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Mediterranean Art H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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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3, 2022

글 고성연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③ Menorca


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리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2020년 봄, 스페인의 한 섬을 배경으로 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상징과도 같은 ‘거미’ 조각 ‘마망(Maman)’이 놓인 VR(가상현실) 이미지를 접하고는 여러모로 경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바로 하우저앤워스에서 이듬해 오픈할 예정이었던 메노르카섬 아트 센터를 미리 소개하는 자료였는데, 천혜의 자연 속 조각 자체의 존재감, VR 모델링 툴 같은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열심인 현대미술 갤러리의 진보적인 면모, 그리고 또다시 의외의(?) 장소에 아트 센터를 세우겠다는 참신한 발상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의 눈부신 풍광을 머금은 발레아레스제도의 섬들은 유럽인이 사랑하는 휴양지다. 규모가 가장 큰 마요르카, ‘파티 천국’으로 유명한 이비사 같은 섬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 지명도가 낮은 편인 메노르카를 ‘찜’하다니, 호기심이 절로 솟을 수밖에. 지난해 여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제 개관 1주년을 맞이한 하우저앤워스 메노르카(Hauser & Wirth Menorca)를 얼마 전 직접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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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석(hidden gem)’이라는, 흔히 쓰이는, 그래서 시큰둥해지기도 하는 수사가 진정으로 들어맞는 경우도 있다. 메노르카(Menorca)라는 작은 섬도 여기에 해당된다. 사실 교통편이 그리 흔치는 않기에 대개 유럽 내에서도 마요르카를 거쳐 두 번의 비행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바로 그런 제약 덕분에 이 보석 같은 섬은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채 고유의 매력을 지켜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필자도 유럽에서 지내던 늦깎이 학생 시절 우연히 마요르카를 여행한 적이 있었지만 메노르카까지 진출하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하우저앤워스의 세 번째 아트 센터가 들어선 땅은 정확히 말하자면, 메노르카에서도 배를 타고 10~15분 정도 가야 나오는 이슬라 델 레이(Isla del Rey)라는 또 다른 섬이다. ‘왕의 섬’이라는 뜻을 지닌, 섬 전체 면적이 40,000m²에 지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이다. 그렇다면 콧대 높은 메가 갤러리의 텃세로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에 소수만을 위해 지은 전당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하우저앤워스 메노르카는 지난해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의 전시로 갤러리의 문을 연 데 이어 올여름에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오프닝 전야 행사의 풍경을 보면 이 범상치 않은 갤러리가 어떤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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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아직은 어슴푸레하게나마 빛이 남아 있는 여름날의 저녁, 이슬라 델 레이에는 보트 행렬이 이어지고 편안하지만 멋스러운 스타일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선착장에 내려 왼편을 보면 옛 해군 병원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Fundacio´ de l’Hospital de l’Illa del Rei 재단 운영)이 시야에 들어오고, 하우저앤워스 방향으로 가는 오른쪽 길목에는 작은 악단이 팡파르를 울리면서 손님들을 환영한다. 저녁에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병풍처럼 두른 야외 정원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는데, 어림잡아 5백 명이 넘는 듯했다. “메노르카섬 주민들이 몽땅 왔나 봐”라는 식의 농담을 주고받을 만도 하다(메노르카의 인구는 10만 명 정도이고, 이슬라 델 레이에는 상주인구가 없다). 실제로 전시를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문화 예술계 종사자도 많았지만, 섬 주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모두가 컬렉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시 자체, 그리고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은 철저히 이곳을 찾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지만 말이다. “이슬라 델 레이는 시에 속한 공유지인데, 2004년부터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왔어요. (이 취지에 깊이 공감한) 저희 갤러리는 일부 부지(1,500m²)를 갤러리와 레스토랑, 아트 숍 등을 갖춘 아트 센터로 활용하기로 하는 임대 협정을 맺었고요.” 하우저앤워스 메노르카의 디렉터 마르 레스칼보(Mar Rescalvo)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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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과 자연, 그리고 예술의 수호자를 자처하다

그리하여 전격 가동된 메노르카 프로젝트에는 서머싯의 핵심 인력이 동원됐다. 서머싯의 기적을 만든 피트 아우돌프가 지중해 기후에 맞는 풍성한 질감과 형태를 지닌 다양한 식물로 채운 정원을 만들었고, 역시 ‘서머싯 프로젝트’ 멤버인 루이즈 라플라스(Louis Laplace)가 건축설계를 맡았다. 글로벌 문화유산의 보존, 지역과의 공생, 차세대 재능을 발굴하고 키운다는 하우저앤워스의 비전에 공감한 작가들도 솔선수범 돕고 있다. 개관전의 주인공 마크 브래드퍼드는 지난해 메노르카에서 한 달가량 머물면서 지역 미술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에듀케이션 랩’을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번에 <소다드(Sodade)> 전시로 메노르카를 찾은 라시드 존슨도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신의 전시 포스터 판매 금액 전액을 지역의 야생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서머싯의 교육 담당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하우저앤워스 글로벌 ‘러닝(learning)’ 디렉터를 맡고 있는 데비 힐러드(Debbie Hillyerd)를 드디어 메노르카에서 만났는데, 그녀는 아트 센터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문적인 맥락에서 배울 수 있는 여러 방식에 대해 확실히 시야를 트이게 해줄 수 있어요. 젊은 예술인들로 하여금 우리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해 배우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 응집력을 북돋는 공간을 누릴 수 있게 하면서요.” 머지않아 이곳에는 서머싯에 이어 두 번째로 하우저앤워스의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생길 예정이라 아마도 메노르카와 이슬라 델 레이 사이에서 보트를 타고 오가며 공부하는, 미래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의 눈은 한층 초롱초롱 빛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

01. 하우저앤워스의 30년 여정은 어떻게 유일무이한 메가 갤러리를 만들어냈을까 보러 가기
02. SOMERSET_a field Embroidered with Art 보러 가기
03. LOS ANGELES_Welcome to the Arts District  보러 가기
04. MENORCA_a new Mediterranean Art Haven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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