어 공짜로 부품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구했다.?대학을 중퇴한 후에 게임 회사인 아타리에 취직할 때 역시 게임에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뛰어난 협상력으로 바로 취직할 수 있었다. 컴퓨터 매장인 바이트 숍에 접근해 폴 테럴에게 최초로 애플 컴퓨터를 주문받은 역사적인 거래 역시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 덕분이었다. 픽사를 5백만달러라는 헐값에 구입할 때나?넥스트를 운영하던 시절 로스 페로에게 2천만달러를 투자받을 때 역시 배경에는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협상력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훌륭한 협상력은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를 론칭했을 때 잘 드러났다.?음반업계는 인터넷 불법 복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IT 업계를 무척 싫어했다. 스티브 잡스가 인터넷을 통해 음원을 판매하려고 하자 음반업계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를 직접 찾아가 자신들이 음반업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음반사들은 독자적인 서비스를 통해 직접 음원을 판매하려고 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들의 모든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음반사들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를 계기로 음반사들은 조금씩 스티브 잡스의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의 탁월한 서비스를 통해 음원을 판매하면 불법 복사와 경쟁해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을 확신시켜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설득이 계속되자 음반사들도 하나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1년 6개월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2003년 4월 28일 애플은 세계 최초로 세계 5대 음반사인 소니, 유니버셜, 워너, EMI, BMG의 음원을 한곳에 모아놓고 뮤직 스토어를 서비스했다. 뮤직 스토어는 메이저 음반사들의 협력 덕분에 20만 곡이 넘는 음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서비스를 한 덕분에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AT&T와의 제휴에도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이 뒷받침되었다. 기존의 이동통신사는 단순히 네트워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의 기능과 서비스까지 직접 관여했다. 지금처럼 앱스토어를 휴대폰 제조업체가 직접 운영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사는 오직 네트워크만 제공하고 그 밖의 모든 통제권은 애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당시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줄 이동통신사는 없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AT&T에 접근했다. AT&T는 무선 인터넷망 구축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지만 정작 무선 인터넷을 쓰는 소비자들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 휴대폰 기술은 베이비 인터넷이지만 애플의 아이폰은 빅보이 인터넷을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서 당시 AT&T의 CEO 스탄 시그맨을 설득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스탄 시그맨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폰처럼 매력적인 제품이라면 사용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점 판매권을 줄 수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제의에 결국 애플에 특혜를 주면서 아이폰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이 완성되면 생면 부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품을 홍보했고, 제품을 들고 직접 판촉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광고 캠페인에도 적극 관여했다. 애플 초창기에는 홍보 전문가인 레지스 메키너를 직접 영입해 함께 각종 광고물을 제작했다. 애플이 그 유명한 ‘1984’와 ‘Think Different’를 제작하는 데도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했다. ‘Think Different’를 만든 치아트 데이의 직원 켄 시걸은 <포천>과 나눈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광고를 만들 때 CEO가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상세한 부분까지 관여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는 광고 문구의 네 번째 문단에서 세 번째 단어가 별로라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라고 밝혔다. 학교에 무상으로 애플 2 컴퓨터를 기증하는 ‘Kids can’t Wait’ 덕분에 애플은 교육 시장에 안착하게 되는데 이 계획안을 낸 것도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또 매킨토시를 대학교에서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마케팅도 스티브 잡스의 작품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마케팅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완성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특별한 오라가 느껴진다. 그 자체가 IT 업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슈퍼스타인 만큼 스티브 잡스가 직접 등장해 진행하는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은 인기 영화배우가 출연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큰 화제성을 띠게 되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의 활약은 IT 업계에서도 스타 마케팅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단순한 아이폰 사진보다 무대에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신형 아이폰을 들고 살며시 웃고 있는 모습이 훨씬 이목을 집중시키고 파괴력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을 기점으로 전 세계 언론은 애플 제품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입소문 마케팅의 화룡점정은 스티브 잡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으로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이 과연 과거처럼 인터넷과 언론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그의 뛰어난 업적과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확인시켜주듯이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적인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전 세계 언론의 메인 화면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이 장식했고 그의 놀라운 인생을 추모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에릭 슈미트, 래리 페이지, 손정의 같은 IT 업계의 리더들이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칭송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된 그는 대학을 중퇴한 별 볼일 없는 젊은이였지만 결국은 자수성가해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고 추락도 성공만큼이나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도산 직전에 있던 애플에 돌아와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에 걸린 뒤에도 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어냈다.? 뛰어난 업적에 삶마저도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기에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에게 열광하고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까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