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T SH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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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4, 2024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디블렌트 CD)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동시에 열리는 아트 주간을 맞이해 한국 출신 작가들에게 관심과 기회가 집중되고 있다. 개최 도시 입장에서 국제적인 아트 페어가 의미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이우환, 서도호, 유영국 등 거장의 전시부터 글로벌로 향하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까지, 페어장 바깥에서 다양한 규모로 펼쳐지고 있는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 신에 주목해보자.
‘현대미술의 달’이라고 해도 무방한 9월을 맞이해 한국 작가들의 전시가 풍성한 만찬처럼 펼쳐진다. 쉽게 볼 수 없었던 거장의 전시부터 중견 작가, 젊은 한국 작가의 전시가 서울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서울로 모이기에 거장은 거장대로, 중견은 중견대로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내기에 좋은 시기다. K-컬처 열풍도 한국 미술에 대한 인식과 관심에 긍정적 효과를 불어넣고 있다. 최근에는 거장 작가들뿐만 아니라 3040 젊은 작가들도 미국과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일이 잦아지며 한국 작가들의 명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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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는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의 2인전 를 개최한다(9월 4일부터 10월 26일까지). 이번 전시는 로스코 유족과 협력해 이우환 작가가 직접 기획에 참여했다. 추상적인 형태와 철저한 절제로 사유를 이끌어내는 두 예술가의 작품을 대화하듯 배치해 더 기대감을 모은다. 2018년에서 2023년 사이에 제작된 이우환의 ‘Dialogue’와 ‘Response’ 연작 회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공개된 마크 로스코의 주요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식이다. 갤러리 1층 중정에서는 강철판 위에 무거운 돌이 떨어지는 형태로 구성된 이우환의 새로운 설치 작품 ‘Relatum-Correspondence’를 볼 수 있는데, 무척 명상적이다. 한국 1세대 추상화가 유영국의 개인전도 열린다. PKM 갤러리의 하반기 첫 전시인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에서는 작가 사후 최초로 공개되는 소품을 볼 수 있다. 한국 전통의 자연관과 서양의 추상미술을 접목한 추상회화의 선구자 유영국은 무엇보다 ‘중용’의 미덕을 중시했다. 웅장하면서 평온하고, 대담하면서도 온화한 느낌의 작품들을 지그시 보고만 있어도 헌신적인 예술가의 삶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10월 10일까지).
비어 있는 공간 속에서 점이나 선으로부터 시작하는 조각을 만드는 존 배의 개인전도 갤러리현대에서 10여 년 만에 열린다(10월 20일까지). 존 배는 1960년대부터 철사를 이용해 여러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과 회화까지 7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아우르는 작품 30여 점을 선별했다. 철을 이용해 공간의 선율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은 인간의 기억과 잠재의식뿐 아니라 음악, 과학, 문학 등을 다양하게 탐구한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30주년 기념 전시에 참여한 마이클 주(Michael Joo)의 아크릴 패널 신작 시리즈를 선보이는 개인전 <마음의 기술과 저변의 속삭임>(서울점 K2, 11월 3일까지)과 더불어 같은 기간 K1, K3, 그리고 한옥 공간에서 함경아 개인전을 펼친다. 자신이 바라보고 경험하는 오늘날의 사회를 3개의 악장으로 꾸려 공유하는 전시로 작가의 고유명사와도 같은 ‘자수 프로젝트’를 비롯해 여러 작업을 볼 수 있다.
글로벌 무대로 향하는 젊은 작가들
일민미술관은 를 펼치며 차재민, 백현진, 김민애 등 3명의 작가를 선정해 각각의 개인전을 선보인다(11월 17일까지). 차재민 작가의 전시 <빛 이야기 Stories of Visible Spectrum>는 개인이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보여준다. 예술과 삶, 죽음과 탄생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질문과 기록을 담은 에세이 필름 <광합성하는 죽음>은 미술 비평가 곤노 유키가 영상 속 내레이션을 맡았다. 미술가, 음악가, 배우, 감독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백현진은 <담담함안담담함 라운지>라는 전시에서 36점의 작은 회화로 구성된 신작 ‘당신의 배경’, ‘벽을 위한 그림’, ‘자살 방지용 그림’ 등의 대표작을 선보이고 매주 금요일 저녁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김민애는 <화이트 서커스>라는 전시를 통해 어딘가 기이하고 들뜬 서커스의 분위기를 다양한 조각과 설치로 선보인다. 시간성과 서사성을 아우르며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실험적인 설치 작업으로 보여주는 현대미술가 김덕희의 개인전 <사과와 달(The Apple and The Moon)>도 눈여겨볼 만하다(갤러리바톤, 9월 14일까지).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의 대표적인 설치 작품인 저해상도 영상 기기의 픽셀을 조형화한 작업과 파라핀을 녹여 공간과 구조물에 도포하는 작업, 픽셀 작업에서 파생된 새로운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P21 갤러리에서는 김지영의 개인전 <밤의 목덜미를 물고>를 개최한다(8월 29일부터 10월 12일까지). 사회적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로 드러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하는 작가로, 폭력의 근원이 개인의 생존과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이 때론 시적으로 보인다. 익숙함을 깨는 조각가 김인배의 개인전 <없는 것을 보고>(프라이머리 프랙티스, 10월 13일까지), 재일 교포 3세 김사직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생명은 모두, 원의 중심에서 온다>(더레퍼런스, 9월 22일까지)도 눈길을 끈다. 김리아갤러리에서는 개인과 세상의 관계를 치열하게 화폭에 담아내는 박태훈 작가의 개인전 가 열리고 있다(9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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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집으로의 여정

서도호가 돌아왔다. ‘완벽한 집’의 이야기로!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워싱턴 D. 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 데 이어 아트선재센터에서 20년 만에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 (Speculations)>를 선보이는 서도호는 당대 최고의 설치미술 작가로 꼽힌다(전시는 11월 3일까지). 내년 5월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니, 당분간 그의 상상은 세계 어디에서나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종과 국가와 성별을 초월하는 대안적 세계
시간, 공간, 기억, 움직임 등을 재구성해 대안 세계에서 가능한 것들을 탐구하면, 문화의 이동과 차이에 대해 새로운 맥락을 부여할 수 있을까? 건축과 신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서도호 작가가 또 새롭게 대안적 세계를 펼쳐놓았다. 뉴욕과 런던에서 지내며 스스로를 늘 ‘이주민’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20년 만에 다시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를 선보였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만약이라는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상해나가는 작업 과정을 ‘스페큘레이션’이라고 표현했어요. 제 작업 과정이 거의 그런 과정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도시들을 어떻게 국경 없이 연결할 수 있을까? 집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3차원 세계에서 만들 수 없는 작품까지 구상하게 됐는데, 1991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사용하기 시작한 스케치북 포맷 그대로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기록해왔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프로젝트, 허구적이고 개념적인 영역을 조금씩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고, 그것들이 모여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뤄지기 힘들 것 같아서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모형과 도면을 제작했다지만, 사실 이번 전시장의 작품 중 3분의 1은 실제로 이뤄진 것들이다. “한 문화의 건축물이 날아가 다른 문화의 건축물에 박힌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서도호의 ‘별똥별’ 연작은 지금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바뀌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에서 구현했다. 자신이 살던 한옥 모양의 구조물을 영국 리버풀의 빌딩 사이에 구겨 넣듯 설치한 ‘다리를 놓는 집’도 그렇다. 최근작 ‘완벽한 집 S.O.S.’ 역시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 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는데, 일주일간 북극해의 극한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구명복의 형태로 실현되었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은 아직 진행 중인 연구 과정의 일부로, 완성된 결과물은 내년에 선보인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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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리움 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천으로 만든 집’ 등 그간 비교적 큰 설치 작품 위주로 선보였지만, 서도호 작가는 이런 설치 작품은 ‘아이디어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대답한다.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실제로 보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사실 이제 그에게 불가능한 프로젝트는 없는 듯 보인다. “완벽한 집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집이라고 느끼는 두 도시, 뉴욕과 서울을 잇는 다리 위에 ‘완벽한 집’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 데서 시작한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거주지인 런던을 추가해 서울, 뉴욕, 런던 세 도시를 등거리로 연결한 지점에 ‘완벽한 집’을 설계했다. 이 집은 북극 보퍼트해에 위치하는데, 세계적인 생물학자와 물리학자, 건축가 등과 협업하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실제로 이 ‘완벽한 집’은 조만간 북극 보퍼트해에 어떤 형태로든 설치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유엔에 전화해 “북극해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나라라고 선포할 수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이 프로젝트는 사실은 목적점이 없습니다. ‘다리 프로젝트’도 이동에 대한 작업이지만 종착역을 생각하지 않고 작업합니다. 서울에서 북극해까지 다리를 만들어,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3개 도시의 집을 짓겠다고 설정하고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한 집’은 핑계고 사실 약간 <사유기>를 읽는 것 같은 경험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 집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풀어놓은 게 이 프로젝트입니다. 언제 도달할지 모르는 긴 여정 중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부딪히게 되고, 북극해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 여정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상하게 서울 집이 더 생각나더라고요. 서울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가, 하고.”
서도호의 작품은 자전적 성격이 크다고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부분이 있다. 인종과 국가와 성별을 초월하는 어떤 정서. 이민과 망명 등 낯선 곳으로 주거를 옮기는 고통과 추억,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공감이랄까.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철거를 앞둔 영국 런던의 주거 단지 ‘로빈 후드 가든’과 대구의 ‘동인시영아파트’ 공간을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도 볼 수 있는데, 무수히 떠나가야 하는 ‘집’에 대한 그리움과 쓸쓸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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