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sana Orl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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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 2015

글 여미영(디자인 스튜디오 D3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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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르체스코 성 인근에 위치한 한적한 마테로 반델로 거리. 이곳은 디자인 관계자들이 이 도시에 몰려드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이면 유독 분주해진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이 조용한 거리에 발길이 치열하게 몰리는 이유는 오로지 이탈리아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갤러리스트이자 큐레이터인 로사나 오를란디의 갤러리, 스파치오 로사나 오를란디다. 디자인계의 여왕, 대모, 트렌드세터 등 화려한 별명을 거느린 그녀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라 해도 무방한 독보적인 디자인 고유명사다. 라이프스타일의 유행을 선도해온 그녀의 공간은 일반적인 갤러리와 달리 갤러리와 사무 공간, 정원, 판매 숍, 레스토랑이 결합된 의식주 통합형 복합 문화 공간. 늘 새로운 전시와 흥미진진한 이벤트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공간이다. 14년의 짧은 역사에도 이곳이 밀라노 디자인 명소로 떠오른 것은 작품 컬렉션부터 공간 운영까지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파격과 신선함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스타의 등용문처럼 무명 시절의 마르틴 바스(Marteen Baas)와 나초 카르보넬(Nacho Carbonell)의 첫 전시 무대가 되기도 했던 정원에서 이곳에서 일흔 둘의 오를란디를 만났다. 하얀색 빈티지 선글라스 뒤로 형형히 빛나는 소녀의 눈빛, 다양한 세대와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는 탁월한 유머 감각. 나이는 그녀 앞에서 무색해진다. 정원 한편 현판에 적혀 있던, 그녀 친구의 헌사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현명한 여인은 자신이 결정한 대로 나이를 먹는다.’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 디자인의 대모가 되다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의 산실인 북부 롬바르디아에서 태어난 오를란디가 어린 시절부터 가구나 소품 등의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첫 행보는 패션이었다. 유명 패션 디자인 학교 마랑고니를 졸업한 그녀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니트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다. 이후 이탈리아와 일본을 오가며 쌓아온 전문적인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도나 카란 등 패션 브랜드의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더불어 남다른 탐구 정신으로 방대한 리서치와 연구를 즐기는 오를란디는 강의와 기고, 큐레이터 활동을 병행하며 다재다능함도 뽐냈다. 그런 중에도 늘 관심의 촉수는 의식 있는 디자이너로서 자신뿐 아니라 타 디자이너의 디자인 컬렉션, 열악한 여건에서 재능을 키워나가는 젊은 디자이너의 처우 개선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50대 후반에 접어든 2002년, 드디어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총체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빚어냈다. 갤러리 스파치오 로사나 오를란디의 탄생이었다. 수십 년에 걸쳐 현장에서 키워온 디자인 안목으로 만든 이 공간은 개관과 동시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준비된’ 그녀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디자인 학계와 디자이너, 기자들 간에 방대한 인맥을 형성해온 오를란디는 이를 통해 거장들의 작품을 컬렉팅하는 한편, 참신한 신진 작가들을 찾아 등용하기 시작한다. 절친인 에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Design Academy of Einhoven)의 디렉터 리 에델코르트(Li Edelkoort)와 협업해 선보인 네덜란드 디자인전은 순식간에 큰 성공을 거뒀고, 디자인계에 네덜란드 디자인 붐을 일으켰다. 디자이너들의 완성 작품을 구입하기만 하는 일반적인 갤러리스트들과 달리 실무 디자이너 출신인 그녀는 아이디어는 창의적이지만 실용적인 제작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멘토 역할을 자청해 포기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디자인계의 여왕 혹은 대모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의 사무실 옆 넓은 벽에는 마틴 바스, 하이메 아욘(Jaime Hayon), 프론트(Front) 등 그녀의 비호 아래 신인에서 안정적인 스타 디자이너로 거듭난 디자이너들이 남긴 감사의 메시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녀를 거쳐 간 거장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수는 무려 1백여 명에 달하고, 컬렉션은 수천 점에 이른다.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아시아 등 경계 없이 지원해온 디자이너의 명단에는 양재혁, 김희원, 박원민 같은 한국 디자이너의 이름도 있다. 수많은 디자이너와 작품을 진행하며 맞닥뜨린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묻자 오를란디는 해맑게 웃으면서도 단호히 대답했다. “전부예요! 모든 순간이 소중해요.” 어머니의 마음으로 모든 디자이너와 작품을 품는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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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둘러싼 모든 디자인을 스토리텔링하다

저가에 구입 가능한 일상적인 제품과 패션 아이템부터 고가의 리미티드 에디션 디자인 퍼니처와 컨템퍼러리 예술 작품까지. 오를란디의 컬렉션이 특별한 점은 대상으로 삼는 종류와 가격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방침은 운영 관리가 복잡하고, 외부 경기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위험 요인을 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그녀만의 확고한 철학 때문이다. “디자인의 매력은 민주주의적이라는 점이에요. 소수의 특정 계층이 아닌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 의식주를 둘러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디자인 컬렉션엔 삶이 담겨야 해요 그래서 전 삶을 둘러싼 다양한 제품을 수집해요. 생명력 있는 제품을 찾아내고 이들 간에 대화를 창조해 일상의 공간에서 소통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갤러리스트로서 추구하는 부분이에요.” 디자인 작품들 사이, 작품과 사용자 사이, 또 그들의 일상 공간 사이에서 유기적인 대화와 소통을 업으로 삼아온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늘도 디자인을 매개로 대중의 일상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어김없이 잉태되고 있는 것 같다. 운영에도 혁신적이고 공격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그녀는 많은 브랜드들과 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2013년 밀라노 가구박람회 기간에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발세키가 거주해온 바가티 발세키 미술관(Museo Bagatti Valsecchi)과 손잡고 <바가티 발세키 2.0> 전시의 큐레이션을 지휘했다. 고전적인 수집품들을 보유한 럭셔리 주거 공간에 파격적인 컨템퍼러리 디자인 작품을 매혹적으로 배치한 이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일상을 소통시켜 미래를 창조한다’는 스토리를 전달해 디자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에는 보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차별화된 프로젝트들을 지속중이다. 지난 9월까지 5개월간 많은 컬렉터들이 방문하는 사르데냐 지역에 임시 갤러리를 개관한 데 이어, 현재 연말 개관을 목표로 공간 제약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구매 가능한 웹 사이트를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혁신적인 시도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의 갤러리계 일각에서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올 듯하다. 하지만 오를란디가 누구인가? 경계와 금기를 깨는 새로운 발상과 시도로 디자인 갤러리의 기준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아니던가. ‘작지만 큰’ 그녀가 또다시 컨템퍼러리 갤러리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은근히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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