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numental Exhibition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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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17

글 고성연


전시는 몰입적인 체험을 중심에 두는 ‘공간형 콘텐츠’다. 무엇을 상상하든 가상현실로 펼쳐낼 수 있는 사이버 시대에도 오히려 눈으로 직접 보고 감흥을 얻는 ‘체험’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몰입의 에너지가 전혀 아깝지 않은 콘텐츠가 흔하지는 않다. 이런 점에서 올여름에는 확실한 희소식이 하나 있다. 현대미술 생태계에서 빼어난 독창성을 인정받는 한 재단이 선사하는 수준 높은 대규모 전시를 체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서울에 찾아왔다는 낭보다. 컨템퍼러리 아트의 진정한 수호자로 통하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서울시립미술관과 손잡고 펼치는 <하이라이트(Highlights)>전은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절대로 놓치지 말라고, 또 되도록 한 번의 방문에 그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싶은 ‘머스트시(must-se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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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vé Chandès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관장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열린다. 단순한 후원이나 수집이 아닌 창의적인 파트너로 쌓아온 재단의 수십 년 내공과 걸출한 동시대 예술가들의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다.
파리 14구에 자리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건물. 세계적인 건축 거장 장 누벨의 작품이다.


2011년 가을, 파리로 여행을 갔는데 며칠 차이로 놓쳐 못내 아쉬웠던 현대미술 전시가 있었다. <수학, 아름다운 그곳(Mathematics: A Beautiful Elsewhere)>이라는 전시였다. 정말로 대다수가 떠올리는 그 수학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었는데, 수학자와 과학자, 현대미술 분야의 걸출한 작가들이 한데 뭉쳐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사고방식과 개념을 ‘체험 가능한’ 형태의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빚어냈다고 했다. 언뜻 ‘어려울까?’ 싶지만 다분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흥미로운 전시를 연 주체는 파리 14구 라스파유(Raspail) 대로에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마침 운 좋게 전시를 본 필자의 화가 친구를 비롯해 상당수 아티스트들은 파리에 가면 되도록 이 미술관을 들른다. 현대미술에 조예가 있는 유럽인 중에는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파리지앵의 기념비’라고 부를 만큼 독창적이고, 때로는 혁신적이기까지 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 누벨이 미술관 설계를 맡기도 했는데, 전면이 유리로 된 아름다운 외관으로도 유명하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 가능한 천고 8m의 시원한 전시 공간, 그리고 곳곳을 예술품으로 수놓은 정원으로 직접 통하는 구조 등으로 수려하면서도 효율적인 건축 미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파리에서 날아온 ‘소장전’,
보석 같은 현대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
6년 전의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이 멀리 서울로 나들이를 온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단순한 원정이 아니다. 치열하고 진지한 고민 끝에 엄선한 1백여 점의 소장품과 더불어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박찬욱·박찬경 감독 듀오, 웹툰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아티스트인 선우훈이 특별 기획한 작품도 선보인다. 그리고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개인전을 연 이력의 소유자인 이불 작가는 당시의 전시 작품인 ‘천지(Heaven and Earth, 2007)’를 비롯해 개인 수집가의 소장품인 ‘스턴바우 No.16(Sternbau No.16, 2008)’를 공개한다. 파리에서 놓친 ‘수학전’ 전시 작품(비디오)도 두 점 포함돼 있다. 33년 역사를 지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 규모는 전 세계 3백여 명 작가의 작품 1천5백 점 정도다. 그런데 이 재단은 단순히 작품을 사들이는 ‘컬렉터’가 아니다. 샹데스 관장이 지휘봉을 든 1994년부터 대부분의 경우에 재단이 심도 있는 기획 회의를 거쳐 제작을 의뢰한 작품(commissioned artworks)을 소장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전적으로 투자하고 새로운 스케일의 작업 기회를 제공하면서 모든 과정을 함께 진행하는 협업적 후원 방식 덕분에 진정한 창조적 즐거움이 깃든 결과물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중 1백 점을 골랐으니 서울 기획전을 ‘Highlights’라고 명명한 것이 충분히 수긍된다.
“개인전이나 기획전이 다른 나라로 원정을 떠나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처럼 33년의 역사가 담긴 컬렉션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현지 작가들과 작업까지 곁들인 대규모 전시는 저희도 처음입니다.” 전시 준비차 한국을 찾은 에르베 샹데스(Herve′ Chandes) 까르띠에 현대미술관 관장은 “그저 컨테이너로 우리가 고른 작품을 가져와서 ‘이거다’ 하고 내놓는 방식은 재미없지 않냐”면서 서울시립미술관(SEMA)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기획전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3개 층에 걸친 전시 공간을 제공한 파트너이자 공동 기획자이기도 한 SEMA와 1년 넘게 협의를 했고, 전시 디자인(scenography)도 한국 디자이너인 이세영_논스탠다드 스튜디오가 맡았다.
끊임없는 발견의 정신,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창의적 파트너로 불리는 이유
그렇다면 재단과 SEMA가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컬렉션 작가들의 면면은 어떨까? 론 뮤익(Ron Mueck), 사라 지(Sarah Sze), 쉐리 삼바(Che´ri Samba), 모리야마 다이도(Moriyama Daido), 차이 구어치앙(Cai Guo-Qiang),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뫼비우스(Moebius)…. 언뜻 낯익은 이름도 보이지만 어지간한 현대미술 애호가가 아니라면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이 꽤 된다.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나 키타노 타케시(Kitano Takeshi), 패티 스미스(Patti Smith) 같은 경우에는 각각 영화감독과 배우, 뮤지션으로는 알려져 있지만 국내 팬들에게 현대미술을 넘나드는 아티스트로는 소개된 적이 별로 없다.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되도록 한국에서는 한 번도 전시를 하지 않은 아티스트 위주로 가자는 것, 그리고 현대미술의 다양한 영역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이렇게요. 왜냐하면 ‘발견’의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게 저희 바람이거든요. 2007년에 이불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파리에서 큰 전시로 소개해 유럽인들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처럼.” ‘수학’이라는 키워드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실제로 재단의 전시 이력을 보면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이라는 단어가 정말로 잘 어울린다. 사진, 영상, 춤, 음악, 퍼포먼스 등 영역도 다채롭지만 샤머니즘, 부두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탐구 정신을 북돋워왔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가, 과학자, 아마존 인디언 같은 그룹이 만나고 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참신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서로 다른 가치와 개성이 어우러지면서 창의적인 콘텐츠가 나오게 된 것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끝없이 새로운 걸 발견하고 탐구하는 것입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런 전시 역시 관람객뿐만 아니라 우리 작가들에게도, 그리고 재단 자체에도 발견의 기회가 됩니다. 한국 대중, 기자, 아티스트를 만나 배우고 소통하면 저마다의 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박찬욱·박찬경 감독, 선우훈 작가와 협업하기로 한 것은 우수한 한국 영화와 디지털 분야에 대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합니다.”
‘좋은 전시는 서로에게 발견의 기회가 된다’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건 이 재단이 전적으로 독립성을 부여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까르띠에라는 브랜드가 100%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만 ‘간섭’은 일절 없다. 또 정부나 유관 기관의 도움도 받지 않기에 기획에서 전시 운영까지 온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창의적인 작가들과 진화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세상에 수준 높은 새로움을 선사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이런 창조적 보람은 20년 넘게 이 ‘직장’을 굳이 떠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주된 배경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과의 만남은 어떤 자극과 계기를 빚어낼지 궁금해진다. 샹데스 관장의 말대로 이제 ‘스토리는 막 시작됐으니까.’ 그 출발점이 될 <하이라이트>전은 8월 15일까지 무료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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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멘디니
‘유리 병사’(2002), 베니니 유리, 까르띠에 황색 금반지, 49X28cm
©알레산드로 멘디니, ©패트릭 그리즈
쉐리 삼바
‘나는 색을 사랑한다’(2010), 캔버스에 아크릴, 글리터, 205X305cm
©쉐리 삼바
클라우디아 안두자르
‘정체성, 와카타 우’ 연작(1976),
젤라틴 실버 프린트 17점 ©클라우디아 안두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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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마 다이도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1997), 26개 패널에 부착한 3천2백62장의 컬러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모리야마 다이도
데이비드 린치
바인더 작업 #1, #2’(1970~2006), 드로잉 2백59점, 종이에 혼합 매체
©데이비드 린치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
‘출구’(2008~2015), 몰입형 6채널 비디오와 사운드 설치(아이디어: 폴
비릴리오) ©딜러 스코피디오 등, 사진 ©뤽 보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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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아 이시드레스
‘도자 조각들’(2013), 에나멜을 칠한 도자기
©훌리아 이시드레스, 사진 ©앙드레 모랭
장-미셸 오토니엘
‘유니콘’(2003), 불어서 만든 유리, 금속, 194X70X50cm
©장-미셸 오토니엘, 사진 ©패트릭 그리즈
버니 크라우스 & 유브이에이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2016), 비디오와 사운드 설치, 84분,
필름: 레이몽 드파르동 ©버니 크라우스, ©UVA, 사진 ©뤽 보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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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몽 드파르동
‘프랑스’(2004~2010), C-프린트 20점, 각 160X200cm
©레이몽 드파르동/매그넘 사진, 파리
론 뮤익
침대에서’(2005), 혼합 매체, 162X650X395cm
©론 뮤익, 사진 ©패트릭 그리즈
차이 구어치앙
‘유리 병사’(2002), 베니니 유리, 까르띠에 황색 금반지, 49X28cm
©알레산드로 멘디니, ©패트릭 그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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