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hen Urqu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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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 2014

에디터 고성연

지칠 줄 모르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하이엔드 시계 산업의 21세기 르네상스. 이 눈부신 흐름에 대해 스위스 브랜드 오메가(Omega)의 수장 스티븐 우콰드는 더 이상 하이엔드 시계가 소수 수집가나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민주적인’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통틀어 ‘단 하나의 좋은 시계’를 간직하기보다는 한 사람의 수요도 여러 갈래로 나뉘고, 시계를 다채롭게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논리다. 그런 가운데 역동적인 기계 역학과 미학적 완성도의 조화에 푹 빠진 여성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신제품 론칭 행사를 위해 오메가의 브랜드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과 함께 방한한 우콰드 사장에게서 특히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여성들을 매혹하는 오토매틱 워치의 미학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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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이 발달해 시계를 하나의 기계장치로 바라보게 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시간이란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스위스 바젤의 물시계를 담아낸 그림을 보면 ‘신의 손’이 위에서 물을 붓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이처럼 시간이란 개념을 숭배했기에 시계도 기계로 여기지 못한 것이다. 하물며 정확성도 확연히 떨어졌는데 말이다. 그런데 16세기와 17세기를 거치면서 기계적 세계관이 심화되면서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는 하나의 정밀한 장치로서의 시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시계와 문명>이라는 책에 따르면 심지어는 신을 ‘빼어난 기계공’으로 묘사할 정도로 이런 기계적 사고가 심화됐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우주는 신성한 존재와 유사한 게 아니라 시계와 비슷하다”라는 발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복합적인 함의를 품은 시간에 대한 성찰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누구도 시계를 신의 섭리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인 워치메이킹(fine watchmaking)’이라고 불리는 하이엔드 시계 미학만큼은 ‘신의 솜씨’에 가깝다고 감탄할 정도로 눈부시다. 특히 정교한 기계 역학과 섬세한 장인 정신의 교집합에서 꽃을 피운 듯한 기계식 시계, 다시 말해 오토매틱 워치의 세계는 경이로울 정도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산업혁명을 계기로 시계 산업은 정밀성이라는 면에서는 혁혁한 발전을 이뤘지만 예술성은 후퇴했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21세기에는 꽤나 균형 잡힌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나사(NASA)에서 정밀한 실험을 거쳐 선택한 브랜드로 유명한 오메가 역시 ‘시계 르네상스’를 만끽하고 있다. 정통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소수의 브랜드 중 하나인 오메가가 최근 엄청나게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영역은 여성용 하이엔드 시계. 손목시계는 마치 남성 고유의 영역처럼 여겨져온 게 사실인데, 어째서 요즘 시장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일까? 여성들이 점차 복잡다단한 시계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는 데다 심지어 기계 메커니즘에도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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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하이엔드 시계 세상이 꽃피고 있다
“사실 여성 시계 시장은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 성격이 달랐을 뿐이죠. 아주 값비싼 주얼리 워치나 매우 작은 액세서리 같은 ‘칵테일 모델’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여성이 정말 좋은 시계를 원하면 아예 남성 시계를 구입해야 했죠. 여성만을 위한 하이엔드 시계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시계업에만 40년 넘게 종사해온 오메가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사장인 스티븐 우콰드.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를 꿰뚫고 있는 그는 하이엔드 시계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여성만을 위한 워치’를 만든 건 획기적인 발상이지만 남성과 여성 고객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아무래도 미학적으로 더 까다롭고 섬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은 시계가 비싸 보인다는 이유, 그리고 기술적인 특징이 남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시계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성은 확연히 다르지요. 핸드백이나 신발 같은 다른 패션 아이템에도 굉장히 신경 쓰지 않습니까? 당연히 취향이 다채롭고 까다로울 수밖에요.” 그는 그래서인지 여성은 설득하기가 한층 더 힘든 것 같다고 웃으면서 고객에 대한 이해야말로 오메가에서 단지 남성용 시계랑 생김새는 똑같은데 크기만 작은 버전이 아니라 여자들만을 위한 무브먼트를 별도로 만드는 건 물론이고 보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여성용 컬렉션을 선보이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폴로11에 승선했던 시계 브랜드로서의 존재감 덕분에 다분히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오메가는 사실 여성용 워치 시장의 역사에도 큰 획을 그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여성을 위한 라인’의 시작점은 20여 년 전 오메가의 컨스텔레이션 컬렉션 워치와 브랜드 앰배서더 중 한 명인 슈퍼모델 신디 크로퍼드와의 만남이었다는 그의 설명이 자못 흥미롭다. “당시 신디의 시계는 원래는 남성을 위해 디자인한 ‘남자 시계’였어요. 그런데 사이즈를 줄이면서 변신을 꾀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모으게 됐습니다. 신디 자신도 이 디자인 작업에 몸소 참여했는데, 그 결과물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죠. 한국, 일본,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요.” 그는 마치 그럴싸하게 지어낸 마케팅 에피소드처럼 들리겠지만 엄연한 ‘진실’이라고 강조하며 “그녀는 그저 좀 더 세련된 시계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건넸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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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심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오토매틱을 사랑하는 그녀들
아직도 시계 시장은 남성 고객에 치우쳐 있는 건 맞지만 20년 전과는 분명히 양상이 다르다. 예전과는 달리 ‘시계’가 여성의 쇼핑 목록에 빈번히 오르곤 한다. 게다가 오토매틱 시계의 인기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실 많은 시계를 보유하고 싶은 여성들에게는 쿼츠 시계가 오토매틱 시계보다 실용적인 건 사실이다. 오토매틱 시계는 서랍에서 꺼낼 때마다 시간을 세팅하는 등 ‘공’을 들여야 하니까. 그런데도 오토매틱의 인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건 아무래도 시계는 다른 패션 아이템과는 달리 후대까지 물려줄 수 있는 지속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생각 때문일까? 특히 아시아 여성들 사이에는 기계 미학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오토매틱 마니아’층이 두꺼워지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솔직히 이유는 저도 모르겠지만 아시아 여성들이 오토매틱 시계를 더 잘 받아들이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서양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요. 미학적으로 더 아름다운 기계식 시계를 만들어낸다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 그는 ‘느낌(feel)’과 ‘룩(look)’을 아우르는 미학적 요소를 누차 강조했다. 남성은 차를 구입할 때 뛰어난 성능을 최우선 순위로 놓는 반면, 여성은 반드시 자신이 보기에 예뻐야 한다는 점을 절대적으로 중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계의 기계적 메커니즘과 더불어 여성에게 어필하는 빼어난 디자인이 관건이라는 생각을 한 오메가는 신디 크로퍼드를 연상케 하는 컨스텔레이션의 여성 컬렉션 외에도 여성만을 위한 오토매틱 워치라는 개념으로 ‘레이디매틱(Ladymatic)’이라는 여성 전용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오메가의 주력 라인은 앞서 언급한 컨스텔레이션과 스피드마스터(달 착륙 시계), 방수 라인인 씨마스터, 그리고 고전적인 DNA를 담으면서 절제된 디자인을 내세운 드 빌(De Ville) 등 4대 컬렉션으로 구성된다. 레이디매틱은 원래 1955년 첫선을 보인 최초의 여성용 오토매틱 라인으로, 반 세대 이상 지속되다가 드빌 컬렉션에 속한 여성 라인으로 계승된 것이다. 우콰드 CEO가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유는 바로 드 빌의 여성 라인 워치 신제품 때문인데, 대대적인 글로벌 론칭 행사를 위한 장소로 서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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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정제된 나비 모티브, 로맨티시즘을 읊조리다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음악, 패션,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핫한’ 곳이지 않습니까. 특히 여성 패션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이 한 계층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여러 계층과 지위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서울이 비록 최대 규모의 시장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패셔너블한 도시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패션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더 넓혀줄 수 있는 ‘야심찬 신제품’의 론칭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그와 동반한 오메가 브랜드 앰배서더인 니콜 키드먼이 손목에 차고 나타난 ‘드 빌 프레스티지 버터플라이(De Ville Prestige Butterfly)’라는 오메가의 신제품 라인이 바로 그 야심의 결과물이다. 다이얼 위에 귀여운 듯하지만 우아함이 느껴지는 나비를 새긴 여성용 오토매틱 워치. 왜 나비를 선택했을까? “서양에서는 나비가 그 자체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연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동양 문화에서는 나비가 사랑이나 영속성을 뜻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재미난 점은 우리 디자인팀이 ‘드 빌’이라는 단어가 중국어로 나비를 뜻하는 단어와 비슷하게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우연 속에 오메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력적인 자연의 테마인 나비를 드 빌 프레스티지 컬렉션에 적용해보기로 했지요.” 그러고 보니 인터뷰 내내 우콰드 CEO의 옆을 지키고 있는 젊은 본사 PR 담당자도 매끈한 하얀 스트랩을 단 앙증맞은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은근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손목을 빛낸 드 빌 버터플라이 모델은 18K 화이트 골드와 스틸이 은은하게 어우러진 버전이다. 드 빌 버터플라이는 패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이얼도 세 종류이고, 사이즈도 36.8mm, 32.7mm, 27.4mm 등 세 가지로 출시되었다. 나비를 모티브로 삼은 만큼 기본적으로는 클래식하지만 단아한 여성미를 은근하게 살려 부담스럽지 않도록 디자인했다고. 우콰드 CEO는 단순미와 로맨틱한 분위기를 갖춘 드 빌 버터플라이 라인이 기존 오메가 제품과는 차별되는 ‘참신함’을 품고 있기에 고객층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 정말로 좋아해야 하므로 자신들의 역할은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는 것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동감한다. “브랜드, 스토리, 달에 갔다는 사실도 ‘끌림’의 요소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누구나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시계를 사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당신의 손목에 착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매일착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손목과의 궁합’은 꼼꼼히 따져볼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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