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Nest o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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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 2015

에디터 배미진

수천 년간 이어온 로마의 유구한 역사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탈리아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새로운 둥지를 튼 펜디. 이탈리아의 문화유산을 향한 이들의 경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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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 로마 역사의 현장에 새 둥지를 트다
7개의 언덕,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티베르(Tiber) 강,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좁은 길, 유구한 역사가 남긴 수많은 문화유산. 유럽 문명의 요람으로서 ‘영원의 도시’라 불리는 그곳, 로마에서 흥미롭고도 의미 있는 이벤트가 시작된다. 2015년 10월 23일부터 2016년 3월 7일까지 개최되는 <Una Nuova Roma, L’Eure il Palazzo della Civilta` Italiana>展이 그것. 로마는 크게 역사의 중심지로서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찾는 구로마와 에우르(E.U.R)라고 부르는 신로마로 구분되는데, 로마 시내 남쪽 에우르 지역의 건축물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Palazzo della Civilta` Italiana)에서 전시가 열린다. 이 전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20세기 로마 건축물의 아이콘으로 간주되는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의 장소적 특별함과 바로 이곳에 펜디 본사가 새로운 둥지를 튼다는 사실 때문이다. 브랜드의 뿌리이자 문화적 근원이 되는 로마를 위해 트레비 분수 복원 비용 2백12만유로(31억 상당)를 지원하고 콰트로 폰타네 분수 재건 비용 역시 추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펜디가 이번에는 팔라초 델라 시빌타 이탈리아에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에우르 지역구와 15년 협정을 맺고 지원 사격에 나선 것. 에우르 지역은 1942년에 열릴 국제 전시회를 위해 1937년 이탈리아의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의 주도하에 신도시 조성이 계획됐던 곳이다. 에우르라는 이름도 ‘로마만국박람회(Esposizione Universale di Roma)’의 약자에서 비롯됐다.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성대한 프로젝트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에우르 관련 프로젝트는 자연스레 중단되고 로마만국박람회 역시 무산되었다.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는 전쟁에 집중하느라 건축을 제한하던 시절에 완공된 몇 안 되는 빌딩 중 하나인 만큼 건물에 담긴 역사적, 건축적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유명 건축가 조반니 게리니(Giovanni Guerrini), 에르네스토 브루노 라 파둘라(Ernesto Bruno La Padula), 그리고 마리오 로마노(Mario Romano)가 지은 이 정사각형의 건물 외관에는 동상 28개가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인의 찬란한 예술과 공예를 상징한다. 구체적으로 각각의 동상은 장인 정신, 일, 철학, 상업, 산업, 고고학, 역사, 발명, 건축, 법률, 조각, 연극, 언론, 의학, 지리, 시, 그리고 그림 등을 의미한다. 꼭대기 외벽에는 ‘시인, 예술, 영웅, 성도, 사상가, 과학자, 항해사, 이민자들이 가득한 나라(un popolo di poeti di artisti di eroi / di santi di pensatori di scienziati / di navigator di transmigratori)!’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건축양식, 당시의 현대 건축양식이 결합된 이 건물은 완공 이후 콜로세움 광장, 근대화 건물로 불리며 로마인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현대에 와서는 이탈리아 합리주의 건축의 대표 주자로 통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축물이다. 사실 이 건물의 이미지와 기능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후 방치될 운명에 처한 에우르가 로마 정부의 결정 덕에 신도시로 부활한 덕분이다. 1930년대 말에 계획한 건축물들이 1950~60년에 차례로 완성되고 기적적인 경제성장까지 뒷받침되면서 완전한 신도시로서의 형태와 역할을 갖춰간 것. 오랜 시간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탈리아 장인 정신과 창조성의 상징이자 앞으로 펜디가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안식처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 과거의 유산을 숭고하게 이어나가겠다는 이탈리아 브랜드이자 로마에 본사를 둔 펜디의 의지를 반영한 이번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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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이탈리아 디자인과 예술을 말하다
이번 전시는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라는 기념비적 건물을 대중에게 다시 소개하고 알림으로써 이탈리아 장인 정신과 독창적인 디자인, 예술 세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전시는 고전주의와 현대주의, 이탈리아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재생하는 이 건축물 1층에서 열리는데, 규모만 해도 1,000㎡에 달한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이 건물을 처음 보았을 때 초현실주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작품이 현실에서 펼쳐진 것 같았다고 밝힐 정도로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당시의 페인팅과 사진, 필름, 글귀 등을 통해 이 건축물의 스토리를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와 마리오 시로니(Mario Sironi), 오페라와 발레 무대 디자인 작업 외에 건축, 회화, 의상 스케치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아티스트 엔리코 프람폴리니(Enrico Prampolini), 조각가이가 화가 프란체스코 메시나(Francesco Messina) 등의 다양한 작품을 비롯해 이탈리아 대표 구상 조각가 페리클레 파치니(Pericle Fazzini)의 1950~60년대 작품 역시 전시장에 자리할 예정이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와 세계적인 건축 사진가 가브리엘레 바질리코(Gabriele Basilico), 이탈리아 사진작가 파브리지오 페리(Fabrizio Ferri), 1960년대 강렬한 선과 면, 혹은 강렬한 보색대비로 이름을 알린 사진작가 프랑코 폰타나(Franco Fontana) 등이 촬영한 에우르 지역의 사진과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 사진도 함께 전시한다. 이외에 신도시 창조와 확산에 기여한 영화감독들의 작품도 상영할 예정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등의 감독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로마의 깊은 뿌리, 이탈리아의 독창성과 장인 정신, 전통과 현대의 지속적인 결합. 펜디가 추구하는 이 같은 가치를 대변할 펜디 본사의 새 보금자리이자 대중과 소통하는 상징적인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할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에서 앞으로 어떤 역사가 만들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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