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Beauty Learning from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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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5, 2023

글 황다나

1977년 개관과 동시에 전 세계 건축계를 뒤흔든 리처드 로저스·렌초 피아노의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랭크 게리가 빚어낸 걸작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문화 예술로 말미암아 도시의 틀을 바꾸고 재생시킨 사례로 손꼽힌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루브르를 비롯한 유수 미술관 해외 분관 건립 붐과 더불어 삼성, LVMH 등 글로벌 기업이 앞다투어 컬렉션 전시 공간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신진 미술관 건립은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현대미술의 다채로움만큼이나 작품을 품은 공간도 다양한 양상을 띠며, 건축 자체를 예술로 여긴 관람객의 발길을 이끌었다. 하지만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던가. 때로는 미술을 압도하는 화려한 건축은 아니라도 묵묵히 역사를 머금은 고풍스러운 공간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끈 선구자들의 응축된 작품 세계를 풀어낸 뜻깊은 전시를 마주하는 ‘발견’은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장의 예술 세계를 현재진행형으로 동시대와 공유하며, 지나간 과거로부터 미래를 준비하고 새로운 생각을 꿈꾸게 하는 공간과 전시를 소개한다.


Hoam Museum of Art

녹음 짙은 산속 깊은 곳, 영롱하게 빛나는 호숫가에 자리한 용인 호암미술관. 사계절 언제 가도 저마다의 정취가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정원으로도 유명한 호암미술관이 지난 5월, 김환기 화백 예술 세계의 정수를 담은 대규모 회고전을 앞세워 다시금 문을 열었다. 코로나로 인한 휴관에 이어 <야금: 위대한 지혜>전을 끝으로 1년 반 동안 내부 레노베이션을 거친 뒤라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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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하늘 김환기> 회고전

회고전 제목인 ‘한 점 하늘’은 호암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정원에서부터 관람객을 맞이한다. 1982년 개관한 이래 40여 년의 세월이 쌓여 옛 정취를 느끼며 오랜 시간 여유를 두고 머물고 싶은 정원을 지나면,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번 레노베이션을 통해 기존 건축물의 역사성과 유산을 최대한 유지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면서, 과거와 현재, 건축과 사람, 자연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공간을 지향했다. 로비의 굵은 선을 유지하되 단정히 정리했고, 전시실 천장고를 최대한 확보하며 오픈 구조로 변경했다. 2층 라운지는 창호를 확대해, 정원인 희원과 외부 전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과장되지 않은 건축과 최소한의 디테일이 어우러지는 디자인으로 오롯이 미술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이번 회고전은 ‘론도’, ‘나무’ 등 다양한 초기작을 비롯해 신문지 작업, 조각, 드로잉 등 미공개작을 포함한 1백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김환기의 40년 예술 세계 전반을 아우른다. 스물네 살 청년 김환기의 사진, 작가의 애장품이던 백자, 꼼꼼히 정리한 삽화 스크랩북 등 유족이 수십 년간 간직해온 유품과 흥미로운 자료 일부도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일반에 공개된다. 달을 바라보며 달항아리를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고국과 친구를 그리워하던 그에게 하늘은 예술의 큰 원천인 동시에 자연과 삶, 세상을 함축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2층 전시실에서 시작하는 전시 1부는 ‘달/항아리’라는 테마 아래 김환기의 예술 이념과 추상 형식이 정립된 1930년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작업을 소개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자연, 전통을 자신의 작업의 주된 주제로 삼았다. 달과 달항아리, 구름, 산, 새 등의 모티브가 김환기 특유의 덜어내고 비워내는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뉴욕과 파리 생활을 거쳐 한국적 예술, 한국적 추상을 향한 개념과 형식을 구축하는 데 더욱 천착해왔다. 전시 2부 ‘거대한 작은 점’은 국제 무대에서도 통할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환기의 조형 실험이 비로소 선, 점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그려낸 바람과 우주, 하늘과 땅은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도 내일도 공명한다. 전시는 오는 9월 10일까지 진행된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hoammuseum.org) 참고.




Nam-Seoul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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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 상설전

한국 근대 조각사를 대표하는 인물에 헌정한 <권진규의 영원한 집> 상설전이 6월 1일 공개됐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권진규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기념사업회와 유족이 기증한 작품을 위주로 개최된 회고전을 잇는 상설전으로 작가의 작고 50주기를 맞아 기획됐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거장의 영혼이 영원히 안식을 취하고 살아 숨 쉴 거처로 한국 근대건축의 대표 유산으로 손꼽히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구 벨기에 영사관)이 낙점되었다. 과거의 시간을 끌어안은 건축 미학과 조각이 조우한 입체적인 공간에서 작가의 작품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상설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흔히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진 권진규 조각가가 추구했던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영원성이었다. 그는 자연을 관찰·연구하면서 재현을 위한 노력을 담담히 계속해나가며, 자연과 견줄 수 있는 영원한 미의 전당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번 상설전에서 남서울미술관 1층 전체를 메운 전시를 통해 권진규의 동물상, 두상, 인체, 부조, 불상에 이르는 조각 작품과 더불어 창작의 순간을 남긴 기록, 아카이브 사진과 자료를 공개해 작가의 작업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어렵게 오가던 작가의 삶과 마치 수행자처럼 작업에 임했던 태도를 보다 심층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한편 권진규 상설전과 연계해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이 그간 보존해온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도 매달 둘째·넷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에 일반에 개방한다. 조각가가 손수 지은 아틀리에를 방문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sema.seoul.go.kr) 참고.



Choi Man Li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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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의 어느 조각가가 평생 가꿔온 예술이라는 정원

북한산과 청수계곡이 감싸고 있는 정릉은 예로부터 문인, 예술인과 유독 인연이 깊었다. 조각가 최만린 역시 1960년대 정릉에 터를 잡고 반세기 넘는 세월을 때로는 소박하지만 근원을 품은 흙을 주재료로 삼아, 하나의 씨앗을 심어 정성스레 가꾸고 꽃이 피어나듯 빚어내는 작업에 진중하게 임했다.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은 그가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간 거주해온 삶의 터전이자 수많은 작품을 배태해온 아틀리에였다. 한국 근현대 추상 조각 거장의 흔적이 짙게 남은 붉은 벽돌 2층 양옥을 공공 미술관으로 조성해 성북구립미술관 분관으로 2020년 개관했다. 코로나19 여파가 한창일 때,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로 한 차례 개관이 미뤄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옛 건축 구조를 최대한 살려 오랜 세월이 그윽한 멋과 자연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공간의 깊이와 작가의 시대별 주요 작품이 꾸밈없이 어우러져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관람객을 맞이해왔다.
개관전 <흙의 숨결>, 최만린 1주기 추모전 <조각가의 정원, 다섯 계절> 등 대가의 작품 세계에 헌정한 전시에 이어 지난 상반기에는 오종과 크리스 로가 공간의 직관적인 탐색을 거쳐 선보인 <사이의 리듬들>전을 기획했다. 두 후대 예술가는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과 쌓여온 시간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장소에 흐르는 울림과 리듬을 감지하고 마주한 후 결과물을 내놓았다. 올 하반기 전시로는 최만린의 대표작 <이브>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국전쟁 같은 처참한 경험 속에서 제작된 작품을 통해 인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전시가 오는 10월 개최된다. 혹독한 겨울에 비견될 폐허 속에서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작가가 보여준 삶의 의지, 고통 속에서도 움트는 생명을 담아낸 걸작이 공간에 깃들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아직 드문, 한 작가에 헌정하는 미술관이라는 점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60년 가까이 펼쳐온 작품 활동 중 최만린이 직접 수집한 자료 일부를 열람 가능하도록 구축한 아카이브는 실로 귀중하다. 연대순 스크랩북을 모아 비치한 ‘아카이브 서가’에서는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 사회상, 미술계를 가늠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일상과 예술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https://sma.sbculture.or.kr/cml) 참고.




[ART + CULTURE ’23 Summer SPECIAL]

1. Intro_건축의 공간,인간의 힘 보러 가기
2. Front Story_예술가, 세상을 바꾸다: JR 사례_세계 시민의 필수 교양 작가를 꼽는다면? 보러 가기
3. 공간의 가능성_도시 풍경에 한 줌 개성을 보태주는 디자인 공간 사색(四色)  보러 가기
4. 간사이 건축 산책_01_서문(Intro)_빛이 머물다 가는 곳, 그 너머로... 보러 가기
5. 간사이 건축 산책_02_치유가 흐르는 섬, 아와지시마 보러 가기
6. 간사이 건축 산책_03_안도 다다오의 살아 있는 흔적들_사람과 자연의 공생, 유메부타이 보러 가기
7. 간사이 건축 산책_04_안도 다다오의 살아 있는 흔적들_여백으로 초대된 빛, 고베 효고현립미술관 보러 가기
8. 간사이 건축 산책_05_건축과 예술의 조우, 오사카 나카노시마 보러 가기
9. 간사이 건축 산책_06_온고이지신이 깃듯 교토의 미술관 풍경 보러 가기
10. 포시즌스 호텔 교토(Four Seasons Hotel Kyoto)_사계(四季)의 매력이 흐르는 오래된 정원을 품다 보러 가기
11. The Great Beauty: Learning from the Past _호암미술관, 남서울미술관 <권진규의 영원한 집>,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보러 가기
12.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_평범하고도 비범한, 일상적인 예술 보러 가기
13. 사진가의 시선: 수집과 채집_프랑수아 알라르+사라 반 라이_남산 piknic 보러 가기
14. 아만노이(Amanoi)_a gem tucked in the mountains 보러 가기
15. Remember the Exhibition_’23 여름 전시 소식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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