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no other Place

조회수: 3064
3월 07, 2018

글 고성연

Aman Venice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부터 티치아노, 비발디의 고향이자 희대의 엽색가지만 나름 뛰어난 지성이기도 했던 카사노바의 주 무대였던 베니스. 세상 어느 도시와도 다른, 독특하고 아름다운 이 수상 도시는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아드리아해의 여왕’이라 불리던 해상 제국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관광 도시로서 여전히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본섬 인구가 5만 명 정도에 불과한데, 연간 방문객이 2천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하니, 그 인기를 알 만하다. 4년 전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 부부의 허니문 장소로 낙점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호텔에도 자연히 눈길이 쏠렸다. 베니스의 심장부와도 같은 대운하를 끼고 있는 우아한 팔라초를 개조해 완성한 아만 베니스(Aman Venice). 단순한 화려함이 아닌 이곳의 진짜 매력을 들여다봤다.


1
20180307_place_01
2
20180307_place_02
3
20180307_place_03
4
20180307_place_04
5
20180307_place_05
“오 이방인이여, 그대가 누구든 이 마법의 도시를 처음으로 여행한다면, 나는 그대를 행운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쁘게도, 참으로 빼어난 독특한 아름다움이 그대 앞에 연출되리니, 그것은 일찍이 어떤 그림도 묘사하지 못한 것이요, 어떤 책도 기술하지 못한 것입니다.”
_윌리엄 딘 하우얼스, <Venetian Life> 중에서
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해 끝자락, 고요한 석호(潟湖)에 펼쳐진 1백18개 섬을 4백여 개 다리가 단단히 잇고 있는 베니스.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윌리엄 딘 하우얼스(William Dean Howells)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석호로 흘러드는 강과 바닷물이 만든 늪지에 수천만 개 나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주춧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는 이 기적 같은 ‘물의 도시’를 처음 보고는 바로 사랑에 빠진 문인과 예술가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존재해왔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아름다운 운하를 유유자적 누비는 곤돌라와 수상 버스,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 사이로 솟아 있는 늠름한 중세 건축물,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가면과 유리공예품….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다 해도 이처럼 독특하고 수려한 풍경에 눈길을 사로잡히지 않기는 어렵고, 음울한 듯 낭만적인 듯 종잡을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을 도리가 없으며, 알아갈수록 다면적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는 더욱 힘들 테니 말이다.
릴케와 나폴레옹이 사랑한 수상 도시의 대운하
저마다의 시선과 감성으로 이 매혹의 고도(古都)를 품어낸 ‘이방인’들은 마치 연인을 대하듯 갈망하고 그리워하기도 했고, 열광적인 찬사를 쏟아붓기도 했으며, 때로는 14~15세기에 유럽을 호령하던 찬란한 옛 해상 무역 강국의 스러짐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도 베니스를 몹시 좋아했던 인물이다. 평생 유럽 곳곳을 떠돌며 문학에 매여 살았던 릴케는 베니스에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체류하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덕분에 길 안내를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지리에 환했을뿐더러 도시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했다. 특히 그의 친구이자 후견인 같았던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 후작 부인의 초대로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두이노 성(릴케 문학의 정점에 속하는 연작시 ‘두이노의 비가’를 낳게 한 곳)에서 머물렀을 때 인근 도시 베니스에 관한 각종 문헌을 ‘섭렵’하고 자주 그림과 골동품 등을 보러 다니는 ‘예술 산책’을 즐겼다. 운 좋게도 그는 베니스에서 지낸 나날의 대부분은 카날 그란데(Canal Grande, 대운하)에 인접한 후작 부인 소유의 집이나 호텔에서 묵었다고 한다. 1797년 베니스를 침략했을 당시 나폴레옹이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전해지는 ‘S’ 자 형태의 카날 그란데. <릴케의 베네치아 여행>이라는 책을 보면 그는 1897년 처음으로 베니스를 여행했을 때, ‘유명한 저택인 벤드라민과 파파도폴리 곁을 지나가는 카날 그란데 위로 가는 여행’을 했다고 기뻐하면서 이미 대운하의 매력에 풍덩 빠졌음을 드러낸 적이 있다. 아름다운 팔라초(palazzo, 이탈리아 귀족의 저택이나 궁전)의 행렬을 볼 수 있는 카날 그란데 수상 여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베니스를 감상하는 아주 좋은 방식이 아니던가. 베니스에서 내로라하는 부유한 가문들의 보금자리였던 팔라초는 호텔로 쓰이는 경우도 꽤 있는데,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대운하를 굽어보는 명품 호텔 중 하나가 바로 릴케가 직접 언급하기도 한 팔라초 파파도폴리(Palazzo Papadopoli)다.



6
20180307_place_06
7
20180307_place_07
8
20180307_place_08
9
20180307_place_09
아름다운 정원과 대운하를 동시에 품은 호텔, 아만 베니스

파파도폴리 가문 소유인 팔라초 파파도폴리가 호텔로 변모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원래는 1550년부터 존속해온 대저택을 스몰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로 유명한 아만(Aman) 그룹에서 5년 전인 2013년 베니스의 ‘잇 플레이스’로 낙점해 ‘아만 베니스’라는 호텔로 탈바꿈시킨 곳이기 때문이다. 이듬해 베니스에서 결혼식을 치른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허니문 장소로 택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는 했지만, 사실 아만 베니스는 이미 16세기 중반부터 존속해온 명소의 재탄생인 셈이다. 이곳은 처음에는 부유한 무역상이던 코치나(Coccina) 가문에서 16세기에 활동한 건축가 잔자코모 그리기(Giangiacomo Dei Grigi)에게 의뢰해 지은 저택이었는데,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손을 거치다가 19세기 중반에는 현 소유주인 파파도폴리 가문의 차지가 됐다. 당시 파파도폴리가 사람들은 네오-르네상스와 로코코 스타일을 이끈 미켈란젤로 구겐하임(Michelangelo Guggenheim)에게 건물 내부 리모델링을 맡겼다. 구겐하임(미국의 구겐하임 집안과는 상관없는 인물)은 나선형으로 우아하게 뻗은 계단이며 선장, 문손잡이 등에 가문의 문장(紋章)을 새겨 넣었고, 베니스 최초의 엘리베이터와 전기로 작동하는 샹들리에를 설치했다. 그리고 보다 완벽한 보금자리를 창조하기 위해 풍성한 녹음을 자랑하는 근사한 정원을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팔라초 파파도폴리는 카날 그란데에서 드물게 규모 있는 정원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릴케는 ‘(베니스에서) 반드시 보아야 할 곳은 파파도폴리의 아름다운 정원입니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8세기부터 내려온 황홀한 프레스코의 향연

아만과 손잡으면서 호텔로 변신하기는 했지만, 파파도폴리의 후손은 여전히 건물 한쪽에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가꿔온 정원 역시 건재하다. 호텔 투숙객들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면서 맛난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아만 베니스의 정원은 때때로 갤러리나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매력적인 전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는 일본 홋카이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칸 야스다(Kan Yasuda)의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담스러운 정원은 그저 아만 베니스가 지닌 다양한 매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호텔로 지은 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공간이었던 만큼 널찍하고 구조와 동선이 안락한 객실은 물론이고 고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계단과 문, 벽, 천장 같은 인테리어는 오랜 시공을 거친 공간답게 존재감을 뿜어내면서도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식 시스템을 고루 갖추고 있다. 많은 이들이 꼽는 아만 베니스의 백미는 ‘프레스코(fresco)’다. 그도 그럴 것이 18세기 초 이곳은 티에폴로(Tiepolo) 가문의 소유가 된 역사가 있다. 그래서 아직도 곳곳에 티에폴로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고, 네오-바로크풍의 황홀한 서재와 프라이빗 다이닝 룸에도 티에폴로 가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로네세 등 16세기 베네치아 거장들의 전통을 이으면서 프레스코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던 잠바티스타 티에폴로(Giambattista Tiepolo)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작품도 일부 객실과 특별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다. 한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미술사상 어느 화가보다도 프레스코화로 많은 벽과 천장을 메운 티에폴로는 ‘경박할 만큼 가벼운 색상’이라는 폄하를 받기도 했지만, 출중한 데생 기술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한 범위의 색과 그림자를 사용한 탁월한 실력, ‘전체’를 꿰뚫어보고 세심하게 계획한 뒤 작업에 임하는 대형 미술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갖춘 경이로운 아티스트였다.

이렇듯 티에폴로의 프레스코와 1571년 레판토 전투에서 유래한 커다란 유리 전등 같은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아만 베니스는 평온과 ‘나만의 집’ 같은 프라이버시를 갈구하는 방문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일 수 있다. 실제로 운하 반대편에서 걸어서 이 호텔을 드나들 때는 베니스 특유의 빨간색 숫자가 적힌 고풍스러운 대문 앞에 서서 집처럼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 자체로도 베니스의 명물이지만 산 마르코 광장, 리알토 다리, 라 페니체 극장 같은 명소들과 멀지 않으면서도 좁은 골목을 꽉 채운 관광 인파 속에서도 마치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아만 베니스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객실 수는 티에폴로의 프레스코와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스위트, 카날 그란데 전망과 운치 있는 벽난로를 갖춘 스위트 등 2개의 스위트룸을 포함해 24개에 불과하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