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and on 에디 마티네즈(Eddie Martinez) _스페이스K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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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3, 2024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디블렌트 CD) l 이미지 제공_스페이스K 서울

40년 가까이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일상의 모든 순간에 드로잉을 해왔던 에디 마티네즈(Eddie Martinez, b. 1977). 결국 그가 그린 드로잉이 회화가 되고 조각이 되기도 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 낙서화를 그리며 성장한 작가는 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래피티와는 또 다른 아름다운 화폭을 만들어내며 현대미술 컬렉터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실을 비판하기보다 ‘일상을 더 사랑할 수 없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긴 듯한 그의 작품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리는 것처럼 자유로우면서도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그가 지난 3월 중순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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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놓아버리는 것이다’라는 영국 아티스트 뱅크시의 문장이 무척 어울리는 에디 마티네즈(Eddie Martinez)의 작품에는 그를 행복하게 하는 일상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저는 항상 사람들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무언가를 찾길 바랍니다”라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실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피티와 회화를 결합한 듯한 에디 마티네즈의 작품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생겨나는 특유의 에너지가 마치 생명체처럼 숨 쉬는 것 같다. 뉴욕 브루클린의 거리에 낙서화를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만큼, 대담한 드로잉과 과감한 색채가 그의 작품이 지닌 특징이다. 길거리 미술의 거친 면은 그가 추구하는 미술사 전통과 만나면서 부드럽고 우아하고 즐거운 사물의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인지 이해하기 쉽고, 보는 순간 직관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의 전속 갤러리는 네 곳이다(영국의 티모시 테일러(Timothy Taylor), 미국의 미첼이네즈 네시(Mitchell-Innes Nash), 독일의 막스 헤츨러(Max Hetzler), 미국의 블룸(Blum)). 최근 미술관에서 전시를 자주 열고 있기도 하다. 2018년 뉴욕 브롱크스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데 이어 이듬해인 2019년 디트로이트 현대미술관과 상하이 유즈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이 열렸고, 지난 3월 중순 서울의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인전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6월 16일까지)가 막을 올렸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내륙국인 산마리노공화국 전시관의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전시할 예정이라고도 하니 그의 기세가 폭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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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드로잉이 꿈꾸는 세계
잠시 앉아 있을 때조차 낙서처럼 뭔가를 계속 끄적이고 그려대는(기자 간담회를 할 때도 드로잉을 했다) 에디 마티네즈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상의 소재’와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회화와 조각, 그리고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의 원동력입니다. 30년, 35년, 어쩌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 삶에서 변함없이 존재했고, 드로잉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처로 주변 환경 속에서 나와 연결되는 방법이었습니다. 제가 항상 해오던 것이자 주변 환경에서 항상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 것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설명처럼 ‘드로잉’은 그에게 작품의 시작점이다. 검정 테두리에 다양한 사물의 형태와 색채가 뒤엉키면서 기분 좋은 에너지가 솟구친다.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화면 구성 덕분에 더 동적이다. 그는 수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는 작품마다 각각의 ‘스토리라인’을 계획하고 창작을 할까? “특별히 의도된 스토리라인보다는 작품 자체에 역사가 있기에 그것으로 시각적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그 시각적 내러티브는 결국 추상화 같은 궁금증을 남긴다. 드로잉한 뒤 이미지를 겹치고 과장하거나, 화이트 아웃 기법으로 다시 이미지를 지우거나 드로잉을 확대해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뒤 그 위에 다시 채색하며, 고전적 형식의 회화와 자유로운 드로잉의 속도감을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해방감이 느껴지면서도 존재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된다. 꽃, 화분, 테니스 공, 블록헤드(blockhead) 같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다양한 존재가 계속 반복되기도 하는데, 미묘하게 달라 보이다가 결국은 캔버스 안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런 동일한 모티브들이 그에게 어떤 변화로 다가오는지, 결국은 대상에서 해방될 것 같다고 에디 마티네즈에게 질문했더니 그는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어떤 면에서 자유를 준다는 데 동의합니다. 반복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이런 반복을 통해 더 쉽게 이미지를 가지고 놀 수 있고 더 추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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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때 드러나는 존재
에디 마티네즈는 수십 년에 걸쳐 나비, 화분, 테니스 공 같은 일상에서 영감받은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일상적 경험의 모방’이라는 구성 원칙에 따른다고 한다(예컨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병은 2004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에서 ‘평범한 일상’은 우주가 되기도, 만다라가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 ‘은하계 같은 풍경-로지아(Loggia)에서 바라보다’는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데, 자세히 보면 귀여운 강아지가 화면 시작점에 흐릿하게 보인다. 그의 반려견 ‘프란시스’가 죽던 날 시작한 이 회화 작품은 마치 하얀 세상에 갇힌 것 같다. 흰 페인트로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덮었고 나뭇잎, 버섯, 꽃, 눈 등이 화면 안에 뒤섞여 있다. 단순히 무언가를 지우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해 무엇이 나올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는 작가는 동양철학과 불교에 심취해 있고, 1개월가량 만들고는 바로 지워버리는 티베트의 ‘모래 만다라’ 수행도 좋아한다. 마치 조각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 ‘만다라(불교와 힌두교에서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그림)’를 보면, 작가의 오랜 사유와 수행자와 같은 철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는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스튜디오 밖에서도 계속되는 삶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모든 것에 완성은 없죠. 그러니까 계속될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을 극복했던 순간마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요즘엔 ‘감사함’을 느낀다는 작가의 일상은 이렇게 지속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등교 준비를 시킵니다. 가끔은 테니스를 치거나 맨해튼에 갑니다. 보통 오후 1시가 되면 스튜디오에 도착합니다. 일하다가 저녁엔 집에 가죠. 이를 계속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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