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리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2020년 봄, 스페인의 한 섬을 배경으로 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상징과도 같은 ‘거미’ 조각 ‘마망(Maman)’이 놓인 VR(가상현실) 이미지를 접하고는 여러모로 경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바로 하우저앤워스에서 이듬해 오픈할 예정이었던 메노르카섬 아트 센터를 미리 소개하는 자료였는데, 천혜의 자연 속 조각 자체의 존재감, VR 모델링 툴 같은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열심인 현대미술 갤러리의 진보적인 면모, 그리고 또다시 의외의(?) 장소에 아트 센터를 세우겠다는 참신한 발상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의 눈부신 풍광을 머금은 발레아레스제도의 섬들은 유럽인이 사랑하는 휴양지다. 규모가 가장 큰 마요르카, ‘파티 천국’으로 유명한 이비사 같은 섬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 지명도가 낮은 편인 메노르카를 ‘찜’하다니, 호기심이 절로 솟을 수밖에. 지난해 여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제 개관 1주년을 맞이한 하우저앤워스 메노르카(Hauser & Wirth Menorca)를 얼마 전 직접 찾아가봤다.
그리하여 전격 가동된 메노르카 프로젝트에는 서머싯의 핵심 인력이 동원됐다. 서머싯의 기적을 만든 피트 아우돌프가 지중해 기후에 맞는 풍성한 질감과 형태를 지닌 다양한 식물로 채운 정원을 만들었고, 역시 ‘서머싯 프로젝트’ 멤버인 루이즈 라플라스(Louis Laplace)가 건축설계를 맡았다. 글로벌 문화유산의 보존, 지역과의 공생, 차세대 재능을 발굴하고 키운다는 하우저앤워스의 비전에 공감한 작가들도 솔선수범 돕고 있다. 개관전의 주인공 마크 브래드퍼드는 지난해 메노르카에서 한 달가량 머물면서 지역 미술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에듀케이션 랩’을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번에 <소다드(Sodade)> 전시로 메노르카를 찾은 라시드 존슨도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신의 전시 포스터 판매 금액 전액을 지역의 야생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서머싯의 교육 담당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하우저앤워스 글로벌 ‘러닝(learning)’ 디렉터를 맡고 있는 데비 힐러드(Debbie Hillyerd)를 드디어 메노르카에서 만났는데, 그녀는 아트 센터 프로그램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문적인 맥락에서 배울 수 있는 여러 방식에 대해 확실히 시야를 트이게 해줄 수 있어요. 젊은 예술인들로 하여금 우리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해 배우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 응집력을 북돋는 공간을 누릴 수 있게 하면서요.” 머지않아 이곳에는 서머싯에 이어 두 번째로 하우저앤워스의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생길 예정이라 아마도 메노르카와 이슬라 델 레이 사이에서 보트를 타고 오가며 공부하는, 미래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의 눈은 한층 초롱초롱 빛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2, 3 스페인 메노르카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작은 섬 이슬라 델 레이(Isla del Rey)에 들어선 하우저앤워스 메노르카 풍경. 지역 커뮤니터와의 활발한 연계로 문화 예술 활동과 학습을 도모하기 위한 갤러리의 세 번째 아트 센터다.
4 하우저앤워스 메노르카 내에 있는 ‘에듀케이션 랩’. 지역의 학생들과 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 다양한 학습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드로잉 워크숍에서 지역 주민들이 그린 그림들이 천장에 걸려 있다. ※ 1~4 Photo by Daniel Scha··fer
5 미국 작가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개인전 <Sodade>가 오는 11월 13일까지 진행된다. © Rashid John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by Stefan Altenburger 세계적인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가 부른 동명의 명곡 ‘Sodade’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 제목은 ’그리움, 향수’를 뜻한다.
[르포] 하우저앤워스 아트 센터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