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빛을 늘 다른 무언가를 비추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저는 빛 자체를 다루는 예술을 하고 싶었습니다. 빛을 묘사하는 회화나 조각을 넘어서 말이죠.” 터렐은 ‘빛은 나의 주요한 매체이자 물질이며, 동시에 지각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페이스갤러리 3층에 설치된 장소 특정적 작업 ‘웨지워크(Wedgework)’는 어두운 방 안에 LED로 빛을 투사함으로써, 관객의 시각적 지각을 착란시키고, 빛 자체가 벽처럼, 구조처럼 존재하는 착시적 공간을 형성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웨지워크 시리즈는 빛의 물질성을 가장 밀도 있게 탐구한 작업 중 하나였다. 웨지워크는 영어로 ‘쐐기’를 뜻하는 ‘wedge’에서 출발했다. 어둠 속에 경계와 틈을 만들어내는 ‘쐐기’는 공간을 나누고, 균열을 만들며, 지각을 흔드는 도구로 활용된다. 전시장 벽을 더듬어 도착한 방 안에 들어서면 벽인지 틈인지, 물체인지 환영인지 모를 모호한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특정 각도에서 보면 단단한 벽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양한 색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때 빛은 시각의 한계를 노출시키며, 실재 여부에 질문을 던진다. 웨지워크 시리즈에서 빛은 비물질적인 동시에 구체적이며, 무게가 없는 동시에 공간을 구성한다. 이때 관객은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잠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터렐은 이렇게 설명했다. “광자는 (상대론적) 질량이 있고, 빛의 파동은 하나의 형상이기 때문에 빛은 사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빛을 인식하는 우리의 감각은 상대적이고, 이런 인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인식이 중요하지요.”

1970년대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의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업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1977~)는 아직도 진행 중인 장기 프로젝트다. 미국 애리주나주 북부의 약 40만 년 전 화산 분화구 내부에 건설 중인 이 방대한 작업은 빛과 하늘을 육안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현재까지 완공된 6개의 공간은 특정 각도에서 내부를 관통하도록 되어 있고, 별자리의 경로를 따라 밤하늘을 관측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든 크레이터’의 구축 과정을 담은 사진, 판화, 조각, 평면 작업 등 총 25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 로든 크레이터 사진, 관측 공간 ‘다크 스페이스 체임버(Dark Space Chamber)‘ 모형 등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는 1960년대 ‘프로젝션 피스(Projection Pieces)’ 시리즈를 시작으로 1974년부터 이어진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s)’ 시리즈, 1976년부터 전개된 ‘간츠펠트(Ganzfelds)’(2013)를 비롯한 ‘글라스웍스(Glassworks)’ 시리즈까지 색채, 공간, 지각을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실험해왔다. “내가 관심을 가진 ‘빛’을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빛은 분명 물리적 실체가 있지만 나무나 금속처럼 조각할 수 없잖아요. 음악가가 원하는 소리를 악기를 통해 만들어내듯, 빛을 생산하는 악기가 필요했어요.” 이 도전적인 시도는 동시대 미술의 경계를 넘어서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공간 경험, 즉 하늘을 보는 감각을 환기한다. 이 지점에서 로든 크레이터는 고대의 건축 유산들과 하나의 축을 이룬다. 마추픽추, 이집트의 피라미드, 선사시대 토루 문화(Mound Builders)의 공간 구조와 깊은 형이상학적 친연성(親緣性)을 지닌다. 파라오가 별들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도록 설계된 천체 건축인 피라미드나 인티(태양신)의 경로와 고산지대의 자연환경을 조화시킨 안데스의 마추픽추도 지상에 있으면서 하늘을 향한 계단이었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 터렐관에 설치된 몰입형 작품 ‘스카이스페이스’(2012), ‘간츠펠트‘, ‘호라이즌 룸(Horizon Room)’(2012)도 터렐의 다른 작품처럼 일정한 리듬 속에서 변화하는 빛의 순환성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보는 자(viewer)’임을 자각할 수 있다. 터렐관의 작품들은 관람자의 지각을 위쪽으로 향하게 하거나 마치 스크린을 치듯 프레임을 형성한다. 빛을 매체로 삼되, 고정된 이미지나 메시지는 거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 시간의 신성성을 발견하고 하늘을 느끼며, 존재를 ‘통과’하는 고대적 감각을 환기한다.