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샘표와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함께 펼친 요리 시연.
3 한국의 전통 김치 조리법을 선보이는 선재 스님.
5 행사 내내 가장 인기 있었던 샘표의 부스.
6 하나의 요리를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선보이는 셰프들.
7 장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상훈 데장브르와 통역하고 있는 장-피에르 가브리엘.
9 새로운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셰프 프란시스 파니에고.
10 한국을 대표하는 3명의 셰프와 송희라(한식재단 부이사장), 루르데스 플라나 베이도(마드리드 퓨전 공동 디렉터).
12 코이의 셰프 대니얼 패터슨의 팝콘과 캐러멜을 이용한 디저트.
13 이번 행사에서 다양한 요리를 준비한 바야돌리드의 젊은 요리사들.
식품업체가 모여 기업과 바이어 간의 비즈니스를 논하는 식품 박람회나 최고의 요리사를 뽑는 요리 대회를 상상했다면 마드리드 퓨전에선 그 이상을 기대할 만하다. 월드 클래스의 셰프들과 식품 공학자들이 연계해 한층 진보된 조리 기술을 선보이고, 새롭게 주목받는 식문화와 트렌드를 소개하며 이에 관련한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시식과 볼거리 위주의 음식 축제가 아니라 올바른 식문화, 미식에 대한 인식과 발전 자체를 진정성 있게 다룬 행사이다. 지난 10년간 국제 미식계를 이끌었던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an Adria)를 비롯해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에서 2위와 3위에 선정된 셰프 호안 로카(Joan Roca)와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즈(Andoni Luis Aduriz) 같은 스페인 셰프들은 이 행사를 적극 지지했다. 이를 통해 마드리드 퓨전의 국제적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지난 세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독점했던 세계 미식의 이목을 스페인으로 옮긴 것도 마드리드 퓨전의 공이 매우 크다. 특히 올해행사에서는 우리나라가 주요 초대국으로 선정되어 한국 음식의 매력을 세계에 소개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기회를 통해 세계적인 셰프와 외식업 관계자, 해외 언론에 한식의 가치를 소개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세계적인 한국의 스타 셰프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더욱 커졌다. 같은 기간에 시작해 2주간 펼쳐진 마드리드 갸스트로 페스티벌(Gastro Festival)은 마드리드 퓨전의 재미를 한껏 배가시켰다. 특히 올해는 현대미술이나 영화와 같은 창작 예술 분야와 식문화의 관계를 다루었다.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하고, 여러 박물관에서 미식과 연계된 행사를 열어 미식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축제는 전통 요리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그간 모던 요리를 이끄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스페인의 매력적인 전통 요리를 접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무엇보다 방문객의 관심을 끈 것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접할 수 있는 유명 셰프들의 갈라 디너였다. 한국의 대표로 마드리드를 방문한 산당의 임지호 셰프,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는 각자 마드리드의 특급 호텔에서 열린 갈라 디너에서 한국 셰프의 음식을 맛보러 모여든 4백여 명의 미식가들에게 자신들의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셰프들의 주제 발표와 조리 시연은 마드리드 퓨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양한 조리 시연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강당에서 세계 각국에서 초대된 셰프들은 새로운 조리 기술이나 자신의 레스토랑만이 보유한 독특한 콘셉트와 노하우를 공개한다. 올해는 떠오르는 젊은 셰프들이 대거 초대되었는데, 스페인 안달루시아 출신의 다니 가르시아(Dani Garcia)와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토레스 형제(Sergio, Javier Torres) 같은 셰프의 발표는 스페인 미식을 책임질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여줬다. 런던에서 온 셰프 누노 멘데스(Nuno Mendes)는 재능 있는 젊은 셰프들을 부각시키고 레스토랑과 갤러리의 경계를 무너뜨린 로프트 프로젝트(Loft Project)를 소개해 런던이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현대 예술의 메카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혁신적인 미국 요리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코이(Coi)의 셰프 대니얼 패터슨(Daniel Patterson)과 콜톤(Corton)의 셰프 폴 립런트(Paul Liebrandt)의 창의적인 주제 발표도 큰 관심을 얻었다. 특히 작년에 출간과 동시에 많은 셰프들을 열광케 했던 조리서 <모더니스트 퀴진(Modernist Cuisine)>의 저자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는 과학을 결합한 다양한 조리 기술을 선보여 많은 청중의 호응을 얻었다. 레스토랑 노마(Noma)로 대표되던 스칸디나비아 지역 셰프들, 특히 스웨덴 출신의 셰프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스웨덴의 레스토랑 프란첸(Frantzen)은 모든 식재료를 살아 있는 상태로 보관하다가 주문과 동시에 손질하는 주방 운영 방식을 선보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북유럽에서 가장 떠오르는 레스토랑 파비켄(Faviken)의 셰프 매그너스 닐슨(Magnus Nilsson)은 다양한 스웨덴의 야생 고기와 자신만의 고기 숙성법을 소개하고 9개월간 숙성한 쇠고기를 이용한 간단한 숯불구이를 선보였다. 조리사들에겐 꿈의 무대인 보퀴즈 도르(Bocuse d’Or)의 2011년 우승자인 덴마크 출신의 라스머스 코포엣(Rasmus Kofoed)은 젊은 요리사들이 유행에 치우쳐 간과할 수 있는 조리의 기본과 기술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셰프들은 마드리드 퓨전을 통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쌓고, 정보를 교류한다. 마드리드 퓨전은 현재 스페인이 세계 미식을 이끌게 된 배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식의 공유를 통해 혁신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 함께 발전해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마드리드 퓨전의 궁극적인 취지이다. 저온 조리(sous-vide), 액화질소를 이용한 급속 냉동 등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많은 기술이 이전부터 마드리드 퓨전을 통해 발표되어왔다. 이는 단지 과학자가 새로운 학설이나 이론을 발표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주방에서 직접 조리하는 셰프가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면 이를 접한 다른 셰프들은 곧바로 이런 기술을 응용하고 발전시킨다. 국제적으로 음식 트렌드가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것도 바로 이런 행사가 더욱 많아지고 셰프들의 연구와 공유가 더욱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주요 초대국으로 선정된 행사이다 보니 가장 큰 관심을 얻은 것은 한국의 음식 문화와 한국인 셰프들이었다. 한식재단에서는 행사장 곳곳에 우리 식문화를 소개하는 부스를 만들어 다각도로 한식을 소개했다. 1층 행사장 입구에는 우리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공간을 마련해 김치, 장아찌, 장류 등 다양한 우리 발효 음식을 직접 소개했다. 다른 부스에서는 유럽과 미주 지역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 가이드북을 배포하고, 업계 관계자들에게 한국 식품 기업의 다양한 상품을 소개했다. 특히나 발효 전통 기업인 샘표의 부스는 행사 기간 내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자칫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의 발효 음식, 장 문화를 현지 요리사들과 함께 좀 더 쉽게 소개한 점이 적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호안 로카, 키케 데코스타(Quique Dacosta), 상훈 데장브르(Sang Hoon Degeimbre)와 같은 세계적인 미슐랭 스타 셰프들에게 고유의 발효·장 문화를 소개했고, 그들이 바라본 우리 음식의 매력과 전통 장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알렸다. 그런 만큼 한국의 발효 음식과 세계적인 셰프의 음식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행사장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우리 식문화 알리기에 앞장서는 식품 기업이 마련한 프로젝트를 보며 이것이 대기업의 이상적인 사회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 3명의 강연과 조리 시연 또한 큰 관심을 얻었다. 이 모든 발표에서 벨기에의 음식 연구가 장-피에르 가브리엘(Jean-Pierre Gabriel)이 설명을 도왔다. 서울 고메 페스티벌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그는 우리 음식의 매력에 빠져 한식 홍보 대사를 자처할 만큼 한식 마니아이다. 외국인으로서 바라보는 한식의 매력을 식문화 전문가답게 쉽게 소개해줘 청중의 관심을 더욱 높였다. 첫째 날은 자연 요리 연구가, 방랑 식객으로 더욱 유명한 산당 임지호 셰프의 조리 시연이 있었다. 국제적으로 자연 채집형 요리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임지호 셰프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우리 땅을 돌며 직접 채집한 채집형 자연 요리를 실천해왔다. 우리나라의 각종 나물과 삼색전을 이용한 음식, 우리 땅의 기운을 품은 뿌리채소와 복분자 소스를 곁들인 요리까지, 음식은 약이자 과학이라는 임지호 셰프의 철학을 멀리 스페인 땅에까지 알린 시간이었다. 둘째 날은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의 조리 시연이 있었다. 현지 언론은 스페인에서 근무했던 임 셰프의 이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장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되었는데, 된장찌개를 곁들인 전형적인 한국인의 한 상 차림을 위트 있게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한 접시에 담아냈다. 특히나 젊은 셰프들이 그의 발표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마지막 날 이미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벨기에의 상훈 데장브르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그는 이전에도 이미 김치와 유제품 같은 발효 음식에 주목했다. 이번에도 비트에 김치, 흑초 등 다양한 한국의 발효 식품을 더해 그림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국제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는 마드리드 퓨전이지만 이런 행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음식 비평가는 “유명 셰프들을 이용한 마케팅 행사는 국제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일본, 벨기에, 한국, 싱가포르까지 수많은 셰프가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이제 충분하다. 셰프는 주방을 지키며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페란 아드리아와 함께 모던 요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레스토랑 팻 덕(Fat Duck)의 셰프 헤스턴 블루멘탈(Heston Blumenthal)은 이번 행사에 참석해 “수많은 젊은 셰프들이 이런 세미나에 참석하며 특정 음식이나 기술을 맹목적으로 모방한다. 음식 창조는 조리 이론을 기본으로 과정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런 진정성을 무시한 채 유행처럼 조리 기술만 번지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런 세미나의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그동안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식문화는 그 가치에 비해 국제적인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잘못된 정보를 바르게 소개하고 다양한 식문화를 나누며 인류에게 새로운 가치와 행복을 선사하는 일이 이런 세미나의 역할이다. 비즈니스와 마케팅이 목적이 아닌 모두에게 올바른 식문화를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 이런 행사가 나아갈 방향인 것이다. 당신은 한 끼 식사를 위해 여행을 계획하는가? 아니면 관광 도중 때가 되면 근처에서 식당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인가? 음식은 한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당신의 여행 스타일이 어떻든 다음 여행 땐 세계 곳곳에서 음식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적인 미식 박람회에 한번 참석해보길 바란다. 그곳에서 세계 각국의 식문화를 접한다면,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 이상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먹는 것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의 모임, 그 속을 직접 들여다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