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tage 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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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6, 2013

에디터 고성연

제네바와 로잔 사이 레만 호수 인근에 자리 잡은, 포도밭을 끼고 있는 낡은 집이 멋지게 부활했다. 대리석과 같은 아름다운 돌, 조명, 현대 예술 작품, 와인 저장고와 실내 풀장까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멋이 느껴지는 ‘재생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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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활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스위스 서부의 보(Vaud) 주(州)를 감싸는 바닷가에 방치돼 있던 건물이다. ‘8STORAGE’라는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카티아 오티에(Katia Autier)는 이 허름한 건물을 잿더미에서 끄집어내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녀에게 이러한 종류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단지 돈을 받고 하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는, 마치 ‘신성한 불’을 다루는 것과도 같다. 어릴 때 부모가 고국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등지고 떠나야 했던 경험을 한 카티아 오티에는 자신의 슬라브 혈통 때문인지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지닌, 역사가 서린 장소들에 상당한 애착을 느끼는 편이다. 그리고 ‘불가능은 없다’라는 디자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독학을 했기 때문인지 저에겐 장애물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선입견 없이,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가능해지지요.” 그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바로 이처럼 섬세함과 담대함이 조화를 이루는 면모야말로 집주인들이 그녀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카티아 오티에는 2년 여에 걸친 기간 동안 폐허가 된 이곳을 들락날락한 끝에, 이 700㎡ 규모의 낡은 집을 어떻게 살려낼지에 대한 감을 잡았다. ‘과거’의 멋을 최고조로 배가시키면서도 동시에 몹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 집은 원래 와인 메이커의 소유로 1848년에 지어졌다. 고색창연한 오크 통과 압착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바로 이러한 잔재가 이 집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창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그렇다. 바로 와인 셀러였다. 이 집에는 로맨틱한 포도밭으로 연결되는 작은 정원이 있다. 그리고 제네바와 로잔의 중간 정도에 자리해 상당히 이상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과거의 자취가 품고 있는 가치를 보존하고 극대화하는 재건 작업에는 유연한 대응과 불굴의 완고함을 적절히 섞은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 때문에 거의 2년에 가까운 집 수리 기간이 필요했다. ‘디테일’에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했음이 느껴질 만큼 세세한 부분의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 디테일은 거의 ‘죽음’이지요. 어떤 것도 운에 맡기지 않고 면밀하게 처리했어요.” 카티아 오티에의 설명이다. 그녀는 우선 19세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은 이 집의 돌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고풍스러운 외관을 보다 현대적으로 살리기 위해 8명의 석공을 투입했다. 각각의 돌이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세심한 공을 들였다. 보다 순수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불필요한 선이나 문손잡이 같은 요소들을 눈에 띄지 않게 처리했다. 모든 첨단 기기는 아래층에 두었다. 장식적인 요소는 숨겨져 있다고 보면 된다. “집 안에서는 움직이고 숨을 쉴 수 있어야 해요. 제가 그림이나 오브제 등 예술 작품을 곳곳에 놓아두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의 도전 과제는 감정이 있는, 영혼이 느껴지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죠.”
이 집의 거실은 바로 그녀의 이러한 디자인 비전을 잘 반영한 공간이다. 실내 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거실에서는 크리에이터의 출중한 독창성이 묻어난다. 프랑스 동부 샤부아(Savoie) 지역의 푸른색 화강암을 사용했고, 벽에 걸린 디자이너 안도 히로의 기념비적인 작품 ‘스모 캣(Sumo Cat)’은 짙푸른 물줄기를 바라보며 명상하고 있는 듯하다. 집주인 소유였던 스쿠버 탱크도 이 공간과 꽤나 잘 어울린다. 디테일 하나하나가 돋보인다. 실내 풀은 거실 위로 살짝 돌출해 있는데, 방 안에서 바라볼 때는 눈높이가 딱 맞는다. 또 풀 자체는 정원과 포도밭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결국 거실과 포도밭 사이에는 아무런 시각적인 장애물이 없는 셈이다. 그리고 집 안 어느 곳을 보나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사각 형태가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또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제를 엮기 위한 ‘장치’도 설정해놓았다. 예컨대 현관 입구와 부엌, 침실에는 동물 가죽들이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이 집의 ‘화룡점정’인 와인 지하 저장고! 사실 이 집의 설계 과정에서 어떤 엔지니어가 노후한 와이너리를 아예 허물어버리자고 제안했지만, 카티아 오티에는 오히려 ‘회생’의 방안을 택했다. 14℃를 유지하는 이 와인 셀러는 상당히 독창적으로 꾸며져 있다. 존재감 넘치는 커다란 돌이 든든한 테이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스위스 서남부의 발레(Valais) 지역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게가 1톤이나 된다. 그리고 이보다 그리 많이 가볍지 않아 보이는 돌 싱크대도 인테리어의 미학에 묘미를 더한다. 말 그대로 묵직한 ‘돌덩이’들을 배치하다 보니 무려 5명의 장정이 투입되고 설치하는 데 8시간이 소요됐다고 하는데, 그러한 땀 배인 노력은 그만한 가치를 뿜어낸 것 같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공간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자연미를 살린 구조와 재료 덕분에 통풍이 잘되는 이곳에서는 냄새가 강한 퐁뒤나 시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셀러에서 좋은 와인을 꺼내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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